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코코넛 작전
순도 100% 픽션입니다
정충신의 초원기사단이 오고 네 달 후 박승종이 이끄는 후발대가 왔다.
호위 기병 2만에 보병 1만, 수레 6000량을 끌고 온 보급대다.
거리가 워낙 멀기에 호위병도 많이 필요하고, 한 번의 수송량이 기차 한대가 옮기는 양에 불과하다.
철로가 연결되었다면 이것의 열배를 매일 수송할 수 있을 텐데.
“쯧. 역시 철로부터 깔고 점령해야 하는데.”
“송구하옵니다.”
“자네 잘못이 아니야.”
모현성놈의 욕심 때문에 서두른 거지.
우크라이나 쪽은 거의 정리되었다.
정충신의 초원기사단은 가는 곳마다 환영받았고, 뒤이어 로마제국과 오스만이 폴란드를 치면서 우크라이나를 향한 위험요소가 사라졌다.
언어와 문화적 동질감만 심어주면 된다.
수탈이 가장 심했던 곳이니 세율 30퍼의 은혜를 받아들이면 쉽게 충성할 것이다.
칸제국군은 동쪽으로 향했다.
흑해와 카스피해 북단을 연결하는 땅.
러시아의 땅이다.
러시아. 현재는 루스 차르국이라 불린다.
넓은 대지에 낮은 인구밀도를 갖고 있으며 지방에 대한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느슨한 봉건왕국이다.
즉, 차르의 직속 병력 2만이 체르노젬에서 무너진 이후 각 지방의 병력을 모으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모으려 해도 모이지도 않는다.
과거 몽골이 칼가강 전투에서 동유럽 연합군 8만을 전멸시켰을 때도 20년 후 2차 침공 때까지 동유럽은 예전 병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덕분에 2차 침공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수송대가 밟고 온 땅을 그대로 돌아가는 길.
러시아의 저항은 없었다.
전투 없이 아스트라한을 점령하면서 칸제국의 영역은 카스피해에 닿았다.
볼가강 하류 아스트라한에서 병력을 모으고 오랜만에 사열식을 했다.
척.척.척.척.
“받들어 총!”
“충!”
보병 3만과 기병 6만이 아스트라한 시내를 한 바퀴 돌고 대칸 앞으로 와서 총을 세워 경례한다.
중국이나 북한이 하는 듯한 그런 사열식이다.
그걸 본 광해는.
“왜 이런 짓을 시키냐? 너 군대 안 가봤지? 쟤들이 속으로 얼마나 욕하고 있을지 눈에 선하다.”
이래서 미필은 안 돼.
“이거 형 보라고 하는 거 아냐. 아스트라한 투르크 족 보라고 하는 거야.”
굳이 식량을 써가며 주변 인구를 끌어 모았다.
10만 병력이 발소리 맞춰가며 걷고 수백문의 화포를 끌고 축포를 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북한이나 중국의 열병식이 왕을 위해 하는 거 같아? 자국 시민이나 외국첩자 보여주려고 하는 거잖아. 이것도 마찬가지야. 소문이 퍼지면 반란을 일으키는데 한번쯤 망설이겠지.”
그랬군.
손해가 더 큰가. 이득이 더 큰가.
손해라 봤자 병사들 짜증내는 정도의 손해이니...... 수만 번 해도 상관없다.
나만 아니면 돼.
“형 차례야.”
“어.”
광해가 그려놓은 화려한 마법진이 불을 뿜었다.
수십 수백개의 마법이 하늘을 날고 펑펑 터진다.
위협적인 마법으로 신의 힘을 보여주려 했는데 하다보니 불꽃놀이 하는 것 같다.
와아아.
영광...
빛이 있으라.
어설프게 퍼지고 있는 광해소망교가 확연히 새겨졌다.
“다음 순서이옵니다. 이번에 전역하는 보병 3319명에 대한 축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전역자를 일일이 황제가 챙기진 않는다.
다만 이번 전역자는 좀 특별하다.
“이상의 병사들은 지난 16년간 나의 오른팔로써 왜, 명, 남방해역, 지브롤터 등에서 훌륭히 작전을 수행하였고...”
