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코스모폴리탄이 활약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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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북독일연방-남독일 왕국들의 동맹군 사이에 일어난 전쟁의 자세한 전모를 뒤늦게라도 조선 조정은 알게 되었다. 프랑스에 주재하는 조선 공사관과 주재 무관을 겸하면서 유학생으로 간 조선군 무관이며 프랑스의 조선인 유학생 등, 이들이 열심히 조선 조정에 보고했었다.
그 내용을 간추려서 의정부의 외부대신이 태왕 이영과 중추원의 의관들은 외부에서 보고한 결과는 예상했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프랑스가 생각보다 빨리 패배한 사실에는 놀라워했다.
“포뢰선( 砲雷宣 : 프로이센의 새로운 음차.)과 법국 사이의 전쟁은? 법국의 패배인가?”
“예, 그랬습니다.”
“수당( 水堂 : 프랑스의 스당 음차.)이란 고을에서 군대를 친정하던 법국의 황제가 포뢰선 군대를 주축으로 한 도이치 연합군에 격파되고 포로가 된 일은 토목의 변 이상으로 충격이었을 듯합니다.”
“우정이라는 호를 가진 어린 선비가 올린 장계에 고민이란 이들은 무엇인가?”
조정의 관비 지원을 받아서 프랑스로 유학을 하러 간 유학생, 어린 학생인 홍종우가 올린 장계에는 법국 도성인 파리의 혼란을 잘 담고 있다. 파리 고민( 固民 : 코뮌의 음차, 정식 음차는 아니고 임의로 만들었다.) 등의 양상을 보고했다.
“그들은 미리견, 미국처럼 왕 없는 나라를 넘어서. 과격한 주장에 동조한 이들이 세운 집단입니다. 대체로 사회에 가장 낮은 이들에 속하며, 그들을 위한 나라가 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동조했다고 합니다.”
“그렇군. 그런데 말이요.”
“예. 폐하.”
태왕 이영은 파리 고민, 파리 코뮌에 속해있는 전문가들이 프랑스 주재 조선 공사관이 프랑스 신정부와의 교섭으로 일부를 망명시켰다는 보고에는 좀 놀랐다. 이건 조선 본국의 인사들도 당연하게도 당황한 일이다.
“우리가 법국 주재 조선 공사에게 이를 시행하라고 한 일은 아닐 텐데 말이요. 우정이란 호를 가진, 이 홍종우란 선비가 건의해서 실행했더군.”
“예. 그렇기는 하옵니다.”
“이 어린 선비가 그들하고 잘 교류하였는가? 단순하게 그들이 불쌍해서 도울 리가 없을 텐데?”
“그건 모르겠습니다.”
“다만 장계들을 종합하니까 짐작 가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프랑스와 북독일 연방-남독일 왕국 동맹 사이의 전쟁 중에 프랑스에 반역죄로 죽을 위기에 처했던 이들을 프랑스로의 추방을 조건으로 조선에 보내는 교섭은 조선 본국의 조정은 지시를 내린 적이 없었다. 물론 이 독단을 문책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았다.
추방되는 이들이 조선 조정에 일하는 프랑스 고문들 못지않게, 유능한 인사들이 매우 많았다. 홍종우의 건의로, 주프랑스 조선 공사의 독단은 인재가 더 필요한 조선에는 필요한 방식이기도 했다. 그래서 문책을 겸하면서도 칭찬할 일은 칭찬해야 했다.
다만 홍종우가 왜 그들을 도왔는가에 대해서는 더 자세한 이유를 조선 조정의 신료들과 태왕 이영도 알지 못했다. 사실, 그건 홍종우가 프랑스에서 사귄 인연 중에 답이 있었다.
“고맙네. 무슈 홍.”
“아닙니다. 무슈 클레망소.”
청년 정치인, 프랑스의 파리 몽마르트르 구청장인 조르주 클레망소와 인연이 있어서 그랬다. 클레망소는 파리 코뮌에 가담한 이들이 모두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파리 코뮌의 대의를 긍정하는 편이었다.
“저보다는 공사 각하의 결단으로 성공한 일입니다.”
