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새로운 시대가 다가옴에 등장하는 새로운 세대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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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변화는 종친이라서 적용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이미 양반, 반가 사이에서 공신으로서 작위를 받은 세족이라는 집단이 새로운 사회적 계급이 되어가는 중에 나오는 변화를 종친이라고 안 받을 리가 없다. 그들도 경장의 영향을 이미 받는 중이다.
궁정의 궁녀들도 성격이 달라지고, 분화된 상황이다. 궁녀들보다 먼저 종친들이 조선의 변화에 적응해서 살았다.
이하응의 사저인 운현제에는 지금 중요한 손님이 왔다. 원래도 운현제는 종친의 사저로 흥선 백 이하응의 빈객들이 꽤 머물렀는데, 이 손님은 흥선 백 이하응 일가한테는 꽤 중요한 인물이다. 아주 사사로이 가까운 사이라서 더욱더 그렇다.
“재황아.”
“예, 형님.”
“중학교를 졸업했는데 대학교에 갈 생각이 없다면, 다른 것을 배워볼 생각은 없느냐?”
비록 이재황, 초명 이명복은 돌아가신 두 백부 중에 흥완 백 이정응의 양자로 가게 되었지만, 여전히 원래 가족과 교류했다. 종종 운현제에 이렇게 기거하는 편이다. 운현제의 중요한 손님은 이 이재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아니다.
“모르겠습니다.”
“궁부에서 관직을 가지려면 종친은 군역을 수행해도 공무를 수행할 능력을 입증해야 한단다. 너야, 중학교에서 한량을 신청했고, 예비역 참위지만 말이다. 예비역 참위라도 다른 방식의 입증이 증명되는 일을 해보아라.”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생각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너보다 먼저 이곳을 방문한 다른 손님, 용평 백을 보고 조금 본받아라!’라는 말을 하려다가 이재황과는 종법적으로는 사촌 형제, 원래면 동복 형제이던 이재면이 진정했다. 진짜 중요한 손님인 용평 백을 굳이 언급해서, 혹여 그를 불편하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태왕 이영과는 육촌 형제 항렬인 가까운 종친이라서 언급하기 조금 조심해야만 한다.
이재면은 요동에 있다가 한성으로 복귀해서 교육을 받는 중인 이복형님, 서장자인 이재선이 이때만큼 집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다. 아버지인 흥선 백 이하응도 광명 14년인 1872년에 귀국하고는 쉬고 있지만, 지금 출타 중이었다.
귀국한 다음에 해외에서 공사로 근무한 여독을 풀라고 반년의 휴가를 태왕 폐하가 내려주었다고 이재면은 아버지한테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1873년에 아버지 흥선 백 이하응은 영국 주재 조선 공사관의 공사로 부임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흥선 백 이하응도 이재면에게는 돌아가신 백부 중 한 분, 이하응의 둘째 형인 흥완 백 이정응의 양자로 들어간 아들, 이재황이 조금 걱정되기는 하였다.
이재선, 이재면과 이재황의 사촌 형님인 완림 백 이재원은 여러모로 많은 두각을 나타냈다. 물론 형제들의 아버지인 이하응이야 너무 잘나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는 말했었다.
그래도 이미 시집간 대부분의 딸들 말고 남은 아들 중 이재황이 제일 걱정되는 편인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재황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라고 열심이었다.
‘예비역 참위로도 궁부 관직에 나갈 수 있다. 그러나 한계는 있단 말이다. 이 동생은 내 말을 참 듣지도 않으니!’
앞으로 종친 중 1850년대 출신들은 궁부, 궁무부에 일하려면 최소의 군역을 수행해야 했다. 어차피 모친의 영향으로 천주교, 가톨릭을 종교로 하여서 군역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던 이재황은 신한량 제도로 중학교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던 일로 예비역 참위가 되면서 이를 수행했다고 판정되었다.
아직 궁부에야 조정의 예법에도 1850년대 출신부터는 궁무부 관직을 가지려면 종친은 최소의 군 경력을 가져야만 가능했다. 물론 종친이 사사로이 너무 높은 군의 관직 등을 가져서는 문제가 생길 여지가 높았다.
아울러서 종친을 군에 복무시키는 일은 과거가 제한되던 그들을 위해서 다른 살길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군대에 너무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반발하였다. 그래서 무관학교 등을 다니는 종친이 아닌 이상, 다른 종친들은 신한량, 예비역 무관 제도를 통해서 현역으로 복무하거나, 예비역 무관이 되도록 조치하였다.
그 외에도 신한량 제도로 현역 근무 가능으로 판정받아서 임관하여 군대에 복무할 때, 종친들은 정훈 종사관으로도 불리는 정훈 무관들의 자리로 가게 되었다. 그들이 혹시 군대에 행사할 영향력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하면서 군대를 감시하는 자리로 보내는 셈이다.
