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고난의 행군3
순도 100% 픽션입니다
우에스기 군은 다렌성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중군 이수일의 이만과 우군 장만의 일만, 그리고 좌군 우에스기의 사천 병력이 동등한 대접을 받고 있다.
성벽 오백 보 앞에 단단히 진을 치고, 앞에 철조망을 한 겹 세우고, 광해이포를 설치했다.
성내 병력이 한차례 기습했지만, 철조망 앞에서 광해이포에 얻어맞다가 천여 명의 사상자만 남기고 후퇴했다.
주 공은 광해일포.
부대 후방에 방열한 삼백문의 광해포가 성벽을 무한히 때리고 있다.
성의 동쪽 면은 이미 너덜너덜해졌고, 바닷가에 최대한 붙은 천톤급 갤리온들 또한 성내를 향해 무한 포격을 하고 있다.
조선의 전쟁을 보며 사나다 마사유키가 물었다.
“주군은 어떻게 보십니까?”
“이상하다 느끼고 있네. 진작 돌입해도 피해 없이 점령할 수 있을진대 너무 느려.”
“아들아. 너라면 어찌할 텐가.”
옆에 있던 사나다 노부시게가 대답했다.
“조선의 전투는 다르군요. 화약보다 병사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 그 차이가 크다. 우리 야마토는 쥐어짜서 전쟁을 거듭 했습니다. 병사를 최대한 긁어모아 싸웠고, 승리해서 성장하거나 패해서 소멸되기를 반복했습니다. 헌데 조선은 병사의 생명을 아낍니다. 진작 돌진했어도 몇 명 죽지 않고 적을 다 죽였을 텐데 아군 몇 명의 희생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포만 계속 쏘고 있습니다.”
“우리 야마토가 잘못되었단 말인가?”
우에스기 카게카츠의 말에 마사유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야마토에서 그렇게 했으면 여력이 모자라 멸망했겠지요. 다만 이제 조선에 신종했으니 조선의 방식을 따라야죠. 제가 지휘관에게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도주하는 적 농민들을 잡아 노예로 부릴 게 아니라면 다 죽이자고. 안 그러면 산으로 숨어들어간 농민들이 산적이 되어 후방이 혼란스러워 진다고. 그랬더니 뭐라 했는지 아시겠습니까?”
“뭐라 했지?”
“곽재우는 허허 웃으며 그러더군요. 하나 둘 죽이는 건 괜찮은 데 너무 많이 죽이면 병사가 미쳐버린다고. 적당히 도주하게 만드는 게 병사들의 피해도 더 적다하더이다.”
“허...... 병사들의 정신까지 생각하는 건가.”
“압도적인 화력을 준비하고, 병사 개개인의 용맹이 아닌 객관적 화력을 갖춘 후 바위처럼 단단히 압박합니다. 국왕을 맹목적으로 믿는 병사들이 갖춘 압도적 전력 하에 희생 없는 승리. 그게 조선인거죠. 조선의 방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늙은 마사유키는 이제 가마 없이는 움직일 수도 없다.
마사유키의 마지막 가르침을 우에스기와 노부시게가 조용히 경청했다.
“노부시게. 언젠가 내가 떠나거든 곽공에게 배워라. 그리고 주군을 잘 모시도록.”
“명심하겠습니다.”
펄럭펄럭.
다 무너진 성내에서 백기를 든 기마 하나가 튀어나오고 포격이 멈췄다.
조선군은 항복한 적병이 무장을 모두 해제하고 맨몸으로 떠나는 것을 허락했다.
다렌과 배후지역의 명나라 백성을 모아 북쪽으로 쫓아 보냈고, 모든 백성이 소거된 후에 부대가 북쪽으로 전진을 시작했다.
요하까지 진군하며 요동의 백성을 요서로 밀어내고 요양과 심양까지 점령하면 된다.
거대한 강 요하는 매년 넘치기에 유역엔 수십큰보의 뻘 지형이 형성되어 있다.
이 지형이 군대의 이동을 방해하기에 예로부터 자연적 방어시설이 되었고, 국가 간 경계가 되기도 했다.
