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독안에 든 쥐
순도 100% 픽션입니다
“이 집은 우리가 쓰겠다. 썩 꺼져라.”
“안 됩니다. 어느 곳으로 가리오. 이 엄동설한에. 아아악.”
아전이 백성의 집을 뺏는다.
“이 집은 내가 쓰겠다.”
“예. 그러하십시오.”
양반이 그 아전의 집을 뺏는다.
그 아전은 다른 백성의 집을 뺏는다.
한성으로 올라온 팔만명이 일제히 집을 뺏는다.
이미 한성은 난리가 났다.
“이 땅은 내 가문의 땅이었다. 네놈들이 내 사촌을 죽이고 차지했구나.”
“아닙니다. 관으로부터 받은 땅입니다.”
“닥쳐라. 원수를 갚겠다.”
“아아악.”
“내 부모를 능지해 죽인 놈들. 복수하겠다.”
“우린 아닙니다. 그놈들은 진작에 도망갔습니다. 아아악.”
홍여순의 난 때 피해를 입은 가문이 미쳐 날뛴다.
복수할 상대가 없으면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복수한다.
보도연맹 대학살 당시 30만 명이 죽을 때 대부분은 실적을 채우기 위해 죄가 만들어져 죽었다.
많이 죽여야 개인의 실적이 올라가고 윗사람으로부터 칭찬받으니.
가문의 복수도 똑같다.
가문 사람들에게 복수 제대로 했다는 칭찬을 듣고 싶어서 사람을 마구 죽인다.
많이 죽일수록 칭찬받는다면 많이 죽이는 사람이 존재한다.
인간의 잔인함은 끝이 없으니.
눈을 질끈 감는 이원익 곁을 한 떼의 아전이 지나간다.
“오산을 받았는감?”
“그렇지. 대신 백미 만석을 바치기로 했네.”
“백미 만석? 하이구야. 비싸네.”
“오년 바싹 벌면 만석 채울 수 있을 걸세. 그 후부턴 전부 내거지.”
“나는 강화로 갈 것 같은데. 내가 모시던 나리께서 좋은 자리를 얻지 못해서 나까지 딸려가게 생겼네.”
“저런. 안 됐군.”
누가 봐도 죄지은 자들이 지방으로 흩어진다.
그들은 전처럼, 아니 전보다 가혹하게 수탈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수탈한 재산은 그 뒤에 있는 양반에게 갈 것이고.
이원익은 토기가 올라와 주저앉았다.
“우웩. 우웨에엑.”
이항복은 조용히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한참 만에 진정한 이원익이 입가를 문지르며 말했다.
“나는 장님이었네.”
“대감만 그런 게 아니었지요.”
“선왕시절 영의정을 세 번했네. 난 그게 자랑스러웠지. 모나지 않고 그른 일은 전혀 하지 않고. 그게 내 자랑이었건만. 그때도 이랬겠지.”
“그랬고, 점점 심해졌겠죠. 주상이 아니었다면 앞으로 더 심해졌을 테고.”
“한나라가. 당나라가 어찌 망했는가.”
“내부 부패로 조각났죠. 지금 명국이 딱 그 직전입니다.”
이항복의 즉답에 이원익이 한참 말을 못 이었다.
“내가...... 내가 나라를 망치고 있었네.”
“우리 모두 그랬습죠. 됐습니다. 술 한 잔 하러 가시죠.”
“술? 주상의 명을 아직 못 끝냈네.”
“주상은 이런 걸로 화 안냅니다. 눈뜨라고 보냈으니 눈떴으면 됐죠.”
“허허허허. 자네.”
“나가서 멀리 조선을 보려니 눈을 크게 떠야 하더군요. 하하하. 갑시다. 영상. 눈 크게 뜨고 술 마십시다.”
“그러세. 영상.”
이원익, 이항복, 이덕형은 술을 마셨다.
