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마카오 전투
순도 100% 픽션입니다
“...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뱃전에 기댄 윤선도가 겨울바다를 보며 노래를 불렀다.
“또 그 노래십니까? 추운데 안에 들어가 계십시오. 이러다 고뿔 걸리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에휴. 잔소리 좀 줄여. 그놈의 잔소리는 진짜.”
수하는 ‘잔소리 제일 심한 게 누군데’ 하며 툴툴댈 때도 윤선도는 멈추지 않았다.
“안에 자리도 없잖아. 온통 건초로 가득차서. 풀냄새에 풀 사이에서 벌레가 너무 많아서 누워있으면 간지러워서 못 살겠다고. 내 자리는 깔끔하게 비워둬야 하는 거 아니야?”
“에휴. 그러게 왜 따라 오셔서. 진짜. 이런 건 우리 천것들이 하면 되는데.”
“됐어. 그보다 천것이란 말은 쓰지 마라. 광해님의 말씀 못 들었느냐? 너희는 나보다 훨씬 똑똑한 인물이라고. 백정을 차별하지 말라 했는데 네 스스로 백정이라고 자신을 깎아내리는구나. 그래선 안 돼. 너부터가 마음을 바꿔. 애초에 내가 성균관에서 죽은 문장을 외울 때 너흰 소를 잡고, 방혈하고, 근육의 결을 따라 나누고, 신선하게 유지하고 가죽을 가공하는 훌륭한 일을 하지 않았느냐? 너희는 나보다 훌륭하고 대단한 지식인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낮추지 좀 마.”
소나기처럼 쏟아 붙는 윤선도의 잔소리에 수하는 빠져나가는 얼을 붙잡고 겨우 말했다.
“염소 십칠 섬에 도착했습니다. 상륙하시겠습니까?”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잔소리에 죽을 뻔했다.
“상륙해야지. 당연히 상륙하려고 왔는데 어째서 물어보는 것이냐? 내가 그저 심심해서 따라왔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
잔소리가 끝나지 않는다.
백정 출신 수하는 예, 아니오, 외엔 어떤 말도 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염소 십칠 섬.
토지 이십 결 정도 크기의 작은 섬이다.
섬마다 모두 환경을 다르게 했듯이, 이 섬엔 콩을 잔뜩 심었다.
콩을 잔뜩 심고 지난해 봄에 염소 다섯 쌍을 내렸으며 1년 8개월간 자유롭게 놔뒀다.
섬의 입구엔 경고문이 서 있었다.
-광해님이 특별 관리하는 섬이다. 허가된 관료 외에 출입을 금한다. 고의로 출입하거나 섬의 동식물에 손을 대는 자는 전 재산을 몰수하겠다. 누구든 출입하는 자를 보거든 신고하라. 몰수한 재산의 반을 주겠다.-
서해상의 수많은 섬을 전부 관리할 수 없으니 스스로 출입을 못하게 막아야 한다.
단순히 하지 말라고 해봤자 다들 고기파티를 할 것이다.
신고 포상제를 해야 막을 수 있다.
“이 섬의 기록은?”
“단군력 2년 3월에 다섯 쌍을 내렸습니다. 지난 해 12월 수컷 스물 일곱 마리, 암컷 서른 한 마리를 확인했습니다.”
“음. 꽤 성적이 좋군. 콩이 번식에 도움이 되는 건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콩과 귀리를 섞어 심은 염소 구섬은 전멸했기에 오는 봄에 스무쌍을 내릴 계획입니다.”
무인도 방목이 무조건 성공하는 건 아니다.
태풍에 다 날아가거나 수리나 매에 죽거나 목숨 건 밀렵꾼에게 잡혀가거나 전염병에 몰살되기도 한다.
“음. 역시 십년을 봐야 하는 건가. 일단 내리자.”
건초를 가득 실은 관선 다섯 척이 해안가에 멈춰 섰다.
쪽배를 타고 넘어간 윤선도는 섬의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배를 보고 도망친 염소들이 섬의 반대쪽에 모여 있었다.
메에에에에에에~
“하나, 둘, 셋, 넷...... 저게 대체 몇 마리냐?”
“어... 음... 대충 사백마리 되는 거 같습니다. 성체 백오십에 자라고 있는 게 이백...... 아니 삼백마리도 넘는 거 같습니다.”
“...... 대박이군.”
“건초가 모자랄 것 같습니다. 배에 실은 것 전부 내려도 한 달 안에 다 먹어치울 것입니다.”
겨울이라 풀이 안 난다.
겨울에 먹이를 가져다 줘야 짐승들이 버틸 수 있다.
“지난 해 육십여 마리가 일 년 사이 사백... 거의 열배로 늘었구나.”
“그렇습니다.”
염소의 숫자를 센 후 윤선도는 섬을 한 바퀴 돌며 환경조사를 했다.
“지난 해 나무가 200그루였지?”
“예.”