쥬센과 고구려, 발해의 국경 또한 요하를 기준으로 형성되었다.
그랬기에 요서에 조선군이 발을 디딘 건 한반도 역사상 거의 처음 있는 일이다.
창춘에서 서쪽으로 달린 후 남하한 기병대는 그대로 요서지역을 휩쓸었다.
위화도 전투의 대패는 이미 알려졌지만, 명나라는 요양과 심양 중심의 방어선을 준비하느라 요서지방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었다.
“죽이지는 마라! 모조리 빼앗고 저항하는 자만 죽여라.”
조선군과 여진족을 반씩 섞은 천인대 삼십 개가 지역단위로 마을을 휩쓸었다.
모든 식량을 빼앗고 닭과 개, 오리를 죽여 고기를 마련한다.
삼만의 기병을 급조한 징집병으로 막을 수 없다.
요서지방 백성들은 성으로 달려갔고, 성에선 성문을 틀어 잠근 채 구원을 기다렸다.
광해는 굳이 성을 공격하지 않았다.
성 안엔 논밭이 없다.
촌란 단위로 휩쓸며 약탈해 고기를 먹고 쌀을 예비마에 실었다.
열흘간 수백 개 마을을 약탈하자 삼만 마리의 예비마에 쌀이 두 석씩 실렸다.
지도를 보며 약속된 해안으로 가자 수송대가 와 있었다.
“여~ 오랜만이야.”
“광해님을 우에에엑.”
이 새끼가.
토하는 이괄을 때려주는 사이에 약탈한 쌀이 수송선에 실리고, 마초가 내려졌다.
예비마에 마초를 싣고 다시 약탈의 길을 떠난다.
이괄의 수송대가 의주에 쌀을 내리고 마초를 싣고 돌아오려면 보름 걸린다.
보름 간격으로 요서지역 평원을 약탈하며 서쪽으로 이동했다.
1구역, 2구역, 3구역, 4구역.
네 번째 구역까지 약탈하자 거대한 성채가 등장했다.
성채 옆엔 길게 장성이 쌓여 있다.
만리장성과 그 동쪽 끝 산해관이다.
이중 해자와 높은 성벽. 한 면은 바다다.
속에 흙을 채운 이중 성벽은 멀리서 봐도 단단하고, 수십 문의 포도 보인다.
“주상 전하. 어찌 점령하실지 알고 싶습니다.”
광해가 불편하지 않도록 극진하게 모시던 정충신이 물었다.
“점령하려면 할 수는 있는데......”
성벽을 무너뜨리고 기관총을 배치한 후 기병이 돌입하면 이길 순 있다.
다만 최소 수천기의 기병이 죽을 것이다.
“주상 전하의 명이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겠습니다.”
“어. 그럴까봐 안 해.”
점령할 수 있지만, 점령해봐야 수천기의 기마와 맞바꿀 가치가 없다.
북경을 점령하려면 함선을 모두 모아 천진에 상륙하는 게 낫지.
“정충신. 우리 작전의 목표가 뭐라고?”
“고난의 행군. 수백만 백성들이 먹을 식량을 챙기는 것입니다.”
“그래. 적을 이기려 하지 말고, 아군이 최대한 안 죽도록 보호해라. 여진족 또한 죽지 않게 아끼고. 그리고 최대한 식량을 챙겨라.”
지도를 꺼내 보여줬다.
산해관을 시작으로 만리장성은 서북쪽 산맥을 따라 이어진다.
쭉 이어지는 만리장성은 북경 북서쪽에서 초원을 만나 평원위에 세워진다.
“이쯤. 이 근처에서 만리장성을 넘을 수 있어. 이미 내통 약속도 되어 있다.”
“아. 거기서 넘는 것이옵니까?”
“그래.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약탈을 해서 예비마에 식량을 아득바득 싣고 돌아와라. 약탈은 무한히 계속된다. 너희가 삼백만 백성을 먹여 살려야 한다.”
“알겠습니다. 전하.”
정충신에게 이정도 말하면 쉬지 않고 열심히 약탈하겠지.