탐관오리를 잡아주시는
광해님께 소망하세요~
풍년을 몰고 오시는
광해님께 소망하세요~
살인자를 잡아 죽이는
광해님께 소망하세요~
군가를 부르며 진군한 병사들이 마을에 들러 사람들을 전부 모은다.
“주상께서는 토지를 재분배 하실 것이다. 모든 양반의 땅이 몰수될 것이며 너희가 내는 소작도 전부 없어진다. 양반에게 입은 모든 피해는 보상받게 된다. 그러하더라도 약탈은 안 된다. 힘을 잃은 양반이 도주하는 것을 막되 그 집을 약탈하면 벌을 받게 될 것이니 잘 지켜보기만 해라.”
허균은 마을 사람을 모아놓고 한바탕 연설을 했다.
앞으로 바뀔 정책, 토지분배 세법 등에 대한 설명을 하고 마을을 떠난다.
상경하는 허균의 부대 좌우에 다른 백관의 부대가 있다.
그물질을 하듯 백관의 부대가 반나절 거리로 벌리고 서서 한성을 향해 진군한다.
조선 전역에서 백관의 부대가 한성을 향해 전진한다.
그 수가 팔만명이다.
영의정 이산해. 좌의정 김장생. 우의정 정구.
새로 꾸려진 의정부 인사다.
이들이 뽑히기까지 열흘이 걸렸다.
각 당파별로 삼정승을 뽑은 후 밑에 자리를 누구로 채울 지로 싸웠다.
이항복 이이첨 등 몇몇 인사가 사의를 표하자 반색하며 자기 인사를 밀어 넣으려 목에 핏대를 세운다.
놀랍게도 새 정부는 인사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새 국왕이 탄생했다고 각 지방 군부로 연락해 병사를 끌고 오라고 지시했을 뿐이다.
덕분에 소식이 늦었다.
“군대가 진군하고 있습니다.”
“가장 빠른 부대는 천안까지 왔습니다.”
“최소 칠만. 허균이 뽑아간 지방군입니다.”
역참도 마비되었고, 역참에 소속된 병사들은 전부 말을 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덕분에 각 지방에서 혼비백산한 아전들이 소식을 전해줄때까지 한성에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칠 만이라니. 이를 어찌 막는단 말이오.”
“우리도 팔 만 아니오. 잘하면 버틸 수 있을 것이오.”
“대부분 양반과 노비 아니오. 우리가 직접 싸우란 말이오? 노비들을 병사로 빼면 우리 말고삐 잡아줄 이가 없는데 그건 어찌한단 말이오.”
“병사들이야 징집하면 되지요. 병기창에 무구가 있으니 금방 무장할 수 있소.”
“조금만 버팁시다. 상국에 지원군을 요청하면 알아서 항복할 것이오.”
“그럽시다. 상국에 요청부터 하고 병사들부터 뽑읍시다. 대의는 우리에게 있소.”
양반과 아전들은 한성과 주변지역의 젊은이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다.
그와 함께 일단의 사신이 제물포로 말을 달렸다.
명나라에 원군을 받아내야 한다.
제물포에서 배를 띄워 명나라로 향하는 순간.
그 앞에 판옥선 열 척이 나타났다.
“전하. 신도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함흥까지 갔다가 돌아온 한성단주가 광해 앞에 부복했다.
“그렇지?”
“아들을 뺏긴 부모들의 슬픔에 마을이 눈물에 잠기고 있습니다.”
“쯧. 백관 기다리다가 초가삼간 다 태우겠군. 백관들과 시간이 안 맞는데. 내일 시작해도 될까?”
“신도들의 준비는 끝났습니다.”
“그래. 작전명 독안에 든 쥐. 시작해라.”
“예. 전하.”
한성단주와 밀주가 함께 나갔다.
각 지방의 양반을 일일이 때려잡긴 힘들다.
눈물로 읍소하면 재산을 뺏기도 힘들고, 조상이 피를 쥐어짜 마련한 재산은 후손 대에 세탁되었기에 함부로 뺏을 명분이 없다.
