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 기적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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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6월.
영국 런던의 글로브 극장에 인파가 모여들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수백명의 시인과 배우와 극작가들이 글로브 극장 주위를 빼곡히 둘러쌌다.
그들을 포위하듯 다가오는 병사들.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와 아일랜드 국적의 병사들이다.
브리튼을 피자 조각 자르듯 갈라먹은 삼국은 런던의 상징성 때문에 정확히 삼등분해서 하나씩 차지했는데 그 꼭지점에 해당하는 곳이 글로브 극장이다.
“누가 세익스피어인가?”
군 간부의 외침에 분장한 배우 한명이 외쳤다.
“그분은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관련 없는 자들은 그만 해산하라. 모든 재산은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브리튼을 갈라먹은 삼국은 가톨릭의 수호자 페르난디트의 밑으로 들어갔고, 과거 암흑시대를 재현한 공산주의를 영국 전체에 심고 있었다.
군인의 말에 극작가 하나가 분개하여 소리쳤다.
“창칼이 우릴 찌를지라도 작가의 정신은 영원하리라. 이곳 글로브 극장은 글로브 극단의 것이 아닌 모든 시인과 극작가의 영혼이 쉬는 쉼터일지니!”
“웃기는 군. 로미오와 줄리엣이 표절임은 이미 밝혀졌다. 서칸왕이 직접 지은 노민호와 주리예가 이미 40년 전에 서칸 수도 한성에서 발표되었다. 표절자의 영혼이 모인 이곳은 때려부수겠다.”
역사는 승자는 것이고, 표절시비는 목소리 큰 강자가 이긴다.
군인의 말에 작가들이 술렁였다.
“무슨 말이야?”
“40년 전에 발표되었다고? 진짜?”
“헉. 제가 쓴 게 아니고 고양이가 썼습니다.”
“말도 안 돼. 내가 직접 참여하고 몇 문장은 내가 창작한 대로 쓰였는데.”
“창문을 열어다오. 그거 내가 지은 문장인데.”
“내가 잠결에 들은 내용을 글로 적었나?”
“너희들이 그 표절작을 함께 썼나? 너희가 세익스피어인가?”
“우린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다 같이 모여 극을 만들었다. 세익스피어의 아름다운 소네트에 반해 모여든 우리가 그를 도와 극작품을 완성했다. 세익스피어 홀로 극단을 운영하고 배우들을 훈련시키고 새로운 극을 연습하고 매일 무대에 올리고 조연배우로 출연함과 동시에 38편의 장편 극을 매년 두 편씩 발표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럼 너희 이름으로 발표했어야 하지 않나?”
“세익스피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가 있다. 그 이름 자체가 우리 모두의 힘으로 세워졌다.”
극작가들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질문을 하던 장교는 저들은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듯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다면 죄도 공유하여라. 성경에 말하길 유태인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적혀있다. 하지만 작가 세익스피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상인, 돈이 없으면 살덩이를 떼 가는 악마, 등으로 묘사해 주변인들의 유태인 혐오를 부추겼다. 이로 인해 이미 많은 묻지마 살인이 일어났고, 훗날 유태인 수백만 명이 죽을 수도 있는 끔찍한 인종혐오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 죄로 세익스피어의 전 재산을 몰수한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세익스피어가 지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익스피어의 작품이 인기를 얻고 오래 숨 쉬게 되면서 매우 자연스럽게 유태인 혐오가 유럽인의 심장에 녹아들었으니 대학살의 책임을 일부 져야 한다.
세익스피어가 유명해서 생겨난 원죄다.
“아니. 말도 안 돼.”
“이 극장엔 우리의 지분도 있어.”
“투비 오어 낫투비는 내가 만든 문장인데.”
“그 모든 게 세익스피어의 이름이라면 죄 또한 공유한다. 인종혐오를 불러일으켜 사람을 죽게 한 죄, 그리고 표절한 죄. 형벌을 집행한다.”
병사들이 다가와 극작가들과 배우들을 끌어냈다.
극작가들은 처음의 기세등등했던 기운을 이어가지 못했다.
표절이라는 충격, 그리고 인종학살의 책임을 지라는 말에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
콰르르릉!
작가와 배우들이 병사들에게 끌려간 후 글로브 극장이 무너졌다.
글로브 극장이 무너지면서 유럽은 완벽히 암흑 속에 잠겼다.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문학이며, 성경은 고대라틴어 외의 어떤 언어로도 쓰일 수 없으며 성경 아닌 문학을 보유하는 것만으로 이단의 죄를 받는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난디트 2세만이 신이 임명한 교황이며, 페르난디트 2세가 임명한 성직자만이 유일한 목사다.
그 외 모든 이가 평등하여 모두가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먹는다.
