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세련된 식민지배3
순도 100% 픽션입니다
“돈에 국적은 없어. 돈은 돈이야. 영프는 식민지를 해방하면서 해당국의 광산과 주요자산의 지분을 전 세계 기업에 팔았어. 네덜란드 기업에도 팔고 이탈리아 기업에도 팔고 미국의 기업에도 팔고. 그 결과 다국적 기업이 들어서게 되었지. 미국 기업들만 다 해먹던 쿠바와 달리.
그리고 이게 더 좋았어. 분명 외국 기업이 들어와서 광산과 자원을 뽑아가고 자국민은 가난해 지는데 대체 누가 가져가는지 모르겠다는 거야. 기업의 주인은 주식 뒤에 숨어서 회사의 이익, 배당을 챙겨 가는데 비공개회사라서 주주를 밝힐 이유가 없거든.”
“그래도 반란이나 폭동이 일어나면 들키는 거 아니야?”
“프랑스 국제용병. 소설에서 맨날 등장하는 그 국적 PMC. 폭도들이 광산을 점령하면 한국인, 네팔인, 아프리카인 등 여러국적을 가진 용병단이 등장해 쓸어버리지. 결국 광산 주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고, 민중의 불만은 가혹한 군사독재자에게만 쏠리지. 군사독재자가 문제되면? 영프미가 힘을 합쳐 군사독재자를 모르코로 피난시키고 새로운 독재자를 세우고.
개입하는 것도 간단해. 저 광산을 민중이 차지해 일반인 모두 나눠가지면 굶지 않을 수 있다! 이거 딱 들어도 빨갱이 소리잖아.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개입하는 거야. 그래서 새로운 독재자가 생기는 거지. 이래도 자꾸 반란이 일어난다? 차라리 종족끼리 싸워라, 해서 내전을 부추기고. 식민자본주의, 기업식민지는 20세기, 21세기 내내 일어나고 있어.
아. 기업식민지나 식민자본주의, 선거의회주의같은 용어는 없어. 내가 만들었어. 엣헴. 놀랍게도 전 세계 모든 경제전문가들이 입 닥치고 있거든. 십새끼들.”
자랑하듯 떠벌이는 모현성의 말에 광해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걸 네가 지금 일본에 심고 있다는 거지?”
“어. 맞아. 내가 깜짝 놀란 게 뭐냐면, 나오에는 처음부터 미국기업이 진입한 쿠바식을 뛰어넘어 프랑스의 아프리카 식민을 모델로 내세웠어. 자본의 주체를 숨기겠다니.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부터 이 단계를 생각해 낸 거야. 대단하지 않아?”
“어...... 이괄은 어떠냐?”
광해는 말을 돌렸다.
모현성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보고서를 뒤적였다.
“여기 있다. 망하기 직전이야. 자기 자본은 전부 썼고, 지금 북칸자원채권을 발행하고 있어. 개발이 끝나면 자원을 캐낼 권리를 주겠다며 투자자를 모으고 있는데 그래도 안 돼. 지금의 열배가 필요할 텐데 못 버텨.”
“투자자는 전부 망하고?”
“투자니까 실패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들어간 거지. 실패해도 자기 운명인거지. 우린 이괄이 무너진 후 진입해서 이괄이 해놓은 결실에서 이어 진행하면 돼.”
“현성아.”
“이쯤 해야 역사의 복수를 하는 거지. 광해군이 등신이긴 했지만, 본인은 승승장구하면서 출세욕 하나로 쿠데타를 주도하고, 이후 두 번째 난까지 일으켜 결국 청나라에 먹히게 한 죄. 이구만 같은 새끼.”
“모현성.”
광해가 낮게 불렀다.
그제야 모현성이 고개를 들었다.
“어? 왜?”
“악마는 있다.”
“갑자기 뭐?”
“내가 갖고 있는 스킬. 소망집행의 권능. 이 권능을 갖고 있는 마왕이 이계에 침입했을 때 그 세계는 지옥이었다.”
갑자기 이계의 이야기를 하자 모현성이 입을 다물었다.
