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씨뿌리기2
순도 100% 픽션입니다
포로를 해방한 후 윤성준은 소수의 호위병력과 함께 오사카성으로 들어갔다.
조선군이 재차 나타나자 부랴부랴 병사를 모으던 오사카번은 곧장 사신을 받아들였다.
<모든 포로를 해방했다.
포로를 받은 각 영지의 영주는 포로 한명 당 몸값으로 쌀 열석을 지불하라.
또한 조선인 포로와 문화재를 최대한 구해 반납하라.
모든 몸값은 명년 이맘때까지 오사카 해안에서 받겠다.
쇼군이라 자칭하는 자가 내게 보낸 서신을 보아하니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헐뜯는 것이 신용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여겨진다.
듣기로 왜국의 직위는 일왕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은 도요토미 히데요리라고 들었다.
그러니 그대를 믿고 이 과정을 맡기도록 하겠다.
2년 5월 19일 조선국 국왕 광해>
서신을 읽은 히데요리는 기분이 좋아져서 코평수가 넓어졌다.
하지만 가신들에게 서신을 공개하자 그의 생각과 다른 말이 나왔다.
“독약입니다. 만지기만 해도 중독될 겁니다.”
“아주 단순한 이간책입니다. 쇼군과의 사이를 벌리려는 책략입니다.”
“고민해보겠다는 말로 억류해두고 쇼군에게 연락해서 함께 처리해야 합니다.”
15살치고는 매우 덩치가 큰 히데요리는 기분이 나빠져 벌떡 일어나 소리치려는데 곁에 있던 오노 하루나가가 말리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쇼군이 보낸 서신이라는 게 궁금하군. 내용을 알 수 있겠는가?”
어린 히데요리 대신 실질적으로 가문을 다스리는 오노 하루나가의 말에 윤성준은 품에서 서신을 꺼냈다.
도쿠가와가 사명당을 통해 건네준 서신은 윤성준이 가지고 있었다.
가신 전원이 서신을 보았고 크게 분노했다.
임진왜란의 모든 책임이 자신들의 전 주군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이고, 도쿠가와를 비롯한 모든 대신들이 반대했다니.
적국의 왕에게 도요토미 가를 깎아내리는 내용 아닌가.
히데요리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언제까지 참아야합니다. 나도 이제 성인식을 치렀고, 키도 똥싼너구리보다 큽니다. 관직도 태백으로 쇼군보다 높습니다. 정월에 교토에 와 인사를 올리는 다이묘도 에도 못지않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 겁니까?”
히데요리의 분노에도 가신들은 여전히 신중했다.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
“적어도 적국의 의도대로 해선 안 됩니다. 포로의 협상은 쇼군에게 넘기시죠.”
그때 침묵하던 오노 하루나가가 입을 열었다.
“대륙 침공은 모든 다이묘의 뜻이었소. 모두 동의하지요?”
“그 그렇지요.”
여기에다 감히 사실을 말할 참모는 없다.
히데요시의 고집이었다고 말했다가는 당장 경을 칠 것이다.
“조선의 왕은 우리에게 호의를 보이는 것 같소. 호의까지는 아니어도 우리보단 에도 가를 싫어하는 것 같소. 그렇다면 우리가 굳이 거부할 이유가 있겠소? 이건 우리에게 좋은 제안이오. 조선의 수군은 강하지만, 육군은 형편없소. 그에 반해 우리 야마토는 육군이 강하오. 약한 조선이 에도번을 귀찮게 해 준다면 도쿠가와가 화내는 것보다 이득이 클 것이오. 나쁠 게 뭐 있겠소.”
오노 하루나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가신들의 뜻이 모이자 오노 하루나가는 윤성준에게 말했다.
“각 영주가 포로의 몸값을 오사카로 가져오면 보호하다가 조선에 넘겨주도록 하지. 조선의 뜻은 이것으로 끝인가?”
