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그사이에 있던 많은 변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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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대에 조선에도 빈부격차는 늘어났다. 부유한 이들은 더욱더 부유해졌다. 가난했다가 부유해진 이들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조선 경기도에 있는 시흥군에는 부유한 향반 집안이 살고 있다. 집안에 가장 높은 어른인 할아버지가 추석에 평범하게 지나가면서 친족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흠 오늘은 명절이니까 ‘그것’을 까자꾸나.”
그 할아버지는 잔치에 어떤 음식을 꺼내자고 말했다. ‘그것’이라고만 말하며 숨기었다. 손자는 할아버지가 뭘 꺼낼지 알고 있다.
“‘그것’이요?”
“그래. ‘그것’!”
그런 부친을 보면서 가주를 승계한 아들도 이 할아버지가 말하는 ‘그것’을 안다. 그러고는 할아버지는 며느리를 보고는 물었다.
“며느리야. ‘그것’을 꺼내도 되겠느냐?”
집안에서 열쇠를 가지는 종부인 며느리가 허락해야 가능한 일이기는 하였다. 더욱더 위세가 높아진 종부, 며느리는 빙그레 웃으면서 답했다.
“이런 날에는 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버님.”
“그래?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럼요. 열쇠는 여기요.”
종부인 며느리는 선선히 저고리에 같이 챙기는 주머니 속 열쇠를 시아버지인 할아버지에게 건네주었다. 손자는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놀랍다고 생각한다.
손자가 아는 어머니, 할아버지에게는 큰며느리가 되는 종부는 평소에는 좋은 날이라고 무조건 곳간에 물자 푸는 일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할아버지가 말하는 ‘그것’은 보나 마나 저기 달자와 유주인들, 몽골인들과 유럽인들로 퍼진 왕실과 일부 계층에만 먹던 건락을 말한다. 건락은 치즈이다.
특히나 유랍식 건락, 유럽식 치즈는 장기 보관이 가능하게 밀랍 등을 바르는데 마침 명절이니까 그것을 꺼내 먹자고 하신다. 손자는 ‘한동안 건락 요리로 건락 냄새가 진동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예, 돌쇠는 있는가!”
“예, 주인 어르신!”
돌쇠라고 부르는 집안에서 부리는 하인이 달려왔다. 유럽에는 스튜어트 등으로 칭해지는 청직(廳直 : 집사와 거의 같은 말.)은 아니어도 집안에 충실한 하인으로 고용한 고공(雇工)으로 오래되었다.
그런 돌쇠는 없는 청직을 제외하고는 꽤 높은 하인이다. 그런 돌쇠에게는 전대 가주로 집안에 제일 높은 남자인 할아버지도 막 부르지 않는다.
“곳간의 건락을 꺼내 오너라.”
“예, 나리! 자네들! 주인 어르신이 곳간에 있는 건락을 꺼내 오라고 하신다!”
“예!”
“도구도 챙겨라!”
할아버지의 지시에 따라서 돌쇠 아재라고 부르는 높은 위치에 있는 하인이 다른 하인들을 부른다. 그리고 돌쇠 아재와 함께 하인들이 건락을 꺼내온다.
사람이 많아도 밀봉한 유럽식 치즈 큰 덩어리면 충분할 것이다. 큰 건락 덩어리를 자를 도구도 이미 지시받은 하인들이 가져왔다.
건락을 꺼내 와서 밀랍을 쪼개서 칼로 건락을 자르고 그것을 양병에 올려서 나눈다. 물론 할아버지는 건락을 그냥 좀 크게 잘라서 먹는 편이다.
그리고 머루주에 곁들여서 건락을 즐기고 있다. 그것도 머루주를 유리잔에 따라서 마신다.
“건락은 본디 서양에서 만들어지는 포도주와 마셔야 하는데 아쉽게도 머루주만을 마시는구나. 그래도 유리잔에 비친 영롱한 붉음으로 잔이 홍옥이 되고 입은 노란 건락을 먹고 잔을 홍옥으로 만드는 붉은 술을 마시니 그 즐거움이 크다. 이 즐거움으로 난 저 옛 당조의 시선 이태백도 부럽지 않구나.”
할아버지는 이태백이 부럽지 않다고 말하면서 당나라 왕조 시대의 성세에 비하는 지금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이 보였다.
손자도 할아버지의 생각을 동의하는지는 몰라도, 금강산이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먹는 데 집중한다. 건락은 밥과 잘 어울린다.
그래서 양병, 빵 말고도 건락을 밥 위에 올려 먹는다. 짠맛이 밥과도 어울린다.
건락을 친척과 하인들이며 이웃에게 베풀라고 명하는 그의 할아버지로 건락을 모두 즐기고 있다. 건락을 연회에 푼 장본인으로 손자의 할아버지인 노인을 향해서 이웃들이 덕담을 건네었다.
