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헬조선4
순도 100% 픽션입니다
예서와 이초란은 살짝 취했는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애기들은 한쪽에서 다 잠들었고.
배가 꽤 부픈 소유키도 귀를 기울이는 척 하지만 피곤해 보였다.
“너흰 내려가서 자라. 난 좀 더 이야기 하다가 갈 테니.”
“알겠습니다. 마마.”
소유키가 아낙들을 깨우고 각자 애기를 챙겨 내려갔다.
박상전을 불러 식은 음식을 교체하고 나자 모현성이 말했다.
“각자 최대 이익을 위해 노력해. 아이가 어릴 때부터 수많은 교육전문가들이 마케팅하지. 발레, 피아노, 영어, 태권도 등등 온갖 학원이 열심히 마케팅을 해. 학부모도 최대 이익을 위해 노력해. 내 자식은 최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학원에 보내. 그리고 남한테 말할 수 없지만, 편하고픈 마음도 한스푼 넣지. 애보기는 힘든데 학교와 학원에서 16시간 책임져주면 내 삶이 생기는 거잖아. 애를 위한 거라는 변명거리도 있고.”
“그래서 애들은 아침에 집을 나가 밤 12시에 집에 오고.”
“내 사랑하는 자식 대학만큼은 꼭 보내줘야겠다. 은행 빚져서 대학 등록금 내고 어떻게든 졸업시켜주고. 그런데 말이야. 대학 정원이 몇인지 알아?”
“언제?”
“에...... 내가 여기 오던 때. 그때 입학 정원이 50만이었거든. 수험생은 50만이었고.”
“응? 전원 다 가는 거야?”
“원한다면 누구나 어디엔간 갈 수 있지. 자. 여기서 문제. 전국민이 대졸이면 임금에 차등이 생길까?”
“그러게......”
“그래서 헬조선 이야기하면서 취업하려면 대학졸업장 만으론 안 된다, 토익, 자격증, 석사, 박사학위 등을 이야기하지.”
“하긴. 모두가 대졸자면 변별력이 없네.”
“여기서 형이 생각해봐. 형이 회사에서 했던 일, 그거 대학 졸업해야 할 수 있는 일이야? 만약 대학 졸업하지 않고 그 일했다면 몇달 정도 노력하면 익힐 수 있을까?”
“...... 그래픽 찍기만 하면 한 달. 하지만 대학에서 배우는 건 좀 더 포괄적인 거잖아.”
“게임 제작. 그런데 대학 4년 동안 배우는 걸 관심 있는 이가 취미삼아 인터넷으로 공부하면 얼마나 걸릴까?”
“6개월......”
“창조는 대학에서 못 가르쳐. 창조를 가르칠 능력이 있으면 대학에서 직접 엘오엘 만들어 팔아먹겠지. 대학은 교육열을 이용한 이익기업이야. 돈 벌려고 교육열을 이용하는 거지. 창조의 영역은 천재가 담당하고 대학은 교육열을 이용해 등록금 장사하고, 졸업자들의 임금과 삶의 질을 떨어뜨리지.”
“야. 대학이 임금 떨어뜨리려고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
“어. 미필적 악행? 이런 표현이 맞으려나. 대학은 그저 돈 벌려 했을 뿐이야. 덕분에 매년 게임 전공자가 1만명씩 쏟아져. 나름 전문가니 자기 계통으로 취업하려 하는데 게임 관련 신규 채용은 천명이야.
사회는 철저히 수요와 공급 원리를 따라. 구직자가 많으니 회사는 임금을 조지지. 고작 이 돈 받고 야근에 주말출근까지 할 수 있으면 뽑겠다, 때려치려면 때려쳐라, 너 아니어도 많다. 이러니 그걸 감수하며 버티는 이는 노예의 삶을 사는 거지. 같은 식으로 건축설계 전문가도 쏟아지고, 도시계획 전문가도 쏟아지고, 화학 전문가도 쏟아지고. 모두가 전문가니 전문가의 가격이 떨어져.”
