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여전한 전장의 안개
***
한편, 흑수주 변경 첫 요새에 주둔하는 요새 수비대도 적은 기병대 병력이라도 일부 병력을 정찰에 투입했다. 러시아군에 속하는 침공 병력의 분명한 의도를 알아야만 했다.
그 외에도 주변의 증원이 오고 있는가를 확인한다고 당연하게도 소수의 기병대원으로 만든 정찰 임무와 파발 임무를 모두 겸하는 부대들을 요새 밖으로 내보냈다.
“우리를 바로 공략하지 않는 점은 이상합니다.”
“놈들이 기병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히 이상하지 않다. 문제는 우리 요새를 말려 죽일 생각이라면 큰일이다. 기병과 보병의 혼성 부대들이 대규모로 뭉쳐서 진군하는 일이 아니면, 힘들다.”
“예.”
기병 소대장이 직접 지휘하는 기병대로 구성한 정찰 겸 파발 부대는 주변을 탐색하면서 근처 마을의 증원 병력이 모이는지 등의 상황을 확인하려고 달렸다.
이 근방의 유일한 현역 조선군 기병대원인 그들도 카자크 기병대는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렇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카자크 놈들은 싸움을 즐기는 호전광이라는 소문을 들었는데. 흠.”
“그런 자들을 피할 길이 없다면 결국 싸워야만 한다.”
즐겨야 하는데 즐길 수 없다. 러시아 카자크 못지않게 호전적인 병사가 아닌 이상에야. 두려움이 없다면 당연하게도 거짓말이다.
“물론 이런 말 자주 하지 마라. 말이 씨가 된다.”
“예.”
그런데도 불안함을 느끼는 장병들도 있었다. 러시아 군이 그들을 가짜 전령으로 교란하기에는 힘들었다. 반대로 심리적인 불안감으로 그들을 흔들 수 있는 법이다.
실제로도 러시아의 카자크 기병대는 자신들의 악명 등을 잘 이용하는 편이었다. 전장에서의 악명으로 적에 압력을 주어서 전투 이전에 사기를 꺾는 것도 유용한 방식이었다. 지금도 유효하다.
아직 그들은 러시아 카자크 기병대를 발견하지 않았다. 길목들을 모두 차단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무슨 의도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러시아 군대의 의도를 알지 못한다면 나중에 조선은 전략적인 패배를 당할지 모른다.
문제는 도대체 무슨 의도로 러시아군이 남하했는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변경 중요 요새 3개에 주둔하는 조선의 정규군 지휘관들이 대체 어떤 꿍꿍이인지는 알지 못해서 그렇다.
‘마땅한 동기가 없다고 들었다.’
근처의 개척촌, 더 정확히는 변경 고을을 둘러보면서 향보군 인력을 만나서 최소 1개 소대 정도를 모아서 진격하는 일이 되는지를 확인하려고 나섰다. 요새의 정규군 병력이 가진 지도는 훨씬 정교한데, 그들이 기재한 길목에 카자크 기병대가 대규모로 매복하지 않아서 의아했다.
“저들이 생각보다 이 근방의 정밀한 지도를 가지지 못한 듯합니다.”
“이 근방의 지리와 지형 지식을 축적한다는 말도 들리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요새 수비대 지휘부의 예측대로 일리가 있었다. 그들이 생각보다 정밀한 지형을 기록한 지도를 가지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나왔다. 후발대를 기다리면서 지형 등을 정찰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근처 마을에도 탐색전을 했을 여지는 크다고 봅니다.”
“예, 소대장님.”
무관 소대장인 부위를 보좌하는 부소대장은 노련한 하사관이다. 하사관, 조선군에게서는 다르게 불리는 명칭인 교관 중에는 중간이라도 꽤 높은 자리인 부교에 올랐다.
그는 잡직 무관 출신이다. 경험이 많고, 별무사 출신으로 꽤 있던 나이에도 유럽식 기병 훈련을 다 따라잡고 이를 전파하던 군인이다. 요새 수비대에 속한 기병대, 그 아래 2개 기병 중대 중에는 정교 2명을 제외하면 선임 부교로 조선군에 복무한 지는 꽤 잔뼈가 굵은 편이다.
“그들이 잘 격퇴했겠지요? 소규모 찔러 볼 여지가 있을 테니까.”