더 많이 버는 이는 신고해 모두 나눠 가지며, 더 적게 버는 이는 모두가 도와야 하지만, 현실은 매장해서 지워버리게 된다.
유럽의 암흑시대는 21세기 북한과 일맥상통한다.
글로브 극장이 무너지는 날, 페르난디트 2세는 스페인 남단에 와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인가.”
“모세스의 기적이 드디어!”
“우오오오~”
바다 가운데까지 확장한 지브롤터 댐이 마지막 한 발을 남겨두고 있다.
스페인에서, 모르코에서 뻗어 나온 댐은 지중해 지브롤터 해협 정중앙에서 만나기 직전이다.
멀리 뛰면 뛰어 넘을 수 있는 거리.
마지막 구간이기에 바닷물은 더없이 거칠고 맹렬히 흐르고 있다.
그 곁에 광해가 서 있었다.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이 힘을 합쳐 가져온 석회석을 갈고 철근과 모래와 대충 반죽해 마법으로 때려 넣는다.
마법으로 시멘트반죽이 공중에 떠서 바다로 들어간다.
철근박고 시멘트반족 넣고 마법으로 바닷물이 닿지 않게 보호하며 굳힌다.
‘지겨워 죽겠네. 괜히 한다고 했어.’
십 년째 이 짓만 한 것 같다.
‘아 그냥 무너뜨릴까.’
광해의 짜증과는 상관없이 주위에선 환호성이 터졌다.
“와아아~”
“기적이! 기적이 완성되었다!”
“우리의 힘으로!”
“신의 사업이 한팔 거들었다!”
콸콸콸. 콜콜. 쪼르르. 특.
시멘트가 들어가 마지막 구간을 막았다.
바다가 좌우로 갈라졌다.
폭 10보인 지브롤터 댐 위에 가득 서 있던 군중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길이 60큰 보, 폭 10보인 댐 위엔 얼추 30만 명 넘게 서 있는 것 같았다.
광해는 시큰둥하게 주위를 보다가 남쪽으로 걸어갔다.
“물러나라.”
광해를 선두로 칸제국의 병사들이 열을 맞춰 남쪽으로 일제히 걸어갔다.
바다에 떠 있는 군함들도 서서히 남쪽으로 이동했다.
열을 맞춰 다가오는 제국군에 밀려 뒤로 가는 오스만제국 사람들.
남쪽에 있던 이는 이슬람 세력이다.
“어? 어어?”
“뭔데?”
“야. 뒤에 비켜!”
“으아악 떨어진다.”
곳곳에서 물러나다가 댐 가장자리로 밀려나 떨어지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걸어간 후 멈춰 섰다.
“여기에 깃발을 세워라.”
“옙 대칸!”
호위장 임경업이 크게 외친 후 거대한 깃발이 세워졌다.
밀려난 이슬람인들이 남쪽에 뭉쳐있고, 혹시혹시 하며 따라온 가톨릭 인들이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광해는 그들을 보고 외쳤다.
“신께서 말하길 바다를 가른 기적에 쌓인 공이 이만큼이라 했다. 가톨릭 인들은 여기까지 밟을 수 있으며, 이슬람 인들도 여기까지만 올 수 있다.”
와아아아아~
우우우우~
기뻐하는 가톨릭과 좌절하는 이슬람의 희비가 엇갈린다.
광해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각자 점유한 천국의 크기와도 일치한다. 너희가 죽어 천국에 가게 되면 가톨릭 인들은 이 넓은 땅을 독차지할 것이며, 이슬람 인들은 저 좁은 곳에 뭉쳐 힘들게 살게 된다.”
와아아아~
아아악~
지브롤터 댐의 3/4을 차지한 가톨릭. 1/4만 차지만 이슬람. 길이차이가 워낙 크기에 확연히 눈에 띈다.
“지금 죽으면 그러하다. 하지만 댐의 건설은 끝나지 않았다. 신께서 말하길 댐의 넓이는 지금보다 다섯 배 넓어져야 한다고 한다.”
지중해의 물을 빼고 나면 대서양의 무게를 댐이 버텨야 한다.
지금의 두께론 버틸 수 없다.
“그러니 앞으로 더 열심히 수송해오거라. 다음 구간이 끝나면 천국의 넓이가 조종될 것이다.”
우우우~
와아아아~
희비가 교차한다.
두 종교세계의 수송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페르난디트 2세. 오스만 2세.”
광해는 신성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의 황제를 불렀다.
각자 남쪽과 북쪽에서 병사들과 함께 있던 두 황제가 달려왔다.
“싸울 일 있으면 수송전쟁으로 가려라. 누가 더 많은 양을 수송하는가로 판결 내라고.”
“예!”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결투해서 이긴 놈의 정의라는 미개한 결투재판처럼 수송재판을 만들었다.