“마왕의 별명은 고통의 여왕. 인간을 그냥 죽이지 않았어. 수십만 수백만 포로를 잡아서 인간의 한계까지 고문했지. 고문당하고 고문당하길 반복하던 포로는 제발 죽길 바랬겠지. 죽고자 하는 소망이 무르익으면 그 후에 죽였을 거야. 거대한 마력을 고통의 여왕에게 바치고 말이야. 포로의 말로를 알게 된 인간군은 공포에 젖었지. 내가 가진 마왕의 권능이란 그런 거야. 마력을 뽑아내기 위해 고문하는 걸 망설이지 않았어.”
“어...... 갑자기 왜?”
“일본에 식민자본주의... 이괄은 망하게 유도하고... 이집트에서 아편농장을 만들어 유럽을 병들이고...”
“알아 나쁜 짓인 거.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못 이겨. 벨기에 혼자 콩고에서 천만명을 죽였어. 고작 식민지 하나였던 벨기에가 말이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를 합치면......”
“너보다 더한 유럽의 학살이 생기겠지. 안다. 그래도 마에 잡아먹히지 마라. 네가 하는 짓, 이계를 침략한 고통의 여왕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난 소망을 보고 해결할 수 있는 소망을 해결해줘서 마력을 얻는다. 고통의 여왕은 죽도록 고문해서 죽고 싶은 소망을 만든 후 죽였다. 이게 간편하니까. 넌 고통의 여왕처럼 되지 마라.”
“후우......”
“맡긴다고 했으니 막진 않으마. 잘 생각해. 네가 과거로 오길 꿈꿨을 때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생각해. 유럽이 대학살을 벌이고 지구를 망쳤다 해서 그들과 같은 악마가 되고 싶었어? 학살자가 되고 싶어서 과거로 오고 싶었어?”
“아니...... 난......”
“내일 보자.”
광해는 창덕궁을 나섰다.
퇴근하는 이초란, 서칸왕비와 마주쳐 인사를 받고 유리황궁에 갔다.
여전히 아름다운 시녀들, 이젠 후궁격이지만 여전히 소소한 일을 하고 있는 그녀들을 만났다.
젊고.
아름답고.
웃음이 많고, 서로 질투하고 투정도 부리고 욕심도 있지만 착하다.
구김이 없다.
“같이 잘 사람?”
저요저요저요......
에라 모르겠다.
“다 들어와라.”
질펀한 섹스를 하고 싶다.
모현성은 굳이 볼 필요 없는 걸 굳이 찾아서 보다가 구겨져 버렸다.
섹스는 늘 옳고, 오래 살았어도, 많이 했어도 옳다.
사람은 원래 그런 것이니.
“다 같이 목욕부터 할까?”
구김 없는 아이들이 좋다.
내 생에 오늘은 지금뿐이다.
오늘을 더러운 핏물에 쳐박고 싶지 않다.
유럽이 악마였다고 해서 나의 오늘이 악마의 하루가 되면 안 된다.
섹스가 천배 유익하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니까.
“미안......”
모현성은 며칠의 시간을 더 달라고 했다.
광해는 ‘어쩔 수 없이’ 유리황궁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냈다.
마음을 정리한 모현성의 첫마디는 사과였다.
“그래. 생각은 정리됐냐?”
“어. 나까지 악마가 되면 안 돼지. 나중에 내 위인전을 읽고 자랄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놈의 주인공병은 정신병이다.
“그래. 어쩔래?”
“일본은 5년만 더 지속할게. 이건 통과단계야. 바로 다음단계로 갈게.”
“다음단계? 거기서 더 나갈 수가 있어?”
“아이엠에프. 자본으로 주식지배를 해야지. 삼성의 배당 7할을 외국인 투자자가 가져가는 방식으로. 이거면 지금처럼 잔인한 지배는 하지 않아도 돼. 그 나라도 스스로 일할 테고. 형. 이거까지 막지 마. 외국을 칸국과 똑같이 대우하면 우리나라가 잘 살 수 없잖아. 약간의 이득은 봐야지.”