서류상의 문제로 지브롤터까지 노 저어 온 갑사들이 전역한다.
“... 이에 대한 포상으로 본인과 그 자식에 한해 국가유공자의 지위를 주며 각종 세제혜택과 거주지역 선택권, 광해산업 우선 고용 등의 혜택을 준다. 전역 축하한다.”
와아아아아~
갑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미쳐 날뛰고, 주위의 군바리들이 꽃가루를 뿌린다.
예쁜 여자를 동원하는 게 그림은 좋겠지만, 그런 후진 정책은 앞으로도 쓸 생각 없다.
갑사들은 귀환하는 수송대 2만 병력의 호위를 받으며 빈 수레를 끌고 동쪽으로 간다.
카자흐 동쪽에서 기차를 탄 후 서칸 곳곳을 돌며 전역행사를 한 후에야 진짜 자유의 몸이 된다.
한 재산 챙겼으니 다들 불만은 없겠지.
“남쪽으로 간다!”
임경업이 선언했다.
“아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서쪽으로 가야 세발권역(파나마)에 닿지 않습니까?”
쿠바섬 하바나에서 서쪽으로 가야 칸국의 영역과 만난다.
남쪽으로 가면 남미를 한 바퀴 돌아 네발권역(칠레)까지 가야 칸국의 영역이 있다.
“잘 생각을 해 봐라. 대칸께서 모시려면 따라오라고 해서 우린 따라갔다. 내심 너희들은 고국에 돌아가고 싶어서 합류했고. 그런데 벌써 1년이 넘었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우린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데.”
“우리 입장이야 그렇지. 하지만 군부에서 보기엔 탈영처럼 보이지 않을까?”
“아.”
임경업과 함께한 갑사들의 말문이 막혔다.
“우리는 이미 많이 늦었다. 그러므로 한성에 돌아간 후를 생각해야 한다. 군대를 탈주했다가 돌아온 탈영병이 되느냐 아니면, 영웅이 되느냐.”
“영웅? 영웅이 될 수 있습니까?”
“그렇다. 우린 포롱이를 구한 영웅이 되는 거다.”
“포롱이?”
“철선의 이름이다. 내가 지었다.”
8000톤급 선박에 포롱이란 이름이 붙어졌다.
원래 이름이 있었지만, 임경업은 제멋대로 부른다.
임경업이 어린 시절 키우던 개 이름.
“대서양 한가운데에서 자침의 위기를 겪은 포롱이를 이 어깨로 노 저어 끌고 온 영웅. 사내대장부로 태어났으면 영웅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아니 그거야 세발마을에 가서 설명하면 되지 않습니까?”
“거기까지만 옮기는 게 무슨 영웅이란 말이냐? 한성까지 노 저어 끌고 가야 영웅담에 기록되지 않겠느냐?”
“에엑? 고작 그런 이유로?”
“시끄럽다. 남자라면! 할 수 있다! 가자 남쪽으로!”
남자라면 이론은 무적이다.
갑사들은 지휘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만약 다른 갑사들이 한성으로 이동해 전역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할 테지만 다행히 소식이 전해지진 않았다.
임경업과 남자들은 8000톤급 포롱이를 끌고 남쪽으로 항해했다.
바람이 적당해 불어 판옥선의 어설픈 돛으로 항해하지만, 큰 철선을 끌기 위해선 노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뿌우우~
대양을 오가는 함선을 만났다.
깃발신호를 한 후 철선이 다가왔다.
“거 고장난거유? 도와줄까유?”
“시끄럽다. 우리의 영웅담을 훼손하려 하지 마라.”
“뭔 소리여? 철선에 묶어서 끌어주면 간단할 텐데.”
“뜻을 세웠으면 끝까지 이행한다. 사내대장부는 오직 외길을 걷는다! 나 2급장군 호위별장 임경업이다. 썩 꺼져라.”
“허허. 거참 알겠수.”
“먹을 것 좀 내놓고.”
같은 칸국함선의 도움조차 거절하고 노 저어 항해하기를 고집하는 임경업.
명에 충성하기로 맹세한 후 국가에 해를 끼치면서까지 평생 명을 위한 스파이짓을 하던 임경업의 옹골찬 성격이 다른 쪽으로 발휘되었다.