“대학 때문에 임금이 낮아진 다라......”
“왜냐면 자기 계통을 그렇게 정했으니까. 내 친구 기석이 알지? 건축설계 사무소 다니던 애. 걔는 매일 밤 12시 퇴근하고 주말에도 매일 출근 했는데 월급이 300이었어. 실수령 220. 연봉계약해서 야근비용도 없고, 회사에선 야근하지 말라고 했대. 이 많은 일을 내일까지 끝내라, 다만 야근은 하지 마라, 이런 식으로.
건축설계라는 게 여기저기 설계공모에 일단 다 찔러보는 방식이거든. 그러니 일감은 무한히 만들 수 있지. 어디 설계 공모에 넣자, 저 공모에도 넣자. 이런 식으로 최대한 찌르니 사람은 죽어나가지. 싫으면 다른 회사 가야 하는데 그 바닥은 다 임금이 비슷해. 설계 전문가라는 간판을 버리지 않는 한 어딜 가든 노예생활을 해야 하고, 못 받은 야근비용 따윈 평생 포기해야 하지.”
“좆같네. 게임그래픽 보다 더 좆같다.”
“일용직은 어떨까?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알폼이라는 게 있거든. 아파트 내부의 지지대를 만드는 일이야. 내부의 모양틀을 잡고 시멘트 부어서 벽면을 만드는 거지. 이 일의 하루 일당이 30만원이야.”
“헐.”
“힘들고, 위험하지. 그 정도 받을 만 해. 그런데 이 일을 한 달 20일 일하면 세금 떼고 540만원을 받네. 작업이 늦어져서 두 시간 추가되면 15만원을 더 주고 네 시간이 추가되면 30만원을 추가로 줘. 하루 12시간 일해서 60만원 받는 거야.”
“그게 그렇게 많이 줄 일이야?”
“사람이 없으니까. 위험하고. 힘들고. 지저분해서 하려는 사람이 적어. 대학 졸업한 전문가가 할 일이 아니란 거지. 덕분에 그 일은 외국인 노동자들만 한대. 그 중 불법 채류자가 몇인지 알 수 없고. 비슷하게 철근 조립하는 일은 하루 25만원, 목수는 하루 20만원. 하다못해 도로에 나와 빨간 봉 흔드는 사람도 하루 13만원 받어. 한 달 20일 8시간씩 야근 없이 일해서 260 벌지.
내 친구는 설계를 하면서 공사 현장에 감리를 나가는데 감리는 현장소장보다도 막강한 힘을 갖고 있어. 그런데 정작 받는 돈은 현장 전체에서 가장 적지. 현장에서 건축학과를 졸업한 정직원 임금도 빗자루질 하는 노동자보다 적고.”
“니가 하고 싶은 말은 임금 역전인가보다.”
“맞아. 모두가 대학을 나와 모두가 전문가가 되었지만, 실제 사회에서 전문가가 할 일은 전체의 10%도 안 돼. 노동자의 70%는 서비스업 직종이고, 나머지 기업노동자들 또한 단순 작업만 반복하지. 그런데 모두가 전문가니 되려 전문직 임금은 떨어지고 고졸자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엔 사람이 없어서 오히려 임금이 오르고 있지. 순수하게 수요 공급의 원칙을 따르는 거야.”
“그래도 전문직은 다르잖아. 사짜돌림.”
“회계사, 의사, 변호사, 변리사 등등. 이것들이 잘 버는 이유는 인원제한 때문이잖아. 수요가 많은데 공급이 적으니 임금이 오르는 비리지. 초란이 말대로 절대평가로 바꾸면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으로 공급 되서 임금이 떨어지게 될 거야.”
“음...... 모두가 대학을 가서 임금이 떨어진다......”
“등록금 4천만 원과 4년을 투자해서 졸업장을 땄으니 본전생각이 날 테지만, 정작 사회는 넘쳐나는 전문가중에 골라 뽑으니 임금을 후려치는 거야.”