“어르신 덕분에 이런 호사를 누립니다.”
“이게 말로만 들은 건락이구먼. 유랍식 건락은 특히 귀해서 엄청나게 자주 먹기 힘든데.”
“타락보다 귀한 건락이라니. 내가 삶을 잘 살았구나.”
“큰 목장을 가진 어르신과 인연이라서 다행입니다.”
이 근방 고을에서 가장 큰 목장을 가진 그의 할아버지는 사설 우유소를 가졌다. 스위스 브라운 소들을 육우(肉牛)이자 유우(乳牛)로 많이 기르고 있다.
그래서 어떤 집안들보다 건락인 치즈가 많고 우유도 간혹 마신다. 손자도 할아버지가 가진 재력에 덕을 보는 편이다.
물론 그의 할아버지는 타락죽을 생우유보다 더 좋아한다. 발효한 타락, 다르게 말하면 요구르트를 생우유보다 더 선호한다. 조선인들도 생우유보다는 타락 종류를 더욱더 좋아하는 편이다.
“타락과 건락을 더욱더 쉽게 먹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 태왕 폐하와 많은 신료가 노력하다가 거들었을 뿐이요. 이런 좋은 음식을 나만 먹으면 덕이 없는 사람이지. 그런 사람이라고 내가 듣기 싫으니 부린 고집이외다.”
그렇게 추켜세워지는 일이 부끄러운지 아주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할아버지를 볼 수 있다. 손자는 할아버지가 하는 말에 이번에는 귀를 기울인다.
“내 뒤를 이어서 집안을 대표하는 종손이며 가주인 아들이 목장을 잘 유지해서 그렇소. 덕도 있으니까 서역 천주교 승려들과도 같이 일하지 않습니까?”
“아버지.”
“그리고 나보다 배포가 큰! 우리 며느리! 이 집안 종부가 결단했으니까 풀지 않았소?”
“아버님.”
손자에게는 부모인 장자와 큰며느리는 기분이 좋아서 칭찬을 말하는 할아버지가 부끄러워서인지, 아니면 칭찬이 과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약간 쑥스러워하는 표정과 행동을 보였다.
그런 부모님이 손자라고 불리는 남자는 어색하다고 생각한다. 손자는 지금 부모님이 보이는 그런 모습을 많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 보이는 모습이 꾸며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이고 어르신이 가족 칭찬하는 모습에서 문중에 사랑이 넘칩니다.”
“이런 문중들은 많아야 좋습니다.”
“손자 칭찬은 없습니까?”
“우리 손자?”
할아버지는 이웃에 사는 이들이 손자 칭찬이 없냐고 물어보자, 손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손자를 향해서 할아버지는 인자한 웃음을 짓고는 손자 칭찬을 시작한다.
“우리 손자는 공부를 잘해! 그래서 대학교라는 곳도 갔어! 이렇게 한성에서 공부하다가 명절에는 잘 내려오고, 부모에게도 조부모에게도 잘하는 효자요. 그리고 더 효도하면 천하에서 제일 잘난 효자이겠지!”
“할아버지!”
이런 칭찬을 끝으로, 각자 대화할 사람과 1인 1상에서 잔치를 즐겼다. 이날은 마을에 부유하던, 가난하던 막론하고 모두가 즐긴다.
그래도 복장 등으로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알 수 있다. 신분이 사라졌어도, 계층과 계급 같은 사실상 신분이라고 할 수 있는 종류가 남았다. 그런 의식이 남아 있기에 백정과 노비, 그리고 천민 출신들은 원래 양인이던 이들과 따로 앉게 처리했다.
손자는 이런 모습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고도 생각한다. 부유한 이가 요런 베푸는 일 말고도, 뭘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옳지 않은 의식 등을 앞장서서 타파하는 일이 제일이지 않을지 같은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그런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손자가 무슨 고민이 있다고 생각해서 말이다. 할아버지가 다가와서 도리어 손자가 놀랄 정도이다.
“할아버지?”
“그래. 무슨 고민이 있느냐?”
“네.”
“말해줄 수 있겠느냐?”
할아버지가 조심스럽게 어른인 손자에게 물어봤다. 손자는 고심하다가 제 마음속에 있는 고심을 털어놨다.
“어떻게 해야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단순하게 베푸는 일 말고, 더욱더 나은 방법을 제시하고 제도를 만드는 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흠.”
“또 법이 바뀌었는데, 의식이 그대로라면 어떻게 정말 평등이 있습니까? 더욱더 의식을 바꾸는 데 이바지하여 평등을 말하고 싶습니다.”
