(118) 변화한 조선은 밖에도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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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더 지나고, 태왕 이영은 좋은 소식을 들을 수가 있었다. 바로 조선의 철갑해방함, 다른 말로 하자면 철갑으로 된 모니터함이 곧 진수될 예정이다. 이에 관한 보고를 태왕 이영은 대면으로 들을 수 있었다.
군부 소속 고관 중에 해군청 소속이 태왕 이영에게 보고했다. 아침의 조회, 정확히는 이제 조회는 의정부와 그 아래 부처들의 중요 고관과 아침에 보고가 필요한 사안을 보고하는 부처의 대표자 겸 상급 실무자 등이 참석하는 일로 바뀌었다.
사진과 장계를 통해서 이미 사전에 승인했던 조선 최초의 철갑 모니터함에 관해서 이야기 하였다. 태왕 이영은 어떤 선대 임금처럼 무기에 환장하는 편은 아니라도, 국방에 관심이 컸기 때문에 이 보고는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게 서방의 기술을 받아서 우리가 직접 만든 대부분의 부품을 조립하여 건조한 새로운 철갑선인가?”
“그렇습니다, 신 귀선이라고 이름을 지을까 합니다.”
그 말에 대조선국의 태왕인 그, 이영은 보고를 올린 해군청 소속 신하를 보면서 이야기한다. 더 나은 이름을 생각했기에 그렇다. 즉흥으로 지었지만, 반응이 좋으면 채용할 생각이다.
“더 좋은 이름을 생각해 봤다네, 저 배의 이름으로 태조께서 이끈 금군의 전신인 가별초를 붙이고 싶군.”
태왕의 말에 모두가 생각하면서 고개를 숙인다. 이윽고 모두가 일성으로 말한다. 일리가 있다고 여기었다.
“탁월한 생각이옵니다.”
“인천에 내가 직접 행차하여 보고 싶군.”
“오히려, 폐하가 친히 왕림하면 그보다 더 영예는 없습니다.”
해군청은 사실 태왕 이영이 그동안 육군 중 경군, 중앙군의 군사 사열은 받으면서 해군의 사열을 받은 적이 없었다. 이 기회에 물이 들어오니까 노 젓자는 심보로 놓치지 않았다. 퇴역 대장이자 해군 ‘원수’ 대장인 이규철도 태왕 이영의 진수식 참여에 동행하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고 인천 부의 조선소에서 열리는 가별초의 진수식에 친히 행차한 태왕 이영은 가별초를 유심히 살폈다. 조선이 서양식 선박을 더 잘 만들게 되었어도, 아직 철갑 군선은 거의 없었다. 이렇게 처음으로 조선이 직접 만든 철갑 군선이 나왔다는 사실은 뿌듯하였다.
그리고 보고를 통해서 아는 배의 사양을 알았다. 스크루 추진에 기선이고 회전포탑 2개가 함수와 함미에 있으며 포탑의 안에는 300파운드 암스트롱 후장포가 2개가 들어 있다.
가별초는 모니터함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제원은 전장 52m에 전폭 16m, 흘수 2m의 만재배수량 500t으로 국산 철갑함의 등장이었다.
물론 화포인 암수투롱, 암스트롱 대포는 영국에서 수입했다. 나머지는 국내의 공방에서 만든 부품도 있지만, 국내에서 만들다가 실패할지 모르는 핵심 부품은 수입하였다. 이렇게 모인 부품 등으로 조립했다.
‘서역에서 우리가 사들이는 서양의 철갑선에 비하면 당연히 약소한 편이다. 그런데도 기쁘지 아니한가?’
‘첫 숟갈에 배부를 수 없다. 그래도 우리 조선의 상황을 알면 이 정도면 적당히 괜찮다고 할 수 있다.’
‘목표를 낮게 잡았다는 말이야 있지만···. 무리해서 자국산 강갑함(鋼鉀艦 : 철갑함을 가리키는 이칭.)을 크게 만들었다가 실패하는 일보다는 낫다. 부유 포대에 가까운 녀석으로 시작해서 발전하면 될 일이다. 저 덕국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고 알기에.’
그런데도 이것을 보면서 감개무량하며 차후 더 좋은 군함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는 조선 조정 사람들이다. 태왕 이영과 총리대신 환재 박규수, 백작의 작위를 받은 이규철 해군 ‘원수’ 퇴역 대장의 순서로 생각이 드러난다.
