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주변의 급류에 휘말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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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대신의 자리에 오르지 않은 일이 그렇게 걸리는 일이요? 나는 상관이 없어요. 환재.
각자에게 더 맞는 자리에서 일하는 일 정도에요. 게다가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고생하기에는 나는 그대보다 더 늙었습니다. 잊었습니까?”
“저보다 몇 살은 연상이 맞으시지요. 벗이기도 한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물론 부총리대신인 분인 반학옹(: 이지원의 별호) 대감이 경보다 더 연배가 있으시지요. 동래백께서도 사기 대감께서도 여전히 일하시고 있지 않습니까? 특히 두 분은 중추원에서 일하고 있지요.”
나이에 대한 부분은 사실 핑계라고는 생각하여서 그렇게 강하지 않게 반론하는 환재 박규수가 보인다. 이에 대해서 윤종의는 언짢은 표정을 짓지 않고 도리어 덤덤한 표정으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간다. 본심을 더 말해주었다.
“더 많은 힘에는 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요. 나는 그런 일을 하기에는 버겁다고 여깁니다. 군주를 보좌하여서 나라를 다스리는 일도 좋아요.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지내고 싶습니다. 사직하고 은퇴하여도 성상께서 다시 데려온다는 사실을 아니까 은퇴하기를 접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 일에는 총리대신 자리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 말입니다. 오히려 그런 자리는 폐하의 총신이고 더 의욕을 가진 환재! 당신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연재 대감···.”
환재 박규수는 일종의 넘겨주기 혹은 ‘짬처리’를 당했다! 라는 식으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좋게 해석했다.
그리고 윤종의의 본심 말하기를 계속 듣고 있다. 이를 박규수는 계속 경청한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성상께서 조회에 논했던 대로요. 군국기무처에 더 관심이 있는 법. 물론 궁부대신으로 잠시 있으라고 해서 궁부를 더 정비할 생각이라네.”
“그렇습니까?”
“군국기무처에 들어가면 제조로 엄청 열심히 일할 생각이라네. 군국기무처에 잠깐 몸을 담은 적이 있는데. 제일 즐거웠어. 그때가!”
의외로 환재 박규수는 파광백이 된 연재 윤종의의 본심을 들으면서 놀란 심정이다. 그러면서도 윤종의가 이런 사람임을 더 체감하게 되었다. 물론 나중에 좀 깨는 말을 들었다.
“군국기무처에서 가배차를 더 조정과 군대에 보급할 생각이라오. 궁부에서도 태왕 폐하와 일부 사람들에게 가배차를 맛 들이게 하는데 성공했으니까. 더 퍼트려야지요.”
“어? 연재 대감? 혹시 그게 본심입니까?”
여전히 금성백 환재 박규수가 아는 파광백 연재 윤종의였다. 사실 파광백의 작위 등도 총리대신 자리를 벗이자 주군인 이영이 포기하게 하려고 준 작위가 아닐까 걱정을 했었다. 물론 이게 과한 생각이었다고도 생각하였다.
가배차, 커피를 매우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는 윤종의라면 충분히 할 법한 생각이다. 물론 환재 박규수는 농담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얼떨떨하게 물어보는 편이다. 그런 환재 박규수를 보고는 윤종의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해주었다.
“군국기무처 쪽에 근무할 생각은 진심이라네. 나라를 개혁하는 일에 가장 일선은 다른 곳도 아니고 거기라네. 지금도 여전히 그런 생각이요. 가배차를 마시고 전하면서 나라에 널리 퍼트릴 마음도 여전히 진심이라오.”
“둘 다 진심이로군요. 가배차가 비싼데 어찌 널리 퍼트리시려고요?”
윤종의의 진심이 확실하게 담긴 말에 떨떠름했던 생각 등도 홀가분해졌다. 부당하게 양보 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경쟁자이기도 한 선배이며 벗인 연재 윤종의를 경합 없이 이긴 듯해서 찝찝한 생각도 있었다.