손자가 가진 고민에 대해서 할아버지는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보는 모습에는 표정에서 대견하다고 생각함이 드러난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자상하게, 또 다정하게 고민을 들어주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말해준다. 손자는 할아버지가 가진, 노인이 가지는 혜언(惠言)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구나. 주변에 구호만으로 그치는 이들이 많다. 가난은 임금도 쉬이 해결할 수 없다. 환곡 같은 제도가 있는 법도 비슷하다. 나라와 반가 사람 중에 제대로 된 이들이 재산을 풀어서 구휼하는 일도 당연하게 생각해서 움직인단다. 하지만, 천하는 바뀌고 있다.”
“예.”
“더 커지는 상황에서 더욱더 푸는 재산 등을 잘 쓸 수 있고, 그렇게 푼 재산이 잘 돌아가게 노력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유랍 등에서 그들도 생각이 바뀌었는지, 일꾼들을 더욱더 보호하려고 한다고 들었다. 우리 조선도 그런 변화 중에 소외되는 이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조정도 더 해야 한다. 그런 조정이 되기 위해서는 너 같이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야 한다.”
“네. 할아버지.”
“그리고 군군 신신 부부 자자는 각자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을 말하는 해석으로 바뀌고 있단다. 그게 항상 지속되지 않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그게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군군 신신 부부 자자를 여전히 각자 이어가는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세습한다고 하여도, 자식은 아버지가 되기도 한다. 신하가 되기도 한다. 이런 변화를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고민을 처음 풀어 놓은 대상인 할아버지는 노인의 혜언을 들려주면서도, 손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을 긍정적으로 여겨주는 모습이다.
그런 조부, 할아버지를 보면서 손자는 감동한다. 손자를 보면서 할아버지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이어 나간다. 할아버지가 하는 말에 이제 손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귀를 기울인다.
“천하는 더욱더 빨리 바뀐다오. 우리 같은 노인들은 변화에 수긍하면서도, 노력해야 하지 않겠소? 우리 아랫세대에 있는 사람들을 구태여 방해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합시다.”
할아버지, 이 문중 전대 가주가 한 말에 많은 이들도 생각에 잠긴다. 할아버지보다 나쁜 의미로 꼬장꼬장한 친척 어른들은 불편하게 생각한다.
물론 그런 생각이 강한 친척 어른들도 세계가 변화하는 사실을 알기에 그들은 점점 시대에 뒤처질 이들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쁘게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요즘 젊은이들이 하는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할 뿐이다.
“너는 어떻게 네가 생각하는 대로 바꾸고 싶으냐?”
이제는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물었다. 손자는 조심스럽게 자기가 가진 생각을 풀었다. 이번에도 손자에게는 할아버지가 되는 노인은 진지하게 경청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끝까지 들어본다.
“무조건 평등할 필요는 없습니다. 평등해질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져야 합니다. 관리 시험이 바뀐 이유도 그렇지 않습니까? 비록 군역을 치르고 난 다음에 자격이 주어졌지만, 군역을 치른 이들에서 자격을 주고 합당한 자를 뽑습니다. 그게 반가 사람이든 양인이든 이전과 비교하면 더욱더 가리지 않고요.”
“그래.”
“가난한 이들이 더욱더 가난하게 떨어지는 일을 방지해야 합니다. 공회(사회)가 함께 그들을 보호해야 하지 않습니까? 마치 향약이 마을 일원들을 지켜주고 보호하는 뜻이요. 또 이 조선 땅에 나오는 부당한 의식을 타파하는데 반가 사람들이며, 위정자 위치에 있는 이들이 더욱더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안타까움이면서도 올곧은 사람이 되어서 고맙다고 칭찬하는 말이다.
“모두가 다 실천할 수 없어도, 그런 문제에 도전하려는 이들이 더욱더 많다면 세상은 바뀐다. 머리 좋으면서도 올곧게 우직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힘든 길이라도, 동지가 많다면 그럴 수 있을 것이란다.”
그렇게 할아버지에게 격려받은 손자는 대학교에 돌아가서는 어떤 단체에 투신했다. 민본협회라는 협회에 말이다. 그러면서, 혁신 유림 중에 부당한 노동을 일꾼들에게 강제하는 이들을 상대로 항의하는 조직에도 대놓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런 청년들이 손자 말고도 종종 존재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은 억악당이라고 칭했다.
억악당(抑惡黨), 일꾼들을 착취하는 악인 같은 부자를 억제하는 무리라는 뜻으로 말이다. 그들과 함께, 조선에도 언젠가 적극적인 노동 운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요. 조아라에서도 연재중입니다. 거기에는 HMS 아론다이트란 이름으로 연재를 합니다.
- 작가의말
1880년대 조선 부유층 이야기를 담았지요. 그외에도 그들 젊은이들이 가진, 고뇌 등도 생각했었고요.
억악당은 과연 어떻게 이어질지는 나중에 알 수 있습니다. 다음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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