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 천년제국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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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여러분 스스로 국가의 주인으로써 자부심을 갖고 살기 위해 꼭 해야 하는 의무가 있소.”
“저항과 감시요.”
“거목을 무너뜨리는 데엔 외부의 태풍보다 내부를 갉아먹는 좀벌레가 더 위험하오.”
노인네들의 목소리가 침중해졌다.
“언제나 독재자의 출현을 경계하시오.”
“당신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할 때 부정한 독재자가 나타나 당신들을 수탈할 것이오.”
“과거 성리학자들은 편안히 수탈하기 위해 당신들을 억눌렀소.”
“사농공상 군신평천 따위의 계급으로 당신들의 당연한 권리를 빼앗고 수탈했소.”
“칸제국의 훗날엔 독재자가 꾸준히 튀어나올 것이오.”
“그들을 막아 칸제국을 온전히 후손에게 넘겨주는 것이 당신들의 역할이오.”
“언제나 두 눈을 크게 뜨시오.”
“부정부패를 감시할 감사원을 제대로 뽑는 걸로 멈추지 마시오.”
“부패 신고에 대한 포상금은 영원하오.”
죄인의 재산을 포상금으로 주면.
“당신들 스스로도 관료와 기업의 불법행위를 감시하고.”
부정부패가 거의 다 줄어든다.
“소득에 비해 세금을 조금 내는 수상한 자를 조사하고.”
탈세범도 거의 다 줄어든다.
“법관이 중립적이 못한 증거를 모아 신고하시오.”
법이 거의 공정해진다.
“죄인의 죄를 신고해 정당한 벌을 받게 하는 건 죄인이 더 큰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고마운 일이고”
하지만 포상금 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이유는.
“죄인의 재산을 몰수해 자신이 갖는 것은 국가에 애국하는 일이오.”
권력자가 부정한 돈을 편히 모으기 위해서다.
“죄를 받게 된 죄인이 불쌍한 게 아니오.”
그 외 부작용은 없다.
“죄인이 부정하게 모은 재산은 본래 선량한 이 여럿의 것이니.”
권력자는 심지어 북한에서 자식이 부모가 공산당을 부정했다고 신고해 부모가 찢겨죽었다는 식의 교육을 반복해.
“당신은 모두를 도운 것이오.”
상호감시를 사회의 미풍약속을 무너뜨리는 악으로 교육하고.
“항상 주위를 지켜보시오.”
부정부패에 대한 신고를 나쁜 것으로 매도하고.
“자기 집에 들어온 도둑놈을 때려잡듯 나라에 발생한 도둑놈을 때려잡고.”
정의로운 내부고발자를 주변인의 욕설과 실업, 재취업 방해 등으로 사회적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도둑놈의 재산을 정당히 획득하시오.”
다른 이들이 부정부패를 보고도 눈감게 만들어 부정부패를 없애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막았다.
“자기 집에 침입한 도둑을 막는 것이 집주인의 의무 듯이.”
모두가 자신의 최대이익을 위해 노력하듯 권력자 또한 손쉽게 큰 재산을 벌기 가장 편한 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나라의 도둑을 잡는 것은 나라 주인의 의무요.”
부정부패와 법의 공정성,
이 모든 걸 막는 포상금 제도가 시행되지 않는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야. 독재자의 국가지. 그래서 현대엔 아직 민주주의가 없고.”
모현성이 중얼거렸다.
“아 정신없어. 두 노인네가 말하는데 추임새 좀 넣지 마.”
광해는 짜증을 냈다.
“하지만 이게 핵심인걸. 민주주의를 열어야지. 얼마나 간단해. 죄를 막고 돈을 번다. 현대처럼 녹음기 동영상녹화기를 모두가 들고 다니는 세상에서 누가 감히 죄를 짓겠어. 부품하청업체의 접대? 건설사와 공무원의 유착? 강남의 그 많은 룸쌀롱 다 망할걸. 웨이터도, 미녀접대부도 모두 신고할 기회만 노리며 증거를 모을 거야. 포상금 하나만으로 모든 걸 막을 수 있어.”
“어. 알았다고.”
“민주주의의 시작은 포상금부터야. 현대 한국은 실패했지만, 칸제국은 할 수 있어.”
“어.”
광해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손짓으로 두 노인을 불렀다.
막판엔 정인홍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이도 많은데 긴 연설을 하려니 힘들겠지.
다음 연설을 이어가려다 광해에게 온 두 노인에게 마력을 넣어 성대를 치료하고 피로를 해소해줬다.
“큼. 큼. 목소리가 좋아졌군요. 감사합니다. 대칸.”