‘그런 자리를 재황이가 제대로 할 듯싶지는 않아.’
이재면도 자신이 없는 군 장교 직위 수행인데, 이재면이 제일 걱정하는 이재황은 더 말이 필요가 없었다. 이 운현제의 가장 중요한 손님인 용평 백 이변, 개명할 때는 이변응이 된 비록 서자로 이어진 혈통일지언정 태왕 이영의 6촌 형제인 유력한 종친은 정작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자발로 모범을 보이겠다고 무관 후보생이 되려고 했었다.
‘태왕 폐하께서 일정 년도 출생 이후로 한정하셨어도, 나는 종친으로서 모범을 보이려고 합니다. 후세가 보기에 이전 시대에 이런 사람이 없었다면 누가 하려고 하겠냐고 비웃지 않겠습니까?’
이런 소식에 태왕 이영은 꽤 놀랐었다. 물론 용평 백 이변응은 그 뜻을 우직하게 꺾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래서 태왕 이영은 그를 달래려고 칙명으로 신한량은 아닐지언정, 일종의 군무원같이 그를 경군 도통부의 임시 정훈관으로 보낼 정도였다.
운현제에 친척 어른인 그를 극진하게 모시는 이유는 태왕의 가까운 친척이라고 해서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재황의 진로 상담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약간 소란을 부리셔도 존경받는 분이기도 하시니까.’
그들의 아버지인 흥선 백 이하응도 의도한 일이기는 했었다. 요동에서 군사 보직을 수행하고 참령으로 진급해서 상관의 추천으로 옛 이름으로는 막료사마당, 지금 명칭으로는 육군대학교에 들어가서 교육을 받고 졸업하려 노력 중인 이재선, 음서로 음관으로 있다가 문관시험에 당당히 합격하여 관료로 일하고 이재면에 비해서 이재황은 확실히 쳐지는 구석이 있었다.
늙어가는 50대인 흥선 백 이하응은 둘째 형의 양자로 갔어도, 아직도 그한테는 여전히 아들인 재황이 먹고 살길이 좀 더 폈으면 바란다. 자기 처가 친척인 아이를 둘째 형수와 협의해서 시집보낸 일도 다 그런 이유였다.
‘용평 백 이변응 어른의 말도 제대로 듣지 않으면, 하급의 궁정 공직만 보내면서 살 팔자가 된다.’
‘몰라, 예비역 참위를 했으니까. 궁무부의 말직이라도 받아서 제한이 걸리는 자리까지 일하면 그만이야.’
문제는 이재황한테 딱히 항상심(恒常心)이 없다는 점으로, 그래서 더 큰 성공을 딱히 바라지 않았다. 이재황은 ‘자녀 전체의 입신양명?’이라는 꿈은 너무 크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이런 이재황은 그를 더 승진하게 만들려는 아내에게 잡혀 살았다. 민자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흥 민문에서 출가하여 시집을 온 그녀는 엄청난 야망을 품은 편은 아니다. 적어도 제 남편이 모자란 남자 취급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부인이 조금 버거워서 종종 운현제에 왔다. 공교롭게도 운현제가 용평 백 이변응을 손님으로 맞이한 다음에 왔다. 왜 왔느냐고 물었을 때 나온 답은 지금 생각해도 이재면을 황망하게 만든다.
“부인을 피해서 왔습니다.”
“정말이지, 너라는 녀석은!”
“허허!”
아버지인 흥선 백 이하응도 어이없다는 듯이 보던 것은 이재면도 기억할 정도다. 손님인 용평 백 이변응은 말없이 쓴웃음만을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오늘에 이재면과 이재황, 종법상으로도 법적으로도 사촌이 된 친형제가 대화하게 되었다. 아버지인 흥선 백 이하응은 스승과의 벗이며, 그 자신하고도 벗인 총리대신 환재 박규수를 만나러 출타하고, 서장자인 이재선도 아침 일찍 육군대학교로 간 오늘에야 진지한 대화할 기회를 얻었다.
예비역 무관도 아니고 군무원으로 정훈 종사관 같은 자리를 얻는 일은 드물기에 더욱더 현실적인 시도가 바로 공부였다. 예비역 무관이라도 진급이 가능한 점을 이용하자는 제안을 이변응이 했었다. 이런 제안은 가장 현실적이었다.
예비역 무관으로 현역 복무에도 선발되지 못한 이재황이 진급하려면 예비군 무관 진급 시험이라도 하자는 주장이다. 문제는 그런 시도도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 이재황한테 달려 있었다. 멍청한 편은 절대 아닌데, 공부하지 않으려는 일은 이재면이 아우를 답답하게 생각한다.