물론 윤종의는 총리대신이라는 자리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 맞았다. 궁부대신과 군국기무처의 제조 등을 맡아서 남은 관직 생활, 그 마저도 태왕 이영과 그 후계자인 왕태자 이환 등을 생각하면 죽을 정도가 아니면 일을 해야 하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소망을 말하기에 환재 박규수는 다시금 깨달았다.
그렇기에 아까의 말은 여유를 찾고 웃으면서 한 농담이다. 그런 농담이 담긴 말에 연재 윤종의도 씩, 빙그레 웃으면서 답한다. 농담하는 모습으로도 보이지만, 진지하게 생각한 방안으로도 보인다.
“가배차는 서양 중 열강인 나라들의 아래에 있는 식민지라는 곳들이나 그 나라들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나라들이오. 그 나라들과 거래를 터서 들여오는 일이 더 늘어야 합니다. 아니면 조선의 아래로 들어온 유구와 우리 조선에 가장 남쪽의 큰 섬인 제주에 가배차를 심어야 하겠지요.
다만 아무리 봐도 대량으로 사 와서 널리 보급하는 일이 더 빠를 듯합니다. 마치 우리 조선도 사탕과 호초(후추)가 다른 곳들과 상행을 빈번하게 하니까 점점 늘어나게 된 일과 비슷하지요.”
유구와 제주에 가배차를 재배하게 만드는 일은 사실 환재 박규수가 봐도 힘들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거래량을 늘려서 널리 소비하게 만드는 일이 더 그럴듯하게 보였다. 그래도 저 말에는 상당한 고민이 담겼다고 생각한다.
귀한 가배차를 혼자 즐기고 싶으면 상관이 없었다. 다만 환재 박규수는 연재 윤종의의 꿈을 알았다. 군대와 백성에게 유용한 가배차를 널리 퍼트려서 더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려고 그러한 이유를.
“가배차를 퍼트리는 일에 진심이군요. 이거 상공부대신으로 가셨어야 하는 일이 아닙니까?”
“그거보다는 군국기무처에 건의하고 더 검토하고 방안을 보안할 수가 있잖은가? 그래서 그렇다네. 물론 가배차 관련에만 열심히 할 생각은 없다네.
기왕 한다면 관련된 경장과 개혁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잘 해낼 수가 있겠지요.
연재 대감이라면 말이요. 군국기무처의 제조를 지냈던 저도 말입니다.”
환재 박규수는 한결 후련한 마음으로 초대 대조선국 총리대신으로서 집무를 할 수가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에게 연재 윤종의는 힘내라고 속으로 말한다. 그러고는 이런 말을 꺼냈다.
“힘들면 총리대신도 가배차를 마셔 보심이 어떻습니까? 경이라면 앞으로 더 필요해질 테니까요.”
그의 일복을 장난스럽게 걱정하는 말을 한다. 그런 말에 이런 소리를 들은 환재 박규수는 기분 나빠하지 않고 말한다. 그 대답에 연재 윤종의가 크게 웃을 뻔했다.
“그럴듯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대감이 마실 가배차의 원료인 가배두가 남아나지 않을 터입니다. 그만큼 폐하와 제가 경을 부려 먹을 테니까요?”
“허허.”
너무 길지 않은 대화를 끝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각자의 집무실로 향한다. 서로가 원하는 미래를 그리면서, 서로가 같이 모시는 군주와 함께 나아갈 미래도 생각하면서 말이다. 총리대신 집무실에서 환재 박규수를 맞이한 의정부의 옛 좌우찬성 소임을 가지는 의정부 관방국장은 상관의 표정이 밝아서 놀랐다.
“총리대신 대감! 표정이 매우 밝으십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아. 마음의 짐을 잘 풀었다네. 별일이 없으니 일을 하도록 하세.”