“어. 그래. 잘하고 있어.”
“예 대칸.”
둘은 연단에 다시 올랐다.
“어. 흠흠. 잠시 광해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원익의 농이 음성확대 마법진을 타고 널리 퍼졌다.
“이대로라면 제국은 천 년간 끄떡없을 것인가.”
“아니오. 국가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위험요소가 또 있소.”
“그건 바로 국가예산의 비대화요.”
“우리 예측에 따르면 300년 후 모든 백성은 벌어들인 수익의 7할을 국가에 지불하게 될 것이오.”
“얼마 전까지 광해님 이전 국왕들과 성리학자들이 수탈하던 양과 비슷하게 빼앗긴단 뜻이오.”
한때 성리학이 최고였던 양반이 자기 입으로 저런 말을 하네.
정인홍의 자조 섞인 말이 씁쓸하게 보였다.
“이렇게 많이 가져가는 이유는 부정부패 때문만이 아니오.”
“부정부패를 막고, 기관과 백성의 상호견제가 제대로 작동했을 때도 이리 많이 가져가게 될 것이오.”
“이는 인간의 본성인 최대이익 추구에 공명심, 명예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오.”
모현성이 아이디어를 주고 학자들이 토론했다.
그를 통해 국가가 제대로 운영되어도 세금이 확대될 거라 예측했다.
그걸 미리 막아야 한다.
“향후 뽑게 될 관료는 분명 사회 최고의 지식인일 것이오.”
“입법부 시험 따로, 사법부 시험 따로, 관료시험 따로 뽑고, 치열한 내부 경쟁과 외부 평가, 상호 견제를 통해 현인들이 고위직을 차지해 국가를 제대로 운영할 것이오.”
“그럼에도 문제가 생기는 건 국가는 실패해선 안 되기 때문이오.”
“사회의 기본은 자본주의. 좀 더 정확히는 개인의 최대이익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경쟁하는 경쟁주의 체제요.”
“개인과 기업의 치열한 경쟁 속에 수없이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 어이없는 시도가 있겠지만, 그런 실패가 쌓여 가장 효율적이고 현명한 결과를 도출할 테요.”
“하지만 국가에서 사업을 한다면 실패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하오.”
“안전하게. 위험하지 않게. 실패하지 않게.”
“분명 성공할 것이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것이오.”
“하지만 그래선 아니 되오.”
“타국에선 경쟁을 통해 최고 효율을 찾아낼 텐데 칸제국은 안전하되 비효율적이고 발전속도가 느린 사업만 하게 될 것이오.”
“결국엔 부정부패 없이 국가가 올바르게 기능하더라도 타국에 기술적으로 밀려 못 살게 될 것이오.”
“절대 막아야 하오.”
“국가는 앞서 말했듯 자본의 경쟁이 불가능한 분야, 철도사업이나 의학 같은 공익사업만을 공기업으로 독점할 뿐 나머지 모두를 민간에 맡겨야 하오.”
“국가의 역할은 철저하게 울타리를 치고, 연못 바닥을 평평하게 만드는 일만 하는 것이오.”
“국가는 기업의 활동에 나서지 말고 공정한지, 법을 지켰는지 확인만 하는 역할이오.”
“개인은 국가의 세금사용을 항상 감시하시오.”
“올바르게 집행되었는지, 민간에 맡기면 더 효율적인지, 세금 소모를 줄일 방법은 없는지 항상 지켜봐야하오.”
“처음부터 지켜보지 않으면. 국가는 계속 세금을 늘리게 될 것이오.”
“큰일을 하고 싶은 욕구.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픈 욕구로 결국엔 모든 일에 관여하게 될 것이오.”
“부정부패의 요소 없이도 꾸준히 사업을 늘리게 될 터이니 항상 국가를 감시하시오.”
관료의 부정부패와 기업의 불법행위를 완벽히 막았다고 가정하면.
국가는 개인이나 기업보다
둔하고.
비효율적이고.
발전 속도가 느리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조세 저항이오.”
“저항하지 않으면 국가는 끊임없이 세금을 늘릴 것이오.”
“국가에서 세금을 늘리려 할 때 끊임없이 물어보고 지켜보고 확인하시오.”
“국가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사업인데 다른 국가사업 어디에서도 자금을 뺄 수 없을 때만 세금 늘리는 것을 용인하시오.”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세금을 빼앗으려 한다면 궐기하시오.”
“낫을 들고 일어나 목을 베시오.”
“이건 살인이 아니오. 합당한 혁명이오.”
“세금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미래엔 모든 개인의 수익을 빼앗아 모두에게 똑같이 분배하는 웃긴 나라가 될 것이오.”