“백 그루가 죽었다. 염소가 나무뿌리를 갉아먹었어. 풀을 우선 먹고 먹을 게 없을 때 나무를 먹는 다고 했으니 섬의 풀이 부족 한 거였어.”
“아. 그렇군요.”
“이 섬의 적정량은 서른 마리로 잡자. 성체 서른 마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옮긴다.”
“알겠습니다.”
“잡자. 덩치 큰 놈이 큰 새끼를 낳는다고 했으니 작은 놈은 도축하고 큰 놈 서른 마리만 남겨라. 새끼들은 봄에 다른 섬으로 분산시키고.”
“존 명.”
윤선도는 주상의 뜻에 따라 품종개량을 시작했다.
“그쪽으로 몰아!”
메에에에~
“그물조 준비 해!”
메에~
“절벽 조심해. 어엇 저놈들이!”
메~
“빠르다~”
자유롭게 풀어놓고 기른 염소를 잡는 건 어려웠다.
백정들이 고생하는 걸 보던 윤선도가 앞으로 나섰다.
“후후후. 고생들 하는구나. 현자 모현성공께 받은 특별 무기를 써야겠구나.”
“특별 무기? 아무렇게나 죽이면 방혈이 어렵고 가죽도 상합니다.”
“시끄럽다. 잘 봐라.”
백정들이 섬 구석에 몰아놓은 염소들 앞으로 윤선도가 나아갔다.
윤선도 홀로 전진하자 도망칠 곳 없는 염소들이 긴장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대나무 기둥. 대나무 살. 사이사이 볏짚.
모현성의 지시로 만든 ‘우산’이다.
스프링이 없기에 손으로 밀어 펼쳐야 한다.
염소들 앞에 선 윤선도가 우산 살대를 강하게 밀어 폈다.
촤악!
메엑!
갑자기 우산이 펴지자 염소들이 깜짝 놀라 펄떡 뛰었다.
절반은 놀라 도망치다가 바다에 빠졌고, 절반은 심장에 충격을 받아 네발을 하늘로 뻗은 채 기절했다.
“... 이게 되네?”
모현성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만들었던 윤선도는 감탄했다.
“어서 잡아라. 큰 놈은 다시 놔주고 작은 놈만 도축해라. 저거저거 기절한 채로 떠내려간다. 배 하나 띄워!”
염소들에겐 호환 마마보다 ‘우산’이 더 무섭다.
과하게 번식한 짐승은 도축하고, 전멸한 섬엔 짐승을 채우고, 겨울을 날 먹이를 내려놓는다.
광해축산은 겨울이 가장 바쁘다.
광해가 떠난 이후로 마카오에선 재정비가 한창 이뤄졌다.
배의 정비도 필요하지만, 인원 재편성이 더 복잡하다.
입부의 수군 이만 명과 정문부의 육군 만 명. 여기에 해적출신 항병 이만오천 명이 추가되었다.
이들을 분배해야 한다.
노가 없는 갤리온에 탈 숙련병을 편성하고, 판옥선과 정크선에 나눠 탈 병사를 적성에 따라 분배해야 한다.
적성만으로 나눌 수도 없는 게 조선인과 중국인을 적절히 섞어야 한다.
운 없으면 선상 반란으로 조선인 다 죽을 수도 있다.
해적 출신 대부분은 바닥에서 노를 젓던 노예들이었기에 돛대를 잡을 갑판병이 너무 부족했다.
배를 수리하고 인원을 나눠 각 함의 지휘체계를 갖추는 데 두 달이 걸렸다.
판옥선의 고참 병사들이 정크선의 선장으로 승진하고 항해사로 승진했다.
새 역할을 배우고 새로운 인원들과 손발을 맞추는 훈련이 매일 진행되었다.
판옥선 부대를 이끌 입부와 달리 개떡이는 동남아 해역 전체를 정크선으로 관리해야 하기에 특히 바빴다.
“죽겠네. 진짜.”
함대 지휘관이 와서 도와줘야 하는데 안 온다.
대마도에서 수송대가 와야 하는데 오지 않는다.
식량은 현장보급 한다 쳐도 화약과 포탄은 받아가야 한다.
해상 수송은 정확한 날짜를 가름할 수 없다.
날씨가 안 좋아서, 바람이 반대로 불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한 달씩 빨라지거나 늦어지는 게 예사다.
언제 올지 모를 수송대를 기다리며, 출항준비를 마친 함대는 마카오 앞바다에서 하릴없이 훈련을 했다.
“적입니다. 북쪽에 적!”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았기에 다행히 하루 거리의 적을 빠르게 발견했다.
주강을 통해 명나라 군선 정크선 70척이 주강 하구에 멈춰서고 주강 서안에 육상병력 삼만 명이 내려왔다.
정찰병의 보고를 받은 개떡이는 즉각 명령을 내렸다.
“모든 장수를 불러와라. 판옥선은 전원 탑승하고, 나머지 인원은 섬에 정렬하라.”