자칫하면 민란이 끊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러 틈을 보이고 한성을 내주었다.
이제 저들은 대역죄인이고 대역죄는 구족까지 연좌한다.
개혁을 설명하고 일일이 마음가짐을 고치게 하는 건 힘들다.
이원익, 이항복, 이덕형 세 명을 고치는데 일 년이나 걸렸는데 지방 양반 모두를 고치려면 수천 년 걸릴 것이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혁명이 개혁보다 쉽다.
“백만 교도들. 일어나십시오.”
“한성의 양반은 몇 명 안 됩니다. 우리 스스로 해낼 수 있습니다.”
“광해님께서 한성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모두 나오십시오.”
“추우니 옷 단디 입고 나오십시오.”
경기지역에서 일제히 소식이 퍼졌다.
한성단주의 지휘 하에 교단의 인물들이 각 마을로 퍼졌다.
경기지역은 고을마다 광해가 한 번씩 방문해 기적을 보여줬다.
한성에서 가깝기에 광해의 기적을 많이 접한 이들이기도 하다.
또한 양반들에게 쌀과 거처를 수탈당하고 아들을 빼앗긴 사람들이다.
광해소망교 교단의 선동에 마을 아낙이, 노인과 할매가, 아이들이 거리로 나왔다.
“행진합시다. 노래합시다. 광해님의 은혜를 만천하에 알립시다.”
영광 영광 광해 전하~
영광 영광 광해 전하~
영광 영광 광해 전하~
소망하세요~
경기외각 지역부터 행진이 시작되었고, 한성으로 향하면서 모든 사람이 뛰쳐나왔다.
“뭣이. 저 폭도들을 죽여라!”
징집관이 놀라 소리쳤다.
그 명령을 따라야 하는 것은 그 마을의 청년이다.
따를 리 없다.
“너나 죽어라!”
곳곳에서 징집관이 죽고 끌려가던 청년들이 교단에 합류했다.
각 고을의 아전과 양반은 혼비백산해 한성으로 도주했고, 그 뒤를 신도들이 포위하듯 따랐다.
독안에 든 쥐.
쥐떼가 탈출할 쥐구멍은 없다.
사흘 후.
한성 팔대문 밖에 오십만 명이 모였다.
경기도 인구가 백오십 만이니 거의 전원이 모인 것이다.
“...... 폐주를 죽여야 하오! 폐주가 다시 정권을 잡으면 여자는 전부 죽고 사내는 전부 강간당할 것이오!”
“싸웁시다!”
“이길 수 있소!”
오늘도 평화로운 한성 거리.
“고진우! 고진우가 누구냐?”
기세 흉흉한 양반들이 한성 거리를 들쑤시고 다녔다.
독전 연설을 하던 이영덕은 목을 축이는 시간에 그들을 붙들고 물었다.
“거 무슨 일이오?”
“경상도 고성에서 고진우란 자가 문중의 적자를 죽였소. 남해 차씨 문중의 장자가 이유 없이 죽었단 말이오.”
“허어. 지금 상황이 안 보이시오? 도성을 백성 수십만 명이 감쌌는데 꼭 소란을 벌여야겠소?”
“아이와 여자가 섞인 저깟 무지렁이들이 무에 무섭다고. 우린 기필코 고진우를 찾아내 복수할 것이오.”
남해 차씨는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녔다.
“네 이놈. 네놈이 거짓말 한 게 아니더냐. 내 아들은 네가 죽였지?”
흥분한 가주가 노비를 닦달했다.
아들의 시체를 싣고 돌아온 노비는 이미 구타당하고 고문당해 만신창이였다.
“아닙니다. 그 자가 직접 말했습니다. 당상관 중에 모르는 이가 없다 했습니다. 어억. 저자가. 저자가 그놈을 모시던 몸종입니다.”
변명하던 노비가 손가락을 들었다.
광해의 심부름으로 술을 사러 나왔던 아전 추지음과 장형체가 화들짝 놀라 도망쳤다.