“대학을 줄여야 하나?”
“공산국가가 아닌 한 강제로 할 수 없어. 그보다 교육열을 줄여야지. 모두가 대학갈 필요 없다. 공부로 상위 10%에 들어갈 수 없다면 대학 가느니 인터넷 유머만 4년 동안 보는 게 영업직에는 오히려 낫다. 이런 식으로 대안을 줘야지.”
“음......”
“솔직히 교육열만 낮춰도 헬조선이라 불리는 원인 대부분을 없앨 수 있어. 현대 한국이 끔찍한 건 결실 없는 목표를 향해 무한 경쟁한다는 거야. 모두가 열심히 공부하니 경쟁이 박터지잖아. 별보고 나가서 별보고 집에 오고.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10대를 그렇게 보내는데 결실은 뭐지? 시급 6000원 기업노동자가 결말이야.
또 사회의 시작도 너무 늦어. 의무교육 12년에 대학 4년, 군대 2년, 중간에 휴학 1년 하면 27살에 돈 벌기 시작해. 27살에 취업에 성공하려면 그전 27년의 인생을 공부에만 쏟아 부어야 가능하고. 이건 미친 거지. 형 말대로 미성년자 기준 20살은 이상한 거 같아. 15살이면 성인으로 쳐 줘야 해.”
“그렇지?”
내가 너보다 똑똑하다고.
“어. 교육 커리큘럼을 열심히 짜 봤는데 7년이면 남아돌아. 8살에 입학해서 14살 졸업. 그 다음부턴 성인이 맞아. 어차피 지천명 50살 이전엔 누구나 어설프고 누구나 미쳐있지. 아니 50살 넘어도 철들지 않는 놈 많지. 어려도 똑똑한 이는 똑똑하고 20살 넘어도 또라이는 영원히 또라이야. 그냥 15살에 성인으로 풀어주고 책임과 권리를 주는 게 맞아.”
“현대 한국에 적용한 이야기야?”
“아니 칸 제국. 하지만 현대 한국에 적용해도 될 걸. 8살에 입학하고 7년간 의무교육을 받아. 여기에 애국심이니 영어니 하는 쓸모없는 걸 다 빼면 아이들이 사는데 필요한 건 모두 배울 수 있어.
그 후 15살에 스스로 선택하는 거지. 대학 가려면 가는 거고, 일하려면 일하는 거고. 모두가 행복할 순 없지만, 적어도 전보단 나아져. 가장 성욕 넘치는 10년간 쓰레기교육을 받지 않으니 결혼도 많이 할 테고 출산율도 오르겠지. 대학가서 쓸모없는 걸 배울 시간에 영상편집이나 미용 같은 실생활에 필요한 걸 직접 하다보면 진짜 전문가가 될 수 있을 테고.”
“야. 그런데 너 대학 너무 쓰레기로 본다. 대학 안간 거보단 가는 게 더 배우는 게 있지 않냐?”
“맞아. 하지만 기회비용을 생각해야지.”
“기회비용?”
“모두가 영어를 만 시간 공부해. 정작 영어 전문가가 필요한 직업은 1%도 안 되는데 말이야. 그럼 그 시간에 다른 일, 차라리 게임을 만 시간 하는 게 오히려 경쟁력을 얻지. 4년간 4천만 원 써서 대학을 졸업할 시간에 4년간 4천만 원 써서 세계여행을 하는 게 그 사람 개인의 삶에 도움이 될 걸?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단 대학 가는 게 낫지만, 대학에 투자할 시간과 비용을 다른 아무 일에나 투자하는 게 무조건 이득이야. 차라리 4년간 희귀 버섯만 찾아다니고 키워도 이득일걸.”
대학원생의 대학혐오는 어쩔 수 없나.
버섯보다 못한 대학이라니.
모현성의 대학혐오는 뼛속에 새겨진 한기다.
