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조선 만업 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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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태왕 폐하께서 지나가신다!”
서역 방식 학제를 모방해서 만들어진 대조선국 기준으로 첫 근대 고등 교육 담당 기관인 한성대학교 학생들은 한창 등교 중이었다. 그들은 한성 만업 박람회를 조금 구경하고 여유가 있을 때 나머지를 구경할 생각이 한창이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태왕 이영과 그의 가족을 태운 마차 행렬을 발견하였다. 아까 알렉산더 포크 중위가 발견했을 때보다는 그들은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편이다.
그리고 그들이 보인 반응은 대체로 비슷하였다. 지나가는 마차 행렬을 보고 학생들은 모자를 벗었다.
이 나라, 대조선국에서 가장 높은 분이 지나가는데 모자를 그래도 쓰는 일은 학생들이 배운 서양식 예법에는 어긋나는 편이다. 그러고는 마차 행렬이 지나가자 뒤에 울리던 말을 그들도 따라 말했다.
“태왕 폐하 만세!”
물론 학생 무리와는 다른, 길거리에 있던 양반 혹은 세족을 막론하고 의관을 정제한 노인들은 대부분 갓과 두루마기를 입었다. 노인들은 머리 위에 쓴 갓을 벗지 않고 임금이 탄 마차를 비롯한 마차 행렬에 고개를 숙임으로 예를 행하였다.
노인이 아닌 쪽들도 저마다 할 수 있는 최선인 예를 보였다. 그렇게 합쳐진 모습은 어떻게 보면 꽤 중구난방이기는 하였다. 자세히 살펴본다면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인 자들과 그저 고개를 숙인 자도 있었다.
또 모자만 벗고 조심히 올려다보는 자 등이 있었다. 그런 모습에 태왕을 태운 마차 행렬이 지나가자, 만세 소리를 외쳤다. 그러고는 시비를 가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자도 벗고 고개를 숙인 자들이라면 모를까, 그런 행동은 서양식 예법이라도 조선에는 버릇이 없는 방식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상대가 한성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도 그런 시비를 피할 수 없었다. 조선에서 쓰는 예법과 서양식 예법이 합쳐져서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인 쪽은 시비가 걸리지 않았다.
“모자를 벗고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는 자가 어떻게 대조선국에서 태왕 폐하께 충성스러운 신하요, 공민이 될 수 있는가?”
“우리가 배운 서양식 예법대로 행했을 뿐입니다. 조선도 서양식 예법이 시행된다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서양은 서양이고, 조선은 조선이다. 비록 예법이 달라지고 있음을 우리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런 태도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모릅니다. 길고 짧음은 대어 보아야 압니다. 광명 예송이라고 저자에서 한 번 해볼까요?”
사실 예법을 더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대조선국 예전을 정비하였지만, 추가적인 정비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하여서, 정순조와 정순조 아래에 있는 제자들이 더 고생해야 할 듯싶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을 마차에 타서 조심히 흘긋흘긋 지켜보는 이영은 그 용모를 자세히 본다면, 서양식 군주 옷을 입었다. 더 정확히는 영국 문관 대례복을 개조한 서양식 태왕복이다.
왕태자 이환이 친선 사절단 정사를 맡았을 때 입었던 복장과 비슷했다. 그런 군주 복장에 맞춘 모자도 쓰고 마차를 타고 궐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공무를 위해서 조선 만업 박람회를 지켜봤다. 조선에 그동안 일어났던 변화를 모아서 확인할 수 있으니까 더욱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할 정도다.
이영은 인자한 표정을 지으면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벌써 예의와 예법이 확실히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예전을 마련하였음에도, 예법을 가지고 싸우는 예송이 종종 보이는 편이구나.”
“예. 아바마마.”
“네가 심양에 가서 심국 대리 청정을 수행하는 사이에 궁무부와 의정부, 중추원을 비롯하여 온 나라에 다양한 함의를 거쳐서 예법을 더 정리해야 되겠구나. 어떤 쪽이라도 도리가 맞아서 그냥 두었는데 시비를 가리는 일이 늘면 골치가 아프다.”
이영은 이참에 사회적인 합의를 꽤 담아서 예전을 갱신하는 일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여전히 이전처럼 정순조가 이를 주도하겠지만, 이번은 약간 다르게 진행할 필요성을 느꼈다.
현종 대왕 시절에 있던 예송 논쟁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필요한 논쟁은 막을 필요가 없다는 편이었다. 단지, 과열되어서 문제가 생기지 않게 조절할 필요만 있을 뿐이다.
그런 부왕, 이영이 가진 의도를 짐작하고 왕태자 이환이 답하였다. 심국 대리 청정 시기에 이환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는 애매한 편이 될 수 있었다.
“예. 아바마마.”