“아라사 측이 대규모로 들이닥쳤을 가능성은 적습니다.”
부위를 보좌하는 부교의 말은 일리가 있는 편이다. 그들도 탐색전을 더 지속한 다음에 움직일 가능성이 더 컸다.
근처 마을 중 하나에 도착했다. 요새 수비대 소속인 그들은 향보군 병력이 큰 피해가 없음을 알았다. 다만, 소대를 차출해서 병력을 보낼 생각은 주저하였다.
“어째서 주저하는 것입니까?”
“그들이 요새를 공략할 가능성이 없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다른 마을의 향보군 지휘관들은 몰라도, 우리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향보군 지휘관인 향보군 중대장일 퇴역 정위가 하는 말은 더 들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부위와 부교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혹시 있습니까?”
“요새를 지키는 현역 군인들은 우리가 위협을 핑계로 지휘받기 거부하는 일로 보일 수 있을 듯합니다.”
퇴역 정위가 이렇게 하는 말에 도리어 현역 기병 부위가 속으로 놀랄 정도였다. 기병 소대장이야 자신들이 그들을 고깝게 본 것이라고 오해했을까 봐 빠르게 해명을 시도한다.
“딱히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저 보고할 때 이유를 알아야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그러면 다시 근거를 설명하겠습니다.”
“예.”
기병 부소대장은 이미 말없이 듣는 중이다. 향보군 중대장이 다시 입을 열었고 기병 소대장과 기병 부소대장은 그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퇴역 정위가 하는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죽은 아군, 향보군 기병대와 탐색전이 끝나고는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는 점, 어떤 부분에는 확실하게 수상했다.
만약에 탐색전으로 지도를 확보하고, 지형을 파악했다면 중요 길목에 병력을 배치해서 차단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러시아군이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다.
“이제 시작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과감한 행동을 생각하면 빨리 끝내고도 남아야 합니다. 그들이 절대 바보가 아니니까요.”
이어서 다른 추론 근거를 꺼냈다. 두 번째는 그 어떤 곳에도 적의 증원 병력에 관련한 보고가 아직도 등장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편이었다. 세 곳의 요새 수비대도 전서구 등으로 통신해 본 결과가 적의 증원 전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일치했다.
게다가 다른 추론 근거도 꺼냈는데, 세 번째가 되었다. 바로 탐색전 이후에 탐색전에서 발생한 피해로 러시아 카자크 기병대 측이 할 만한 행동은 기병대로는 공략하기 어려운 요새들의 근처에 있는 마을들을 공략할 여지가 그들이 봐도 높다고 봤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의 수비를 위해서 병력 차출은 난감하다는 점을 말하는 셈이었다. 도리어 수비대에게 병력을 요청하지 않는 일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추론 근거를 종합한다면.
“흠. 그렇습니까?”
“그렇군요. 하지만, 연대장님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기병 소대장과 부소대장은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야 들었다. 다만 그걸 요새 수비대장이면서, 이 변경의 요새 3개를 총지휘하는 선임 지휘관인 연대장 등 조선의 정규군 현지 고위층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할지는 알 수 없다.
“원군이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서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고 해도 향보군 지휘관들은 1명, 1명이 마을의 경비를 담당하고 있음을 고려해주기를 바랍니다.”
“흠.”
“일리는 있는 말입니다.”
향보군 지휘관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봐야만 하였다. 많아야 중대 정도만 있는 마을의 향보군 인력을 고려해야 했다.
자경단과 포수 등을 합칠 수 있지만, 포수 숫자도 향보군과 자경단 등과 중복될 수 있다.
그 외의 민병대, 다른 말로는 자경단 인력이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만약 일부 향보군 지휘관들이 말하는 대로 러시아 측이 가진 의도가 요새 공략이 아니라는 전제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웠다.
“연대장님에게는 잘 말씀드려보겠지만 힘들 수 있습니다.”
“알고 있소. 그래도 부탁드리오.”
근방 마을들에는 예비군 병력이 많아 봐야 보병 기준으로는 향보군 1개 중대가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 2개 밖에 없는 정식 향보군 소대를 하나 차출하는 것도 부담이 될 수 있었다.
