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영락한 용과 자칭 용, 난세에 휘말린 두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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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의 안도 노부마사는 머리가 일부는 새하얗게 될 정도로 고생을 하였다. 1862~1863년의 고생을 생각하면 그는 몸이 부르르르 떨릴 정도다. 그 말고도 다른 로쥬들도 고생을 했다.
서역의 개입 등인지, 아니면 덴노도 동의한 정변 등이 있던지 존왕양이 파벌들은 더 떨어졌다. 이탈인지 죽음 등으로 그렇다. 도사의 봉기도 영주의 손에 추가 합류한, 쿄에서 그 난리를 치기 전의 밀지 등을 전달한 다른 자를 잡혀서 처형했다. 쿄, 교토 등에서도 존왕양이 낭인이며 무가들을 최대한 숙청했다.
도사에서는 조슈와 달리 서역과 조선 등의 외세가 개입하려다가 그 직전에 간신히 대부분 진압하는데 성공했다. 미토는 결국 막부의 조정에게 미토가 조적 선언을 다시 받게 되었다. 더 규모를 키워서 정벌을 당했다.
물론 미토 근방의 봉기 등을 미토의 온건 존왕양이 파벌(?)이 진압하다가 미토의 영주측은 막부의 정벌군과 함께 그들을 쳐야만 했다. 그렇게 1864년은 비교적 평화로워 보일 수도 있지만 아니었다. 재작년과 작년의 수습이 미처 끝나지 못한 상황이었다.
막부는 이런 봉기로 피해를 입은 외세들에게 큰 보상을 보장해야 했다. 조슈도 배상을 하고 여러모로 정신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1862년부터 쇼군의 대리 혹은 쇼군섭정이 되었던 히토츠바시 요시노부는 존왕양이 파벌에 대한 신뢰를 더욱 거두어 들였다.
그렇지만 정작 자신은 좌막파 혹은 공무합체파에 가까우면서도 기존의 좌막파에겐 의심을 받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 당연하게도 히토츠바시 요사노부는 생각에 잠겼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물론 차기 쇼군으로 유력하다는 말도 현재의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모치가 후사가 없이 죽으면 그럴 수가 있다는 소리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 마저도 지금보다 더한 견제를 받으면서 많은 반대를 받아야 한다. 게다가 지금 쇼군이 급사 등을 할지 안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에게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서 다 힘으로 꺾는다! 보다는 필요하면 숙이면서 타협 등의 화해가 필요하다. 나의 위치가 생각보다 위태로운 것도 사실이다.’
이런 고심을 하면서도 히토츠바시 요시노부는 로쥬 등도 고생하는 재작년과 작년의 일들 수습 중 남은 것을 다 처리해야 했다. 히코네도 필요하면 끌어들여야 한다고 여긴다. 히코네는 지금, 좌막파와 공무합체 파벌에서는 꽤 중요한 위치를 잡아가고 있다.
‘미토와 히코네의 화해를 내가 주도한다면 어떨까? 남남이 되었어도 나의 친형이라면 이 형세에서 내가 쇼군에 오르는데 중요함을 알기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아버지의 실수를 바로 잡고 싶어 하는 형님의 마음도 잘 고려해서 시도한다면...’
이를 위해서라면 위와 같은 생각도 불사하고 있는 것이 에도 막부의 쇼군섭정인 히토츠바시 요시노부였다. 문제는 그의 형은 온건 존왕양이 파벌이기는 했어도 지난 일로 외세, 조선과 서역 제국들에 대한 불신이 강했다. 강경 존왕양이 파벌과도 여전히 야합 등을 할 여지가 있고 히코네가 조선과 손을 잡은 사실 등을 알기에 이를 거부할 수도 있었다.
‘히코네도 미토에 대한 원한이 크다. 형님이 강하게 나가면 그들은 거부할 수가 있다. 그들을 아군으로 당장 끌어들이는 것은 힘들어도 더 이상 적이 된다면... 그 것 또한 불가능하다.’