“잡아라. 저놈을 놓쳐선 안 된다.”
남해 차씨 일행 마흔 명이 흉흉한 기세로 달려갔다.
마침 뒤에는 대북파의 영수 기자헌이 있었다.
“고진우? 당상관중에 모르는 이가 없다? 고진우라...... 들어본 이름인데. 어디서 들었지?”
기자헌은 궁금증에 이끌려 뒤를 따랐다.
촤륵. 촤르르륵.
광해는 장갑을 끼고 무기를 점검했다.
염동력에 의해 아다만티움 철사가 일제히 풀려나와 춤추다 감겼다.
오른손의 철사는 수를 줄였다.
백 개의 철사는 너무 많다.
철사 네 개만 남기되 좀 더 길고 가늘게 개조했다.
왼손의 철사는 방어용이다.
수를 이백개로 늘리고 길이는 2m로 줄였다.
광해의 몸을 반원으로 감싸 프로펠러처럼 돌릴 수 있게.
총알 수천발도 막을 수 있다.
장비를 점검하고 갑옷을 입었다.
아다만티움 체인사슬 갑옷.
여기에 마법의 힘이 더해지면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
광해가 마력을 전부 쓸 때까지 교대로 들이치지 않는 한 광해를 죽일 수 없다.
물론 광해가 그때까지 얌전히 싸워줄리 없고, 지난 한 달간 마력을 쓰지 않아서 마력도 넘쳐난다.
“점심때 시작하기로 했지. 슬슬 준비해볼까?”
1년 12월 33일.
독안에 든 쥐 작전이 시작된다.
광해는 체인메일 위에 곤룡포를 입고, 왕관을 썼다.
왕은 당당해야 한다.
믿고 따르는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왕은 당당하게 살고 당당하게 죽어야 한다.
“고진우. 내 아들의 원수. 나와라 고진우!”
뭐지 저 잡것은?
감히 현대 시절 내 이름을 부르다니.
광해는 문을 열고 나섰다.
허겁지겁 달려오는 추지음과 장형체.
그 뒤를 따르는 기세흉흉한 양반과 노비들.
“뭐냐?”
“헛.”
광해의 복장에 놀란 양반들이 멈춰 설 때 노비가 말했다.
“저... 분입니다. 제 주인을 죽인 고진우입니다.”
붉은 관복은 당상관의 복장이다.
아들의 원수를 갚겠다던 아비가 주춤했다.
“당신이 내 아들을. 차영준을 죽였소?”
“차영준?”
광해가 갸웃할 때 추지음이 말했다.
“아이고 나으리. 고성에서 얼굴 쪼개 죽인 자 말입니다. 그 양반 말을 뺏었죠.”
“아. 연쇄간살마. 죄가 너무 깊어 죽였지.”
광해가 자백했지만, 상대는 섣불리 달려들지 못했다.
당상관의 붉은 복장인데 뭔가 다르다.
화려한 용이 수놓아진 장포.
“관직이 어떻게 되시오?”
슬프게도 아들의 원수를 만났지만 함부로 공격할 수 없다.
평민이라면 냅다 죽여도 되지만, 양반끼리는 지켜야 할 예와 절이 있기 때문에.
그 대답은 뒤에서 나왔다.
“폐주! 광해군이 어찌 여기에 있느냐!”
호기심에 따라오던 기자헌이 소리쳤다.
“폐주가 여기 있다! 폐주를 잡아라!”
웅성웅성.
“헛. 정말이다.”
“곤룡포다.”
“잡아라. 저자를 잡으면 끝난다.”
“폐주를 잡아라!”
삽시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광해가 인상을 찌푸렸다.
게이트 마법으로 숭례문 지붕위로 올라가려 했는데 그리지 못했다.
‘플라이 마법을 그릴걸.’
몸에 플라이 마법 대신 신체강화 마법을 넣어가지고.
이렇게 된 이상 물리마법사다.
“내가 조선의 왕 광해다.”
다 덤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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