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멍청한 적은 아군이다
순도 100% 픽션입니다
“주상 전하!”
강을 건너자 해가 완전히 저물었다.
쉬지 않고 달려온 정춘신과 조선군이 합류하자 강 건너의 만주족은 함부로 건너오지 못했다.
“적입니까? 모두 죽입니까?”
정춘신을 뒤따라온 기마는 백여 기.
모두 죽을 것 같이 숨을 몰아쉬고 있다.
마라톤 경기하듯 뒤따라 하나씩 달려오고 있지만, 너무 지쳐서 싸울 수 없다.
“됐다. 인질은 찾았으니 됐어. 여기서 밤을 지내고 돌아가자.”
적도 아니고, 만주족과 싸울 이유는 없다.
하나둘 늘어나는 조선기마의 호위를 받으며 잠자리를 꾸렸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광해는 계속 사과하는 예서 때문에 짜증이 확 올라왔다.
“내가 비록 친절하거나 착하지는 않지만. 기준이라는 게 있다. 피해자가 미안하면 안 돼. 가해자가 사과해야 하는 것이고, 피해자는 당당히 처벌을 요구해야 해. 만약 피해자가 사과해야 하는 세상이라면 그건 시스템이 잘 못 된 거야. 여긴 나의 세계고 넌 내가 세상을 잘 못 다스린다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죄송. 아. 그게.”
“됐어. 넌 잘못한 거 없고 납치범이 나쁜 짓을 한 거야. 사과는 그자들이 해야 하는 거고.”
“하오나 소첩이 약해서 끌려가서 이 사단이 벌어졌으니 이 죄를 씻을 수 없습니다.”
“아 놔. 그러니까 납치당한 사람은 죄책감을 가지면 안 된대두. 또 사과하면 강 건너에 던져버린다.”
“헙.”
말이 끊기며 침묵이 맴돌았다.
“주상전하.”
정충신이 조심스레 쌀가루를 뭉친 떡과 육포를 준비해왔다.
둘은 천천히 밥을 먹으면서도 침묵을 유지했다.
“적성에 맞더냐?”
많이 축약된 언어를 예서가 알아들었다.
“예. 무산에서 행하던 모든 일이 새로웠고, 광해님의 기적에 감탄했습니다. 계속 맡아 제국을 완성하고 싶습니다.”
광해가 미리 할 말까지 가로채는 예서.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하다.
“아니다. 넌 같이 한성으로 돌아간다.”
“소녀가 여자여서 그러하옵니까? 납치범은 일곱이었습니다. 남자라도 똑같이 당했을 것입니다. 소녀가 부디 이어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부디 제가 주상께 쓸모 있음을 증명케 해 주십시오.”
예서가 반복해서 죄송하다 하는 이유도 무산에서 일을 못 할까봐였다.
광해가 맡긴 일을 이행하지 못해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오바하긴. 내가 곁에 두고 싶어서다.”
“예? 예에에? 예. 알겠사옵니다.”
예서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하더니 홍조를 띄며 고개를 숙였다.
느긋하게 말을 달려 사흘 만에 무산으로 복귀했다.
“예서는 무사하네. 다행이야.”
공단 시설을 둘러보며 돌보던 모현성이 반겼다.
“어. 그보다 여길 맡길 사람을 골라봐. 정 없으면 최명길 시키거나.”
“최명길은 한산도에서 교육 끝나면 내 일 도와야지. 그보다 맡기다니. 예서는 복귀?”
둘의 대화에 예서가 울상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폐를 끼친 기분이다.
“어. 같이 돌아간다.”
“그럼...... 백관들에게 맡겨야지. 세 네 명에게 분산해서 권한을 주면 될 거야. 대신 형이 배신 안하도록 안전장치 좀 만들어주고.”
“그러지.”
“예서를 납치한 적은 이귀와 이영덕, 그리고 해서여진 아탕족이야.”
무산에 있던 모현성이 놀고 있던 건 아니었다.
심문을 통해 적을 추정해냈다.
“여진?”