“요구는 끝이오. 다음으로 제안을 하나 하고 싶소.”
“제안?”
“오사카에 상점을 열고 싶소. 조선의 산물을 팔고, 야마토의 산물을 살 수 있는 상점을.”
섬으로 고립되어 있는 일본에게 타국과의 교역은 매우 중요하다.
도쿠가와는 이를 잘 알기에 수년 전부터 조선과 화친하고 교역을 재개하길 바랬다.
조선이 거부하자 사쓰마번에 유구국 정복을 명해 유구국을 통한 명나라와 삼각 교역을 열려고 시도했다.
그 모든 시도가 무산된 상황.
조선에서 오히려 먼저 상점을 열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게다가 협상 상대는 에도 번이 아닌 오사카 번이다.
도쿠가와의 힘이 날로 강해지고 도요토미 가의 힘이 무너지는 상황에 이는 황금 동앗줄이다.
잡아야 한다.
“좋다. 무엇을 도와주어야 하느냐.”
불과 보름 전 오사카 앞바다에서 이만여명이 수장되었지만, 곧장 협상이 진행 된다.
이것이 정치다.
오노 하루나가와 윤성준은 긴 협상을 시작했다.
함대는 오사카에서 흩어졌다.
두 달간의 원정으로 일본수군의 70%가 소멸되었다.
이제 판옥선 50척씩 움직여도 일본 수군은 절대 부딪치지 못한다.
해안을 빼앗겼으니 강에서 열심히 배를 만들겠지만 조선군과 부딪칠 전력을 구축하기까지 최소 몇 년은 걸릴 것이다.
조선군은 함대를 판옥선 50척씩 나뉘어 일본 해안을 돌며 모든 선박을 나포하고 항구시설을 파괴한다.
길고 긴 해상봉쇄가 시작되었다.
큰 전투는 끝났으니 광해가 참여할 필요는 없다.
광해는 모현성과 함께 대마도로 복귀했다.
오사카를 떠나며 모현성에게 물었다.
“좀 이상한데.”
“뭐가?”
“전에는 몰랐으니 그냥 넘어갔는데 조선을 침공한 게 도요토미라며. 도쿠가와는 전쟁을 반대했고, 권력을 잡은 후 조선에 꾸준히 사신을 보내 화친을 요구했다며. 그런데 왜 도요토미랑 손을 잡지? 도쿠가와랑 손 잡는 게 순리에 맞는 거 아니야?”
“에휴. 그게 무슨 상관이야. 지금 도쿠가와는 뜨는 태양이고, 도요토미는 몰락하는 중이잖아. 그러니 도요토미와 손을 잡아야지.”
“그런건가.”
“그런거지. 만약 일본과 화친하려면 도쿠가와의 손을 잡아야겠지만, 일본을 점령하려면 도요토미의 손을 잡아야지. 원 역사라면 5년 후 오사카 전투가 벌어지는데 그때 에도군이 이십만, 오사카 군이 십만 모여. 즉, 몰락을 거듭한 오사카 군이라도 10만 명을 모을 수 있다는 뜻이야. 우리가 살짝만 부추겨주면 50대50이 되겠지.”
“서로 꼬라박게 하겠다고?”
“그거지. 서로 전군을 모아 피터지게 싸우고 우린 무혈입성하는 거야.”
모현성이 사악하게 웃었다.
이것이 모현성의 5년 대계다.
일본 수군은 없애야 하니 싸우되 오사카 번과 손을 잡기 위해 되도록 상처 없이 끝내려 했으나 입부가 해안 포격을 해서 틀어질 뻔 했던 5년 대계.
다행히 오사카번의 욕심이 원한을 눌러 잘 마무리 되었다.
“뭐 나쁘지 않네. 정치란 게 그런 거니까.”
광해도 딱히 막지 않았다.
함선은 대마도에 들렀다.
광해는 오랜만에 여자를 안았다.