말을 마친 개떡이는 밖으로 나가 섬의 가장 높은 언덕으로 올라갔다.
주강을 통해 내려온 적선은 50톤급 정크선들이다.
강에서 활동하는 선박이기에 그보다 크면 운용할 수 없다.
저 정도 크기라면 화포도 약할 것이다.
육상 병력은 하구에 정렬했는데 단순 징집병이 아닌 정규병으로 보였다.
거기에 기마가 수레를 끌어 화포를 옮기고 있었는데 화포의 수가 200문을 넘어 보였다.
“쉽지 않겠는데...”
어느새 달려온 정문부가 적을 보며 중얼거렸다.
장수들과 적진을 보고 있는데 기마가 달려와 적장의 서신을 전달했다.
중국어를 아는 수하가 번역해 읽어줬다.
“광동군 도지휘사사 문양첨이다. 마카오는 대명의 땅이니 감히 대명을 침입한 너희를 벌하겠다. ... 이런 내용입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개떡이가 입을 열었다.
“우린 영길리 군이다. 포도아와 마찰이 있어 침범했지만 이미 해결되었다. 대국과의 마찰을 원하지 않으니 돌아갈 생각이다. 이렇게 적어주시오.”
왜 영국이냐면 스승인 모현성에게 배우길 영국이 가장 사악한 나라라 했기 때문이다.
한자를 모르는 개떡이를 위해 문관이 서신을 작성해 적에게 보냈다.
그 사이 개떡이가 입을 열었다.
“혹여 적이 공격해 온다면 판옥선만 물 위에서 싸우겠습니다. 나머지 모든 인원은 섬에서 막겠습니다. 당장 적이 공격하지 않는다면 홍콩섬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괜찮지요?”
“군사의 말에 따르겠다.”
입부가 가장 먼저 대답하고 배를 찾아갔다.
문양첨은 마카오의 소식을 듣자마자 광동군을 모으는 한편 남경에 소식을 전했다.
모은 정보에 따르면 마카오의 적도는 사만 명 정도인데 바다위에서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 오합지졸 해적 정도로 판단되었다.
멀리 정박한 갤리온과 섬 남쪽에 정박한 판옥선이 보이지 않으니, 화포도 없고 손발이 안 맞는 정크선 함대가 훈련하는 모습은 오합지졸 그 자체였다.
때마침 남경에서 적도를 ‘반드시’ 토벌하라는 명령이 내려왔기에 광동군을 남하시켰다.
오합지졸 해적무리에 화포도 없다.
반면 광동군은 반란 제압과 남월국과의 마찰 등 십여 차례 전투경험이 있는 정예병들이다.
화포를 끌고 마카오 섬 앞에 도착하자 적이 보였다.
기치 정연한 광동군에 비해 적은 복장도 통일되지 않았고, 갑주를 입은 병사도 거의 없었다.
자신감이 차오를 때 적에게서 서신이 왔다.
돌아가겠다고 한다.
위에선 토벌하라 했는데 적이 도주하면 경력에 문제가 생긴다.
문양첨은 참모를 모아놓고 물었다.
“화포의 사거리는 얼마나 되나?”
“홍이포 열문은 언덕 위까지 닿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화포들은 중간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럼 모든 화포를 섬으로 옮겨야하겠군. 오늘이 사리지?”
“예. 한 시진 후면 썰물입니다.”
“곧장 공격한다.”
“존명.”
대명제국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본래 맑은 물이 흘렀던 주강은 이제 인구증가와 산림 파괴, 농경지 증가로 인해 흙탕물이 흐른다.
주강이 실어 나른 흙은 하구에 쌓였고, 마카오섬과 대륙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밀물에도 바다물의 넓이가 이백보를 넘지 않고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사리썰물에는 발목 깊이의 물만 흐른다.
문양첨이 도강하라 명령한 데는 철저한 사전조사가 바탕이 되었다.
또한 오늘이 사리라는 점과 적이 물러나겠다고 한 점도 전투를 서두르는데 한몫했다.
멀리서 행군해온 군대는 휴식 없이 해안에 정렬했고 정오 즈음에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대오를 갖춘 병사들이 걸어서 진군했고 적당히 단단한 모래땅은 발목이상 빠지지 않았다.
금세 섬으로 건너간 병력 2만 명이 도열해 방어진형을 꾸렸고, 뒤이어 이천 마리 말이 포와 화약 등을 끌고 넘어왔다.
사람이 쉽게 건넌 것과 달리 말과 수레는 무게 때문에 푹푹 빠졌다.
특히 수레바퀴가 절반이상 빠지자 속도가 확 줄었다.
그때 섬의 양쪽에서 판옥선이 나타났다.
- 작가의말
현대 마카오는 대륙이지만 이때 마카오는 섬이었대요
걸어서 건널 정도로 얉은 바다만 남은 상태고 차츰 흙이 쌓이며 대륙에 포함됐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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