어떻게 둘을 화해시킬지도 고심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이런 일을 하면서도 통치 행위를 게을리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히토츠바시 요시노부는 바쁘게 살고 있었다.
그리고,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모치는 후계자를 생산하기 위해서 노력 중이었다. 양모인 전대 쇼군의 부인인 덴쇼인과 자신의 부인인 내친왕 사이를 최대한 중재하면서 내친왕이 마음이 편하게 이 에도의 막부가 있는 에도성에서 잘 지내게 노력하였다. 문제는 그럼에도 덴쇼인과 가즈코 내친왕 사이의 알력을 다 줄일 수는 없다.
무가 출신 대 황족 출신의 기 싸움, 존왕양이에서 전향한 자와 존왕양이인지는 몰라도 근왕파에 가까운 저 사이의 그런 것이었다. 도쿠가와 이에모치는 그 사이에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조선인 의원도 중용했다. 이는 안도 노부마사를 구했던 조선관의 전속 의원인데 동양의 의학과 서양의 의학을 다 할 줄 알기에 도움이 되었다.
“그대는 나에게 직언을 아끼지 않는 의원일세. 수석 로쥬인 안도를 도와주었다고는 잘 들었네.”
“아닙니다. 다만 건강을 잘 챙기소서. 건강한 몸에 건강한 후사가 생기며 건강한 몸은 후사가 자랄 시간을 더 버티어 줄 것입니다.”
물론 에도 막부의 쇼군이 신국을 지키는 신국 수호의 맹세를 했음에도 지나치게 외세의 인사와 가까이 지낸다는 불만이 나오지만 대놓고는 아니었다. 그런 직언을 가장한 불평불만을 하기엔 존왕양이 세력은 더욱 와해가 되었다. 지하에 숨은 미토 낭인 등이나 이런 자들이 뒷담을 하는 것에 가까웠다.
이런 사이에서도 신국을 자칭하는 일본에서도 당연하게도 변화를 추구했다. 조선만큼은 아닐지라도, 청나라보다는 더 여지가 있었다.
다만 그 청나라도 중원의 가장 큰 반란을 수습이 거의 끝나고 다른 반란이 터졌음에도 대비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그 방향이 더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일본은 일부 인사들에 한해서 조선과 서역에 대한 사실을 알고, 과거의 조선 마냥 자신들이 모든 면에서 뒤떨어져 있다는 생각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변화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청나라는 생각이 좀 달라 보였다. 자신들이 왜 패했는지 고찰하면 무기 때문이라고 여기면서 단순하게 보는 듯하였다. 그게 아니라고 판단한 이들은 있지만 주로 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차이가 언젠가 다른 결과, 또 다시 충돌하면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 결과물은 최종은 아닐지언정 중간과정을 만날 것으로 보였다. 동북아의 여러 나라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게도...
***
“이 류큐는 조선의 보호령이다. 이건 달라지지 않는 사실...”
“그렇습니다. 총영사님.”
“총영사라니? 조선은 유구의 기존 외교관계를 다 인정하고 도리어 격상을 원하기에 나는 유구의 미국 공사다. 조선도 나를 주유구 미리견 공사라고 칭하지.”
“하지만, 영국의 경우는...”
“조선에서는 유구의 체면을 위해서 격상을 원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도 조선의 요청에 따라서 총영사를 공사로 격상하겠지. 유구가 눈치를 보고 있어도 내심 그러기를 바라고 있지 않은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이들은 유구에 주재 중인 미국 총영사관의 관원들이다. 그들은 조선의 보호국이 된 유구에서도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관철하려고 노력이었다. 비록 본국이 지금 내전으로 정신이 없어도 국무부에 속한 외교관들로서 자국의 이익을 얻는 것에 노력함은 중요했다.