미국인 기술자들, 영국인 기술자들, 두 나라 말고도 유럽과 아메리카의 기술자들이 기술을 전수하여서 등장한 조선인 기술자들이 만들어낸 최초의 국산 철갑 군함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 진수식에는 조선에 주재하는 유럽과 미국의 외교관들도 초청되었고, 고문들도 비슷하다.
‘댈그런 대포, 혹은 패릿 라이플 대포도 좋은데. 영국 해군이 쓰는 암스트롱을 쓰겠다고 해서 조금 아쉬웠어. 물론 상사인 조선 정부의 결정이지 않은가? 이미 다양한 대포를 고려해서 설계한 일이니까.’
물론 이번 진수식의 가별초라는 군함을 설계하는 주임이자, 건조를 주도한 기술자로 진수식에도 당연히 참여한 랜돌프 버틀러는 고국인 미국의 댈그런 대포와 패릿 포도 좋은데 암스트롱 포가 된 일은 유감이었다.
그와 별개로 새로이 뿌리 내릴 고국인 조선과 자신의 고용주인 조선 조정의 요구에 따라서 영국제 암스트롱 포를 설치했다. 게다가 저 철갑 모니터함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미 랜돌프 버틀러, 아니 조선에 귀화하여서 배란돌이라고 조선식 이름도 지은 남자는 조선에 서양식 철제 군함을 건조하는 일 등 조선의 조선사에 역사를 더 남기고 싶어졌다. 즉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던 셈이다.
태왕 이영의 용안은 물론이고, 조선 조정 고관들의 얼굴을 보면서 귀화 조선인 배란돌은 조선의 상황을 보면, 더 큰 배들을 찬찬히 만들면서 열강을 제외하면 충분히 해군력의 우위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새로운 나라에 나의 새로운 상사들이 항상 놀랍게 무리하지 않을 정도로 노력하자.’
게다가 진수식에서 조선의 고관들이 기뻐하는 표정을 보고, 이전부터 조선인 하급자들의 기뻐하는 모습에 성취감을 더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근로의욕은 더 늘어나는데 기술자들에게 보너스를 당연히 지급했지만, 배란돌 같은 귀화한 기술자들은 몰래 더 보너스 성과급을 지급했다. 당연하게도 매우 기뻐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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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은 안에서는 잘하지 않으시네요?”
“집에는 익숙한 옷을 입어도 되지 않습니까?”
“그래도 옷이 꽤 화려하군요.”
대조선국 상류층의 경우는 유럽과의 교류를 통해서 생활이 좀 달라진 구석이 많았다. 조선의 면목도 쓰지만, 서양식 기계식 면목으로 옷을 지어 입는 일은 더 흔해졌다. 그것만이 아니라 남녀 모두 서양식 옷을 입는 일도 늘어났다.
서양식 비단 직조물인 벨벳은 두꺼운 견직물로 비싸도 아주 선호되었다. 물론 조선에서 자체적으로 벨벳을 생산해서 그런 감도 나오는 편이다.
그래서 조선의 벨벳을 더 사들인다. 국산을 쓰니까 사치라도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대면서. 그런데도 일부 프랑스 벨벳을 쓰는 일도 있는데, 누에 문제로 가격이 올라간 상황에서 외국산 벨벳을 쓰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우단(羽緞 : 벨벳의 한자어.)으로 만들었지만, 우리 조선의 물품입니다.”
“색을 입힌 우단이라니. 부럽네요.”
그리고 식기는 몰라도, 다과용 그릇으로 본차이나 같은 채색 자기를 모방한 조선 자기들도 쓰였다. 청나라의 진짜 귀한 자기들만큼은 아니라도, 점점 조선도 유럽에 수출하면서 기술은 더 늘어났다.
조선의 백자에 채색을 더해서 백자를 평소와 달리 조금 더 낮은 온도에서 가마에 구워서 채색을 유지하는 식도 가능하였다. 방법에 따라서는 옹기 수준의 온도에서 굽기에 예쁜 옹기라고도 불리지만 사용되었다.
“또 색을 칠한 자기 그릇에 다과를 올렸군요.”
“예, 그렇습니다.”
“예쁜 옹기인데도 예쁘니까 사용하는 편이라는데.”
“뜨겁고, 오래 보관해야 하는 녀석은 이걸 쓰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조선의 주류 식문화로 인해서 잘 쓰이지 않지만, 다과용 그릇으로는 더욱더 잘 쓰였다. 유리그릇 보다는 덜 비싸면서, 위신을 챙길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은제 식기와 알루미늄 식기보다도 더 싸기에 가능하다.