“예!”
의욕적으로 열심히 정무를 시작한다. 부총리대신인 이지원도 근처의 방에서 일을 한다. 관제 개편을 했어도 일이 없어질 리가 없다.
국정에 관한 많은 일을 해야만 한다. 의정부 서사제를 더 강화한 기조의 지금 관제에서도 태왕 이영은 많은 분야의 최종결정권과 감사권 등을 쥐고 일을 수행한다. 태왕과 의정부 아래의 여러 부처를 의정부가 연결하는데 많은 일을 검토하는 일을 의정부 직속이 잘 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열심히 일을 해주어야 한다. 다행히도 의정부 직속의 인원들이 생각보다 관제 개편이 확정되고 선언되는 일에 더 의욕을 보이고 있다.
***
한편, 조선의 해안가와 내륙 중에서 북부 일대에 산업지대가 잘 형성되고 있었다. 그리고 해안가 중에서도 개항장을 낀 고을들이 유독 공방 혹은 공창, 다른 말로는 공장이 잘 설립되었다.
그중에서도 인천부 제물포와 삼화 진남포 일대가 제일 공장이 잘 설립되었다. 물론 겨울에 항구 일대가 결빙이 잘 되는 삼화 진남포보다는 의주 용암포가 더 무역하기 좋은 개항장을 낀 항구가 맞았다. 또한 삼화 진남포는 평양을 배후에 두고 더 발전하고 있었다.
개항장이라고 해도 인천처럼 개항장+한성이란 배후로 발전하는 양상과는 다르다. 오히려 삼화 진남포는 개항장보다는 평양이라는 배후 덕에 더 성장한다고 볼 수가 있다.
개항장이 아닌데도 공장이 세워진 곳도 있다. 평양과 요동에서 들어오는 석탄을 통해서 근처의 철광석으로 철을 가공하는 공장단지가 세워진 고을이 있다. 황해도의 관찰사가 있는 고을인 해주 근방이 그렇다.
“하이고 힘들다.”
“아이고 뜨겁다.”
“좀 쉬어라. 대장장이로 일하던 나도 더운데 너희들은 오죽하냐?”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조선인들이 보인다. 평양의 석탄을 바탕으로 황해도와 요동에서 온 철광석을 녹여서 철로 가공하는 제철공장 중 서양식 제철로가 있는 공장에서의 이야기다.
석탄을 잘 쪼개고 갈아서 불을 최대한 지피고 또 지펴서 열풍을 제공한다. 그 열풍으로 철을 녹이고 제련하는 과정은 전 대장장이인 십장 아래에서 망치로 두들기는 역할인 나름 숙련되게 만든 잡일꾼들이 맡고 있다.
“네! 십장 나리!”
“공장이 더 넓어질 수도 있다고 하는데 모르겠어.”
“나리들이 투자를 더 열심합니까? 아님 장사치들이요?”
“저기 개성의 송상이 해주면 좋은데 그들은 안 물어. 이상하게도.
그래도 사람을 많이 굴리려고 하니까 다행이라고 봐.”
그 이상의 공장 내부 기기 설비는 공장을 차린 상인과 투자한 양반 및 상인들도 좀 부담스러웠다. 그러니 남아도는 노동력을 더욱 이용할 뿐이다.
물론 해주에서의 철공소는 사실 나라에서 경영하는 곳들도 있다. 그런데도 상인들과 양반들이 투자하게 조정이 이들을 불러 모았다. 철공소에 큰 관심이 없던 개성의 송상과 달리 석탄 관련이며 요동에서의 철광 수송 등으로 돈을 더 버는 평양의 유상과 의주의 만상이 투자를 열심히 시작했다.
다행히도 조정에서 이를 장려하는 모습이 지속되자, 개성의 송상 무리는 투자하면 좋다고 판단했다. 물론 이미 많은 곳들을 유상과 만상이 투자했기에 빈자리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과잉투자를 할 수가 없기에 신중해야 한다.