이준형과 함영석, 갑사들은 임경업을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광해와 모현성은 아스트라한에서 카스피해를 바라봤다.
“지구 최대의 내해. 호수에 소금기가 쌓인 소금호수가 아닌 지각변동으로 갇혀 만들어진 바다야. 덕분에 바다생물이 풍부하지. 청어가 넘쳐나고, 철갑상어가 넘쳐나. 나중엔 캐비어가 주 수출품이 되는 바다고. 여기서 갑자기 퀴즈.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해역은?”
이 새끼 너무 원패턴인데.
“문맥상 카스피해.”
“에에에에? 형한테 상식이란 게 있긴 한 거야? 당연히 페르시아 만이지. 이란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유에이이 등 축복받은 산유국이 줄 지어......”
쿵.
일단 때렸다.
“이렇게 간단히 걸려들어서 재밌단 말이지. 아니 아니 잠깐. 아 미안.”
계속 때렸다.
“아아. 미안. 잘못했어. 어쨌든. 그럼 쉬운 문제. 히틀러가 꿈꾸는 땅이 있었어. 자기들은 꼭 거기로 가야 한다며 떠들던 곳. 거기가 어딜까?”
“... 페르시아?”
“여기. 당연히 문맥상 여기잖아.”
뿌드득. 뿌드득.
광해는 주먹의 손가락을 풀었다.
개를 잡아보자.
“실례했습니다. 농담하지 않겠습니다. 잘못 했습니다. 어쨌든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어. 2차대전 때 독일이 프랑스를 잡은 순간 유럽 정리가 끝났어. 스페인과 이탈리아, 소련은 동맹이었고, 북유럽과 폴란드, 헝가리는 전쟁 이전에 병합했지. 전쟁발발과 동시에 유럽정복이 끝난 거야. 문제는 전쟁발발과 동시에 독일 해군이 전멸당한 거지. 여기서 독일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였을까?”
“...... 석유?”
“오올~ 맞아. 석유를 가져와야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데 근처에 석유가 없어. 제해권을 빼앗겨서 바다로 운송할 수도 없어. 독일은 육로로 석유를 구해야 했는데 가장 가까운 유전이.”
“여기군.”
“어. 이후 전쟁은 석유를 구하기 위한 타임어택이었어. 비축한 석유가 바닥나기 전에 유전지대를 차지하면 승리고, 차지하지 못하면 패배하는 전쟁. 독일과 카스피해를 잇는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야 진정한 세계제국이 되는 거야. 독일은 전력을 동원해 소련을 공격했고 우크라이나를 안정시키기 위해 천만명을 죽였어.”
“안정시키기 위해?”
“소련이 우크라이나를 먹고 우크라이나 투르크족 천만 이상을 죽였거든. 소련의 목표는 염원이었던 체르노젬의 타민족을 말살해 슬라브족만 남기려는 거였거든.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평야에서 천만 명이 굶어죽은 건 아이러니지. 독일은 그런 투르크족의 분노를 알기에 같은 아리아인이라 치켜세우면서 그들을 위한 복수로 슬라브족을 천만 가까이 학살했고, 이는 투르크족의 환영을 받았지.”
“정치적인 거네?”
“어. 유럽인의 유태인 혐오를 이용하려고 유태인을 학살했고, 투르크족의 호의를 사 점령지를 안정시키기 위해 슬라브족을 학살했어. 나치가 단순히 정신병자 집단이었으면 정권을 잡을 수 없었겠지.”
“고작 그런 이유로 우크라이나에서만 2천만이 죽은 거네.”
“그렇지. 슬라브나 투르크나 피가 섞여 유전적 차이는 없고, 서로 섞여 살며 문화적 동질감만 조금 다를 뿐인데 그렇게나 죽었지. 불쌍한 우크라이나.”
씁쓸한 이야기다.
비단 영국만 학살한 게 아니라는 게 안타깝다.
“유태인은 돈을 써서 자신들의 희생을 기리지만, 우크라이나는 그조차 못했지. 돈을 쓰지 않으면 굳이 교육하지 않아. 2차 대전 때 가장 추모 받아야 할 이는 우크라이나인데 말이야.”