또 어떤 마을은 향보군 인원의 수가 1개 소대가 간신히 채워지는 곳들도 있다. 포수와 마을에서 자경 활동을 돕는 민병대를 생각해도 그 빈틈을 완벽하게 메울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마을마다 포수의 수와 민병대의 수가 다른 사실도 고려해야 했다. 그런 말을 하기에 전령과 정찰을 겸하는 기병 소대장과 기병 부소대장은 당연하게도 골치가 아팠다.
전력들이 대체로 보이는 점 등으로 만족해야 했다. 마을의 수비를 이유로 병력 차출이 어려운 곳들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심히 건의해야 할 듯싶었다.
기병 소대장과 부소대장이 생각에 잠긴 모습에 괜히 향보군 중대장이 미안하였다. 그런 것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조선 정규군 기병대 중에 이 임무를 맡은 소대는 처음 방문한 마을 말고도 다른 마을들을 방문하였다.
그렇지만 큰 소득이 없었다. 그들도 처음 방문한 마을들처럼 향보군 병력 일부를 차출하는 일을 조금 주저하였다. 무엇보다 향보군 기병대를 잃은 마을들도 있으므로 차출이 더욱더 부담된 마을이 늘어났다.
위쪽에서는 전력이지만 다르게 본다면 사람이다. 누군가에게는 아버지이며, 누군가에게는 아들이겠고 이웃이라서 이런 죽음에 복잡한 마음이 생긴다. 변경 중요 요새 3개를 지휘하는 연대장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중요하다.
“다른 요새들과의 긴밀한 통신이 가능한 방법으로도 문제로군요.”
“중요 요새들의 연계를 차단하려고 슬슬 움직일 가능성이 매우 큰 자들입니다.”
러시아 카자크 기병대원들도 절대 바보가 아닌 이상, 요새 3개가 할 수 있는 연계를 차단하려고 나설 여지가 높았다. 요새들을 연결하는 길목들을 눈치챘다는 전제 아래로 생각하자면.
“늦으면 우리도 이런 소식을 전할 수 없겠지만요.”
“마을 대부분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알려도, 가까운 원군으로 기능할 수 없다는 점은 문제입니다.”
기병 부소대장인 부교는 소대장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에게는 상관인 연대장이 냉정하게 주변 상황도 파악해서 좋은 선택을 해주기를 바라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려와 달리 아직 카자크 기병대가 길목들을 아주 봉쇄하지 않았음을 파악하고 우회했다. 무사히 그들은 거점인 요새에 도착했다.
변경 제1 요새의 수비대를 이끄는 대장이자 변경에 배치된 연대를 지휘하는 연대장인 정령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유는 각지를 돌고 정보를 가져와서 보고를 올리는 하급자들이 하는 말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 3개 요새 밖 예비군 부대, 향보군과 포수, 그리고 주변 마을에서 마을이 자경 목적으로도 세운 민병대 병력 증원이 과연 효과적일지를 고심했다.
그들을 무시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카자크 기병대를 상대로 마을을 수비 하다가 적을 격퇴하는 일이면 충분히 선전하는 일이라고 여기는 편이다.
“각 마을의 향보군 기병대는 멀쩡한 이들이 드물다고? 고을에도 죽고 다친 자들이 많다는 소리라.”
“그들이라도 증원받아서 각 요새와 마을들의 길목을 막는 자들을 견제하는 일은 힘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향보군 소속의 기병대 다수가 죽고 다쳤다는 점은 뼈가 아팠다. 기동성이 있는 정찰, 정보 수집 부대로 쓸 수 있는 기병의 가용이 떨어졌다. 간접적으로 통제하는 편이라고 해도 향보군 소속 기병대들이 있는 편이 훨씬 나았다.
“흠.”
연대장인 정령은 많은 고심을 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성전이 일어나지 않는 상황은 이미 요새의 수뇌부도 매우 의아했다. 마침 일부 향보군 지휘관들도 비슷한 견해를 내놓자, 확신이 어느 정도 생겼다.
“저들은 우리를 공성할 여력은 없거나, 아직 후발대가 도착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국지전을 짧고 굵게 이기겠다는 마음이 없을 여지도 높다?”
“길게 끌고 가려는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완연하게 알지 못하는 이들은 답답하다. 더 넓은 시야로 봐야 한다면 그들의 목적이 조선의 눈을 가리기 위한 술수라고도 생각이 들었다.
