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고난의 행군
순도 100% 픽션입니다
마카오를 떠난 입부는 1400톤급 갤리온 한척과 판옥선 이백척을 이끌고 서쪽으로 진군했다.
히히히힝.
새로 받은 갤리온 갑판엔 군마가 가득 묶여있다.
광동군과 전투에서 노획한 군마를 실은 것이다.
건초냄새, 말똥냄새.
“저거 너무 많이 실은 거 아닌가?”
“허허. 최대한 줄인 것입니다. 도축할 때 울던 병사들 기억 안 나십니까?”
육군 지휘관 정문부가 허허로이 웃었다.
오랜만에 말에 타게 된 갑사출신 병사들은 모든 말을 실을 수 없다는 걸 알고 나라 잃은 것처럼 울었었지.
갤리온 뿐만 아니라 판옥선 이백 척에도 군마가 실려서 총 이천 마리나 보유했다.
그 이상은 실을 수 없어서 풀어주느니 도축했다.
“쯧. 바람 강한 날엔 말 때문에 사고 나지 않도록 관리 잘해.”
“병사들도 알고 있습니다. 목숨처럼 관리하고 있죠.”
육상병력의 힘이 자신의 권력인지라 정문부도 그들을 최대한 옹호해 주었다.
해남도를 지난 함대는 열흘 만에 남월국에 도착했다.
통킹만 앞에 정선하자 남월에선 난리가 났다.
판옥선 200척의 전력은 쉬이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모여드는 선박을 보며 백관 구진우가 말했다.
“남월은 절대 쉬이 봐선 안 됩니다.”
광동어를 배웠고, 인도차이나를 담당하게 된 백관 구진우가 입부의 함선에 타고 있었다.
“고려가 몽골에 패하고 식민지가 되었을 때 남월은 몽골과 싸워서 승리했고, 물리쳤습니다. 물론 보급로가 멀어서 쉬이 물리치긴 했어도 이겼고 자주성을 지켰다는 게 중요하죠. 또한 조선이 명나라의 개가 되어 똥을 핥아먹을 때도 남월은 싸워서 독립을 지켜냈습니다. 절대 쉬운 나라가 아닙니다.”
백관 구진우는 사회 불만이 많았다. 그러니 백관에 합류했지.
“안다. 안 싸운다.”
“싸운다면 십만 병력을 쉬이 뽑아낼 나라입니다. 승리한다 해도 민족색이 너무 강해 정복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이겨도 아무 득 없는 전투인거죠. 혹시나 건방지게 나오더라도 조금 참아주시길 바랍니다.”
혹시나 전선이 확대될까봐 모현성에게 신신당부를 받은 구진우가 입부에게 거듭 말했다.
“안대도. 그냥 배에만 있을 테니 마음대로 해라.”
지은 죄가 있는 입부는 백관의 당부를 가장한 갈굼에 부글대며 참을 뿐이고.
백기를 단 소선을 타고 육지로 올라간 구진우가 선물과 서신을 전했다.
조선과 동맹을 맺자는 광해의 서신이다.
거기에 광해산업에서 생산하는 모든 물건을 샘플로 약간씩 넘겨줬다.
-조선은 절대 남월을 적대하지 않을 것이며 광동성과 광서성이 남월의 영토임을 지지함.
-조선과 명의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조선이 명을 공격할 때 남월국이 명나라 남방을 획득하는 것에 지원할 의향이 있음.
-조선의 상점을 세우는 것을 허가해주거나 조선의 상품을 받아 판매할 상단을 정해줄 것.
-조선의 함선이 긴급 보급하게 된다면 적대하지 말아줄 것.
등등 여러가지 제안을 담은 서신이다.
남월 입장에선 아무런 손실도 없는 제안이다.
그들은 조선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상점을 세우는 건 막는 대신 해안에서 물건을 넘겨주면 왕실에서 받아 판매하기로 했다.
추가로 적대국인 참파와 동맹을 맺지 말 것을 주장했다.
구진우는 자기가 받은 권한으로 모두 승낙했으며 조선과 남월의 동맹이 체결되었다.
이 후 함대는 남월 남쪽에 있는 몰락한 왕국 참파를 무시하고 지나쳤고, 캄보디아, 아유타야(태국) 왕국과 교역 동맹을 맺었다.
판옥선 이백척은 존재자체로 무력시위가 되었기에 조약체결이 순조로웠다.
그 후 보름을 더 항해한 함대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끝,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싱가포르는 아직 작은 어촌마을일 뿐이다.
싱가포르에 작은 기지를 설치한 함대는 둘로 나뉘어 팔렘방과 말라카의 포르투갈 세력을 점령했다.
판옥선 이백 척과 기마 이 천기.
입부의 함대는 인도차이나 반도와 수마트라 섬 사이의 좁은 말라카 해협을 꽉 틀어막고 오가는 함선을 공격했다.