“처음부터 막을 생각 없었다. 네가 악마에게 먹혀 마인이 되지 말라고 하는 소리였어. 그런데 아이엠에프면... 세계은행 말하는 거야?”
“크크크. 세계은행 아니고요. 세계의 부자들의 모임 정도가 맡겠네.”
“그거 구제금융 그거 아니야?”
“예. 전혀 모르는 거 알겠고요. 그러니까 IMF가 뭐냐면......”
광해가 모르는 게 나오자 시무룩했던 모현성의 기가 살았다.
참 단순한 놈이다.
말을 끌며 광해의 눈치를 보는데 광해가 무시하고 술을 마시자 다시 시무룩해진다.
“회사가 부도나면 회사의 채권을 갖고 있는 은행이 나서서 망한 회사를 정리해. 망하고 남은 재산을 채권자가 나눠 갖거나 새로운 주인을 찾아 운영하게 만들지. 국가가 부도나면 일개 은행이 나서기엔 규모가 너무 커. 그때 나서는 것이 IMF야. 즉, 구제금융 같은 멋진 게 아니야. 세계 최대 규모의 사채업자라고 보면 돼. 그리스에 침투해 관광지와 관광공사, 항구 등을 뜯어내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는 게 IMF지. 정 뜯어낼 게 없으면 수술대에 올려 콩팥과 안구, 간을 뜯어내는 잔인한 사채업자가 IMF야.”
“음...... 좋은 일 하는 곳 맞지 않아? 우리나라도 IMF 덕에 살아난 거잖아.”
“살아났지. 대신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천 퍼센트의 이자를 냈고 말이야. 그때 잠깐 돈을 빌리고 이후로 매년 삼성 순이익의 6할을 외국인이 가져가고 있으니 말야. 세계은행에 돈을 넣은 부자들이 가져가고 있어.
그나마 우리는 건실한 기업이라도 있으니 여기서 끝났지. 그리스는 공기업과 항구를 뺏겼어. 관광업으로 먹고 사는 나란데 돈을 빌린 댓가로 국가의 핵심자원을 뜯긴 거지. 그런 것조차 없는 볼리비아는 상수도를 민영화했어. 와나 상수도 민영화라니. 아무리 이권기업이래도 너무한 거 아냐? 결국 나라가 난리가 났지.”
그게 무슨 의민데.
이해하지 못했지만 가만있었다.
괜히 물어보면 모현성은 신이 나서 따따부따한다.
“그래서 삼성 주식 내놓듯 하겠다는 거야?”
“어. 5년 동안 준비해서 현대 한국처럼 바꿀게. 일본에 기업을 만들고, 그 기업들의 지분 일부를 우리가 갖고 있는 걸로 끝낼게. 이러면 지금처럼의 가혹한 통치는 없어질 거야. 물론 정치와 군사는 별개니 해상봉쇄는 이어가야겠지.”
“그게 네가 생각하는 건전한 방법이라는 거야?”
“어...... 어. 동남아와 인도 또한 같은 방법으로 침투할게. 처음엔 프랑스식으로 동남아 추장을 앞잡이 삼아 들어가되 나중엔 주식 배당 형식으로만 받아먹을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중국 자본이나 중동 세력이 침투할 테니까 이 정도로만 영향력 발휘하는 건 봐줘.”
“용서하고 말고 없다니까. 그저 니 양심에 묻는 거야.”
“어! 이게 내 심리적 한계선이야.”
“그래.”
모현성이 꿈꾼 식민자본주의의 최종 형태.
그건 현대한국이 모델인 듯하다.
적당히 잘살고 적당히 뺏기는 현대 한국.
보고 공부한 게 현대 한국이니 상상력의 한계는 어쩔 수 없겠지.
“이괄은? 그냥 둘 거냐?”
“불러다 조치할게. 그간 맘고생 했으니 그간 진척된 일을 봐서 지분을 주고 먹고 살 길은 열어 주려고.”
“그래라. 어쩔 수 없는 전쟁은 몰라도 고의로 괴롭히거나 작은 이익을 위해 사람을 죽이지는 마라. 네 마음에 구김이 생기면 결국 넌 현대의 너도, 꿈꿔왔던 회귀자도 아닌 악마가 될 뿐이야.”