“그래도, 무슈 홍이 건의했기에 있을 수 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르주 클레망소는 조선이 딱히 사회주의에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 조선에도 말을 잘 듣지 않아도 유용한 인재들이니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렸다고 여길 뿐이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생각이지만, 조선은 주류적인 사유가 사회주의에 대해서 흡수하고도 남을 수가 있다는 생각 정도만 했다. 클레망소만의 결론이라도 클레망소같이 조선의 주류적인 사유, 성리학에 대하여 진지하게 들어본 진보적인 지식인이라면 비슷한 생각에 도달할 수가 있다.
‘무슈 홍에게 설명을 들어서 내가 정리한 결론이 정확하다면 말이지.’
홍종우는 젊은 선비인데, 이상적인 생각을 하는 편으로 그는 파리 코뮌에 가담했다고 그들을 다 죽여야 할 일은 반대했다. 재판도 없이, 그들을 죽게 만드는 상황을 피하게 도울 뿐이다. 게다가 이국, 프랑스에서 사귄 형님인 클레망소가 하는 부탁을 들으면서 그들을 조선으로 망명시켜서 조선에 도움이 되면 될 일이다.
그는 공사관에 이를 건의했고, 주프랑스 조선 공사는 중추원 의관이다가 공사로 부임한 쪽이다. 화서 이항로의 제자로 김평묵으로 그는 홍종유의 건의를 읽으면서, 고문으로 들이지 않고, 프랑스 정부와 협상해서 그들을 추방하고 조선에 망명하는 방식이라면 유용하지 않을까 했다.
그리고 그런 판단에 따라서, 조르주 클레망소를 중간 다리로 하여 프랑스 정부와 교섭했다. 프랑스 주재 조선 공사관이 교섭하는 프랑스 정부는 이전과 달랐다. 프랑스의 황제인 루이 나폴레옹의 복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즉 프랑스 제3공화국이 성립했다. 프랑스 제3공화국, 조선의 표현으로는 계대법민주국(溪大法民主國)은 조선의 요청 등을 들어보고, 굳이 그들을 다 죽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을 이후 조선의 영향력 행사 강화에 더 사용할 수 있어,’
‘우리는 우리의 출범을 굳이 더 피로 더럽힐 이유도 없다.’
‘저들을 넘겨준다고 해도, 우리한테 손해가 있는가?’
영국의 스코틀랜드계와 아일랜드계 인재들이며, 폴란드 유민들은 조선으로 향했다. 일부 세속 유대인들도 반유대주의를 피해서 미국이 아니면 도박을 하는 셈으로 조선으로 이주했다. 게다가 이전부터 프랑스 상인 일부도 조선에 정착했다.
‘조선에 사회주의자들이 정착해서 생길 문제는 조선이 책임질 일이다.’
‘자기들이 데려가서 책임질 일이야. 우리는 나 몰라라 하면 그만!’
프랑스 제3공화국 인사들 사이에는 그들을 다 죽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강해서, 국외추방 형식으로 그들을 보내주기로 했다. 조선으로.
김평묵은 독단을 저지르기는 했는데, 질책 등을 감수했다. 홍종우라는 어린 선비가 말한 그들의 유용성, 그 외에도 모르는 얼굴이라도 파리의 이웃은 매정하게 굴 수가 없는 대의를 긍정했다.
사형과 사제들도 이런 결정을 지지하리라 생각한다. 작고한 스승도 긍정하리라 믿었다.
그리고 김평묵이 프랑스의 황립 콜레주에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 철학을 강의하는 일 등으로 프랑스 학계에 연줄이 있던 일에 클레망소란 인재란 중간 다리로 프랑스 정부와의 교섭은 성공했다.
‘독단의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이후에 조선 조정의 고관들과 태왕 이영은 그 내막을 주프랑스 조선 공사인 김평묵이 후속으로 보낸 장계, 보고서 등을 상세하게 다시 읽어보면서 파악했다. 김평묵한테는 질책과 함께 칭찬의 칙서가 보내졌다. 프랑스의 조선인 유학생인 홍종우도 공사관을 통해 무려 태왕의 친필 서신을 받았는데 혼이 나면서도 칭찬을 들었다.