“소 유키.”
“예. 전하.”
“광해님이라 부르래도.”
“예. 쾅핸님.”
“잘 지냈느냐.”
“예.”
“자자.”
“예.”
소 유키는 소 요시토시의 양녀다.
일전에 사건이 벌어지자마자 양녀로 들이고 소라는 성을 줬겠지.
광해는 사소한건 신경 쓰지 않는다.
소 유키의 소망은 어머니를 치료하는 것.
다음날 방문했더니 간암이었다.
현대의학으로도 고치기 힘든 병. 하지만 광해는 간단히 고쳐줬다.
그날부터 소 유키는 열과 성을 다해 광해를 모셨다.
미녀의 눈코입. 예쁜 얼굴. 살짝 올라간 눈 꼬리 때문에 도도해 보이는 인상.
오랜만에 만난 소 유키는 전보다 예뻐졌다.
몇 달 간 배 위에서 생활하며 여자를 만나지 못해 그렇게 느끼는 거겠지.
군 생활을 하면 반드시 모든 여자가 예뻐 보인다.
예쁜데 몸매도 좋다.
평균보다 큰 키, 평균보다 긴 다리, 평균보다 작은 얼굴, 평균보다 좁은 어깨, 평균보다 넓은 골반, 평균보다 좁은 허리, 평균보다 큰 가슴, 평균보다 작은 유륜.
평균에서 전부 살짝살짝 어긋나 있으니 비정상이겠지만 그 어긋난 조합이 남자가 좋아하는 방향에 맞추고 있다.
축복 받은 몸.
잠자리도 마음에 든다.
광해에게 마음을 열고나선 평생 살아온 것처럼 감사히 모신다.
안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여자는 느낌이 오면 보통 인상을 쓰게 된다.
그런데 그 표정마저 예쁘다. 눈이 반달처럼 휘어져 기뻐하는 듯하다.
신음할 때 목소리 또한 광해를 살살 녹인다.
경험이 많아서 어떻게 해야 남자가 기뻐하는 지 안다.
국가를 위험에 빠트릴 인재다.
긴긴 밤을 지새우고 복귀준비를 했다.
“소유키 함께 가자꾸나. 네 가족도 챙겨라.”
“감사합니다. 쾅해님.”
소유키도 자신이 어떤 행운을 잡았는지 안다.
평범한 시녀 출신이 상상할 수도 없는 행운.
열과 성을 다해 광해를 녹이고자 노력했다.
한산도는 예전부터 조선 수군의 중심지였다.
판옥선을 건조하는 조선소가 여럿 있고, 수군 물자를 생산 보관하는 창고와 철방이 여럿 있다.
일본원정에 소모되는 물자를 쌓아두었던 창고 두개가 비었다.
한 달 전 오사카 해전 이후 서신을 보내 미리 준비하게 했더니 광해가 도착하자 준비가 끝났다.
팔백여명의 무관.
육군 지휘관의 절반과 수군 지휘관의 절반이다.
병종에 따라 나눠 도열한 무관들 앞에 광해가 섰다.
“너희는 앞으로 전문적으로 나라를 지킬 군사전문가가 된다. 각각 육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의 1기 생도가 되며, 너희 이후로 2기 3기 등이 배출될 것이다. 향후 조선은 수군을 이끌던 장수가 육군 지휘관이 되거나 육군 지휘관이 수군 장수가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수전에 대해 쥐뿔도 모르던 원균 같은 놈이 경상우수사가 되는 비극이 없을 거란 뜻이지. 각자 전문적 지식을 배우고 절차탁마하여 각 분야의 최고가 되도록 하라.”
“예! 전하.”
간단한 연설을 한 광해가 돌아섰다.
단상에 오른 모현성이 신이 나서 열심히 연설했다.
역시 나대는 거 좋아하는 관종.
행사를 끝낸 광해가 모현성에게 물었다.