기마병을 뿌려 하루거리에서 먼저 확인하니 적이 다가올 때 숨어있던 판옥선이 노를 저어 덮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돛단배가 속도를 받으면 빠르지만, 순간적인 속도나 방향전환은 노가 있는 판옥선이 훨씬 빠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네덜란드 상선 네 척을 나포한 것을 시작으로 반년동안 상선 열댓 척과 갤리온 세 척을 나포했다.
백관 구진우는 주변국에서 광동어를 아는 통역을 구해 하나하나 동맹을 맺으며 자리를 잡았고, 동남아 상단과 거래를 텄다.
보급 받은 광해상회 물건을 쌀과 바꾸니 보급이 부족하지도 않다.
대영제국 동인도회사 무장상선 일곱 척을 이끄는 윌리엄 제임스.
1년 전 영국을 출항한 함대는 도중에 포르투갈 상선 두척을 나포해 물건을 약탈했고, 포르투갈 갤리온의 추격을 성공적으로 피하기도 했다.
벌써 엄청난 이득을 봤다.
말라카 하루거리에서 앞서가던 네덜란드 상선이 공격받는 것을 본 것도 행운이다.
판옥선 200척이 개떼처럼 달려들어 네덜란드 상선을 나포하는 것을 본 윌리엄은 함대를 뒤로 물렸다.
“수마트라...... 왜 굳이 이 사이로 가는 거지? 우린 수마트라 남쪽으로 간다. 저 해협만 피하면 해적 따위 문제도 아니야.”
모험 정신이 가득 찬 윌리엄은 수마트라섬 남쪽으로 함대를 이동시켰다.
섬과 하루거리를 유지하며 동남쪽으로 항해하는데 항해사가 불렀다.
“제독.”
“왜?”
“이상합니다. 섬이 안보입니다.”
“잠깐 멀어질 수도 있지.”
“바람도 불지 않습니다.”
“잠깐 멈출 수도 있지. 바람이란 기다리면 불게 되어 있어.”
행운이 가득했던 윌리엄의 모험은 이 순간 끝났다.
윌리엄은 왜 배들이 굳이 좁은 해협으로 통과하는지 알지 못했다.
닷새 동안 바람이 불지 않아 함대 전체가 멈췄고, 해류는 배를 남쪽으로 서서히 밀어냈다.
바람이 불지 않는 침묵의 바다.
바람 없는 바다에서 함대는 움직이지 못한다.
대영제국 동인도회사 소속 7척의 배는 이 후 백 년 동안 소식이 끊어졌다.
한편 백칠은 정크선 사백 척을 이끌고 곧장 남하했다.
“크하하. 죽여라. 뺏어라.”
“진정해.”
“여자는 죽이고 남자는 강간해라. 크하하하.”
“아. 쫌.”
백칠은 부하들 말리다가 창피해서 고개를 떨궜다.
부끄러운 부대다.
차마 삼족오기를 올리지 못한 함대는 대신 明이라 쓰인 깃발을 높이 들었다.
명나라 해적이 과연 명 이라는 깃발을 쓸지 의문이지만, 원래 정치란 단순한 거다.
나쁜 건 명나라다.
“우리는 대명제국이다! 저항하지 않으면 살려는 드릴게! 켈켈켈.”
사백척의 해적선이 동남아시아에 풀렸다.
일본전선에서 온 이완과 남이흥이 이백 척씩 이끌었지만 주도권은 백칠의 해적단에게 있었다.
섬과 섬 사이를 항해하며 상단을 추격해 배를 나포하고 항구를 덮쳐 배를 빼앗는다.
워낙 섬이 많은 동네니 배가 넘쳐나지만, 섬이 많은 특성상 수백 개 왕국이 난립한 지역이라 이백척의 해적선을 토벌할 여력이 없었다.
해적선마다 광해이포를 두문씩 무장했기에 백병전에서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한다.
고깃배든 상선이든 나포한 배가 백 척을 넘기면 동쪽 마닐라까지 끌고 간다.
그곳에 개떡이의 임시사령부가 있다.
개떡이는 세부와 브루나이 등 서양거점을 점령하고 입부가 나포한 대형상선에 작은 배들을 묶어 조선으로 보내고 조선에서 받은 보급품을 동남아에 분배하고 명나라해적(?)을 쫓아내주는 것으로 지역 부족들의 호감을 사는 식으로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문제는 끝이 안 보인다는 것.
개떡이는 지도에 복잡한 부족명을 적으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한개 나라면 편할 텐데.”
나라가 워낙 많고 저마다 언어가 다르니 통역 구하는 것도 한세월이다.
조선어 - 광동어 - 현지어 - 현지어 순으로 4단계 통역까지 써야 하는 상황도 많다.
서신으로 교섭하면 편할 텐데 언어가 없는 나라도 많다.
-식량 구해라. 최대한. 조선사람 다 굶어죽게 생겼다.
가을이 되자 광해로부터 고난의 행군 명령서가 왔다.
쌀 사오란다.
“아 놔 여기서 더 어떡하라고.”
진짜 답이 없는 동네다.
나오에 카네츠구는 본래도 유명했는데 오사카 방어전에서 대활약하면서 명성이 하늘 끝까지 올랐다.