이번 유럽의 그 전쟁을 보면서 유럽 국가들의 공사관에 주재하는 조선군 무관들이 보낸 보고서에는 프랑스의 군사 교리와 독일 제국을 자칭하는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독일어권 국가들의 소독일주의 통일 국가가 보인 군사 교리를 더 효율적으로 합쳐야 한다고 하나 같이 주장했다.
그 외에는 화력을 책임지는 화포도 이제는 전장식 대포 대신에 암스트롱과 크루프로 대표되는 후장식 대포로 군대를 더 일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하게도 호조, 호부에서 이름을 탁지부로 개칭한 부처는 한 번에 다 교체하는 일을 반대했다. 너무 큰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기에 중장기의 대체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타협을 요청했다.
“뒤에서 장전하는 방식의 화포 중 영국제와 포뢰선(砲雷宣 : 프로이센의 새로운 음차.), 아니! 덕국(德國 : 독일의 음차.)제를 선택해야 합니다. 미국제의 후장식 화포인 패럿 강선포도 채용한 상황입니다. 육군은 후장식 대포를 기왕이면 하나를 중심으로 도입해서 운용하는 편이 제일 좋을 듯합니다.”
“육군에도 영국의 후장식 대포를 채용한 일이 꽤 많습니다. 게다가 총포 같은 경우도 부대마다 이를 달리하는 상황이 아닙니까? 두 나라의 화포를 도입해도 그 부속이 섞이지 않게 잘 관리하면 될 일이라고 보옵니다.”
탁지부는 기왕이면 사들이기 편하게 하나의 대포를 중심으로 사들이는 일을 간언하고 있다. 군부 아래의 육군청 소속 포공국이야 그러면 좋은데 기존에 쓰던 장비들을 바로 다 도태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답한다.
물론 육군과 해군도 단일하게 통일하면 좋다는 생각이야 하고 있다. 여건이 그게 쉬운가는 알 수가 없었다. 해군청 측의 고관인 해군청 독판도 같은 생각이다.
그렇기에 해군청 독판도 입을 열어서 자신의 의견을 공손하게 말한다. 육군을 도와주듯이 말하고 있는 형국이다.
“육군과 해군은 같은 포로 통일하기 어렵습니다. 육군도 당장 기존에 굴리던 화포들을 정리하면서 점점 통일하게 도입을 해야 합니다. 이는 해군도 마찬가지인 일로, 영국제 화포와 미국제 화포를 다양하게 쓰고 있는 형국입니다.”
군부대신이 여기에 조심히 입을 열어서 탁지부대신은 물론이고, 중추원과 의정부의 동료 대신들, 상관인 총리대신과 부총리대신, 태왕 이영과 왕태자 이환이 그 의견을 듣고 더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지난 국지전에 청나라와의 싸움에서 이겼지만, 방심하지 않고 청나라와의 전쟁을 대비하면서 세수 수입을 더 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늘어난 부분들은 내부 개발에 더 들어가지만, 군대에 들어가는 비용도 당연히 더 늘어났다.
당연하지만,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하는 일이기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기존 장비를 시원하게 도태하기에도 들어간 비용과 사들인 부속 부품과 탄약 문제도 자유롭기가 애매하다고 군부대신인 남자가 자세하면서도 늘어지지 않게 설명을 더 보충했다.
“해군청 독판의 말이 옳습니다. 해군도 화포를 점점 통일하게 두어야 하는데,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특히 총리대신을 역임하고 있는 환재 박규수는 그런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으면서 생각에 잠기었다. 당연하게도 이 자리에서 당장 결정할 수가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신중하게 그도 입을 열어서 자신의 의견을 논하기 시작한다.
“유라파, 유주의 최근에 있던 전쟁에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더 진지하게 논의하고 받아들여야 할 듯합니다. 이 자리에서 바로 결정하기에는 사안의 경중을 생각하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군부와 탁지부, 군국기무처, 의정부, 그리고 중추원이 철저히 논하고 시행해야 할 일입니다.”
