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에도성 전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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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보면 광해인 걸 알 수 있는 은빛으로 빛나는 전신 철갑옷을 입은 사내.
사내는 뱃전에 앉아 앞에 거대한 총을 들고 있었다.
총구가 번쩍인다.
퍼엉!
번쩍.
퍼엉!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날아간다.
반짝일 때마다 적장수와 부하들의 머리가 터진다.
“광해님께서 지켜주신다! 광해님께서 적장을 죽여주신다!”
우진춘의 고함에 병사들이 따라 소리 질렀다.
광해의 힘인지 몰라도 달려오던 적장의 머리가 터지는 건 다 같이 봤다.
“우와아아아아! 주상전하 천세! 천세!”
“버텨라. 막아라. 찔러라!”
조선군의 사기가 올라가는 것과 반대로 일본군의 사기는 한순간 떨어졌다.
함께 달리던 장수의 머리통이 사라졌다.
대포에 맞은 것도 아니다.
그냥 터져버렸다.
일부는 그냥 달려들었고, 일부는 발을 멈췄다.
일부는 자기 말이 어디 있나 돌아봤다.
“당장 싸워! 돌격해! 죽을래?”
펑!
뒤에서 돌격하라 소리 지르는 독전관의 머리가 터졌다.
그냥.
아무이유 없이.
“으어어.”
“나... 나 돌아갈래.”
누군가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군중심리란 무서운 것이다.
나름 정예인 기마병에서 탈주자가 나왔다.
한명이 도망가기 시작하자 둑이 터지듯 다 같이 도주를 결정했다.
불쌍한 것은 용감한 자.
물러서지 않고 용감히 국가가 시키는 대로 하면 먼저 죽는다.
조총과 화살의 지원도 없이 밀집창병에 돌격한 죄는 컸다.
끝까지 두려움을 참고 돌격한 천여 명은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5천 병력이 선두에서 버티는 사이 상륙한 부대가 늘어났다.
5천명 추가.
5천명 추가.
혼돈의 부대를 통제하며 어떻게든 밀어 넣으려던 에도군은 상륙한 부대가 2만을 넘어가자 포기하고 후퇴를 결정했다.
3만 명 중 사망자 1300여명.
하지만 탈영병이 1만 명을 넘어선다.
에도군은 저 멀리서 조선군이 버려진 군마를 잡으러 뛰어다니는 것을 안타깝게 보며 성으로 후퇴했다.
조선군은 에도 평야에 정렬한 후 반나절 거리의 에도성으로 진군했다.
이가에 운집한 병력이 동쪽으로 온다면 사나흘의 시간이 있다.
그들이 오기 전에 전투를 끝내야 한다.
그렇다고 병사들을 달려가라 지시할 순 없다.
대열을 맞추고 걸어가는 게 가장 빠르다.
에도성에서 일정 거리 떨어져 전 병력이 도열했다.
“돌격대형으로.”
“돌격대형을 갖춰라.”
선두에서 광해가 성문을 부수고 뒤이어 병사들이 돌입한다.
지금껏 행해온 필승 전략.
이게 피해가 가장 적다.
“전하! 주상전하.”
바다 쪽에서 파발마가 달려왔다.
“이가군이 서진했습니다. 오사카 공격에 참여한 이가군이 8만명입니다.”
좋은 소식이다.
그들이 서쪽으로 갔다면 당분간 에도로 올 대병력은 없다.
피해를 무릎 쓰고 급히 서두를 이유는 없다.
광해가 몸을 돌리다가 바로 뒤에 서 있는 입부를 봤다.
“입부. 네가 지휘관이라면 어찌할텐가.”
“조선군의 전력이 더욱 강합니다. 돌격해서 끝낼 수 있습니다.”
해사에서 속성교육을 받았지만 여전하군.
“아군의 피해가 클 텐데.”
“하오나 충심으로 싸운다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충심과 용맹. 이게 문제다.