사실 송상이 황해도 해주의 철공소에 큰 관심이 없던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인천 제물포 근방의 조선소와 방직공장 등 인천 제물포 일대에 서양인들과 합작해서 산업지대를 형성한다고 투자하고 있었다. 여기에 은항, 은행을 개설해서 합법적인 돈놀이에 집중하던 판이다.
그래도 조선 조정, 외국인 투자자들이 조선이 세우고 키우는데 열심인 산업지대의 투자에 제일 큰 손이었다. 그리고 제물포의 방직공장에서는···.
“얼씨구 절씨구 이 면이 천이 되게 일한다. 방직이! 방직이! 방직이!”
그냥 일하기에는 힘들어서 부르는 노동요가 들린다. 그 노동요에 맞추어서 여성 노동자들이 주로 일하고 있다. 천주교도가 꽤 많고 그게 아니라도 돈을 벌기 위해서 들어온 처자들도 많다.
하루 8시간에서 10시간을 일하는 상황이다. 국물이 있는 요리는 최소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화장실을 가는 시간도 최고로 하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노동요 부르기는 금지하지 않는다. 안 그러면 불만이 더 커질 테니까 그렇다.
간혹 노동요로 성가를 부르는데 이는 성가가 후세에 한국 근대 노래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되었다. 물론 노동요로 민요를 부르기도 한다. 경기도 일대의 사람들이 많기에 주로 경기민요가 불리고 있다.
“노동요는 안 부르고 뭘 콧노래로 불러?”
“아 이거? 우리 바깥사람이 개방장에서 작게 장사하잖아? 개방장인가 군대가 부르는 노래를 알려주었는데 박자는 몰라도 기억이 나는 대로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뿐이야.”
“아 그래? 나도 한 번 알려줘 봐.”
“나중에.”
그리고 개항장이 근처이고 해군 등의 부대가 주둔하기 때문인지 서양식 노래 등이 꽤 흘러 들어왔다. 그 외에도 서양인 선원들이 부르는 노래 등이 인천부 제물포에 꽤 흘러 들어왔다. 물론 영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인지 들리는 대로 그냥 부르는 편이 많았다.
그나마도 조선어로 잘 들리는 군가는 비교적 덜했다. 그런 노래들이 공장의 노동요로도 잘 쓰이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래도 조선인 선원이 남편인 쪽들은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영어 등의 외국어를 더 잘 알기 때문에 잘 설명해준다.
정음이라고도 불렸던 국문으로 써준다. 그리고 이런 제물포 개항장의 특수성 때문인지, 그런 노래들을 주어 듣기 편해서 그런지 몰라도 조선소에서도 노동요로 경기민요 외에도 서양식 노래들이 자주 들린다. 물론 좀 엉성하던가, 들리는 대로 부르기 때문인지 원곡을 아는 이들은 기분을 이상하게 만든다.
특히 서양인 조선기사들은 그런 노동요들을 들으면서 자신들이 아는 노래가 맞는지를 확인할 정도이다. 그런 일들이 있고 난 이후에 그래서 일부 붙임성이 좋은 이들은 조선소에서 일하는 조선인 말단 직원들이며 조선인 기술자 등에게 노래들을 알려주었다.
사실 미국 남부 출신 조선기사들이며, 미국 북부 출신 조선기사들이 노래들을 알려주다가 싸울 뻔했다. 그나마도 랜돌프 버틀러가 중재해서 큰 싸움을 막았다. 절충해서 양키 두들을 제대로 알려주었다.
“양기 두들이 마을로 왔네. 당나귀 타고!
패랭이에 깃털 달고 마가로니( : 마카로니) 가발이라 하네.
양기 두들 힘내라. 양기 두들 멋지다.
음악 맞춰 춤추네. 처자에게 잘하고!”