대조선국 의정부 총리대신인 환재 박규수의 말이 지당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확실히 이 자리에 바로 결정하기에는 신중히 처리해야 할 사안이라고 여긴다.
“그렇습니다.”
“총리대신의 의견이 지당하다고 여기옵니다.”
“동감입니다.”
나중으로 미루어졌다. 태왕 이영도 그 부분에 대하여 다른 장소에서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여긴다. 왕태자인 이환과 군국기무처의 무보수 명예직 관료로 일하는 태왕의 차남인 한산공 이산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 외에도 철도를 통한 신속한 진군이 가능하다는 점은 미국의 남북전쟁에 이어서 철도의 군사적 유용성을 추가로 입증한 부분이 되었다. 조선은 증기기관을 단 기선과 철도를 모두 다 활용해서 주변의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강하게 지지받았다.
그래서 철도 부설 계획은 더 보강되었다. 철교에 대해서도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북경 심양부, 심국의 수부이기도 한 심양부와 요동주의 중요한 포구가 있는 고을인 비사와 요하 하구의 고을을 연결하는 철도도 진지하게 이야기가 되었다.
그 사이에 도로들은 더 보강되었지만, 그래도 포장도로들은 드문 편이다. 도와 그 아래에 있는 부군의 수령들은 수령칠사에 포함되던 일인 도로 보수유지의 연장 선상인 포장도로를 관리하려고 열심이다.
***
그리고 조정의 이런 결정으로 곤란해진 이들은 따로 있었다. 조선인들보다는 서양인들이다. 정확히 누구인가 하면···.
“이렇게 넓은 강인 한강에다 철교라니요.”
조선 조정이 고용한 철도 기술자들도 골이 아플 정도로 넓은 한강에 철교를 놓는 일이다. 압록강과 대동강 철교도 만만치 않으나 대동강은 그나마 나았고 압록강도 하류에 두는 것이라서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문제는 거대한 철교의 처음 시작이 이 한강이라는 점이다. 한성 근방에 위치한 한강은 중류에 해당하나 유속이 빨라서 모두가 머리를 쥐어뜯을 수준이다. 하천 정비로 나아졌다지만 그래도 문제가 있다.
나중에 세워질 예정이지만, 낙동강 철교 등 경동선, 혹은 경래선이라는 철도 부설 계획은 모든 철로엔 철교가 세워져야 해서 매우 곤란한 상황이다. 서방 열강의 철교 기술자들은 최선을 다해서 튼튼하고 넓은 철교를 만들 생각에 골몰한다.
“시멘트가 더 좋아졌어. 그리고 강철도!”
“조선도 새로운 제강법을 배워갔지요.”
“조선도 시멘트를 만들 원료들이야 많습니다.”
“조선의 어떤 왕족이 수도 부시장을 하면서 수도의 재개발을 주도했기에 그 여파 등으로 조선의 수도 근방은 포장도로도 들었지요.”
“다이너마이트도 많이 수입하고, 만들고 있으니까.”
이 대화 말고도 조선으로 서양인 기술자들이 가져온 신형 철강콘크리트 철교를 만드는 기술과 제법이라는 변수가 있다. 다만 철도의 확장의 경우 당장은 힘들지만, 장차 미래를 생각해서 복선을 고려하여 넓게 설계하기로 했다.
한강에 세워질 철교는 철근과 콘크리트, 석축을 철저하게 조합할 듯하다. 기관차의 출력이 높은 편이 아니기에 너무 높은 철교는 배제되었다. 조선 조정이 준, 범람기과 건조기의 수위 차이도 확인했다.
한수 철교, 한강 철교는 당연하게도 개통되면 잘 쓰일 예정이다. 물론 기존의 열차 바지선도 병행하여 운용할 듯으로 보인다. 밴더빌트를 비롯하여 조선에 진출한 서양의 철도 부설회사들은 기분이 좋았다. 상공부 아래의 철도아문과 협력해서 철도를 부설하고 그 운영을 보조하고 있다.