원정이 길어질 테니 광해는 이쯤에서 빠지기로 했다.
집 지켜야지.
이후 정충신과 삼만 기병은, 여진족과 조선족 모두 정충신을 저주할 정도로 말에서 똥 싸고 토하며 달렸다.
엿새 만에 작전지점에 가자 내통자가 나와 있었다.
일반 백성으로 가장한 선비족 계통 병사 오천명.
그 선두엔 모용세가 가주 모용황이 있었다.
“관문 경계병은 매수해서 전부 아군입니다. 걱정 말고 들어가십시오.”
“고맙소이다. 전군 출발하라.”
“음...... 조금 쉬었다 가는 게 좋을 듯한데.”
“그럴 시간이 없소. 내가 한각 쉬는 사이 백성 만 명이 굶어죽소. 모두 서둘러라! 약탈의 시간이다.”
모용황이 걱정할 정도로 지친 부대가 만리장성을 넘었다.
이제 남쪽엔 넓고 넓은 평지만 존재한다.
영원성의 마지막 명장 원숭환을 실각시킨 만주족의 뒤치기.
하북지역이 만주족에게 무한 약탈당하면서 명나라는 내부반란이 일어나고 결국 멸망하게 된다.
그걸 조선군이 직접 일으켰다.
어차피 식량이 필요하다.
명나라도 무너뜨릴 겸 식량도 뺏는다.
곽재우는 두 달에 걸쳐 요하 유역을 쓸어내며 북진했다.
백성들에게 요서로 맨몸으로 도망치면 안 죽인다고 공고했고 요하에 있는 조각배는 일부러 쓸지 않았다.
요동반도부터 도망치고 도망친 백성들은 일부는 성에 숨고, 일부는 강을 건너 요서로 갔다.
식량하나 없이 맨몸으로 쫓겨난 백성들을 반긴 건 가난과 굶주림이다.
메뚜기 떼에 털리듯 탈탈 털린 요서지방은 이미 식량이 한계에 달해 백성들이 군량창고를 습격하는 폭도로 변하기도 했다.
한편 북쪽으로 간 백성들은 심양과 요양에 모여들었다.
요양에는 요동의 제왕 이성량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견된 이여송과 위화도 전투에서 일군을 이끌던 이여백의 아버지이며 40년간 여진과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한 명나라 300년 최고의 명장이다.
실제 역사에서 굶주리고 굶주리던 만주족은 이성량이 살아있을 땐 반기를 들지 못하다가 그가 죽은 다음해 곧장 개국을 선포했다.
이성량은 나이가 85세를 넘겨 걷지도 못한다.
누운 상태로 상황을 보고 받고 쫓겨 온 백성을 편제했다.
위화도에서 도주에 성공한 이만여 명의 병사와 기존 병사, 백성을 합쳐 이십만 군세를 만들었고, 요양과 심양, 푸순 세 개 성에 나눠 배치해 방어진을 형성했다.
급히 편제했지만, 이성량의 명성과 휘하 명장들의 지휘 하에 부대는 빠르고 단단히 편성되었다.
순식간에 이십만 병력을 만들고 무장시킬 수 있는 힘.
이게 대국의 저력이다.
이에 반해 요양성 앞까지 온 조선군은 고작 35000명.
이곳에선 수군의 지원도 받지 못한다.
작전계획 상 초원기사단이 만리장성을 넘을 시기다.
곽재우는 요양성 앞 천보 거리에 진을 치고 명령했다.
“전군!”
“예!”
무한히 승리하고 무한히 약탈하며 사기가 하늘 끝까지 오른 병사들이 크게 대답했다.
“땅 파라! 참호 건설!”
“예? 또?”
“참호를 파고 그 앞에 삼중으로 철조망을 친다. 참호를 다 파면 후방에 이단, 삼단의 참호를 만든다.”
“으아악. 또...... 압록강에서 오단 참호까지 파놓고 쓰지도 못했는데......”
“실시!”
“시ㄹ... 실시...”
삼만 오천 공병의 삽질이 시작되었다.
땅을 파고 흙마대를 쌓고, 광해이포를 마대로 눌러 설치하고 철조망을 설치한다.