“조선에게 신의를 어기면서 굳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연하지, 유구를 굳이 완전히 다시 독립시킬 필요도 없어. 유구에서 우리가 돈을 벌고 무역을 할 거점 등으로 잘 쓰게 만들면 되는 법.”
“그건 아주 지당한 말입니다.”
“일본 말고도 거점으로 쓸 수가 있다고 본다네. 다만, 우리 독단으로는 못하니까, 유구 정부와 조선의 공사와 잘 협의를 봐야 하고!”
이어지는 대화에서 총영사의 진의를 깨닫는 수행원이다. 그런 공사의 말에 그 아래의 수행원, 1등 서기관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한다. 이런 주유구 미국 공사 예정인 총영사는 흐뭇하게 바라본다.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자네를 믿네.”
“알겠습니다.”
1등 서기관은 그들을 만나는 것은 물론이며 하급자들과 함께 세부사항을 논의할 생각이다. 물론 공사의 의향도 파악해서 보강할 예정이다.
그리고 공사는 그럼 뭘 하는가? 공사는 유구 내의 미국과 친하게 지내자는 파벌, 친미파를 만들 토양을 다지려고 한다. 그들과의 우애를 위해서 더 준비하고는 있었다.
다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조선의 공사, 주유구 조선관 견외통사와 그 수행원들은 한자로 필담하면 되지만 미국 등의 서양 측은 통역이 매우 필요했다, 한자 소양이 높은 필담 담당도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니니까 그렇다.
“물론 조선인들과도 더 교류하면서 조선, 영국과 함께 유구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가 되어야 한다. 그 걸로도 충분한 득은 된다.”
이런 말을 독백, 혼잣말을 하고 있는 주유구 미국 총영사, 아니 공사 예정이었다. 이 사람 말고도 유구에 이익을 얻어 보려는 다른 나라들도 있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저 총영사, 자칭 공사(진)처럼 외교관이기도 하고 그냥 상인이기도 하였다.
그런 이들은 유구에서 어떻게 이익을 얻어 보려고 하는지를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았다. 상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배를 통해서 중개무역을 하려고 한다. 청나라를 통한 무역을 위한 유구의 관선 혹은 민선은 부족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조선과의 무역을 위한 배도 부족했다. 유구는 관선을 청나라의 조공을 받기 위해서 사쓰마가 살려 놓은 것 외에는 배가 거의 없었다. 어선도 다시 만드는 중이고 만드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수입 중이었다.
당연하게도 배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 배를 판매하는 중개를 하던가, 아니면 자신이 소유한 배를 통해서 무역에 뛰어든다. 조선도 배를 수입하는 상황에서 유구는 조선을 통해서 배를 구하기는 애매한 처지기는 했다.
“조선이 나서도 도움이 완전 적극은 아니다. 조선은 자기들 내부의 경장에 더 집중하면서도 최소로 지원하는데 그 틈을 우리가 찔러야지.”
“우리 같은 소상인들이 이런 일로 큰돈을 벌까?”
“엄청나게 많은 돈은 아니지. 꽤 길게 꾸준히 번다면 그 것만으로도 큰 이익이라고.”
이런 대화를 서양 제국 출신의 소상인들이 나누고 있었다. 한 사람의 말을 다른 이들은 일리가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보를 취합해서 돌아본다.
그들이 아는 정보에 따르면 그래도 조선은 자신들이 배를 거래하는 자들 혹은 회사들에게 연결해주기는 했었다. 다만 문제는 유구가 그 조선보다 가난했다. 물론 조선도 덩치에 비하면 작은 조정, 작은 세금을 공식 표명했기에 부족했었다.
다만 그런 과거의 조선보다 유구가 나라의 크기 등은 더 작고 사쓰마에게 철저하게 오랫동안 수탈당했기에 약했다. 아직 이를 다 회복하지 못했기에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 계산을 하니까 앞뒤만 맞는 것으로 보였다.
