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대마도 정복
순도 100% 픽션입니다
군대에서 너무 못하는 것만큼 안 좋은 게 너무 잘하는 것이다.
남도포 만호 이준형은 중간만 하라는 교훈을 절절히 되새기게 되었다.
“만호 이준형입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항해사 함영석입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수송성적 1위와 항해사시험 1위가 한배에서 나왔고 개조된 신형 함선을 받았다.
지휘부가 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국왕이다. 광해님이라 불러라. 부담스러우면 가명인 고진우 도원수라 불러도 된다.”
“무산 모현성이다. 니들이 팔아먹으려는 육분의를 만든 현자이자 천재지.”
키 크고 잘생긴 남자와 키 작고 못생긴 남자가 탔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차. 여기에 해먹 걸고 놀아도 되나?”
“옛! 마음껏 이용하십시오.”
이준형은 처남을 힘껏 갈기고 싶어졌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운룡이다.”
“모시게 되서 영광입니다.”
“곽재우다.”
“헉.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경상도 병마절도사 이시언이다.”
“열과 성을 다 받쳐...”
장군이 넘쳐나고 천인장 따위는 발에 채인다.
국왕의 곁에선 모현성과 이운룡, 곽재우 정도만이 대형 지도를 보며 편히 이야기하고 있다.
나머지 장군들은 숨소리조차 죽이며 경청하고 있고, 발에 채이는 천인장들은 신병처럼 뛰어다니고 있다.
하물며 일반 병사들은 어떠하랴. 발뒤꿈치 들고 걷는 부하들이 참 안쓰럽다.
이준형은 다음 시험이 있다면 기필코 꼴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판옥선 한 척당 100명의 병사가 탄다.
판옥선이 400척이니 수병만 4만 명이다. 여기에 육군 1만 명이 추가되었다.
“전군 출항하라!”
이운룡의 명령에 대장선에서 깃발이 올라갔다.
곧이어 한척씩 한산도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한산도를 출발한 400척의 판옥선 함대는 동쪽으로 쭉 전진했다.
동래를 지나서 반나절을 더 전진한 후에 남서쪽으로 흐르는 강한 해류를 만났다.
평저선.
바닥이 넓고 평평하다. 이는 장점이 되지만 단점이 되기도 한다.
바닥이 평평하면 회전력이 좋다. 포를 쏠 때 흔들림이 적다.
잠긴 부분이 얕아 암초지대를 쉽게 지날 수 있다.
반면 선체가 높아 풍랑에 쉽게 뒤집어지고, 해류를 거스르기 힘들다.
돛을 달아도 바람의 힘을 받는 게 약하다.
즉, 가까운 내해에선 좋은 배지만 멀리 항해하기는 힘든 배다.
대마도.
부산에서 보일 정도로 가깝다. 하지만 사이에 강한 해류가 흐른다. 이 해류를 통과해야 한다.
목적지는 대마도 북쪽 끝.
함대가 부산을 지나 동쪽으로 쭉 전진하자 강한 해류를 만났다. 뱃머리는 동쪽을 향하는데 배는 동남쪽으로 흐른다.
“버텨라. 뒤쳐지면 안 돼!”
“해류에 이겨내야 해.”
“선단의 뱃머리를 봐! 방향을 맞춰라!”
“포병. 노병과 교대하라.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평저선은 해류를 잘못타면 걷잡을 수가 없다.
이순신을 빛내기 위해 태어난 충직한 조연 원균은 도주하는 일본 수송선을 무리하게 추격시키다가 12척의 판옥선을 떠내려 보냈고 그 중 7척이 적진에 흘러가 전멸했다.
유난떠는 느낌이 있었지만, 이렇게 했는데도 서른 척의 배가 남쪽으로 몇 천보 흘러내려갔다.
다행히 대마도 북서쪽 연안에 접안할 수 있었다.
“작전은 알지? 빠르게 시행하라.”
“예.”
대마도 북쪽에 도착한 선단은 둘로 나눴다.
절반은 대마도 서쪽을 훑으며 내려가고 절반은 대마도 동쪽을 훑으며 내려간다.