“에휴. 개떡아.”
“예. 광해님. 지공으로 바꾸겠습니다.”
“그래.”
광해는 창을 아공간에 넣고 돌아섰다.
부대는 땅을 파 적의 기습을 막고, 숙영지를 준비했다.
항왜들은 에도성 주위를 돌며 일본인에게 소리쳤다.
“내일부터 성을 포위할 것이다. 내일까지 성에 남아있는 이는 모두 죽일 것이다.”
“히로시마, 아카야마의 모든 생명이 죽었다. 반면 성문을 연 슨푸에선 한명도 죽지 않았다. 내일까지 성문을 열어라.”
“아이와 여자를 내보내라. 내일까지 성에 남아 있으면 모두 죽는다.”
그리고 말을 타고 뛰어다니며 에도평야 전체에 소식을 전했다.
“내일부터 평야 전체에 불을 지를 것이다. 마주치는 모든 이를 남녀노소 구분 없이 죽일 것이며 항복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늘 안에 모두 도망가라.”
쇼군이 다스리기에 일본에서 가장 안전했던 땅.
헌데 지켜줘야 할 쇼군의 부대는 성안에 틀어박혔고, 그 두 배가 넘는 조선군이 성 앞에 진치고 있다.
전날 갑자기 장정들을 다 소집했기에 마을 단위의 방어도 어렵다.
난데없이 피난 행렬이 생겨났다.
섬에서 쫓겨 와 천막생활을 하던 난민부터 그들을 차별하던 마을 주민까지 모두가 도망자가 되었다.
피난권고를 잘못 들었는지 성내로 달려가는 이가 태반이고 일부는 가재도구를 챙겨들고 산으로 달렸다.
광해는 지휘부 막사에 앉아 술을 마시며 지켜봤다.
개떡이는 최대한 희생을 줄일 생각이다.
그게 옳다.
에도성과 주변 인구는 추정 30만 명 이상.
다 죽이긴 힘들다.
이리저리 고민하는데 손님이 찾아왔다.
“사명대사. 일본에 있었나? 아니 억류되어 있었나?”
다시 만난 유정은 전보다 말라있었다.
“허허허. 무탈하셔서 다행입니다. 조선의 흥복입니다.”
“됐고. 우리 진영에 남아. 갈 때 같이 조선에 갑세.”
“어디 있든 부처를 품고 있으면 그곳이 고향이지요. 소신은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종교인은 이래서 싫어.
뭔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다.
“이에야스가 보냈나.”
“그렇습니다. 어찌하면 군을 물릴 수 있을 지 묻는군요.”
“전에 말한 조건 그대로. 추가로 에도성과 평야를 불태우기로 했으니 오늘 내로 물러나라고 해.”
“그리 전하겠습니다.”
“받아들일 것 같나?”
“불가능하겠죠. 싸우다가 도주할 겁니다.”
“그렇겠지. 쯧쯧. 자기가 죽지만 않는다면 수만 명을 희생시키더라도 자기 이득을 챙기는 게 권력자의 속성이니까.”
유정은 광해의 중얼거림에서 현기를 느꼈다.
단순히 조선의 세자였다가 우연히 신의 능력을 얻은 게 아니었나.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렇지. 한 잔 할 텐가?”
“네. 주시지요.”
웬일로 유정이 손을 내밀었다.
광해는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깨달음을 얻었나보군.”
“물이라 생각하고 마시면 물이 되겠죠. 취하면 안 된다는 마음조차 버리면 취해도 문제될 게 뭐 있겠습니까.”
시원하게 한잔 들이킨 유정은 대례를 올리고 진영을 빠져나갔다.
학살을 막는다 - 910557
유정에게 새로운 소망이 생겨나 있다.
광해는 그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죽음을 각오했군.”
“예? 무슨 말씀입니까?”
임경업이 감히 되물었다.
“저 스님 말이야. 에도성에서 죽을 생각이야. 학살을 막을 수 없겠지만,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생각이구나.”