“그 나라는 내부엔 모두가 똑같이 살게 되겠지만.”
“연못의 물이 움직이지 않아 고인채로 썩거나.”
“잎과 열매를 틔우지 못하는 거대한 죽은 나무가 될 것이오.”
복지는 중요하다.
사회보장제도는 항상 옳다.
그렇기에 이 안건을 들고 나오면 당선에 도움이 된다.
공산주의는 나쁘다고 교육하지만, 모든 선거의회주의 국가는 공산주의에 가까워지게 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선진국의 세금은 선거의회주의의 선천적 특징에 따라 계속 늘어나고 국가는 성장동력을 잃어 후발국에게 따라잡히고 역전당한다.
지구에 내가 사는 나라 하나만 있다면 공산주의적 분배는 좋다.
하지만 내부경쟁이 사라지고 다른 나라와 경쟁에 밀려 수익이 줄어 못 살게 되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끔찍하다.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외면하는 진실.
그래서 조세저항이 중요하다.
현대 국가가 프랑스혁명의 의의를 자유평등박애 따위의 웃긴 말로 포장하고, 진짜 의의인 재산권 보장, 함부로 세금을 걷을 수 없다는 걸 감추는 이유는 세금을 계속 걷기 위함이다.
여성부가 게임업체의 모든 매출의 1%를 빼앗아 게임중독 치료에 쓰겠다며 세금을 추가했을 때 사람들이 올바른 교육을 받아 재산권의 의미를 이해했다면 민란이 일어나 여성부의 목이 잘렸을 것이다.
칸제국은 미리 공개한다.
재산권과 조세저항의 의미를 심어줘서 프랑스혁명을 미리 방지한다.
“다음 안건은 군대요.”
“군대는 철저한 상명하복을 지켜야 하오.”
“그래야만 외적을 무찌를 수 있지만.”
“그래서 위험하오.”
“군대의 지휘관이 다른 마음을 먹는 순간 제국의 울타리가 제국을 공격할 수도 있소.”
“상명하복 정신으로 인해 장군이 병사들에게 비무장 백성에게 대포와 총을 난사하라 명령해도 병사는 따를 수밖에 없소.”
“수도가 폭도에게 점령당했으니 수도를 탈환해야 한다 말하면 병사는 따를 수밖에 없고, 이 아름다운 한성을 공격하게 되오.”
“그렇다고 해서 상명하복 정신을 버리고 윗선의 모든 명령에 합당한 이유와 증거를 대라 하면 군대는 느려지고 약해지오.”
“강력한 외적에게 패한단 말이오.”
제주도 시민을 학살한건 이승만 정부지만, 실제 실행은 대부분 징집병이 했다.
보도연맹 수십만과 광주 시민을 학살한 건 군대에 끌려온 징집병이다.
이괄의 난은 이괄과 별 접점 없는 평안도군이 윗선의 명령에 따라 한성을 점령했다.
박전희 이구만 모두 일반적인 시민이었던 징집병들을 주축으로 국가에 반역을 일으켜 나라를 뒤집어 삼켰다.
이게 군대의 속성이다.
폭도라고 속이고 죽여야 한다는 명령을 내리면 군대는 따를 수밖에 없다.
상명하복 정신을 버리지 않는 한 이는 언제나 반복될 수 있는 위협이다.
“그래서 병사들은 현명해야 하오.”
“명령에 따라 출동해도 싸움이 시작되면 저게 일반인인지 적인지 분간할 수 있게 되오.”
“그 짧은 순간 저들이 폭도인지 아니면 내가 반란군에 이용되는지 선택해야 하오.”
“장군의 명령을 따르되 장군의 명이 국가에 대한 반역임을 알게 된 순간 병사들은 창을 거꾸로 잡아야 하오.”
“녹봉을 받길 바래 직업군인을 택한 이들은 상명하복을 철저히 따르되.”
“자국의 선량한 백성을 학살하라 명하는 순간 총구를 돌릴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하오.”
“나라를 뒤집어 자기가 권력을 잡으려는 적인지, 아니면 부정부패와 수탈을 못 이겨 낫과 죽창을 들고 일어선 백성인지 구분해야 하오.”
“병사들이 현명해지고, 백성 모두가 현명해져 앞서 말한 모든 안전장치가 올바르게 작동한다면.”
“칸제국은 천년 만년, 아니 영원할 것이오.”
“영원히 부강하고.”
“영원히 너그러우며.”
“영원히 올바를 것이오.”
“그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 안 끝났나?
교장선생님이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라고 하는 거 같네.
광해는 지루해 죽을 것 같았다.
“교육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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