그렇게 대마도를 한 바퀴 돈 후에 영주가 있는 고을로 향할 것이다.
“저기도 쪽배가 있네.”
“나포해라. 함선 하나 보내서 끌고 오게 해.”
저녁 시간 함대는 긴 사선형태로 남하했다.
먼 바다 쪽이 앞서가고 연안 쪽이 조금 뒤쳐져서 간다.
바다에 나와 있던 고기잡이배는 갑작스레 나타난 군함을 보고 놀라 연안 쪽으로 달아나다가 하나 둘 잡혔다.
간혹 먼 바다에 나가서 조선군의 그물밖에 있는 배도 있었다.
그래서 광해가 탄 배가 가장 먼 곳에 배치되었다.
미리 바닥에 마법진을 잔뜩 그려뒀던 광해.
한참 째려보다가 말했다.
“저 배에 군함 한척 보내서 끌고 오거라.”
군함이 가보니 어부 네 명의 심장이 뚫려있었다.
광해의 활약 덕에 조선군의 침공이 본토에 알려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대마도 동남쪽에 위치한 이즈하라.
대마도 다이묘가 거주하며 인구 대부분이 몰려있는 이즈하라를 조선 수군이 조용히 포위했다.
먼 배부터 다가가 손바닥으로 덮듯이 조용히 감싸고 대기하자 대마도 서쪽 해안을 훑고 온 2함대가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 400대의 판옥선이 열을 맞춰 이즈하라로 접근했다.
뒤늦게 조선군을 발견한 이즈하라는 난리가 났다.
부랴부랴 배에서 뛰쳐 내리고 장정을 모으고 부산을 떨었지만, 조선군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이 통제사. 일제포격 훈련이나 하자.”
“예. 전군. 포격을 준비하라. 좌현부터 방포 후 곧장 선회하여 우현방포, 방포 후 곧장 좌현 방포하라. 각 포별로 2회씩 방포할 것이며 가장 정확하고 빠른 함선엔 포상이 내려질 것이다.”
미리 계획된 작전이다.
대부분의 판옥선은 새로 만들어진 것이며 화포도 새로 만든 것이다.
병사들도 전투경험 없는 이가 대부분이며 화포를 실제로 쏘는 훈련도 1년에 한번 할까 말까였다.
위력시위 겸 훈련, 장비점검 등을 겸사겸사 해본다.
약속된 깃발이 펄럭이자 전 함대가 노를 저어 좌현을 정면으로 향했다.
배 옆면을 드러내 포열을 한 줄로 세우는 것. 이를 전열이라 부른다.
콰과과과과광!
판옥선 400척에서 3200발의 화포가 일제히 발사되었다.
선단은 흑색화약이 타며 흰 연기에 휩싸였고, 200보에서 300보 사이에 물기둥 수천 개가 일어섰다.
“선회하라. 빠르게. 가장 빠르게 선회해야 한다.”
8발을 쏜 선박이 제자리에서 노를 저어 180도 돌았다.
우현이 정면을 향하자 미리 준비된 화포가 불을 뿜었다.
콰쾅. 콰광. 콰과광.
이번엔 소리가 일정하지 않았다. 배마다 선회속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탄착군도 흩어졌다.
100보에서 350보 사이에 물기둥이 어지러이 솟았다.
“선회! 빠르게 선회하라.”
다시 좌현이 정면을 향했다.
노병이 노를 젓는 사이 좌현의 포병들은 포 내부를 청소하고 화약을 넣어 다지고, 조란탄을 넣고, 포탄을 넣었다.
콰쾅. 콰앙. 쾅. 퍼엉.
두 번째 포탄을 쏘고 세 번째 포탄을 쏘기까지 3분 이상 걸렸다.
급격한 선회로 너울이 생겨 배가 울렁거려서 탄착군은 더 흩어졌다.
광해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쾅. 콰앙. 쾅.
네 번째 포탄은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게다가 화재가 난 선박도 몇 대 보인다.
장전실수인지 새로 만든 화포가 불량이라 터진 건지는 모르겠다.
언뜻 보기에도 큰 화재가 난 선박이 다섯 대는 넘어 보인다.