“그나저나, 폐하. 저는 이 복장이 아직은 익숙하지 못합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오. 왕후.”
그리고 이영 말고도 마차에 탄 조선 왕실 인사들도 서양식 옷을 입은 편이다, 이렇다고 하여도, 그들은 자기가 가진 얼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변화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태왕의 배우자인 왕후는 며느리들에 비하자면, 이런 복장을 자주 입지 않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느낀다. 그래도 사실 왕후가 입은 서양식 복장은 꽤 간편한 편에 속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프레드릭 위스가 키운 여성 제자가 조선에 입국해서 조선식 복장과 섞어서 만든 복장을 왕후가 입은 편이다. 코르셋 등을 써야 하는 양장은 조선 여인들은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왕후 마마, 확실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복식과 결합할 때는 그런 종류를 피하려고 만든 복장도 있습니다.”
“그래. 한산 공비, 그대가 잘 추천하였지.”
“아닙니다.”
왕후 조 씨와 며느리들은 옷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차에 타면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특이할 수 있지만, 종종 궐에서도 이런 대화를 하는 편이라서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태왕 이영이 한 사실이 떠올라서 작은 며느리인 한산 공비 류희지에게 질문 하나를 하였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랐다가 차분하게 류희지가 답하였다.
“태자비와 태자를 섬기는 양제도 한산 공비 도움으로 양장을 맞추었던가?”
“그렇습니다. 폐하.”
“예. 폐하.”
“참으로 그렇습니다.”
한산 공비 류희지가 한 말을 다른 두 사람, 왕후와 왕태자비가 답변하여서 참이라고 보증하는 편이다. 그리고 한산 공 이성과 왕태자 이환도 참여하여서 대조선국 왕실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여섯 사람이 마차 속에서 대화를 이어 나간다.
“많은 변화를 더욱더 실감하였다.”
“복장들을 봐서 말입니까?”
“그래.”
태왕 이영은 궁궐, 창덕궁 밖에 있는 한성부가 변화함을 사진으로도 종종 확인했다. 백성이 입는 복장도 변화하는 사실을 사진으로도 확인했다. 그래도 직접 봐서 느끼는 기분은 확실히 다른 법이다.
태왕 이영은 이전부터 확신하던 조선이 하는 노력이 헛되지 않다고 생각했다. 백성들을 만나는데, 그들은 가식적인 미소가 아니었다. 미소를 짓는데 힘들더라도 희망을 품은 모습이라서 그렇다.
그리고 종종 잠행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태왕 이영이 나서서 일하는 부분도 있다. 또 할 일이 남았다는 점도 있지만, 정작 다른 이유도 존재하였다.
“잠행을 하려고 해도, 이 얼굴이 너무 알려져서 쉽지 않더구나.”
“그렇기는 합니다.”
태왕 이영을 찍은 사진은 엄청나게 자주는 아니더라도, 꽤 대조선국 신문 매체들에 얼굴이 드러나는 편이었다. 그래서 아주 어린 아이거나 어디 두메산골에 사는 사람이 아닌 이상, 태왕 이영이 가진 용안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할 정도이다.
그런 점은 왕태자 이환도 비슷한 편이었다. 왕태자 이환도 얼굴이 찍힌 사진이 신문 매체들에 자주 등장하였다. 오죽하면, 범죄자 현상 수배용 초상화보다 태왕과 왕태자 부자 사진이 신문에 더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아예, 공무라고 한성 만업 박람회를 둘러봤다. 이걸 보니까 더욱더 우리 조선이 잘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여기에서 더 만족할 생각이 없다.”
“예. 아바마마.”
어떻게 보면, 욕심이 많아 보이는 부왕, 이영이 보이는 태도에 아들인 왕태자 이환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향상심을 가진 아버지는 당연히 존경한다.
그저 자기가 부왕인 이영을 만드는 발자취를 따라가기도 벅차다고 생각해서 자기가 가진 능력이 한계에 온다고 힘들어한 편이었다. 그래도 부왕에게 막역한 친우이고, 이환에게는 스승이기도 한 환재 박규수가 한 조언을 잘 생각해서 털어내는 편이 되었다.
‘나는 내 길을 걸으면 된다. 아바마마도 이를 긍정하지 않았는가?’
친선 사절단 단장 자리를 수행하고는 조선으로 귀국하고 나서 이환은 아버지인 부왕, 이영과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환재 박규수가 한 말이 옳았다.
왕태자 이환은 자신이 생각하는 왕도를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자신이 태왕이 될 때 이를 펼치고자, 곧 이루어질 심국 대리청정에 그런 이상을 실험하기로 더욱더 결의한 편이다. 그런 이환을 아버지인 태왕 이영은 응원하는 편이다.