“이 흑수주 일대를 분쟁지역으로 만들려고 하는 일이겠습니까?”
“아닐세. 그들이 영토 욕심이 많아도, 유럽이 근래에 이 동양 일대에 관심이 덜해졌어도 조선은 여러 유랍 국가와 미국의 투자를 받는 곳이네. 그런 곳에 문제가 생기는 일로 아라사는 큰 이익을 얻지 못하네.”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물론 조선과 러시아의 분쟁으로 시선이 몰리면 그것으로도 이득이 생길 수 있음을 잘 생각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곁에 국제정세에 훨씬 해박한 수령, 그도 아니면 외교관을 지낸 관리들이 있었다면 쉽게 답을 알려주었을 수 있었다. 이곳은 조선의 가장 북쪽 끝에 있는 변경 지대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런 이들의 부임이 거의 드물었다.
그러므로 변경의 군사 지휘관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조선과 러시아 사이의 국지전을 최대한 변경 일대에 국한해서 생각하려는 모습이 강했다. 군사적인 목적, 영토 방위 목적으로만 행동하려는 기조였다.
물론 그 목적을 알게 되어도, 그들은 자신들이 지키는 변경 지대에 침투한 러시아군을 그저 몰아낼 생각이 강했다. 우선 청나라와 다르게 러시아가 근처 지방에 대한 통치 역량이 적다고 하여도, 전투력은 격이 다르다고 봤었다.
특히 육지에서는 카자크 기병대를 앞세운 침투와 종종 있는 신경전, 흑수주까지도 들려오는, 캄차카반도 끝인 페트로파블롭스크 캄차키아 지역에 거점을 둔 러시아 해군이 솔빈주, 함경도 방문도 러시아가 가진 역량을 과대평가하는 상황이었다.
“저 이반이라고도 불리는 아라사 족속이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어.”
“흑수주 관찰사 어르신이나, 병마절도사께서 알려주시면 그것에 맞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만, 아직 다른 소식이 없습니다.”
“첫 원군과 두 번째 원군이 빨리 당도할 때까지. 세 요새와 근방 마을들이 잘 협력해서 버텨야 할 듯합니다.”
조선군은 공세로 나서야 하는지, 수세로 나서야 하는지를 감이 잡히지 않았다. 수비 해도 시간을 끌어서 다른 방식으로 러시아가 자신들의 이익을 유리하게 만들지 알 수 없다.
반대로 성급하게 공세를 시전해서 야전에서 싸웠다가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정규군은 강인하게 잘 싸워도 향보군, 그 아래의 포수와 민병대는 상황이 좀 달랐다.
아예 합을 맞추어 본 적이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종종 합을 맞추어서 훈련했어도 강한 적인 기병 연대 규모의 카자크를 상대로 혹시 패배할 수 있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수색과 정찰을 병행하면서, 적의 증원을 감시하고 대치해야 했다. 무모한 전공을 세우지 않아도, 조선의 영토인 흑수주 변방에 적을 너무 오래 두었다고 문책받을까 봐 변경의 조선군 지휘관들은 조급함이 생기는 감도 나왔다.
“무모한 공세는 금지한다. 다만 적들이 우리 군대의 중요 길목을 막아서 분리하여 압박하는 일도 피해야 한다.”
“살아남은 향보군 기병대 등도 최대한 접촉해서 여전히 정찰 등에 투입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군.”
과감하게 움직이지는 못해도,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움직여야만 했었다. 게다가 지금 상황에서 아예 변경 전력은 국지전이 끝나면 재편될 수 있다고 여겼다.
보병연대를 중심으로 포병대, 기병대를 딸려서 편성한 흑수주의 변경 수비대 병력은 국지전에서 이기든 지든 가리지 않고 그렇게 되리라 예측했다. 그래도 기왕이면 자리보전 등을 원해서 참패는 피하고 싶었다.
***
조선 흑수주 일대에서 여전히 조선군과 러시아군 사이에 국지전이 일어나서 전투는 아니라도, 신경전이 이어지는 나날에도 일본의 어떤 곳에는 영토를 확정짓는 회담이 열렸다. 비밀리에 열리는 회담이었다.
그곳은 일본의 북해도 개척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거점 중 하나인 하코다테라는 지역이다. 하코다테에서 러시아 대표와 일본 대표가 만났다. 하코다테의 고료가쿠라는 일본 측 요새에서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양국의 전권대표들과 그들을 보좌하는 실무진이 모였다.