‘제수도 답답하면 그렇겠는가? 딱히 악처도 아닌데. 종친으로 적당히 한량같이 살겠다는 자기 남편을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게 말하는 편이 아닌가?’
게다가 전 영상 사기 이시원의 손자, 이건창은 한성대학교에 들어가서 예과를 거쳐서 곧 본과로 들어갈 예정이라고 안다. 왕태손 이혁도 한때 신서당으로 불리던 왕립소학교를 졸업하고 왕립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서 한성대학교에 다니면서도 가정을 꾸렸다.
왕태손의 아우인 한주 후 이사도 차기 태왕의 왕제라는 위치로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고 들었다. 왕립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다니는 중이다.
한주 후 이사는 잠깐 무관의 길을 걸어볼 생각으로 한성대학교의 신한량 과정을 신청할 생각이라고 했었다. 왕태손 이혁은 이미 신청했고 한주 후 이사도 마찬가지라면 아마 대학교에 들어간 왕실 직계의 형제가 나란히 신 한량 과정도 들어갈 예정이 된다.
물론 한주 후 이사는 현역으로 선발되어 복무한다고 해도 경군 혹은, 용호영에 몇 년 근무하고 퇴역할 예정이라고 소문이 돌았다. 왕태손 이혁은 관련 거취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한주 후 이사보다 더 오래 군복을 입어보고 퇴역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극히 유럽 영향이 강한 점이라서 반발도 나왔다.
‘게다가 한산 공 대감의 자녀들도 잘 약진하는 상황에?’
물론 한주 후 이사와 왕태손 이혁은 왕실의 중추이기에 더 노력해야 하는 위치이고, 자기 동생이던 이재황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인정한다. 그런데도 노력을 하지 않는 모습은 기분이 전혀 좋지 않았다.
한산 공 대감의 장남인 금천 백 이하와 왕태자 이환의 서자인 개주 백 이유도 각자 노력을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더 말을 하다가는 화를 참지 못할 듯해서 그냥 자리를 물러났다. 잠시 후에 이재면은 용평 백 이변응은 그들의 대화가 좋게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짐작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글쎄요? 역시 더 견문을 넓혀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군요.”
용평 백 이변응은 추승된 흥완 백 이정응의 양자로 백작 자리를 물려받은 이재황한테 더 동기를 주어야 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도 서양을 시찰하는 시찰단으로 유럽과 미국을 돌아봤기 때문에 견문이 넓혀졌다. 그런 자기 경험에 비추어서 이야기를 꺼냈다.
“견문이요? 혹시?”
“그렇다네. 흥선 백 이하응이라면 영국에 가지 않는가? 자제 군관 같은 자리, 혹은 공사의 가족으로 동행해서 영국을 둘러보고 살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 나의 둘째 형님도 그러했거든.”
그런 일은 차기 가주로 백작의 자리에 오르는 이재면이라도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흥선 백 이하응과의 상담은 물론이고, 조정에도 허락받아야 할 일이라고 여긴다.
아직 외국으로 가는 외교관을 외관, 지방관과 비슷하게 여기는 기조 때문에 남솔 논란은 피하고 싶었다. 아버지의 의향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아버지 밑에서 더 배우면 될 일이라고도 여기기에 이재면은 점점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유학 등을 가서, 시야가 넓어지는 일이 꽤 흔하다. 우리 아둔하고 계기가 없을 재황이도 달라질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
재능이 아예 없다고 하기도 애매한, 입양 가서 사촌 동생이 된 동생을 내심 믿어보고 싶어 했다. 용평 백 이변응의 의견을 아버지한테 건의할 생각으로 굳어졌다. 출타했다가 돌아간 흥선 백 이하응은 원래의 수행원에 다른 두 명을 더 추가했다.
그 다른 두 명은 바로, 이재황의 아내인 민자영과 그 민자영의 유모로 운현제로 도망간 그를 잡으러 가기 위해서 왔다. 시숙이지만, 원래라면 시아버지인 흥선 백 이하응과 그를 수행하는 일행에게 만나러 오기를 청했다.
총리대신을 만나고, 태왕 이영을 만나서 장차 영국 외교의 중요 훈령을 논의하고 돌아왔다가 이하응은 둘째 형에게 입양 보내서 조카가 된, 그래도 마음으로는 아직 막내아들인 재황의 부인이자 처가 질녀에 가까운 자영을 만나러 재황의 집을 찾았다.