이환은 잠깐 대화에 빠지고 자기 생각으로 집중하였다. 심국 대리청정을 잘 해내겠다는 마음을 가지면서.
그러는 사이에 대화는 태왕 이영과 한산 공 이성이 주도하게 되었다. 대화 주제는 옷감 관련이 당연히 많았다.
“아바마마, 소자가 조선에 귀국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는데 조선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조선에도 다양한 옷감을 만들고 우리 백성은 서양에서 유래한 옷을 입는 일에 점점 거부감이 적어지는 듯합니다.”
“물론 그래도 얼은 조선 본래 얼이 강했으면 좋겠구나. 서양에서 동도와 동등하게 마땅한 도리들은 흡수함이 옳아도.”
두 사람이 주도하는 대화대로 의복에 관해서 조선 백성들도 저마다 방식으로 변화를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그들도 양장을 모방하거나, 조선에 들어온 서양인 재단사와 그들 밑에서 기술을 배운 조선인 재단사에게 의뢰해서 옷을 입었다.
쓰이는 옷감은 다양한 편이다. 그리고 그런 옷감들도 조선에 생산하는 종류이면 만업 박람회에 전시가 되었다.
당연히 조선식 벨벳도 만업 박람회에 전시가 된 편이다. 어느 정도 높으신 분들은 알던 옷감이지만, 모르던 이들이 훨씬 많던 편이다.
이와는 별개로, 이영은 백성들이 조선인이라는 얼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편이다. 백성 중에는 과거 유림 중에서 종종 보였던 모화주의자 같은 이들이 아예 없는 편도 아니었다.
어떻게 본다면 그런 우려는 당연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큰 우려와 달리, 아주 많은 편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대신에 조선이 쇠락하는 중원을 대신하자는 주장이 나날이 강해지는 중이다.
“그들이 그릇된 생각을 하지 않게, 잘 다스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 그들에게 다양하게 생각할 여지를 주면서 바른 생각으로 이끌면 되는 방식이어도 된다. 백성이 똑똑하다면, 백성이 생각하는 대의를 존중하여도 되는 법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위정자들은 백성을 어리석게 두어서는 안 된다.”
“예.”
“너는 네가 생각하는 조선으로 원래 나까지 포함한 선왕들이 그렸던 조선이란 밑그림에 색 등으로 칠해나가면 되는 편이다. 너를 항상 믿는다. 태자.”
“예. 아바마마.”
인제는 이환이 대화에 참여하는 편이다. 그런 이환을 향해서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이영이 보였다. 이영이 생각하는 답은 정학, 성리학에는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쉽지 않은 법이다. 조선에서도 다른 나라들 속 역사에서처럼 위정자들은 백성들을 어리석게 두지 않겠다고 노력하면서도 선민 주의, 혹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정보 등을 독점했다.
그러면서도 유럽과 미국에서 나타난 민주주의도 차별이 존재하는 편이다. 당장 조선도 중추원 의관 천거를 하려면 양인 중에 세족, 반가, 중인들 위주로 시행되는 편이었다. 이런 모순을 지적한 자들은 중인과 급진 개혁을 추구하는 유림이 많았다.
특히 공회 주의라고 번역하는 사회주의 이론을 유럽에서 들여온 이들이 이런 지적이 많았다. 게다가 조선도 점점 중추원 의관 천거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열어나간다면 학식과 재산을 위주로 할 가능성이 커지는 중이다.
이환은 부왕이 말한 답과 현실을 생각하면서 둘 사이에 절충하면 제일 좋다고 고심하는 중이다. 이런 고심에 다시 빠지려는 찰나에 이환에게 한 사람이 말을 걸었다.
“전하. 전하와 전하를 보필할 신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왕위에 욕심이 없는 제가 형님을 도울 터인데 어찌 두려우십니까?”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왕태자 이환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고, 왕위 계승에서는 형님인 이환에게 우위를 진즉에 인정하고 형님을 돕겠다고 말하는 한산 공 이성뿐이다.
그런 아우가 기특하여서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최대한 환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아우야. 너는 정말 기특하구나.”
“아닙니다.”
그런 형제지간을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에게는 배우자가 되는 두 사람도 흐뭇하게 지켜봤다. 이제 슬슬 궐에 당도할 시간이 되었다.
다만, 한산 공 이성 부부는 자택으로 먼저 돌아가지 못한다. 조선 만업 박람회 견학을 위해서 부모와 동행하던 한산 공 부부 슬하 아이들도 말이다.
이유가 있었다. 궁궐에서 한산 공 이성 부부 슬하 자녀들과도 관련한 이야기를 논해야만 했다. 한산 공이 기거하는 한산 공부, 혹은 한산 공이 기거하는 한양궁(漢讓宮)에 논하기에는 중대한 일이라서 그렇다.