“어. 가평에서 활동하던 마적단인데 거기 토벌하면서 합류한 것 같아.”
“그 때 도망친 놈들이 여기까지 와서 분탕질 친 거였군.”
“그리고 내부 협력자도 찾았어. 범인은 이괄.”
“이괄? 그놈이 드디어. 역시 반골의 상. 위연 같은 새끼.”
“그런데 조금 애매해. 스스로 와서 자백했는데 자기는 몰랐다는 거야. 이영덕이 대담하게 소망교 인장을 위조해 여기까지 왔고, 왕의 명령인척 보급품과 군마를 얻었다는 군. 스스로 고변한 걸 보니 뒤늦게 문제된 걸 깨달았겠지.”
“야. 어쩌라고. 그놈은 죽여야 해. 봤잖아. 문제 만든 거. 양반의 난 때도 아비를 팔아먹고 목숨을 구걸하던 놈인데. 그놈은 이득을 위해 언제든 배신할 놈이야.”
“형. 솔직히 죽을 죄는 아니잖아. 이괄은 속았을 뿐 솔까 이귀 그놈이 나쁜 거지.”
“후우우. 너 묘하게 집요하다. 됐다. 중한 놈도 아니고. 그냥 쫓아낸다.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건들지 않으마.”
“오케이. 딜. 나도 그 녀석을 따로 쓸데는 없으니까.”
“그보다 명나라에 알려지는 건 막을 수 없겠군.”
광해가 말을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잡을 수 없어?”
“누르하치가 협력하지 않으면 못 잡지. 그 놈은 아직 간보고 있으니. 일단 서신을 보내보마.”
“최대한 늦춰야 하는데.”
“명나라 황제를 죽일까? 그럼 혼란에 빠질 텐데.”
광해의 제안에 모현성이 반대했다.
“놉. 지금 황제는 만력제야. 특히 이시기 만력제는 아예 국정을 돌보지 않아서 신하들은 모두 자기 재산 챙기는데 혈안이고. 이승만 때의 친일파 한국과 같은 상황이랄까. 만력제가 죽으면 오히려 명나라가 강해질 거야.”
“그렇군. 죽이면 안 되겠네. 그럼 납치해서 조선과 잘 지내도록 협박할까?”
“놉. 6대 황제 정통제는 친정을 떠났다가 몽골에 포로로 잡혔어. 당시 몽골군은 포로를 앞세워 관문을 열라고 협상했지만, 명나라는 모든 협상을 거부하고 황제의 친동생을 7대 황제로 앉혔지.”
“헐. 재밌네. 납치범과 협상은 절대로 없다 이건가. 황제를 위해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잡히자마자 바로 버리네. 즉, 황제를 포로로 잡아봤자 아무 의미 없다? 납치는 기각이군. 결국 전쟁을 막을 수 없나.”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
고민 끝에 모현성이 제안을 했다.
“북경을 박살내면 어떨까? 싸그리 불태우는 거야. 가능해?”
“음. 마법진을 일주일동안 준비하고 대충 삼백만 마력이면 가능할지도.”
“헐. 가능하긴 하네. 황제가 죽든 말든 조정이 싹 날아가면 마비되겠지. 만력제가 죽는 건 안타깝지만 시간은 벌 수 있으니.”
“불 지르고 마지막에 만력제만 구해서 빼내지 뭐.”
“오오. 좋은데. 만력제는 꼭 좀 살려줘.”
적국의 멍청한 황제는 같은 편이다.
21세기에 아베가 종신 총리하길 바라는 마음과 같다.
“잠깐. 안 되겠다.”
“응?”
“사람이 죽으면 소망이 이뤄지거나 파괴돼. 북경의 악인들이 죽으면 내게 마력을 주겠지만, 선인들이 죽으면 그들의 행복한 소망을 내가 파괴하는 게 되어서 마력을 뺏겨.”
“엑. 그놈의 슈퍼히어로 병이 진짜. 완전 안 어울려. 뺏기는 양이 많아?”