“조선의 승려가 어째서 왜구를 위해 죽으려 하는 겁니까. 저래서 불교는......”
“부모도 버렸는데 국가가 무슨 의미 겠느냐. 부처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구제해야할 백성이겠지. 경업아 한잔해라. 개떡이도.”
씁쓸한 저녁 해가 붉게 내렸다.
쾅. 콰콰쾅.
광해함에서 대포 50문을 해체해 가져왔다.
애초에 이걸 염두에 두고 탈부착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에도성 남문 500보 거리에 50문을 나열하고 무한 포격했다.
살상거리 1000보에 최대 사거리는 1300보까지 나간다.
150mm 쇠구슬이 성내 건물들을 박살냈다.
피해는 얼마 되지 않는다.
다만 방비할 수 없는 공격을 무한정 맞는 것은 인간의 공포심을 끌어올린다.
포수만 바쁘게 대포를 쏠 뿐 다른 공격은 하지 않았다.
창병들이 포병 주위에 대놓고 함정을 파며 혹시 모를 적의 돌격을 막을 따름이다.
주공은 다른 곳에서 이어졌다.
“강간해도 좋고, 마음대로 죽여도 좋다. 단, 무조건 전부 죽여야 한다. 한살배기 아기도, 90살 노인도 죽여야 한다.”
약탈부대 3만 명을 사방으로 풀었다.
일본에 깊은 원한을 가진 이들.
그들이 가진 한을 풀어줘야 한다.
천인대별로 갈라진 30개 부대가 에도 평야를 휩쓸었다.
전날 항왜들에게 경고를 받긴 했지만, 떠나지 않은 이들이 많았다.
설마 양민을 죽일까 싶어 남은 이.
혹은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치는 게 불가능한 이.
애기를 갓 낳은 산모가 강간당한 후 창에 찔린다.
애기도 죽는다.
두 다리 없는 전쟁용사가 죽는다.
앞 못 보는 할머니가 죽는다.
마을 청년 열이나 스물씩 기습해 약탈에 정신이 팔린 조선군 일부를 찌르고 전멸한다.
약탈부대는 마을을 침묵시키고, 재물을 꺼내 모은 후 집집마다 불을 질렀다.
지하에 꽁꽁 숨어있던 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타죽는다.
“시벌! 이건 아니야!”
우진춘이 소리 질렀다.
천인장의 분노에 밑에 병사들이 움찔해 눈치를 본다.
그들도 슬슬 약탈과 살인에 지쳐가고 있었다.
병사들의 머뭇거림을 본 개떡이가 우진춘에게 다가와서 어깨를 주물렀다.
“진정해라.”
“장군님. 장군님이 주상께 말씀해 주십시오. 저항 할 수 없는 민간인을 죽이는 게 얼마나 역겨운지 보이지 않습니까.”
“알았다. 말씀 드릴 테니까 우선해라. 지시한 바는 그대로 이행해야 한다. 중지명령이 내려올 테니까 그때 멈추고.”
“...... 예.”
약탈의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마을마다 비명이 흐르고 나면 가을걷이한 곡식과 재물을 꺼내 후방으로 옮긴다.
그 후 불을 지르고 천천히 전진한다.
복수심에 미쳐있던 병사들도 점차 눈이 맑아졌다.
더 이상 도망가는 양민을 추격하지 않는다.
끝까지 마을에 남아있는 노인 몇을 죽일 뿐이다.
“주상전하. 황공하오나 간청할게 있습니다.”
개떡이가 예를 올렸다.
술을 마시던 광해가 물었다.
“좆같지?”
“예.”
“전쟁은 아름답지 않아. 어떻게 포장해도 예쁜 전쟁이란 없어. 하지만 어쩌겠냐. 이게 전쟁을 가장 빨리 끝낼 방법인데. 이래야 우리의 희생도 줄고 적의 희생도 줄어든다.”