“알았어. 하지만 유럽과 중국의 공산주의는 막을 수 없어. 이미 퍼트렸으니 그건 스스로 수레바퀴가 되어 굴러갈 거야. 그렇다고 공산주의가 아니면 중국과 유럽이 강국이 되는 걸 막을 수도 없고.”
“그래. 어쩔 수 없다면 놔둬야지. 결론은 그렇게 낸 거지?”
“어. 걱정시켜서 미안.”
“됐다. 술이나 마시자.”
한성에 며칠 더 머물렀다.
모현성은 허균과 핵심 인사들을 불러 자신의 뜻과 나아갈 방향을 잡아줬다.
큰 방향만 잡으면 밑의 신하들이 제대로 처리해준다.
물론 광해는 놀았다.
동칸 개척은 놀랍도록 순조로웠다.
캘리포니아 정착지는 남쪽으로 계속 확장했고, 해안 도시와 평야 경작지가 철로를 따라가며 조성되었다.
캘리포니아 지역, 첫발권역의 인구는 이백만까지 늘었고 전부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고원에 도달한 철로를 따라가며 정착지와 경작지가 만들어진다.
고원의 초원은 농경이 힘들지만, 대관령과 비슷한 기후를 이용한 양떼 목장이 가능하다.
광해 축산이 진입했고, 윤선도가 삼만 명의 일꾼을 이끌고 왔다.
그중 이만명은 새로 편입된 몽골인이다.
양치기의 프로, 몽골인들과 함께 고원 지역에 거대한 목책을 둘러 양을 키우고 소를 키운다.
최명길의 통치는 안정적이고,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
인디언들의 반발은 끊이지 않지만, 조직적인 대규모 반란은 없다.
그들도 칸국이 많이 배려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평등하게 대하는 것.
당연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을 해내고 있다.
불순분자의 불만이나 전염병에 대한 원망으로 소규모 반란이 일어나지만, 오히려 주변 동칸 원주민에 의해 막히고 있다.
인디언, 동칸 원주민은 사람이고, 칸국의 배려를 분명히 이해해주고 있다.
동칸을 돌아보고 심각하게 퍼지는 전염병을 잡은 후 지브롤터로 돌아왔다.
이런 세계 여행도 괜찮군.
칭기즈칸은 적절한 이동수단이 없었으니 몽골에만 머물렀지만, 광해에겐 이동수단이 있다.
지구 단위의 개척지를 둘러보는 건 나름 보람도 있고 즐겁다.
“뭐라고?”
“임경업이 대칸을 모시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대칸께서 지시하셨다고......”
간삼이 기이한 보고를 올렸다.
“내가 지시했다고?”
알아서 따라오든가, 이렇게 말했던가.
“어떻게?”
“광해함과 놀고 있는 판옥선 다섯척을 끌고 갔습니다. 마침 고국으로 돌아가고픈 향수병에 걸린 병사들이 치열하게 자원했습니다. 그들을 모으고 대칸의 명령이라며 출항하니 막을 수 없었습니다.”
“어디로 갔대?”
“...... 서쪽으로 갔으나 정확히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보급 계획은?”
“...... 없는 것 같습니다.”
판옥선을 끌고 대서양을 건너겠다고?
보급계획도 없이?
옆에서 모현성이 웃었다.
“진짜 노저어서 지구 한 바퀴 돌겠네. 형 마킹해둔 거 있어?”
“임경업에? 없지.”
“그럼 방법이 없네. 대서양을 건너는 우리 함선에 발견 시 구조하라는 공지는 내려둘게. 아니면 형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대서양 어딘가의 판옥선을 찾을래?”
“되겠냐?”
“쯧. 그놈의 중2병은 진짜네. 진짜야.”
“됐어. 사소한 건 잊자.”
죽으면 제 운명인거지.
사소한 임경업은 잊혀졌다.
- 작가의말
모현성의 말은 지극히 국수주의적이고 편협한 음모론적 의견입니다
실제로는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이유가 있으나 다 적을 능력이 안 되어 짧게 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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