광해가 인상을 쓰며 이운룡을 봤다.
“마음에 안 드는군.”
“화약이 귀해서 훈련이 부족했습니다. 앞으로 좋아질 겁니다.”
“당연히 좋아지겠지. 실제 전장에선 이런 일 없게 해.”
“예. 전하.”
차츰 하얀 연기가 날아올라갔다. 저 멀리 보이는 이즈하라 항구는 침묵에 잠겼다.
부산하게 달리던 병사도, 선박에 승선하려던 병사도 모두 멈춰 섰다.
10분 사이에 포탄 만삼천 발이 발사되었다.
자신들을 향해.
이 시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죽을 때까지 술안주로 떠들만한 진귀한 경험이다.
게다가 단 한발의 포탄도 항구에 닿지 않았다. 항구 앞 바다에 뿌려졌다.
이쯤 되면 무슨 의도인지 알 것이다.
광해는 내심 상대가 빨리 항복하기를 바랬다.
쓸데없는 전투를 피하려고 훈련 겸 위력시위를 한 것이다.
얼마 후 이즈하라 뒤편 영주관에서 갑옷 입은 사무라이 하나가 말을 타고 달려왔다.
“나는 다이묘 소 요시토시를 모시는 사무라이 고니시 토모히사다. 무력에 자신이 있다면 멀리서 포만 쏘지 말고, 와서 한판 붙어보자!”
미친놈이군.
어차피 일어로 소리쳐서 병사들은 알아듣지도 못한다.
어부를 잡는 과정에서 일어를 습득한 광해와 몇 명만 알아듣는다.
광해는 무시하고 밀어버리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여기 모인 조선군 5만 명은 광해의 무력을 보지 못했다.
그들에게 광해의 무력을 보여줘야겠다.
자신들의 총대장이 강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충성심과 연결된다.
자신이 죽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용병시절 배운 귀중한 교훈이다.
“쪽배를 내려라. 내가 가겠다.”
“안됩니다. 전하. 이런 전투에 나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곽재우가 적극 반대했다.
“있어. 내 무력을 병사들에게 보여줘야지. 통제사는 전 함대를 항구 가까이 접근 시키고, 훈련 피해상황이나 집계해놔.”
“예 전하.”
노 젓는 병사 둘만 이끌고 광해가 바다를 건너자, 고니시 토모히사는 침을 꿀떡 삼켰다.
진짜 올 줄 몰랐다.
어차피 항복은 기정사실.
다만 칼 한번 안 휘두르고 항복할 순 없다.
발톱이라도 보여줘야 쓸모가 있다고 여겨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진짜 오다니. 유리한 쪽에서 일기토를 받아들이는 건 멍청한 짓인데.
이렇게 된 이상 죽인다. 죽이고 나서 항복을 협상한다.
고니시 토모히사가 일본도를 강하게 움켜쥘 때 육지에 올라선 광해가 선단을 보며 소리쳤다.
“나는 너희들의 총대장이며 조선의 국왕인 광해다. 너희를 이끄는 자의 무력을 잘 보도록 해라.”
마력을 섞어 큰소리로 외쳤다. 400척의 군함 전체에서 들을 수 있도록.
무산을 방문했을 때 몇 개의 무기를 만들었다. 길이 2m의 저격용 라이플을 만들었고, 키만 한 대검과 창도 만들었다.
광해는 아공간에서 창을 꺼내 들었다.
철사로 죽이면 너무 쉬우니까.
광해가 토모히사에게 다가가자 토모히사가 입을 열었다.
“나는 쓰시마의 크흑!”
자기소개를 하려는데 광해가 신체강화 마법을 켜고 창을 휘둘렀다.
시체와 대화하는 취미는 없다.
채챙.
옆으로 쓸었을 뿐인데, 칼로 막은 고니시의 몸이 붕 떠서 날아간다.
충격을 줄이기 위해 몸을 띄우지 않았다면 칼과 함께 몸이 쪼개졌을 것이다.
“크흑. 비거업.”
채챙.