그런데도 조선의 식문화는 뜨거운 국을 중심으로 먹기 때문에 채색 자기는 물감이 벗겨질 우려로 잘 사용하지 않았다. 도자기 사용 유행이 제한적으로 부활한 편이지, 전체적으로 부활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확실하게 부활한 편이었다. 어떻게 복원이 된 청자에 채색을 한 자기도 유행하였다. 그런 자기들이 이전보다는 확실하게 보다 더욱더 잘 쓰이는 편이 맞았다.
그리고 조선에 주재하는 유럽인들과 미국인들도 그런 유행을 따라서 해당 자기들을 수집하기도 하였다. 유럽, 그중에서도 영국의 영향으로 중인 이상의 상류층은 영국식 다과회를 조선의 방식으로 변형해서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위의 대화하는 쪽은 부부가 아니다. 초대받은 일행 중의 한 부인과 초대한 집의 안주인이다. 두 사람 말고도 각 집의 영애들, 다른 부인들도 같이 안채의 다과회에 참여했다.
“차린 것은 적지만, 잘 즐겨주시기를.”
“이 정도면 매우 신경을 쓴 편이 아닙니까?”
“과찬입니다.”
“손님인 우리를 대접하려고 이런 정성에 감사합니다.”
가식적으로도 보일 수 있지만, 서로를 향한 칭찬 등을 주고받았다. 다과회에서 대화의 화두는 꽤 다양하게 오가는 편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들도 당연하게 많이 언급하였다.
이 다과회에도 청나라 혹은 일본에서 수입해온 차 묘목을 조선에서 길러서 조선의 방식으로 가공한 제품들이 쓰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영국의 홍차를 쓴다. 그도 아니면 청나라에서 수입한 차 종류다.
특히 광둥의 서양 조계 등을 통해서 사 온 차 종류가 더 인기였다. 물론 광둥 등 양광이 아니라도 산둥 일대의 차도 선호가 되었다.
그런데도 가장 큰 주류는 조선 방식의 가공을 거친 차들이다. 딱히 신토불이라서 그런 점은 아니다. 그나마 익숙해서 그렇다.
또 채색 자기 그릇 위에 올라간 과자들은 서양식 과자들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차도 설탕을 아끼는 이유인지는 몰라도 적당히 타서 마신다.
“곶감은 감사합니다.”
“조청 대신에 사탕을 넣은 약과를 약간이라도 드시지요.”
“서역의 과실도 괜찮네요.”
“네. 입맛에 맞아서 다행이군요.”
사실 이를 그나마 즐길 수 있는 쪽이라서 초대한 쪽의 부가 꽤 있다고 짐작이 가능하다. 역관인데 부유함이 높았다. 이 집안은 역관 현기수의 집안이다.
토머스 리들과 밴더빌트 가문이 책임지고 세계의 팔레트 특허권의 특허료를 받아내기 때문이었다. 조선에도 팔레트의 특허가 유효하며, 이를 유구 등에도 등록했다. 게다가 근래인 1873년에 국제적인 특허 논의가 통과가 된 이후로 역관 현기수에게 들어올 특허 비용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그 외에도 현기수 집안의 부는 원래도 쌓여있던 부가 있지만, 이를 더 불린 수완이 따로 있다. 그가 가진 판자 상회사에 달린 일이다. 그 외에도 나라의 시책 등에 꽤 열심히 투자해서 판자, 조선으로 망명한 일본인들은 주식이라고도 칭하는 채권의 주인이며, 투자를 통해서 돈을 벌었다.
그래서 유럽인 상인들과도 교류를 나누면서 밴더빌트 조선 사장과 토머스 리들과도 친구가 되었다. 이 상태에서 인천 부 제물포 개항장에 유럽식 사교회의 주빈으로 채택될 정도로 현기수는 꽤 잘 나가는 역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얻은 부를 너무 지나친 수준은 아닌 선에서 누리는 중이다. 현기수의 부인인 이 집의 안주인은 원래도 부유했기에 딱히 졸부처럼 굴지는 않았다. 초대받은 쪽은 다 귀한 모습이라서 놀란다.
‘이 정도에 놀라다니. 참. 궁궐과 고관대작의 주택에는 더 놀라겠군요.’
물론 예전과 달리 저택의 규정을 점점 폐지하는 느낌이라서 99칸 이상의 저택을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의식 등은 그러기는 당연하게도 꺼리는 편이다. 현기수의 저택도 당연하게도 99칸보다는 덜 지었다.