“조선이 유구의 회복에 도와도 힘들 수가 있다고 본다네. 자신들이 받고 있는 투자를 일부 나누어 줄 까는 잘 모르겠다만 힘들 거야.”
“그렇다고 조선이 자기들 자본을 유구에 그렇게 열심히 투자할지는 모르겠어. 물론 투자를 안 하는 이들이 없을 리는 없겠다만···.”
“그러니까, 우리가 그 틈을 잘 노려야 한다고.”
“소액 투자들이라도 뭉쳐서 낸다면 무시할 수가 없으니까?”
“그럼!”
그리고 외교관들도 이합집산 중이었다. 조선, 영국,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 중 이익을 노리는 자들은 많았다. 그 것이 나라의 국익이던지, 자신의 커리어 등 사익을 위해서였는지 알 수는 없어도 그러하다.
물론 이들은 사익과 국익이 틀어지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자신의 부, 사익을 위해서 국익 같은 것은 상관하지 않고 일에 끼어드는 부류가 아닌 이상에야... 그들은 국익과 사익 등을 다 고려해서 일하는 편이었다.
아울러서 이들 말고도 유구에 주목하는 이들은 더 있었다. 바로 선교사들이었다. 자신들이 믿는 가르침, 종교 혹은 조선의 번역으로는 신교라고 칭하는 집단에서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서 나서는 그들이었다.
이들이 유구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그러는 이유를 지금 이 유구에 있는 선교사들의 대화를 통해서 알 수가 있었다. 유구의 도성인 수리와 가까운 외항, 유구의 가장 번성한 포구인 나화에서 선교사들이 대화를 하고 있다.
“이 유구에서도 우리가 믿는 가르침을 퍼트리려고 해보지요. 이미 있기는 하지만 더 크게 키워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구는 조선의 남부로 향하는 아주 적절한 2차 교두보입니다. 선교에 도움이 되고 조선 남부에 접근하는데도 도움이 크겠지요.”
“원래 유구를 중간 기항지의 일부로 삼게 되는 일이 커지고 있지요.”
“상인들의 이익 추구를 이용해서 교류를 하는데 조선의 개방장들과 연계해서 유구에 우리의 가르침을 전하죠. 적극으로!”
“조선에 보다 더 복음 등을 전해야 합니다. 조선의 내륙에!”
조선의 내륙, 특히 남부 내륙 등으로 뻗어 나가야 했다. 물론 유구에 대한 교세 확장도 목적이었다. 다만 더 큰 목적은 조선의 해안에 있는 개항장들과 연계해서 조선 내륙의 복음 전파를 더 열심히 시도하는 것이었다.
이들 선교사들은 모인 자들이 개신교라고 부르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조선 내륙 선교를 꼭 따내려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바로 천주교라고도 불리는 가톨릭보다 내륙 선교 등의 이유가 잘 불허되는 경향도 있었다.
그들이 생각한 것은 투자와 조선인 신도와 전도사를 더 늘려서 내륙 진출을 도모하는데 유구는 이런 조선의 개항장들을 지원할, 보다 안전한 교두보 기능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외에도 많은 욕망들이 유구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유구의 정치하는 사람들은 조선을 보면서도 조선을 따라가지만 조선을 완전히 믿지 않기는 했다. 그렇지만 자국의 미래를 위해서 더 골몰하는데 피부 허연 서양인들의 도움도 받아서 완전히 흡수당하는 것은 그들은 피하고 싶었다.
서로를 이용하는 양상이 당연하게도 나올 것이다. 다만 이게 어떻게 연쇄효과를 가져올 수가 있을지는 그들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
조선은 1860년대에 서양의 종교 중 가톨릭으로도 불리는 천주교와 개신교로도 불리는 프로테스탄트 등의 교회 등이 이전 세대인 1830년대와 비교하면 그 상황이 더욱 상전벽해에 가깝기는 했다. 조선 조정이 그들을 공인하고 박해를 하지 않았다. 제한하지만, 선교도 허락했다.