복장을 갈아입고, 왕후 조 씨가 기거하는 편전에서 대화하게 되었다. 이환과 왕태자비는 조카들을 동궁으로 데려갔다. 그러고는 다시 왕후가 기거하는 창덕궁 중궁전으로 돌아와 대화를 논해야만 하였다.
대조선국 왕실 직계와 직계에서 가장 가까운 종친인 한산 공 일가가 모여야 할 정도로 꽤 중차대한 일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일은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이다.
“전에 내가 쓴 어찰은 봤겠지? 두 사람 모두?”
“예. 아바마마.”
“예. 태왕 폐하.”
기린흉배가 달린 단령과 비단으로 만들었기에 고급스럽게 보이는 여성 전통 복식을 입은 한산 공 부부는 아까와 달리 나이가 든 얼굴에서 긴장감이 맴돌았다. 두 사람이 태왕에게 받은 어찰을 떠올렸다.
“유구가 혼인을 청했다고는 들었습니다. 우리 조선 종친에서 여식을 보내달라고 했다면서요?”
“그래. 기왕이면 가장 가까운 혈육을 원하더구나.”
“태자 전하, 그러니까 형님 슬하에는 군주가 없습니다. 그러면 제 딸을 보내야만 합니까?”
유구 조정이 근래에 조선 주재 유구관, 조선 주재 유구 공사관에 해당할 이들이 유구 중산왕 쇼타이가 보낸 국서를 대조선국 태왕, 조선 조정, 그리고 조선 궁무부에 전달되었다.
그 국서에 적힌 내용은 바로, 조선과 유구 사이에 국혼을 청하는 일이었다. 내용을 읽어보니까, 조선 종친에게 유구 종친 여식을 시집보내는 줄 알았다.
물론 그것을 넘어서 다른 일이었다. 조선 종친 중에 직계에 가장 가까운 여식을 유구 중산왕에게는 맏아들이 되는 자, 유구 세자에게 시집보내기를 청하는 내용이었다.
“유구 조정이 정식으로 국혼을 청하는 국서를 보냈다. 우리 조선 조정이 손이 귀한 점을 알고, 군주는 아니어도, 태자에게 질녀(조카딸)가 있다는 사실을 그들도 모를 리가 없다.”
“그렇기는 합니다. 다만, 아이에게 의향을 물어볼 생각도 있습니다.”
“당장은 아니고, 약혼은 어떠하냐고 말은 가능합니까?”
한산 공 이성 부부는 둘째, 딸을 아직 독립시킬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한산 공 이성 부부가 낳은 둘째는 아직 많아도 13~14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15살은 되어야 혼례가 가능하다고 보는 편이었다.
이건 사실, 유일한 손녀를 꽤 아끼는 태왕 이영도 생각하는 편이다. 무작정 국혼을 청하는 국서를 물릴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약혼으로 미루는 편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 사이에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양복을 입은 상태로 중궁전에 들어온 왕태자 부부가 보였다. 중궁전 상궁과 내시원 상선 중에 후자가 중궁전 입실을 청한다고 아뢰었다.
중궁전은 왕후 조 씨가 주인이라도 지금 이 자리에는 태왕 이영이 있으므로 이영이 허락하였다. 그래서 태왕 이영과 왕후 조 씨가 상석에, 그 왼쪽에는 왕태자 이환 부부가 앉았다.
한산 공 부부는 왕태자 부부에게는 왼쪽으로, 태왕 이영 부부를 마주 보는 형태로 앉게 되었다. 이어서 다시 대화를 시작하는 편이 되었다.
“유구가 왜 우리 조선과 국혼을 원하는지 짐작은 가는 편입니다.”
“그렇습니까? 전하!”
왕태자 이환은 이 국서 내용을 보고 이전부터 생각하던 일이 있었다. 그런 큰아들이 한 말에 태왕 이영이 관심을 가졌다.
“나도 짐작은 가는 편이다. 우선은 태자. 네 짐작을 먼저 듣고 싶구나.”
“예. 그럼!”
그러한 말에 왕태자 이환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마차가 아닌, 이 중궁전에서 꺼내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우선은 왕태자 이환이 하는 말에 경청하였다.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요. 조아라에서도 연재중입니다. 거기에는 HMS 아론다이트란 이름으로 연재를 합니다.
- 작가의말
만업 박람회 중에도 다양하게 사건은 있습니다. 저 예법 문제도 사회적 변화에 따른 장치로 보여주었습니다. 의복도 말입니다.
그리고 꽤 길게 써먹을 떡밥, 조선-유구 사이 국혼 떡밥을 던졌습니다. 쇼타이 왕이 꺼냈던 방책은 저런 쪽입니다. 과연 좋게 될지는 나중에 보여드려야지요. 다음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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