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라면 발명
순도 100% 픽션입니다
이왕 가는 것 정찰도 겸해서 주요 인원도 합류시켰다.
선두에서 간삼과 임경업이 낫질을 해서 길을 열고 그 뒤를 느긋하게 따라갔다.
“여기가 좋겠네. 이쯤에 작은 농경마을 건설할 수 있겠어. 서양갑. 집은 어디에 지어야 할까?”
모현성과 서양갑의 대화가 이어진다.
“저 중턱에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야. 저곳도 물에 패인 자국이 있잖아. 단순히 빗물이 흐른 것과 수마가 할퀸 건 차이가 보여. 저기 바위가 누워있지? 저건 물난리가 났을 때 구른 거야. 즉, 그 정도 비가 또 오면 마을이 박살날 거야.”
“예. 신중하게 짓겠습니다.”
“그래. 신중하게 살펴서 사람 죽는 일 없도록 해. 장소를 정했더라도 원주민들에게 물어서 한 번 더 고민해봐.”
광해가 끼어들었다.
“첫 번째 마을과 두 번째 마을 모두 서양갑 네가 이름 붙이도록 해.”
“제가 말입니까? 가문의 영광입니다.”
“뭐 대단한 거라고 영광까지야. 마을 조성 끝내면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마을을 건설해. 섬의 서쪽엔 천만 명을 먹일 수 있는 농지가 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두런 두런 이야기하며 남쪽으로 갔다.
무릎 깊이의 작은 하천가를 따라 갔는데, 점점 경사가 심해지고 거칠어졌다.
소유키의 손을 잡고 산책하듯 걷던 광해는 갑자기 하천으로 들어가더니 손을 넣었다.
“금이군.”
모래에 섞여 있던 새끼손톱만한 금을 주워 올렸다.
“저... 정말 금입니까?”
“그래. 자 봐봐.”
광해는 금 쪼가리를 일행에게 넘겨주었다.
일행이 내린 곳은 대만 북동부 지우펀이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일본이 세계와 전쟁을 벌일 수 있었던 자금을 뽑아낸 황금광산이 여기에 있다.
채산성이 낮은 조선의 금광은 나중에 뽑고 여기부터 캐먹을 계획이다.
지우펀의 금은 사금을 통해 알려졌다.
처음 사금을 발견했을 땐 매일 10kg 이상의 사금을 하천에서 주워 올렸다 하니 현재 이 작은 하천에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큰비가 산을 깎으며 금맥도 같이 깎았을 거야. 금쪼가리가 흘러내리다가 하천 바닥에 멈춰선 거고. 저 산엔 엄청난 금이 있다.”
광해의 선언에 일행은 남쪽으로 펼쳐진 높은 산을 봤다.
벼랑처럼 높게 솟은 산이 전부 황금으로 보였다.
지도를 보고 주위를 살피며 선언했다.
“자 도착했다. 여기가 광산마을 위치다. 김춘석 와봐.”
광해는 지도를 보며 위치를 가름해 책임자를 불렀다.
무산광산과 무산제철소를 짓고, 인근의 석회석광산과 텅스텐광산까지 건설한 철방 야장 김춘석.
“여기에 광산 일꾼들 마을을 건설한다. 제련은 여기서 바로 하도록 해. 제련공장은 저기. 그리고 갱도 입구는 저기. 이해했어?”
“걱정 마십시오. 전하.”
광해에게 욕을 먹으며 강철을 두드리던 예전의 그가 아니다.
2년간 책임자로 있으면서 관록이 붙었다.
“이렇게 하면 문제가 뭘까?”
“물입니다. 이곳에서 제련을 하면 어쩔 수 없이 하천이 더럽혀질 것입니다.”
“그래. 정확하네. 그러니 취수장을 상류에 짓는다. 저 쯤에 둑을 만들어 작은 저수지를 조성하고 모든 식수는 거기서 퍼서 먹는다. 서양갑 기억해라. 이건 아랫마을도 해당해. 농경지에 뿌리는 건 괜찮아도 마시는 건 절대 안 돼.”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그래. 믿겠다. 김춘석 너는 알아서 잘 하겠지. 여기에 증기기관을 가져오면 안 돼. 전부 손으로 해야 한다. 대신 손수레용 철로까지는 허용하지. 네가 여기 맡을래?”
“소신은 건설만 지휘하고 무산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곳에 신경 쓸 일이 더 많습니다.”
“그래. 네가 알아서 책임자 보내. 기관술을 모르는 이가 좋겠다. 여기 좀 파먹다가 나중에 저 산 쪽으로 다섯 군데를 더 팔 거니까 그거까지 계산해서 조성해.”
김춘석이 열심히 지도에 선을 그으며 대답했다.
“예. 전하.”