개항장과 그 가까운 근방, 한성 등 각 도에서 바다 등과 가까운 큰 고을들을 중심으로 이런 것이 퍼졌다. 물론 동학이 유행 아닌 유행도 하면서 그들을 견제하기는 했었다. 다만 서양 종교 계열 중에서 조선 선교를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버티던 가톨릭은 조선 조정에 신뢰가 있는 조선인 성직자들을 내세워서 내륙 선교와 신자 관리 등을 해 왔기에 개신교보다는 더 여건이 유리함도 사실이었다.
또 의도하지 않게도 조선인 천주승, 조선인 신부 등의 존재는 조선의 경장에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 정음으로 대표가 되는 국문의 재편 건의안을 올리는 이들도 조선인 성직자와 그들의 동료인 천주교 신부들이 주도했었다.
그들의 건의는 조선이 보냈던 장기 체류의 1차와 2차 서유시찰단 인사들이 이를 동의하면서 강화가 되었다. 또한 그들을 통해서 일부 어학훈도들이 양성이 된 상황이며 더 강경해보이던 개신교보다 현지에 유화를 가지고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조선인 성직자를 이용한 내륙 선교 및 교구 관리를 확인한 조선에 들어온 다양한 개신교의 교파들도 이를 이용하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그들도 조선의 해안에 있는 개항장들에 자신들의 교리를 가르치는 신학당, 신학교를 세웠다. 또 더욱 선교에 대한 적극성을 강조하였다.
“성경을 조선의 문자로 번역하지요.”
“성서를 말입니까?”
“가톨릭, 저들은 예배는 라틴어로 하지만 선교를 위해서 성서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저들에게 교세의 우세 등을 가져오려면 성서를 읽게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조선은 정음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생각보다 글을 아는 이들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조선 정부의 경장 등을 돕게 된다면 어떤가요? 가톨릭은 조선 정부에도 협조를 하기에 이를 대가로 얻었다고 봐야 합니다. 이는 유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대책 회의를 그들은 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조선 내부에서 개신교라는 그들이 믿는 종교의 전파가 꽤 힘들 수가 있다는 생각보다 하지 않고 있었다. 천주교와 동학, 기존 유력한 위치의 정학, 다른 말로는 성리학의 견제에도 천주교의 전례를 생각한다면 자신들도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열심히 전도를 수행했다. 특히나 이런 일은 개신교 교파 중에서 미국에 기반을 한 이들이 꽤나 강력하게 자금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영국 측은 주로 성공회와 청교도로 불리는 쪽이 부호들이 하는 투자와 별개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
가톨릭은 반면에 기존에 쌓았던 위명이며 조선 내륙의 몰래 유지하던 교세를 바탕으로 이를 견제해야 했다. 프랑스의 지원을 고려해도 교황청의 지원도 그렇게 강력한 상황이 아니었다. 바티칸 근방의 이탈리아 왕국과 대치 등으로 특히 그렇다. 예산의 지원 보조금도 원래 적게 나올 여지가 있었기에 프랑스의 지원은 조선 천주교회 측에서는 고맙지만 고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 조정에게 어떻게 경장, 개혁을 지원할 수가 있을까요?”
“뭐겠습니까? 조선인들의 계몽을 위해서, 그리고 의료 봉사 등을 하면서 늘려야지요.”
“조선의 의료기관에 더 협조하자고요? 우리가?”
“그렇습니다. 이건 간단합니다, 조선인 의사들을 만드는데도 우리가 도움을 준다는 식으로 더 가야지요. 또 조선이 이전부터 교육에 관심이 많고 신식 학교를 원했지요.
이를 더 열면서 신식 학교에 조선인 학생들을 더 받아들이는 것으로 가야 합니다. 교육 등에서도 더욱 영향력을 행사해야 지요.”