또 집을 장식하는 서양의 기물 몇 개에 감탄하는 모습에 순진하고 귀엽다고 생각한다. 현기수의 부인은 그런 기분을 고관대작의 집 등에서 느꼈다. 아니면 서양인 상인 중 부유한 이들을 상대로.
그들은 엄청나게 큰 집을 지어도 되었지만, 개항장의 택지 문제로 크기를 매우 크게 짓지는 않았는데 대신에 내부를 매우 화려하게 단장하는 성향을 알았다. 부부 동반으로 만찬 등을 초청받아서, 아니면 서양식 다과회에 초청받았을 때 알았다.
그런 현기수의 부인은 그런 곳에 가도, 이런 변화한 조선만의 새로운 다과회가 좋았다. 서양인 부인들을 초청할 때 그들도 덜 격식 차리는 일은 좋다고 말했지만, 입에 발린 경우도 있다고 파악했다.
같은 조선인 부인들은 덜 가식을 부린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여전히 장안의 화제에 가까운 책, <기이국소녀유람기>를 놓고 바깥사람들이 시끌시끌하고 안사람들도 시끌시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다를 건너온 서역의 패설(稗說 : 소설을 가리키던 말.)이 대체 무엇이라고 얼마나 논란인지 모르겠어요.”
“말장난들이 매우 많아서 곤란하다고는 들었습니다.”
<기이국소녀유람기>, 원문으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1870년대에 조선에 번역되고 논란이 되어버렸다. 물론 조선만 유독 논란이 된 일은 아니었다. 이미 1866년 즈음에 영국에 출간될 당시에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우화 같지만, 왕실 등의 높은 이들을 필요 이상으로 조롱하는 듯이 보이는 느낌이기는 합니다.”
“이를 지나치게 문제로 삼기에는 전례들이 없던 일들도 아니지 않습니까?”
“글의 목적을 정말 알 수 없기 때문이 아닙니까?”
<기이국소녀유람기>를 제대로 읽어보고 문제로 삼는 이들은 주로 어른들이다. 아이들은 별로 문제로 삼지 않았다. 이 소설이 현실을 풍자한 소설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책으로 봐야 하는지를 놓고 충돌하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조선에 처음 번역한 사람은 이 소설을 좀 웃긴 소설이라고 생각하여서 번역하였다가 이런 일이 생길 줄은 크게 예상하지 못한 듯하였다. 물론 해외에도 이 소설을 놓고 싸운 이야기가 많은 편이지만, 이국인 조선도 그런 논쟁에 휘말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패설의 후속작이 영국에 나왔다는데 우리 조선에도 이것이 번역될까요?”
“모르지요. 기이국소녀유람기도 태왕 폐하께서 출간을 유지한다고 해서 넘어갔습니다. 그 후속작도 태왕 폐하의 자비로 허락하지 않을까요?”
“기이국소녀유람기는 읽어봐도 흥미롭더군요.”
“우리 조선의 상황에 맞게 언어유희도 번역한 점이 놀라웠지요,”
논란이 있을지언정, 재미가 있기에 정식 출간본 말고도 필사본도 만들어졌다. 어떤 판본이든 열심히 시장 좌판의 책방에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자주 빌려지는 책에 속했다. 규방의 규슈들도 대부분 <기이국소녀유람기>를 읽어봤을 정도였다.
남정네들도 대부분 읽어봤다. 논란의 책을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려고 그랬다. 게다가 종이의 산출량이 더 늘어나면서 책의 출판 총량도 당연하게 늘어났다. 금속활자의 활용은 더욱 늘어나는 편이다.
사서삼경의 필사도 외우려고 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금속활자로 떠낸 것이 더욱더 유행하였다. 물론 서양 산학과 서양에서 건너온 새로운 학문을 담은 서책은 더욱더 많이 출판되었다.
이는 신식 학교, 신식 학교는 아니라도 서당에 훈장과 학부모들이 신식 교육을 하려고 사들이는 편이었다. 덕분에 사역원 아래의 양본역감은 더욱 격상되고 그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는 편이다.
그리고 기이국소녀유람기 말고도 서양 패설, 서양의 소설이 들어오면서 조선의 소설도 당연하게도 발전했다. 특히나 공교육의 더욱더 체계화로 조선의 동화 종류도 등장하고 늘어났다.
“그나저나, 귀댁의 규수가 잘 되어가는 모습이네요. 학업은 어떤가요?”