인천 제물포 개항장은 더욱 번창했다. 조선소 말고도 수입하거나 조선의 황해도 철공소 등에서 가져온 강철을 가공하는 공장단지가 존재하며, 이들과 수입한 부품으로 철도, 기관차, 열차가 제작되었다.
경공업 공장들도 개항장을 중심으로 세워졌고 더 확장되었다. 덕분에 의도하지 않게도 조선 조정은 인천부의 제물포 개항장 부지를 확장했다.
“그나저나, 조선이 협동조합을 도입한 다음으로는 그들이 더욱 더 자본주의에 눈을 뜬 듯합니다. 산업화가 더 빨라지는 것으로 보이니까요.”
“조선은 자국의 면과 인도, 영국에서 수입한 면으로 옷을 지어 입는데 주로 이를 내수로 수급한다고 바쁘더군요.”
“일본에도 팔지 않습니까?”
“사실 지금 조선에서 가장 큰 서양식 복장의 큰 시장은 군대입니다. 또 조정도 있습니다. 서양식 복장을 다른 방식의 대례복이니, 소례복으로 지정해서 이를 입는 이들이 종종 보인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도 조선인들도 우리의 복장을 모방한 옷들이 더 늘어났던데요?”
또 한성부의 외곽지대에 하천을 낀 곳에는 경공업 공장, 면직물을 가공하는 공장들이 더 부설되었다. 용산으로 이전한 옛 군기시 대형 공장인 양총, 화포전담 군기시 제2 기기창과 기존 군기시 관청이 있는, 지금은 군부 육군청 포공국 청사 겸 군기시 제1 기기창이란 이름의 연구시설 등도 존재한다.
평양의 외군기시, 제3 기기창으로도 불리는 곳도 더 확충되었다. 심양부에도 기기창을 확대 설치하자는 의견이 진지하게 나왔다. 더 정확히는 요양에 이전하여 두어야 한다는 주장과 갈등하지만, 조선 조정이 알아서 잘 결정할 일이다.
그리고 인삼을 홍삼으로 만드는 증포소도 더욱 거대한 공장이 세워졌다. 개성은 물론이고, 인천 제물포 개항장에 있던 증포소도 당연히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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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해야 좋은가···.”
스승, 증국번의 서거 이후로 의정왕 공친왕을 보좌하면서 동치제, 청나라의 대한을 모시고 군기 대신 중 유력자의 자리에 오른 남자가 고뇌한다. 청의 양무운동이라고도 부르는 동치중흥을 주도하는 인사 중 하나인 이홍장이 말이다.
조선에 패배한 이후 전통의 천하관이 부서진 상황이다. 이를 재건하려면 조선을 다시 눌러야만 했다.
하지만 우발적으로 일어난 4차 전쟁, 동북 국지전에서 조선은 더욱 강해진 상황을 봤다. 이후 일련의 상황에서 청나라는 더욱 군대를 증강하고 외국으로 군사 유학을 보내며 프로이센 군대에 막대한 돈을 청해서 고문관을 들여서 군대를 강화해야 했다.
특히 근래에 프로이센, 독일 제국을 수립한 소독일 주의 민족국가의 승리를 보고 독일군 군사고문을 더욱더 요청하고 있다. 해군은 조선처럼 영국을 참조해서 영국 유학을 보내는 자들도 많았다.
“인재가 부족하다.”
청나라의 중요 군권은 분명 옛 팔기에서 한족에게로 넘어왔다. 하지만 정치적인 실권은 여전히 제한되는 상황이다. 이는 한족 신료들에게 불만을 품었다.
이를 그의 재량으로 허용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한족이지만, 이 거대한 제국인 청나라는 다양한 민족이 있는 제국이라서 그렇다. 정작 가장 다수인 한족은 많이 소외되던 현상이다.
그러나 청이란 중원 통일 왕조에 충성한 신하이고 진사 출신인 그는 청을 배반할 수 없다. 출신 민족과 충성하는 나라의 이익이 부딪히기에 고뇌한다.