“흠, 일리가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가톨릭은 자금 지원 등의 한계로 함부로 벌리기는 애매한 신식 교육기관의 확장과 장학재단, 의료 봉사에 의료인 교육에 지원하는 식을 누군가가 제안했다. 필요하면 조선 정부 등에게 고용되는 방식으로 이를 대응할 여지도 있었다.
미국의 선교단체들이 그나마 더 안전한 조선에서도 기틀을 잡고 선교를 더 시도하는 것이 적극이 된 것은 유구란 다른 거점 혹은 중간 기항지이자 새로운 선교지가 있기에 그렇다. 그들에게 더욱 내륙 탐험이랄지 내륙 통행은 제한이 되었기에 미지의 지역이기는 했었다.
이에 대해서 동학과 천주교, 정학, 마지막으로 조선의 토착화된 종교로도 인정받는 불교에서는 어떻게 대항을 해야만 했다. 개신교의 선교 확장에 조선 조정은 자신들이 나서서 견제하지는 않았다. 이는 이전의 약속한 원칙을 생각해서 그렇다.
그렇다면 조선에 들어온 외래 종교들과 이 땅에 있던 믿음이나 가르침 등이 어떻게 연대하고 대항할지는 꽤 특이할 수가 있었다. 불교에서는 조선의 변화에 대해서 우려를 표하면서도 이미 쇠퇴하던 자신들을 더 변혁시킬 필요성이 일각에서는 나오고 있었다.
천주교와 정학, 동학과 달리 그들은 조정과 유착을 하기는 애매한 위치로 보였다. 다만 그렇지도 않은 것이 아직도 승병 등의 전통과 불자들과 정학하는 선비들 사이의 유대와 연대도 남아 있었기에 그들도 개신교 견제를 위한 공조에 낄 수도 있었다.
“개신교라는 야소를 믿는 여러 교파들이 이 땅에 발을 더 붙이려고 하오.”
“정학에 동학은 형제와도 같기에 도울 것입니다. 다만 이 싸움은 가르침으로 해야지, 피를 부르는 행동은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서역하고 싸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말과 붓으로 하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동감하오. 평화로운 방법으로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대의에 당연히 동의합니다.”
정학과 동학은 제일 열심히 공조를 시작했다. 두 학문이야 서양의 석학, 철학 등이며 천주교와 개신교가 가진 서양 종교의 가르침 중 일부를 긍정하여도 이를 이용하여 나라를 혹세무민하지 않을까 봐, 천주교와 함께 견제하기도 했다. 천주교도 외세와 결탁할 수가 있지만,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다고 봤기에 다르다.
여기에 불도, 불교로도 불리는 이들이 자구책, 자신들 내부의 개혁책을 꺼내면서 조정과 연계하여 이런 외래 신교들을 더 견제하는 조건으로 더욱 상부상조를 원했다. 불교 세력이 받던 제약의 일부는 이미 풀어 주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더 제약을 풀어 주고 불법을 믿는 이들이 뭉치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중요 사찰 주지들이 모여서 논의를 하게 되었다.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요. 조아라에서도 연재중입니다. 거기에는 HMS 아론다이트란 이름으로 연재를 합니다.
- 작가의말
요약하자면
안도 노부마사의 심정 : 존왕양이 이 ㅅㅂ ㅅㄲ들아!
히토츠바시 요시노부 : 내가 어떻게 해야 영향력을 확대하지? 이거 각을 잘 잡아야 한다.
그리고 유구를 조선 남부 내륙 선교의 1차 교두보이자 다른 선교지역으로 여기는 선교사들을 비롯해서 유구에서 이익을 뽑아보려는 이들도 다루어 봤습니다. 아울러서 서방권의 가톨릭/개신교 선교에 대항하는 유학 및 동학의 모습도 보이고, 그동안 언급이 없던 불교를 등장시켰습니다. 조선 후기에서 말기의 불교가 여기서는 어떻게 재편되는지가 나올 수가 있죠.
날씨가 춥습니다.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다음편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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