“이걸 이렇게 정리하는 일입니까?”
“일본은 굳이 마음 쓰지 않을 일입니다. 그 원하지 않았던 국지전은 우리 러시아와 저들, 조선이 해결할 일이요.”
“그렇습니까?”
“조선의 보복이 두렵습니까?”
러시아 쪽의 전권대표가 한 말은 어떻게 보면 무례하게 들렸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 정부의 관계자들이 가지는 두려움을 매우 정확하게 직시하는 모습이었다.
“예.”
“솔직해서 좋습니다.”
“으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다시피 하는 시선이라서 일본 쪽 전권대표는 마음이 불편하였다. 러시아 측은 일본 쪽 전권대표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실무자들도 논의하지만, 전권 대표들은 큰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쿠릴 열도 관련으로도 이야기가 나왔다.
러시아 측은 북해도와 가까운 섬 두 개는 일본에 귀속되어도 문제없다고 말한다. 러시아 쪽은 어떻게 보면 통이 크게도 작은 섬 두 개로 연연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사실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도 다 있었다. 어차피 러시아가 무리하게 가진다고 하여도, 제대로 된 관리는 있을 수 없었다.
관리를 할 수 없으면, 이름만 올려놓고 방치하는 일이 유럽 국가들에도 흔한 편이다. 그래서 선심을 쓰듯이 던져 주고 사할린을 온전히 확보하는 편이 더 나았다.
“가라후토(사할린)를 우리는 포기하는 대신에 홋카이도와 홋카이도에 가까운 섬 2개 이상은 우리의 영유권을 인정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귀국이 홋카이도라고 부르는 섬을 우리 러시아는 정부 차원에서 투자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북해도 투자 관련의 자금을 마련하려고, 차관 등을 얻으려 노력하는 편이었다. 영국은 러시아에 일본이 기울지 않게 노력하려고, 종종 지급하지만, 약속을 이행해야만 준다고 말하는 편이다.
그 약속은 지난 내전에서 패배한 현 일본 정부의 반대파를 최대한 온전히 복권하는 일에 협조였다. 이는 조선도 일본 내부에 있던 사건으로 존황양이를 기초로 하는 느슨한 반 바쿠후 주류 출신 파벌을 복권해서 견제하는 일에 영국과 함께 협조하는 중이다.
게다가 일본과 조선 사이에 생긴 경색으로 북해도 개발에 자금을 투자하던 조선의 국책회사인 동양 개척 판자 상회사, 일본식으로는 동양 개척주식회사의 자금 증가를 당장 기대하기 어려운 판이었다. 그들이 급히 투자를 철회하지 않는 일도 고마워해야 할 형국이다.
“조선과 영국이 홋카이도 개발 투자 비용의 증가가 조금 미묘해져서 말입니다.”
“아,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조선과 일본 사이를 필요하면 우리 러시아가 중재할 수 있습니다.”
“오, 그게 가능하면 고맙겠군요.”
러시아는 이런 식으로 동양에 영향력을 조금 더 행사하려고 안달이었다. 조선과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척질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일본과 러시아는 이해관계가 일치해서 하코다테에 있던 비밀회담은 꽤 성공적으로 끝날 듯했다. 이제 조약을 공개하고 러시아가 사할린을 자신들, 러시아 영토로 선언했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그 문제는 사할린섬에 조선인들이 영토로 간주해 주권 행사를 했다고 볼 수 있는 흔적이 나와서 그랬다.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요. 조아라에서도 연재중입니다. 거기에는 HMS 아론다이트란 이름으로 연재를 합니다.
- 작가의말
이번 편도 재미있게 즐겨주었기를 바랍니다. 변경 현장에 있는 조선군은 러시아가 그리는 큰 그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잘해도 현장 러시아군이 생각함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중입니다.
그 사이에 러시아와 일본은 하코다테 협약, 혹은 하코다테 조약을 체결합니다. 서로가 이해 관계가 일치해서 체결했습니다. 그렇다고 일본이 친러인 점은 아닙니다. 여전히 공러증이 있어요.
그런데 러시아가 호사다마라고 막판에 일이 꼬인 듯이 보이지요? 다음편에 나옵니다. 다음편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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