마을과 농경지 건설 책임자 서양갑.
금광 건설 책임자 김춘석.
원주민만 있는 섬이니 별 문제없이 해낼 것이다.
광해는 정찰 겸 사냥을 마치고 돌아섰다.
“주군! 이대로 돌아가십니까? 그 산의 악마라는 놈은?”
“안 나타나잖아. 사람 여섯 명에 쫄아서 숨은 건 악마가 아니야. 그냥 큰 호랑이 정도겠지. 병사들도 해치울 수 있어. 호랑이는 어디에나 있고.”
모험과 괴물사냥에 들떴던 열네 살 임경업은 대실망했다.
단군력 2년(1609년) 12월 36일.
요일이 없는 날이며 모든 작업을 멈추는 안식일이다.
광해는 선선한 가을바람에 기분이 좋아 특별서비스를 했다.
“내 너희를 위해 특별히 신이 먹는 음식을 만들어 주겠노라. 영광인줄 알거라. 이것들아.”
광해는 한껏 흥분해 있는 상태다.
솥 두개를 걸어 물을 끓였다.
그 후 아공간에서 밀을 꺼냈다.
불로 태우고 비벼 밀 껍질을 벗기고 마력으로 갈아 고운 가루로 만들었다.
밀가루.
현재 기술로 이렇게 고운 밀가루는 만들지 못한다.
광해만 만들 수 있는 밀가루다.
밀가루에 찹쌀가루와 감자가루 약간을 섞었다.
거기 물을 넣고 반죽.
촥촥촥촤촥.
모든 동작은 공중에서 이루어진다.
광해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마력으로 요리했다.
고생한 나를 위한 선물인데 고생하기 싫다.
밀가루 반죽을 숙성시키는 동안 아공간에서 콩을 꺼내 빈 솥 위에서 강한 압력으로 짰다.
콩에서 나온 기름이 솥에서 가열되었다.
쉑쉑쉑쉑
밀가루 반죽이 공중에서 빙빙 돌더니 길고 얇은 면이 되었다.
기름의 온도를 확인한 광해는 밀가루 면을 기름에 투하했다.
차라라라락.
소나기 오는 소리가 들린다.
살짝만 튀기고 곧장 면을 꺼냈다.
이제 국물을 만들 차례다.
끓는 물에 고추를 가루 내 넣고, 해변에서 주워온 해초 몇 개를 마법으로 건조시켜 넣었다.
그리고 MSG. 신의 향신료를 넣었다.
국물의 색을 확인하고 맛을 살짝 본 후, 간장을 추가해 완성시켰다.
이제 면 투하.
배식용 사기그릇이 공중에 줄줄 뜨더니 냄비에서 라면이 정확히 옮겨졌다.
“먹어라. 그리고 감격하라. 이것이 신의 음식이다.”
호로로록.
맛있다.
약간 맹맹하지만, 후추 등 향신료가 없는 걸 생각하면 훌륭한 맛이다.
이 맛이다.
이 맛을 원해서 황제생활을 버리고 현대로 돌아가려 했었지.
호로로로로로록.
후루룩.
후읍.
눈물이 날 것 같다.
고향의 맛.
행복하다.
“맛있지?”
답은 정해져있다.
“그냥 저냥 그 느낌 대충 나네. 좀 싱겁지만.”
모현성에겐 기대 안했고.
“맛있습니다. 주군. 신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임경업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런데 표정이 이상하다? 맛 없냐? 맛 없어서 우냐?”
“아닙니다. 맛있습니다. 맛있는데. 어흑. 사내대장부는 딱 세 번 우는 건데. 크흑. 사나이를 울리는 맛입니다.”
고추가 전래되지 않았으니 아직 매운맛이라는 거에 적응하지 못했나보다.
왕에 대한 충성으로 열심히 먹은 임경업은 땀과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
“니들은 뭐야? 맛없어?”
서양갑과 김춘석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맛 있 습 니 다.”
혀가 얼얼해서인지 뚝뚝 끊어서 대답한다.
소유키는 얼굴이 빨개져서 말도 못하고 있고.
간삼이 조심해서 말했다.
“전투 직전 적장에게 선물하고 싶은 맛입니다.”
“그게 무슨 맛인데?”
“피똥 싸서 전투력이 떨어질......”
“간삼 네 이놈. 너 사형.”
누구보다도 충성스럽던 놈이.
모현성이 곁에서 비웃듯 말했다.
“아픈 맛이 익숙하지 않으면 이건 고문이지. 이들에겐 신의 음식이 아니라 악마의 음식일걸.”
“시끄러. 너도 사형.”
피의 숙청이 이어진다.
혀에는 단맛, 쓴맛, 신맛 등을 판단하는 미각세포가 있다.
그 중에 매운맛을 느끼는 세포는 없다.