광해는 느긋하게 다가가 창을 휘둘렀다. 앉으며 피하려던 토모히사는 횡으로 베는 창로가 바뀌자 칼을 들어 올리며 막아야 했다.
데굴데굴.
무게중심이 내려간 상태여서 몸이 밀려 구를 수 밖에 없었다.
와아아아아~
200보 떨어진 곳까지 다가온 조선군에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광해는 저 소리를 들으려고 귀찮게 몸소 나섰다.
챙. 챙.
창을 무겁게 휘둘러 토모히사가 정신을 못 차리게 굴렸다.
거친 물살에 이리저리 구르는 조약돌이 된 토모히사. 이제 끝이라 생각한 순간 몰아치던 창이 멈췄다.
“헉. 헉. 헉.”
겨우 겨우 일어선 토모히사. 자세를 잡아봤지만, 표정은 이미 절망으로 물들어 있었다.
살기 위해선 항복해야 한다.
하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창이 날아왔다.
아까와 달리 가볍게, 그리고 빠르게.
촤촤촤착.
두 손으로 창을 뱅글뱅글 돌리며 여기저기 베는데 도저히 막을 수 없다.
눈에 보이지도 않게 빠르고 무기로 막으려 갖다 대면 창로가 변하며 갑옷을 건드린다.
목을 한번 찌르면 끝나는 대결.
하지만 끝나지 않는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창은 토모히사의 갑옷을 해체했다.
촥. 촥. 촥.
사과껍질을 벗기듯 갑옷이 벗겨진다.
움직이든 말든, 막으려 하든 말든 똑같다.
능욕 당하던 토모히사가 두 팔을 늘어뜨리고 항복을 외치려 했다.
스팟.
입을 벌리던 토모히사의 목이 분리되어 하늘로 날았다.
“와아아아아아~”
조선군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광해의 창술은 완벽했다.
“보았느냐! 이것이 고구려 시대 당나라를 무찌른 요동창법이다. 너희 모두에게 공평히 가르쳐 주겠다. 나 조선의 국왕이 약속한다. 너희는 앞으로 세계 최강의 창술을 배우게 될 것이다.”
와아아아~
군대의 충성을 얻어야 한다.
명나라 신하라고 생각하며 사는 성리학자 10000명을 얻는 것보다 군대의 충성을 얻는 게 더 도움이 된다.
영주성에 서 있는 대마도 다이묘 소 요시토시.
일기토가 진행되는 사이 가까스로 병력 천명을 모았다.
대부분 훈련 따위 받아본 적 없는 백성들이다.
좁은 영주성에서 수성하며 버텨야 한다.
상대의 공성기술이 형편없어서 막으면 좋고, 못 막더라도 버티다보면 항복했을 때 대우가 좋아진다.
버티다가 야마토를 지키는 신의 바람, 가미가제가 불어줘서 저 선박을 전부 수장시켜주면 승리다.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일기토가 끝났다.
그리고 광해의 외침을 들었다.
본토와 조선 사이에서 중계무역과 줄타기 외교로 먹고사는 쓰시마 도주에게 조선어를 아는 것은 필수다.
“저게 국왕이라고? 말이 되나?”
“저 저 저...... 저자는 국왕이 맞습니다. 한성 종교행사장에서 똑똑히 봤습니다. 막 기적을 행하던 모습을 똑똑히 봤습니다.”
곁에 있던 참모가 소리쳤다.
조선과의 화친을 교섭하기 위해 한성에 보냈다가 아무 성과 없이 돌아온 참모가 조선의 국왕을 알아봤다.
“응? 정말? 왕이 일기토를 한다고? 미친 건가?”
저자만 잡으면 승리한다.
영주성에서 달려가면 한 다경. 배에 탄 조선군이 넘어오려면 한식경.
조선군이 붙기 전에 달려들어 잡으면 전쟁이 끝난다.
무위가 뛰어나 보이지만, 그래도 천명을 이길 순 없다.
“전군 돌격! 저놈이 조선의 국왕이다. 저놈만 사로잡으면 전쟁에 승리한다. 전부 돌격하라!”
좁은 성문이 열리고 병사들이 무질서하게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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