“아마도. 대개 부모는 자식이 행복하게 살길 바라니까. 한두 명도 아니고 50만 인구가 살잖아. 마이너스가 될 거야.”
“마력이 마이너스가 되면 어떻게 돼? 그 후 채무를 갚을 때까지 들어오는 족족 뺏겨?”
“모르지. 거기까지 안 가봐서. 그런데 그렇게 될 것 같은 느낌이야.”
“그럼 조선의 산업이 다 멈추네.”
“그렇지. 얼마나 뺏길 진 모르겠지만.”
“형. 이거 심각한데. 자칫하면 1년 정도 멈출 수도 있어.”
“기술을 좀 더 풀어. 무산통제는 더 강하게 하고.”
“그래야겠네. 그렇다면 북경불바다 작전도 불가능한가.”
“그렇지. 잘못하면 마력을 모두 뺏긴 상태로 적병을 만나게 돼. 그럼 나라도 죽지.”
“그럼......”
모현성은 광해의 아공간에서 수첩을 넘겨받아 한참 뒤적거렸다.
“찾았다. 이 방법뿐이야.”
모현성에게 최후의 방법을 설명들은 광해.
“꼭 그래야겠냐?”
거부감이 드는 작전이다.
“어. 이거면 확실히 전쟁을 늦출 수 있어.”
“넌...... 나보다 악마구나.”
“크흑. 슬프지만. 내 훗날 만두 만개를 빚어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겠소.”
“웃어넘길 일은 아니다.”
“형. 난 천하통일만 생각할래. 역사 속에 이보다 잔인한 일도 많았고. 난 목적만 생각할 거야.”
“후우. 알았다.”
입에 악취가 나는 것 같다.
“내가 뭐 천사는 아니고. 내키진 않지만, 그건 그대로 하마. 됐고, 기관총 만들 수 없냐?”
“기관총?”
“어. 그것만 있었으면 예서를 납치한 놈들은 다 잡을 수 있었거든. 그랬으면 이런 고민도 안 했겠지.”
“가능은 해. 하지만 기술을 뺏겨. 우리가 기관총을 만들면 그 전투에선 적을 압도할 수 있겠지만 적은 엄청난 신무기에 압도당하면서도 어떻게든 탈취하려 할 거야.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모든 전투에서 승리할 순 없어. 기관총 한 정 정도 뺏기는 피해는 막을 수 없어. 일단 하나라도 뺏기면 적은 똑같이 모방해서 만들 거고 성능은 떨어지더라도 기관총을 카피해내겠지. 일단 무기의 개념을 내주고 나면 우리가 가진 미래 지식이 쓸모없어져.”
“나만 쓴다면? 내 아공간에 넣어놓고 나만 필요할 때 쓴다면.”
“그건 가능하지. 대신 형이 직접 만들어야 해. 아직 제련술이 거기까지 안 돼.”
“만들자. 답답해 죽겠다.”
“알았어. 바로 철방으로 가자.”
“고고. 예서야 집에서 쉬고 있어라.”
“예. 전하.”
집을 떠나는 광해와 모현성을 예서는 쓸쓸히 바라봤다.
광해는 괜찮다고 했지만, 예서는 집에 남겨진 자신이 너무 한심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납치당함으로써 자신의 쓸모가 부정당했다.
“사실 흑색화약이나 무연화약이나 폭발력은 비슷해. 순간 기체가 발생해 쇠구슬을 밀어내는 원리는 같거든. 이 시대 화력이 약한 것은 철 제련술의 문제야.”
모현성은 설계도를 펼치며 설명했다.
“블랑기포 봤지? 포 만드는 것 자체가 쇠를 둥글게 구부려 만드는 방식이야. 탄실을 포 뒤에 꽂고 쇠 빗장을 걸잖아. 그 틈이 얼마나 많겠어.”
“자꾸 터지더군. 왜구에 죽은 것보다 폭발로 죽은 게 더 많았으니.”
“포를 쏠 때마다 사방으로 가스가 새지. 그러니 탄을 밀어내는 힘은 약하고 주위로 불꽃이 퍼져 화재가 일어나지. 게다가 주물로 완벽하게 만들더라도 점화의 문제가 있어.”