“그냥 여학교만 진학시켜도 다행이 아닙니까? 돈 없는 이들은 딸들에게 소학교는 최소한 보내야 하지 않습니까?”
“배움은 중요합니다. 여학교도 더 늘어나는 일이 대세인데 대세를 따라야 하지 않습니까? 돈이 없더라도 학교에 보내려는 이들은 많지요.”
“여인들한테도 고등학교와 대학이 허락되면 참 좋을 듯은 하지만 모르겠습니다.”
물론 다과회에서 학업에 관한 이야기도 당연히 나온다. 여성의 학업은 아직 대학에 관한 이야기는 조심스럽다. 여학교까지는 졸업시켜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중등 교육과정인 여학교를 다녀야만 근래에 찾아오고 앞으로도 더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다고 여기는 편이다. 소학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여인들도 있지만, 반론을 들었다.
게다가 조선 조정 말고도 지방의 유학자, 유림은 지방에 신식 교육을 끌어오는 선구자들로도 기능하였다. 유림의 부인들도 남인이라고 하여도, 여성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여인을 위한 작은 학당을 만들기 시작했다.
경기 남인도 노론과의 교류로 여성의 교육을 긍정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당의 색을 가리지 않고 이를 지원하였다. 경기도, 그중에도 한성부의 여성 교육기관은 왕실과 조정의 후원으로 늘어나는 편이 옳았다.
“근데, 왕실은 영국의 영향으로 여인한테도 격물학의 재능이 있다면 후원할 생각이라고 들었어요. 사실일까요?”
“폐하 말고도, 왕실 여인들도 이를 꽤 좋게 여긴다고 하면서, 태왕 폐하와 태자 전하, 한산 공 대감이 지지하게 설득했다는 풍문은 들리지요.”
“이와 결부한다면, 여성에게도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허락하실지도 모릅니다.”
여인들은 다른 이야기로도 화제가 돌아갔다. 조선의 왕실은 궁부 아래의 기관이 된 내수사, 내장원으로 재편한 조직이 보관하는 왕실의 돈을 들여서 신식 학문을 연구하고 발명을 지원하는 양격물학자고라는 재단을 설립했다. 여기에 유럽의 명사들도 조선의 왕실이 세운 이 재단을 지원하는 편이었다.
또한 조선의 근대 교육기관과 재단에 높은 자리를 참여하고, 자국의 영향력을 더 높이려고 몸부림쳤다. 그래서 유럽 각국이 자국의 여러 교수들을 조선이 따로 고문을 초빙하는 일 외에도 지원하라는 권유로 더욱더 지원자들도 생기는 편이었다.
특히 프랑스가 이런 일에 꽤 열심인 편이었다. 물론 프랑스는 영국의 영향으로 조선도 여성에게도 격물학자, 과학자가 되는 일을 지원함에는 부정적이지만, 조선에 강하게 말하는 편은 아니었다.
프랑스 등 유럽 대륙이 보기에는 조선의 여성이 가지는 권리는 생각보다 강하니까 그 전통을 인정하자는 말도 나오는 편이었다, 그런데도 조선도 여성들은 사회적 진출을 해 보고 싶었다. 유럽처럼 여성들의 공개적인 사교 목적의 연회 등을 하고 싶었다.
반면에 유럽과 미국의 여성들은 조선의 일부 사정을 아는 편이라면 조선처럼 여성도 법정과 법 앞에서 남성과 동등한 법인격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서로서로 부러워하는데 둘 다 누리는 시기가 오게 투쟁할 일이 생길 법하였다.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요. 조아라에서도 연재중입니다. 거기에는 HMS 아론다이트란 이름으로 연재를 합니다.
- 작가의말
아는 분의 의견을 들어서, 앨리스 이야기를 조선에도 넣어봤습니다. 후속작인 거울나라의 앨리스도 조선에서 꽤 논란이 일어날 듯 합니다.
그 전에 국산 철갑 모니터함인 '가별초'함이 등장했습니다. 이전부터 떡밥으로 던져놓았던 녀석을 추가했습니다. 저 녀석을 시작으로 조선의 철제 군함 건함사가 시작되는 셈입니다. 랜돌프 버틀러는 건함 관련으로 자주 등장시킬 예정이지요.
다시 뒷부분의 이야기를 하자면, 조선의 여인들을 중심으로 변화한 생활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중인과 양반들 위주라서 상민 여성들의 모습은 다르게 더 작성하고 싶네요. 다음편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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