추모라......
“그게 의미가 있나?”
“유태인은 언더독 포지션을 받으니 이점이 붙고, 비슷한 일을 반복하는데 망설이게 되겠지. 반면 우크라이나의 죽음 따위 어쩌라고.
어쨌든 카스피해 전체에서 석유와 천연가스가 나오니 이 주변국은 모두 산유국이지. 그래서 현대 미국이 공들여 작업하는 지역이기도 해. 투르크매니스탄-아프가니스탄을 연결해 파이프를 놓거나 터키-아제르바이젠을 연결해 파이프를 놓고 싶어 하는데 러시아는 적극 막으려 하고 있고. 미국과 러시아의 힘싸움 여파로 조지아와 체첸 아프가니스탄 등이 매년 분쟁을 겪었고.”
“그래서 먹자고?”
“먹고는 싶은데...... 석유를 빼면 큰 가치가 없는 사막이라...... 석유는 미래자원이니까 당장 이득 될 것도 없고 우리가 확보한 석유는 여기 말고도 많고.”
“계륵이라는 거네.”
“그렇지. 우리가 쓸 석유는 동칸에서만 뽑아도 충분한데, 그렇다고 남 주기는 아깝고. 유전지대를 먹으려면 인구를 보내고 병사를 보내야 하는데 자급자족이 안 되니 지원비용이 어마어마해. 페르시아가 큰 나라인데다 민족문화가 너무 강해서 동화시키기도 힘들어.”
“그럼 버려.”
“싫어!”
모현성이 고개를 힘차게 저었다.
“...... 늘 미친놈 같지만, 오늘은 더욱 미친놈 같군. 너 서칸왕인데 이러면 신하들이 한숨 쉬지 않냐?”
“앗. 어떻게 알았지? 허균이 맨날 한숨 쉬더라. 우헤헤헤.”
“......”
“암튼. 먹기 힘들지만, 버리긴 아까워서 내가 작전을 세웠지. 이름하여 코코넛 프로젝트.”
“......”
“단단한 껍데기는 놔두고 알맹이만 쏙 빼먹는 거야. 이 좁은 바다에 강력한 해군을 집어넣고, 바다 위를 제압하는 거야. 빨대 꽂아서 알맹이만 쏙! 일단 바다를 잡으면 적은 배를 만들 수 없어. 배를 만들 때마다 불태워 버리는 거야. 육군이 잔뜩 몰려오면 바다로 도망치고. 요러면 결국 카스피해를 우리가 먹게 되는 거제. 캬. 멋있다.”
“보급은?”
“청어. 평소에 청어잡이 하다가 적이 몰려오면 해군으로 변신하는 거야. 해안 주변 평야는 빙빙 돌다가 한 번씩 상륙하면 피해 없이 제압할 수 있어. 우리가 언제 상륙할지 모르니 적은 결국 해안가를 포기할거야. 그러다 슬금슬금 해안지역 평야를 먹는 거고.”
“넌 그냥 평범한 작전을 세우면 안 되냐?”
지브롤터 댐도 그렇고, 코코넛 작전도 그렇고.
모현성은 특이하거나 환상적인 요소를 넣고 싶어 한다.
“왜? 이상해?”
기분 나쁜 건 이게 가능성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비용은?”
“별로 투자할 것도 없어. 자급자족이 되니까. 청어 잔뜩 잡아서 아스트라한에서 가공해 기차로 실어다 팔면 돈도 벌고. 그러다 필요하면 나중에 석유 뽑으면 되고. 백칠해적단 정리할 때도 됐잖아. 북유럽에 일이년 정도 굴리고 여기다 쳐 박자고. 어차피 선박 건조시간이 필요하니까.”
“배를 건조해?”
“여긴 육지속의 내해야. 바이킹처럼 배를 들고 다닐게 아니면 따로 만들어야해.”
타임테이블도 딱 맞고.
“그래라.”
나라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그냥 하면 된다.
“오케이. 코코넛 작전 시작합니다.”
시작은 아스트라한 해안가에 조선소를 만드는 것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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