“알고 있사옵니다.”
“안하면 모를까 말을 꺼냈으면 해야 한다. 아기부터 노인까지 전부 죽여야 한다. 하다가 중지곳 하면 우리가 원망 받는다. 꺼낸 말은 끝까지 책임져야 적이 와해되고 원망의 화살이 적의 수장에게 돌려진다.”
광해는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술을 한사발 따라 개떡이에게 넘겨줬다.
개떡이는 조용히 사발을 받아 쭉 들이켰다.
광해는 개떡이의 표정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같은 용무로 방문한 김충선이 있었다.
김충선. 38세.
오다 가문의 가신이었던 김충선의 가문은 도요토미가의 견제를 받았고, 임진왜란 당시 살기위해 가문 전체를 이끌고 투항해왔다.
일본에서 숨 쉴 수 없어서 조선에 와서 싸웠건만 조선에서의 삶도 숨이 막힌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활약해도 첩자라는 의심은 떨어지지 않았고 15년간 모진 차별과 핍박에 시달렸다.
“김충선. 조선의 총군사가 왜인 학살을 반대하는군. 어찌 생각하나?”
“고맙게 생각합니다. 소신도 똑같이 생각하는 바입니다.”
“고맙게라... 김충선. 너희 항왜가 왜 전장에 불려왔는지 아느냐?”
“활약할 기회를 주려 배려하심으로 압니다.”
“아니야. 너흰 이제 야마토의 심장, 에도를 공격했어. 민간인을 학살했고, 쇼군의 성을 무너뜨릴 거야.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
“자...... 잘 모르겠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거지. 만약 개떡이가 왜에 항복하면 크게 환영받겠지만, 너희는 괘씸죄까지 겹쳐 찢겨죽을걸. 이제 너희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사다리를 내가 걷어차 없앴다는 뜻이야.”
광해의 가벼운 말에 김충선이 눈을 부릅떴다.
십오 년간 겪어온 서러움이 솟구쳐 오른다.
입을 열어 불덩어리를 쏟아내려 할 때 광해가 손을 들어 막았다.
“그러니 내 백성이 되어라.”
“...... 예?”
“개떡이가 학살을 막으려하니 고맙게 생각한다? 아니야. 옳게 생각한다고 해야지. 아직 고향을 버리지 못했구나.”
광해의 설명에 김충선이 고개를 숙였다.
“송구하옵니다. 말실수 했습니다.”
“많은 차별을 받았고, 사건이 날 때마다 첩자라고 들먹이는 꼴에 괴로웠을 게다. 하지만 다 그래왔다. 노비라 차별받고, 백정이라 차별받고, 서자, 서얼이라 차별받고 심지어 돌아온 환향녀도 차별받았다. 조선은 최상위 귀족 성리학자를 제외한 모두가 차별받던 세상이었다. 너희만 그랬던 게 아니지. 그런 세상이 이제 바뀐다.”
광해는 술병을 들어 잔을 채웠다.
앞에 있는 김충선에게 따라주고, 겸사겸사 개떡이도 따라줬다.
“너희를 받아들였듯이 지금 북방에서 야인여진을 받고 있다. 신의 말씀을 이해한 자는 누구라도 받을 것이며 앞으로 백천 민족이 합류할 것이다. 그들 모두에 대한 차별이 없어질 것이다. 이건 신의 뜻이다. 믿어라. 조선족과 아무 차이도 못 느끼게 만들어주마. 약속한다. 그러니 내 백성이 되어라.”
차별이 없어진다.
그간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차별이.
김충선의 굳은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남자의 눈물은 별론데.
- 작가의말
나치의 학살 초기 수많은 병사들이 후유증으로 미쳐버리거나 정신병으로 전역했습니다
이에 지휘부는 병사 손실을 줄이기 위해 질식열차나 가스실 등 다양한 시도를...
왕의 명령에 반기를 드는게 개연성 없을까봐 변명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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