매운맛은 아픈 맛이다.
미각세포가 통증을 느끼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를 매운맛이라 칭한다.
광해는 고향의 빨간 라면을 생각해 고추가루를 너무 많이 넣었다.
광해에겐 그립고 감칠맛 나는 맛이지만, 이들에겐 아픈 맛일 뿐이다.
“경업이를 봐라.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저렇게 열심히 먹잖냐. 저게 충신이지. 니들 충성도가 부족해서 그래.”
“사내대장부 하나도 아프지 않습니다.”
눈물콧물 흘리며 그런 말해도.
“그래. 한 그릇 더 줄까?”
쨍그랑.
귀한 사기그릇 하나가 깨졌다.
그릇 깨면 얼차레 엄청 받던데, 왕의 호위병도 얼차레 받으려나.
이런 반응이라니.
상처받은 광해는 얼굴이 빨개져서 끝까지 먹으려고 ‘시도’하는 소유키의 손을 잡았다.
“됐어. 다 필요없어. 내일보자.”
“즈나... 아직 아침이온데.”
“괜찮다.”
안식일이니.
심장에 새겨진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소유키는 특이하다.
소망이 생기지 않는다.
처음 만났을 때 어머니를 치료해준 이후로 소망이 한번도 뜬 적이 없다.
왕이 건강하길 바라는 소망 말고 생기지 않는다.
예서에게 정기적으로 안아달라는 소망이 생기고 커지는 것과 비교된다.
“너는 이거 하는 게 별로냐?”
왕을 위한 푹신한 침상에 누워 소유키의 가슴을 만지며 물었다.
“아니옵니다. 너무 좋습니다. 즈나.”
“그런데 왜 바라지 않느냐? 다른 여자는 안아달라고 소망하는데.”
아직 소망에 대해 잘 모르나.
“그게......”
손으로 처리하나?
“주상께서 귀찮으실까봐. 부담될까봐 생각이 날 때마다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즈나.”
“그래? 그게 생각으로 되는 건가. 그래도 연말이니 말해봐라. 뭐 바라는 것이라도.”
“너무 완벽합니다. 몸은 편하고 사람들은 친절합니다. 식사는 맛있고, 가끔 주상께 안기면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너무 좋습니다. 고양이들도 절 따르고 그들을 안고 시간을 보내는 게 행복합니다. 바라는 게 있다면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즈나께서 영원하길 바랍니다. 주상께서 절 잊지 않고 영원히 이렇게 대해주길 바랍니다. 언제나 주상 전하의 기분이 좋기를 바랍니다.”
내 기분이 좋기만을 바란다.
이 말이 왜 이리 기분이 좋지.
가슴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떼 볼에 손을 댔다.
“넌 좋은 여자다. 내가 버리는 일은 없어.”
“고맙습니다. 즈나.”
예쁜 얼굴에 홍조가 올라온다.
“음. 단군력 3년 1월 1일을 맞이하여 발표할 것이 많소.”
새해 인사는 정인홍이 주관했다.
어느새 왕이 자리를 비우는 게 너무도 자연스러워져 버렸다.
정인홍이 왕을 대신해 수많은 변화를 공표하는 동안 예서는 목걸이를 만지고 있었다.
“영상 대감이 이상과 같은 발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광해산업은......”
-집안은?
“세자 산남대군이 주도하여 신년예를 올리고 있습니다. 열한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세자에 어울리게 의젓하다 칭찬받고 있습니다.”
-그래. 다 잘되고 있네.
광해가 통신을 끊으려 하자 예서가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저... 신년인데 떡국은 드셨나이까?”
먼저 묻기.
예서의 발전한 점이다.
-먹었어. 별일 없으면 끝내자.
거기까지 말한 광해의 음성이 끊겼다.
“즐거워 보이십니다...”
예서는 보석에서 손을 떼고 중얼거렸다.
멀리서 산남대군의 의젓한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보고 있는 왕후가 부러웠다.
“따라다니고 싶은데...... 난 언제나 조선에 남아 통신을 해야겠지.”
소유키도 부럽고.
괜히 일을 배웠나.
“아니야. 내가 원한거야. 이 일을 맡지 않았으면 버려졌을 수도 있어. 그래. 그렇지. 은혜를 잊지 말자. 힘내자. 아자아자.”
예서는 억지로 힘을 끌어올렸다.
광해산업 각 기업의 연말 결산을 받아 취합해야 하고, 신년 계획을 전달해야 한다.
비변사 회의에 참석하고, 의정부 회의에도 참석해야 한다. 무서운 삼정승을 만나 국왕께 전할 내용을 취합해 보고 드려야 한다.
할일이 태산이다.
“...... 보고 싶다.”
잠시 후 예서의 앞에 광해가 떡하니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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