이 조선소에서는 그래서 양키 두들이 중요한 노동요가 되었다. 그리고 양키 두들에 조선 사람을 넣어서 바꾸어 부르는 버전도 있다. 가사들을 최대한 의역하면서!
양키 두들을 의도하지 않게 번안한 조선 사람이라는 노래가 조선소 너머로도 널리 퍼지고 있었다. 또 이게 여성들이 일하는 방직공장으로도 넘어가고 군부대로도 넘어간다. 누가 부르느냐로 가사도 빠르게 달라진다.
조선군에도 널리 퍼지려고 할지도 모른다. 또 이런 유행에 인천 제물포 개항장 근방에 사는 조선군 군악대, 혹은 조선의 통역관 계층 중인들도 서양식 노래 작곡이 유행할 듯 보인다. 아니면 서양식 노래를 번안하던가.
***
작년에 아버지, 양부인 복주후 김좌근을 떠난 보낸 이후에 삼년상, 정확히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서 시간을 축소한 반년상을 치르려고 관직에서 휴직했던 사영 김병기를 많은 이들이 만나러 왔다. 양부의 작위를 강대 세습해서 복주백이 된 김병기는 안색이 평안했다.
김병기는 고인이 된 양부, 복주후 김좌근의 유언을 반년상을 치르면서 많이 곱씹었다.
김좌근의 빈자리는 다른 관료를 태왕 이영이 칙임해서 채워졌다. 김좌근의 의석을 승계한 사람은 의정부 관직에 있던 김병기가 아니라 전 영의정인 사기 이시원이다. 김병기는 의정부의 관직으로 복직하기를 원하고 있었기에 이영의 제의인 양부의 자리던 중추원 칙임의관의 세습을 사양했다.
“이건?”
“민화 같습니다.”
“이전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조선의 민화가 저기 서양, 그중에서도 유라파(: 유럽)의 기예에 영향에 주었지요. 놀랍게도 말입니다.”
“흠? 그게 사실이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은데 말해주겠소?”
“예. 알겠습니다. 말해드리지요.”
김병기는 가까운 이들에게 아까 보여준 조선의 민화와 가까운 그림을 얻은 사연을 설명한다. 때는 유럽의 프로이센 일대에서 유학하고 귀국하던 중에 있던 일이다. 프로이센에서 배를 타서 영국에 있다가 영국에서 조선으로 가는 배를 하거 양헌수 등의 조선인 유럽 유학생들과 같이 구하는 중에 저 그림을 만났다.
“이 그림은?”
“흠? 거기 누구요?”
그 그림은 조선의 민화를 닮은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달랐다. 민화라기에는 질감이 달랐다.
유럽 유학을 하면서 자주 보게 된 유화의 느낌도 들었다. 인상을 끌어들이는 느낌이라고 생각하는 김병기를 누군가가 불렀다. 영어인데 양복을 입은 김병기를 보고 이상하다는 듯이 보는 남자가 걸어오고 있다.
“손님이시오?”
“그렇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양복을 입은 동양인인 김병기의 모습에 이어서 그 동양인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나오자 놀란다. 이를 숨기고 이 가게의 주인이 약간 비굴하게 행동한다. 이전의 부유한 동양인 사절단을 떠올려서 그럴지도 모른다.
김병기는 사실 저 그림에 꽤 흥미가 갔다. 그래서 저 그림에 대해서 물었다. 민화와 같은 그림은 호랑이와 까치가 그려져 있는데 보통 우스꽝스러운 민화와는 좀 달랐다.
가게의 주인은 자세히 모르면서도 아는 사실을 다 설명했다.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그리고 자신이 받은 인상을 가지고 그려서 모사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대상을 보고 그리지 않고, 상상하는데 정교하고 사실로 그리는 모습도 아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실을 그리는데 도화를 그리는 환쟁이가 받은 느낌을 더해서 그린다는 점은 특이했다. 그런 설명을 들으면서 기념으로 사들일까 생각이 더 기울었다.