“한성엔 언제 오냐?”
“한 달. 한 달이면 충분해.”
1기에게 주어진 시간은 석 달.
하지만 모현성은 한 달 후 한성에 오겠다고 했다.
기간이 줄어들 수 있는 이유는.
“한 달이면 최명길이 전부 이해할 수 있어. 이해하지 못해도 완벽히 외울 수 있겠지. 교본을 가르치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야.”
최명길이 왔다.
무산에서 예서에게 인수인계를 하던 최명길은 한성에 복귀하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한산도로 불려왔다.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게 소망이니 나쁘지 않은 일이려나.
“오랜만이다. 최명길이.”
“무강하셨습니까. 광해님.”
공손히 인사 올리는 최명길.
신하는 광해를 주상 전하라 부른다.
심복은 광해를 광해님이라 부른다.
광해의 마음을 아는 자가 아니면 주상이란 말을 쉽게 떼지 못한다.
“무산은 좀 어때.”
“인수인계를 하며 진행하던 과업도 차질 없었습니다. 감자농사도 시작되었고, 복속하는 여진족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습니다.”
“예서는?”
“현명합니다. 인수인계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금방 이해해서 두 달 만에 끝냈습니다. 사업이 진행되는데 무탈할 것입니다.”
최명길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스물두 살밖에 안 되었지만 신뢰가 간다.
단순히 똑똑한 인재가 아니다.
똑똑한데 노력하고 충성심도 깊다.
“너도 교관들 교육이 끝나면 빨리 상경하도록 하거라.”
“예. 전하. 맡겨 주십시오.”
광해는 모현성과도 작별해 배를 탔다.
게이트 마법으로 이동해도 되지만 급한 일은 없다.
한산도에서 진주로 이동한 후 상경하는 경로는 전부 정해졌다.
상경하면서 매일 종교집회를 열기로 했다.
광해의 기적을 못 본 지방 백성들에게 기적을 보여줘야지.
“와아아! 주상전하 천세!”
“주상전하 천세!”
진주의 백성들이 전부 모여들었다.
남이홍이 지휘하는 수송함대를 이끌고 온 광해는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경상도 해안인근 도시 중 가장 큰 진주는 임진왜란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후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키웠다.
성을 크고 단단하게 보수하고 백성들에게 땅을 나눠줘 살게 했다.
덕분에 6만에 가까운 인구가 모여 살게 되었다.
국왕이 이런 시골까지 내려올 일이 어디 있겠는가.
진주에 공식방문한 조선 국왕은 광해가 최초다.
게다가 환영받는 이유가 더 있다.
수천척의 함대가 해안에 멈춰 서고는 사람을 끝없이 쏟아냈다.
쏟아지는 사람 중엔 반가운 얼굴도 있었다.
“김서방!”
“꺄아악 향숙아아아아~”
일본에 끌려간 포로 대부분은 일본과 가까운 경상도 출신이다.
특히 2차 진주성 혈전으로 거의 모든 진주 출신 백성이 죽거나 끌려갔다.
그들 중 일부가 돌아온 것이다.
곳곳에서 감격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왜구를 때려잡으시는
광해님께 소망하세요~
탐관오리로부터 지켜주는
광해님께 소망하세요~
자연스럽게 노래가 흘러나왔다.
축제다.
시키지도 않은 노래가 끊어지지 않았고, 곳곳에서 이산가족이 다시 만나 눈물바다를 이뤘다.
서둘러 음식을 만들어 꺼내고 뿌리며 먹고 마시는 축제의 장이 되었다.
축제는 자연스레 종교활동으로 이뤄졌다.
진주엔 자주 오지 못한다.
이곳에도 씨를 뿌려야 한다.
팔 다리 잃은 이를 치료해주고, 병든 자를 고쳐주고, ‘광해님의 은혜’ 페니실린을 뿌렸다.
축제 겸 기적의 장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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