그러면서도 이 제국을 지탱하려는 그는 만고의 충신일지라. 물론 인재가 부족하다는 말은 조금 과장이다. 넓고 거대한 제국인 청나라에 인재가 없을 리는 없다. 이홍장은 자기 말은 안 듣는 장지량 같은 자들보다는 자기 말을 잘 듣고, 해방론와 조선 새방론을 긍정하는 유능한 인재를 원했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 틈을 아라사가 찔러 오다니.”
뒤늦게라도 새방론을 완전히 무시해서는 안 되었다는 생각을 이홍장은 종종 하게 되었다. 그 이유가 있었는데 야쿱 벡의 무리를 치려고 개입한 러시아에 의해서 신장을 원정하려던 청나라 군대는 닭 쫓던 개 신세와 다를 바가 없었다.
급히 수도에 있던 그 원정군을 급파했지만, 실정과 폭정으로 민심을 잃은 야쿱벡은 중가리아 일대에 사는, 신장성 일대에서 가장 친청 세력일 몽골족마저도 현지의 무슬림과 한화 된 회족의 협조를 받던 러시아 원정군에 협조했다. 그리고 중가리아 북부의 친청 세력 일부를 제외하고 신장성은 지금 러시아와 청나라가 양분했다고 하지만, 7:3 비율로 러시아 세력의 영향력이 더 커질 예정이다.
일본과 조선-청나라 국경지대의 그걸로 정신이 팔려있던 영국 측, 특히 주청 영국 공사관과 주조선 영국 공사관, 그리고 영국 극동함대는 당했다는 생각이 역력했다.
신장성 일대의 중요성을 실제 관측을 한 인사 등과 러시아 측의 인류학 자료, 청나라 현지 자료를 중국학자인 토머스 웨이드의 주도 아래에 분석한 결과, 적어도 러시아의 눈에는 아주 유용한 꿀 땅이라고 판단이 가능했다. 그래서 동아시아의 영국인 관료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공통으로 하게 되었다.
‘러시아가 원하는 상황들이 조성되었군. 청나라를 이래서 믿을 수 있을까?’
그레이트 게임에서 청나라를 보조적인 체스 말로도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회의적인 견해가 굳어지고 있었다. 물론 청나라가 바로 무너지지 않게 청나라의 유지는 여전히 원칙에 두지만, 조선이라는 더욱더 영국이 신뢰할 만한 체스 말에게 더 투자를 몰아주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되었다.
이런 변화를 알아채고, 청나라 조정은 영국에 자신들의 유용성을 보여주고 그레이트 게임의 다른 플레이어가 되어야 했지만, 자신들의 저력을 지나치게 믿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청나라의 저력을 저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그런데도 국력에 대한 지나친 거만 함은 과유불급이었다.
그런 교훈을 청나라는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한 듯하였다. 물론 조선에 제대로 패한 이후, 이번 국지전의 결과로 더욱더 열심히 동치중흥이란 이름으로 군대와 일부 산업의 개선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직도 지나친 교만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요. 조아라에서도 연재중입니다. 거기에는 HMS 아론다이트란 이름으로 연재를 합니다.
- 작가의말
보불전쟁의 여파는 조선에도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다른 유럽의 사건, 이탈리아 통일 중에 나오는 교황령 병합, 이른바 바티칸 포로 시기도 조선에 전해지겠죠.
코스모폴리탄이 활약하는 시대, 외교관과 유학생은 가장 코스모폴리탄이 되기 좋습니다. 현실보다 훨씬 빨리 프랑스로 유학을 간 홍종우가 클레망소와 함께 프랑스 주재 조선 공사 김평묵의 승인으로 코뮌에 가담했던 프랑스 지식인과 전문가들을 망명시켰습니다. 마냥 이익은 아니겠지만, 손해도 아닐겁니다.
그리고 조선은 군대의 무장을 더 점검하고 전훈을 확인할겁니다. 무기 단일화는 사실 그냥 돈 때문에 그러는 경우도 있습니다. 허허!
청나라는, 증국번이 그 사이에 사망했습니다. 실제도 저 시기 즈음에 죽는데 여기는 사인이 과로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홍장이 걷는 길은 과연? 다음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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