마치 상류에서 하류로 강물이 흐르듯 아주 자연스럽게 견물생심이 흘러나오고 있다. 또 고국인 조선과 연관이 있다는 설명, 민화를 보고 그렸다는 추측이 사실이 되자 기뻤다. 그래서 그 그림을 샀다.
잘 팔리지 않았는지 싸게 판다고 가게 주인이 말했다. 그림에 대한 가격을 몰라서 주인장의 말을 믿고 샀다.
“그게 사실이라고 믿고 사겠소.”
“예. 동양인 나리. 아니 조선인 나리!”
사실 조선의 기예와 조선인들이 사들이는 유화로 유행이 변화하고, 그림이 비싸지는 일 등을 곁에서 겪은 적이 있기에 이 일로 어떤 일이 있을지는 잘 몰랐다. 물론 정말 싸게 샀는가는 잘 모른다.
프로이센에 유학하다가 조선으로 귀국하는 그가 가진 그림은 같이 수학을 했던 현지의 세족, 고귀한 집안의 후예가 취미로 그린 자신의 초상화 등을 선물 받은 일 빼고는 개인적으로 그림을 산 일이 없었다. 적어도 조선의 서유시찰단 일원들이 산 농가의 그림은 프랑스 등 각지에서 그 환쟁이의 그림 주문이 늘고 그림의 가격이 폭증했던 일은 알았다.
그리고 유학생인 그가 산다고 뭔가 폭증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고국 생각이 나는 그림을 그저 샀을 뿐이다.
물론 김병기는 영국 현지에서 조선의 서유시찰단이 체류하거나 그 유학생들을 그린 그림이 비싸게 팔리고 있다는 정보는 제대로 듣지 못했기에 그렇다. 그 그림을 산 이후에 김병기가 떠나자 잠시 후에는 가게 주인은 이렇게 홍보를 했다.
‘조선인 유학생이 고향 생각이 나서 산, 조선 그림을 모방한 그림. 재고가 부족하다.’
의도하지 않게도 홍보 거리가 되었다. 그 유화 느낌의 민화는 그 가게 주인이 아는 사람이 아마추어인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린 물건을 받아서 팔아주고 있었다. 그 지인이 조선인 서유시찰단이 준 민화를 보고 그렸기에 꽤 괜찮았다.
조선의 서유시찰단이 돌아간 이후에도 조선인과 관련한 장사는 아직도 계속되었다. 이런 사실은 잘 몰라도 김병기는 조선과 유럽이 교류하면서 조선만 일방적인 영향을 받는 상황이 아니라고 기뻐하며 말한 셈이다.
문물의 교류, 상호가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로서 말하려는 한 일인데 많은 이들은 그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김병기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마 조선이 더 강해진다면 이런 상호 교류는 나중에 가면 갈수록 대등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속으로 김병기와 김병기의 자택을 방문한 손님들은 생각하였다.
반년상의 탈상을 끝내고 김병기는 아직 남은 반년의 휴가 아닌 휴가를 조용하게 지내려고 했다. 내년에 복직하면 청해서 요동의 외관으로 부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도 아니면 교류하던 벗인 흥선백 이하응처럼 국외의 조선을 위해서 일하는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유럽으로 가보는 일도 나쁘지 않겠어. 내가 연이 있는 덕국어권(: 독일어권)으로 가고 싶구먼.’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요. 조아라에서도 연재중입니다. 거기에는 HMS 아론다이트란 이름으로 연재를 합니다.
- 작가의말
박규수와 윤종의의 대화를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김좌근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조선은 많은 변화들이 있지요. 이를 반영해본 편입니다.
근데 주변의 급류가 점점 다가오려고 합니다. 과연 조선은 이를 피할 수가 있을까는 잘 보여드려야지요. 주말 잘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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