위화도에서 철조망의 위력을 본 명나라 군은 감히 나오지 못했다.
그 사이 후방에 연속 참호가 만들어지고, 그 뒤에 광해포가 배치되었다.
포병들이 훈련 삼아 한두 발씩 쏴 각을 맞추는 것 이외에 군사행동은 없었다.
8월에 진을 친 조선군은 참호만 죽어라 팠다.
그러길 두 달 여.
“퇴각한다.”
이성량이 깔끔한 결단을 내렸다.
요서지방이 털렸고, 북경 남쪽 하북성 전체가 기병대에 약탈당하고 있다.
북경을 출발해 요서지방 방어에 투입된 도독부 군세는 북경으로 후퇴했다.
새로 황제가 된 주상순은 요동군에 지랄을 했고, 이성량은 조선군을 물리치고 요서지방 약탈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수없이 승리한 이성량이기에 적진을 밀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이성량은 참호와 철조망이 완성된 적진을 공격하는 대신 전군을 후퇴시키기로 했다.
병사 20만과 인근의 백성 30만 명이 강을 건너 요서로 떠났다.
오늘도 참호를 파던 병사들이 삽을 집어 던졌다.
“천세! 이겼다.”
“싸우지 않고, 이겼다. 이겼는데...”
“왜 슬프지. 차라리 쳐들어와줬으면.... 참호 힘들게 팠는데 한번이라도 써먹었으면......”
병사들이 기쁨과 슬픔 사이에서 방황할 때 곽재우는 냉정한 결정을 했다.
“일군은 성을 점령하고 남은 백성을 쫓아낸다. 이군은 남쪽으로 흩어져 추수한다. 관리가 안 됐어도 적당히 걷을 수 있다. 삼군은 철조망 회수해 정리하고 구덩이는 거치적거리니 메운다. 실시.”
“메워? 메운다고? 힘들게 팠는데? 차라리 남겨서 관광지로 써먹...”
“실시!”
“시ㄹ ... 실시...”
힘들게 만든 마지노선은 관광지로라도 써먹는데 이 참호는 그저 무의미하게 사라지게 되었다.
삼군은 우에스기군 사천명.
사기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조선의 방식은 여전히 모르겠지만... 배신하고 싶군.”
우에스기가 중얼거리자 사나다가 고개 숙였다.
“참호 덕에 전투 없이 승리한 겁니다. 다만...... 저도 돌아가고 싶군요.”
야마토에서 다이묘나 할 걸.
우에스기 카게카츠를 믿고 국적을 바꾼 충성스런 부하 사천명의 눈매가 무섭다.
곽재우가 요양성 앞에 참호를 파던 시기, 이괄의 수송선을 탄 광해는 여전히 멀미로 정신을 못 차리는 이괄을 갈구다가 요하 하구에 내렸다.
호위병과 함께 하구에서 기다리던 모현성이 반겨주었다.
“형 여기야. 여기.”
“어. 그래.”
“여기야. 여기를 파면 돼.”
“응? 파라고?”
“어. 땅파줘.”
모현성이 활짝 웃으며 광해를 부려먹으려 했다.
- 작가의말
“할아버지. 할아버지. 옛날얘기해줘. 위화도대첩 얘기해줘.”
위화도.
2년간 땅만 팠지...
5단 참호를 팠는데 써먹지도 못하고 이겼었지...
“크흑.”
“어? 할아버지 왜?”
“아니 슬픈 기억이 떠올라서.”
“아. 전우가 죽었구나... 그럼 요양성전투 얘기 해줘.”
땅만...
“흐어어엉.”
팠지
분량을 줄이려고 삭제한 양군의 속사정
곽재우 : 적은 최대 20만. 앞에 단단한 방어진을 구축하고 버틴다. 보급이 떨어진 적이 달려들면 승리한다.
이성량 : 전투에 패해 사기가 낮고 쫓겨온 농민을 징집했기에 통제도 안 된다. 버티다가 본국의 지원을 받아 싸운다.
둘 다 명장이니 이런 생각을 하다가 싸움 없이 끝났어요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