“괜히 서로 치고 박고 싸우지 말고. 댐 위는 칸제국이 관리하니 병사 밀어 넣지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오직 순례자만 보내겠습니다.”
“그래. 사사로이 전쟁 일으키지 말고 사람을 생각해라.”
광해가 전쟁을 좋아하진 않지만 딱히 세계평화를 위해 금지시킨 것도 아니다.
전쟁은 기술을 발전시킨다.
광해와 모현성이 원하는 것은 두 제국 모두 쓸데없는 데 전력을 쏟아 부어 아무 발전 없이 가라앉는 것이다.
얘들은 열심히 수송만 해서 지중해를 사해로 만들면 된다.
이제 댐 위에 대형 펌프를 일렬로 설치하면 된다.
주루룩 설치한 경유펌프가 지중해물을 뽑아 대서양으로 뱉어내면 지중해는 넓은 간척지로 바뀌게 된다.
지중해 깊은 바다의 염도가 올라가 기존 생물들은 모조리 죽을 것이며, 지중해의 수분을 받지 못한 유럽은 수세기 후엔 사하라 사막 같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
“아놔 이거 너무 길게 잡은 것 같은데. 솔직히 그럴 기미가 보이면 지브롤터 댐을 때려 부수게 될 거 아니야? 수세기 후면 나도 없을 테고. 두 제국이 사활을 걸고 공격하면 못 버틸 텐데.”
“헤헷. 그러겠지?”
“이 자식이.”
“그래도 쓸데없는 짓엔 쓸데없는 이유가 있잖아. 두 제국민이 수송에 열을 올리는 만큼 국력을 잃고 딴 짓을 못하잖아. 마치 전 국민이 영어공부 만 시간을 해서 전 국민이 각자 인생의 만 시간을 무가치하게 잃어가는 것처럼.”
“어...... 쓸데없는 일로 인생을 허비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걸 나도 하고 있고. 넌 내 시간을 죽였어.”
“아핫. 그러네용. 이제 좀 슬슬 해. 순례객들이 가져오는 것 두세 달에 한번 씩만 소비하면 돼.”
“그걸 평생 하라고... 널 죽이겠다.”
광해와 모현성은 농담을 하며 지브롤터를 떠났다.
이날 이후 순례객들은 댐을 밟으며 기적의 현장을 체험했다.
댐의 동쪽으로 진입해 대서양을 보며 걸어간 후 경계선에서 돌아 지중해를 보며 걸어 나온다.
그들이 걷는 길이 천국의 땅이다.
가톨릭은 천국이 넓은데 기뻐하고, 이슬람은 자신들의 천국이 좁은 걸 슬퍼하며 서로 경쟁하며 석회석을 짊어졌다.
그리고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
“어? 좀 낮아진 것 같은데?”
“정말이네.”
“오오오. 지중해 넓은 땅이 옥토로 바뀐다.”
“신의 기적이다!”
지중해가 스스로 가라앉고 있다.
“땅이 늘어난다!”
“드넓은 밀밭이 생긴다!”
1년 사이 지중해가 1보 낮아졌다.
100년만 지나면 100보 이상 낮아진다.
이건 지중해의 증발량 때문이다.
본래 지중해는 강이나 지하수가 유입되는 양보다 증발해 비를 뿌리고 북해나 대서양으로 흘러나가는 양이 훨씬 많다.
그래서 대서양의 물이 항상 지중해를 향해 흐르고, 지중해의 염분은 바다 평균보다 항상 높다.
그런데 대서양이 막히니 증발량이 낮아져 지중해가 작아지는 것이다.
해안가는 조금씩 바다가 사라져 땅이 되고, 모든 이가 기뻐하며 새 땅을 차지했다.
그리고 광해는.
“좆 된 거지?”
“어... 10년 후면 10보 이상 낮아지네. 지금 두께로 버틸 수 있을까?”
“모르지. 너는 아냐?”
“에헤헤. 나도 몰라. 건축 물리 같은 거 배웠을 거 같애?”
“학자들은?”
“현재 물리학이 여기까지 계산하지 못해.”
“...... 머 일단 지금 무너지면 안 되겠지?”
“어. 그런데 저 허접한 수송량으론.”
“에휴. 니가 하는 게 그렇지.”
결국 칸제국은 8000톤급 철선을 수송에 이용하게 되었다.
석회석 광산에서 석회석을 퍼내 배에 싣고 댐에 가져오는 일.
유럽, 오스만, 칸제국.
지구 최강 세 제국이 모두 지브롤터 수렁에 빠져버렸다.
- 작가의말
세익스피어를 사랑하는 모든 분께 사죄드립니다.
세익스피어 공장설은 수많은 음모론 중 하나일 뿐이며 당신이 믿는 바가 진실입니다.
유태인혐오는 뭐 카바할 수 없는 죄 맞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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