서양 의술에도 불구하고, 기형을 가진 아이였기에 부부의 첫 아이는 빨리 세상을 떠났다. 아직 철이 없는 재황 때문에 속을 썩이는 일이 많은 자영을 동정하면서도, 종법상으로는 조카가 되었어도 여전히 막내아들인 재황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공부에 흥미를 잃었어도 아들의 낙제는 다행히도 면하는 성적, 그렇게 나쁘지 않은 머리를 생각하면 바짝 공부시켜서 관비 유학생을 하게 만들기도 애매했다. 무관 진급 시험? 이것도 사실 당장은 탐탁하지 않았다.
‘궁부에 일을 시키면서 자기가 무시당하는 일을 알고 바뀔까? 모르겠어,’
흥선 백 이하응은 그런 고심을 하다가 뒤로 미루기로 했다. 조카가 된 막내아들과 조카며느리가 된 막내며느리가 사생결단을 낼 일은 없어도, 격하게 싸우는 일은 말려야 했다. 이를 의도하지 않게도 그의 적장자인 이재면이 막았다.
“아버지, 건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건의?”
“예. 재황이 진로 때문입니다.”
‘재황이 진로?’ 무슨 건의를 할까 궁금하기도 해서 들어 보려는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이하응은 승낙의 의견을 꺼냈다. 이재면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다. 급히 논의하지는 않고, 잠시 후에 들어보마.”
“예.”
두 사람과 수행원들이 향한 자리에는 민자영에게 조곤조곤한 혼이 나는 이재황을 많은 사람이 목격했다. 저러는 민자영을 두고, 악처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재황을 낮게 여기는 인식이 은연중에 드러날 뿐이다.
저러는 동생이 안쓰러우면서도 더 혼나야 한다는 모순된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한 이하응, 이재면이 보였다. 민자영의 유모와 함께 적당히 이를 달래고 멈추게 했다. 저녁을 든 이후에 사랑채에 이재면과 이하응은 앉아서 대화한다.
“재황이의 진로를 위해서 내가 마침 영국에 가니까. 그 녀석과 며느리인 아가를 대동해라?”
“예. 아버님.”
“흠.”
좀 황당하다가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니까 남솔 논란만 피하면 가능한 일이라고 보게 되었다.
게다가 국외를 둘러보고 계기를 더 마련한 종친들이 확실하게 많았다. 아예 가능성이 없는 소리가 아니었다. 개인 수행원 겸 공사의 아들 부부라고 동행하면 될 일이라고도 여긴다. 유구와 청나라에 부임할 때 안 데려간 부인이라서 마침 데려갈 생각이었다. 아들 부부도 아주 불가능한 일이 아니게 진지하게 생각한다.
“아버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나 말이냐?”
“네.”
자기 막내아들이 입양되어 둘째 형의 작위를 물려받아도, 더 인생을 잘 살기를 원하기에 언제나 걱정하였다. 자신이 욕 등을 먹어도 너무 불공정하다는 논란 아니면, 자식을 위해서 뭐든지 하는 사람이 부모다. 종법상으로 부모가 아니게 되었어도 이재황은 여전히 그의 아들이기에 결심을 굳혔다.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태왕 폐하와 총리대신에게 다음에 이른 시일에 물어보마.”
“네.”
그러는 사이에 이재황과 민자영은 아까 싸운 일은 잊었듯이 용평 백 이변응이 있는 별채와는 다른 곳에 둘이 알콩달콩하게 있다. 이재황은 이대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내와 얼굴 모를 양부, 친아버지와 형제들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물론 그가 선택하지 않고 강제로 친아버지 따라 영국으로 가는 길을 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다음날에 형과 아버지의 선택을 강요하는 말에 매우 고민했다. 어제저녁 이후에서 밤사이에 결정한 일이 분명한데,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는 항상 그렇게 안 살고 싶잖아?’
이재황의 머릿속에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이재황은 머리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기에 인정했다.
‘내 열등감이 이런 생각을?’
그의 열등감이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그의 머릿속과 마음에서 말하는 중이다. 이재황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가기 싫었다. 누가 알면 어처구니가 없는 고뇌를 하다가 이재황이 입을 열었다.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요. 조아라에서도 연재중입니다. 거기에는 HMS 아론다이트란 이름으로 연재를 합니다.
- 작가의말
이재황이 제대로 나왔습니다. 사실 저 이재황은 우리가 아는 이재황인가? 물어보시면 조다위의 첫 서유 시찰단 관련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그럼 알게 될 수도요?
물론 형 대신에 둘째 큰 아버지의 양자로 가게 된 일 등 다른 것은 있습니다. 운현제는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변응이 이원범입니다. 강화도와 연이 없기에 다릅니다.
이하응이 영국 공사로 가게 되는데, 과연 이재황의 선택은? 다음편에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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