“헬조선의 원인이 교육열 때문이라니...... 거 참.”
“모두가 그 길로만 가니까 그 길이 막히는 거야. 모두가 경부고속도로로 몰리면 경부고속도로는 졸라 막히는데 나머지 고속도로는 뻥뻥 뚫려있는 거라 보면 돼. 사람들이 교육의 문제점을 깨닫고 다른 우회도로를 이용하게 되면 그 땐 경부고속도로가 더 좋아질 수도 있지.”
“그걸 사회가 조종한 거냐? 노동자 임금 적게 줄려고 일부러 그렇게 유도하고.”
“뭔 얼토당토하지도 않은 음모론이야? 그저 각자가 최대 만족을 추구하다보니 이렇게 된 것 뿐이야. 졸업한 전문가들이 교육으로 먹고 살려고 학원차려 마케팅하고, 엄마들은 주변 아줌마들과 대화하며 자식에게 해준 걸 비교하다보니 서로 더 잘해주려 하고, 대학들은 광고하고, 기업들은 스펙 넘치는 인재가 넘쳐나니까 그 중 더 좋은 스펙의 인재를 뽑은 거고. 그냥 부모님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한 희생자는 인생 내내 놀지도 않고 피 터지는 경쟁만 했는데도 취업 안되고 취업해도 편의점 알바 시급 받는 현실이 좆같아서 헬조선 욕하는 거지.”
“씁쓸하네.”
광해는 가득차 있는 보드카를 쭉 들이켰다.
어둠에 잠겨 있는 한강이 보인다.
곳곳에 횃불을 든 야경꾼이 순찰하고 있고 마포 포구엔 환한 불이 켜져 밤에도 짐을 내리고 있다.
“이 나라도 그렇게 될 수 있겠네.”
“뭐든 과하면 안 좋은 거야. 몸에 좋다고 너무 처먹은 거지. 그렇게 안 되면 돼.”
“칸 제국...... 여긴 문제가 없을까?”
“솔직히... 몰라. 현대 한국보다 300배 큰 영토인데 문제도 많겠지. 우리가 떠나고 나면 인종을 아무리 섞어도 분리독립운동이 일어날 수 있고, 최대한 평등하게 하려 해도 인종차별이 일어날 수 있고, 갑자기 인도가 발전해 우리가 약소국이 되거나, 외국의 침략으로 멸망할 수도 있고...... 아니면 외국에 쳐들어가 대학살이나 인종청소를 할 수도 있고.”
“음......”
“그래도 미래에 어떤 사상이 나오고 어떤 식으로 갈지 대략적 흐름은 아니까 미리 준비할 순 있지. 공산주의가 생기지 않게 미리 사회보장제도 마련하고, 공권력의 비리를 사전에 차단하고, 기회의 평등을 최대한 유지시켜주면...... 적어도 21세기 국가보단 낫지 않겠어? 완벽한 세상이 열린다면...... 어 몰라. 완벽한 민주주의가 뭔지 나도 모르니까.”
“어. 그래.”
“최대한 노력할 뿐이지.”
그래.
그거면 됐다.
내가 찾은 해답이 정답은 아닐지라도 일단 가보는 거다.
신약물질 수천개 중에 뭐가 정답일지 아무도 모르니 수천가지 시도가 필요하다.
내가 선택한 길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 작가의말
소설속에 정리하기 위해 교육이란 이름 아래 몽땅 넣었을 뿐
헬조선의 원인은 이보다 훨씬 많고 다양하고 복잡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모두를 다룰 수 없고 더 했다간 이게 소설인지 개소리주장문인지 몰라서 최대한 줄였는..... 이미 늦었는지도.....
비평비판비난 모두 즐겁게 받으며 추가해야 할 것 가르쳐주십시오
글의 흐름을 대충 보면 귀족주의-절대왕정-공산주의-자본주의 등등을 거쳐 현대의 개인주의까지 왔습니다
이제 미래 이야기만 남았네요
끝까지 의지를 갖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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