“점화하는 곳에 구멍이 있으니 거기로 가스가 샌다는 거지?”
“어. 점화하는 구멍도 없애야 해. 그래야 모든 가스가 온전히 탄환을 밀어내지. 그래서 필요한 게 탄피야.”
“사방을 탄피로 막아 가스가 탄환으로만 집중되게 만든다?”
“그렇지. 원리는 그래. 그리고 흑색화약의 가장 큰 문제는 찌꺼기야. 첫발은 잘 날아가더라도 불완전 연소한 찌꺼기가 총열에 달라붙게 돼. 이걸 안 닦아주면 탄환이 나가지 못하고 막혀서 총이 폭발해.”
“그래서 무연화약이 필요하다?”
“어. 연사를 위해선 찌꺼기 없이 완전연소 하는 무연화약이 필요해. 이 두 가지 원리만 알면 돼. 형이 만들건 탄피와 탄환을 눌러 만들 프레스기야.”
모든 과정을 이해한 광해는 프레스기를 만들고, 설계도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맥심 기관총을 만들었다.
“이왕 만들 거 세 정 정도 만들지?”
“응? 전쟁에 못 쓴다며.”
“형이 참전할 경우는 써도 되겠지. 세정이면 전쟁사가 바뀔거야.”
“아. 확실히 그렇군. 대신 이 총을 사용하면 그때마다 마력이 제로가 되겠네.”
“아마도. 너무 강한 화력 때문에 적이 착한지 나쁜지 구분하지 못 할 테니.”
“내 마력......”
과학문명을 발전시킬수록 마법에서 멀어지는군.
“끝. 기관총은 형 아공간에 넣어두고, 탄환은 여기서 만들어서 수송해야지. 무연화약은 내가 만드는 게 나으니까.”
“그래라. 당장 쓸 것도 아니니.”
기관총을 다 만들고 주위를 둘러봤다.
철방 한켠에선 두꺼운 쇠기둥 중앙을 드릴이 맹렬히 회전하며 파고 있었다.
“광해포?”
“어. 이백 문 완성되었더라. 예서가 참 일을 잘했어.”
쇠기둥 중앙을 파서 원통으로 만든다.
주물보다 단단하고 균일한 대포가 된다.
얇은 판을 적당히 구부려 만드는 이 시대 대포와 비교할 수 없이 강하다.
쇠기둥을 쇠로 깎을 순 없다.
훨씬 단단한 탄소텅스텐 드릴로 깎는다.
텅스텐은 3400도에 녹는다.
철의 녹는점보다 두 배 이상 높고, 금속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덕분에 녹이기도 힘들고, 거푸집을 만들 수 없으니 녹여도 가공할 수 없다.
현재로썬 기술을 훔치더라도 광해 말고는 써먹을 수 없는 금속이다.
텅스텐 드릴로 쇠를 깎아 전보다 향상된 포를 만든다.
그리고 한켠에선 녹은 텅스텐을 탄소 주물 틀에 붓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쪽은 평평하고 다른 쪽엔 충무공의 초상화가 양각된 둥근 주화.
화폐다.
텅스텐으로 만든, 위조가 불가능한 화폐.
모현성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세계를 지배할 가장 강력한 무기다.
“많이 진행되고 있네.”
“어. 늦가을쯤엔 광해함도 완성될 테고. 맞다. 그것도 완성 되었어.”
“그것?”
“어. 와봐.”
광해는 모현성의 안내를 받아 공장 단지 가장 깊은 곳까지 갔다.
높은 담장에 지붕까지 둘러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는 곳.
문을 열자 거대한 괴물이 보였다.
“증기기관차......”
“그래. 학살과 약탈의 시대를 식민지경영의 시대로 바꾼 발명품이야.”
증기기관으로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발명품이 완성되었다.
- 작가의말
아베니뮤 부디 쾌차하시고 영생하셔서 일본총리직을 천년만년해먹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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