오사카 번 가신들은 에도 번을 정리하기 위한 부대의 지휘를 나오에에게 부탁했다.
나고야에 방어선을 펼친 에도군의 숫자는 십오만.
공격을 하는 오사카군은 십만.
공격 측의 숫자가 더 적다.
오사카 서쪽을 전부 차지했으니 차분히 전쟁준비를 한 후 공격하면 나고야에서 에도, 센다이까지 좁은 영역만 유지하고 있는 도쿠가와 가는 알아서 무너질 텐데 약혼녀를 빼앗긴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조급증에 군대를 너무 일찍 일으켰다.
정세를 파악한 나오에는 오사카번의 제의를 거절했고 나고야 전선은 지지부진한 소모전으로 이어졌다.
분노한 오사카번에서 나오에를 벌주려 했지만, 나오에는 감히 손댈 수 없는 곳에 취직해 버렸다.
야마토 은행 오사카 본점.
전쟁 후 뚝딱 만들어진 수상한 상점.
조선을 알고 싶은 나오에는 즉시 달려갔고, 광해상점에서 일했던 경력이 인정되어 취직에 성공했다.
간단한 교육을 받고 업무에 투입된 나오에.
“은화 100냥을 맡기면 매달 한 냥씩 평생 돌려받아요.”
“그게 말이 돼? 그렇게 퍼주면 망하는 거 아냐?”
“망하긴요. 여기가 어딥니까? 천황이 보증하고 도요토미 히데요리 공이 운영하는 야마토 은행이잖아요. 못 받으면 태백께서 돌려드릴 겁니다.”
“우와.”
안정적 노후를 꿈꾸는 중년에게 히데요리의 보증으로 연금상품 하나 팔았다.
“매달 한 냥씩 넣는 것도 있어요. 적금이라 하는데 한 냥씩 오년 넣으면 오년 후에 이백 냥을 돌려받아요.”
“아니 어떻게? 그렇게 퍼주는 게 어떻게 가능하지?”
“뭐라더라. 금광 파낸다나. 금광만 개발하면 열배씩 버니까 그거 생각해서 퍼주는 게 아닐까요?”
“우와.”
“빨리 가입해요. 금광 개발 자금 모으는 게 끝나면 상품 판매가 중지된대요.”
“앗. 빨리 사야겠네. 여기 은화 한냥.”
큰 돈을 벌고 싶은 청년에게 적금 상품도 팔았다.
“이봐. 내가 돈이 좀 많은데.”
“그럼 이 상품 어떠세요? 에도 앞바다에 보물선이 가라앉아 있대요.”
“보물선?”
“예. 광해님의 은혜 십만 개를 실은 함선이 에도 앞바다에 가라앉아서 그걸 인양한대요.”
“헉. 십만 개면 대체 얼마야.”
“그러니까요. 그걸 인양해서 팔기만 하면 되는데 돈이 없어서 건져 올리지 못한대요. 돈으로 조선놈 매수해서 끌어올릴 거라던데 투자자가 없으니...”
“그거 내가 합세.”
“아니 나도.”
“내가 먼저야.”
투기꾼들에게 보물선도 팔았다.
“제가 남편이 있는데 미워 죽겠어요.”
옆 창구 직원이 그걸 왜 나한테 말하냐는 투로 짜증내자 나오에가 다가가 손님을 데려왔다.
“그럼 여기 딱 맞는 상품이 있네요. 가장이 죽으면 남겨진 가족의 생계가 걱정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가장이 죽으면 돈을 주는 상품인데......”
“헐. 남편 놈 죽으면 십어......ㄱ”
야마토 은행에는 수십 개의 상품이 있는데 나오에는 특유의 재치로 손님 하나하나의 사정에 맞춰 적당한 금융 상품을 소개해줬다.
하나하나 상품을 팔 때마다 성취감도 있다.
거기에 은행에서 성과급을 주고 매주 일으켜 세워 칭찬해주니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어느새 나오에는 1등 판매원이 되어 상까지 받았다.
물론 단순히 일만 한건 아니다.
‘장롱에 숨어있던 다이묘와 가신의 은이 광해 은행에 쏠리고 있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은이. 그런데 괜찮을까? 5년 후에 저 많은 약속을 지불할 수 있을까?’
은행에 들어온 은은 광해상회로 이동해 식량구매자금으로 쓰이고 있다.
쌀값을 비싸게 부르니 가난한 백성들이 너도나도 쌀을 팔고 있다.
어차피 집에 쌓아놔 봤자 다이묘나 가신의 손짓 한 번에 몽땅 뺏길 식량이다.
은으로 바꿔 숨겨 놓는 게 낫지.
‘부자의 감춰진 은이 가난한 자에게 옮겨지고, 백성들은 획득한 은으로 새로운 활동을 해. 시장이 활기차고 다들 잘 먹고 잘 입게 되었어. 그들은 광해소망교를 퍼트리며 적대국 조선을 칭찬하고 있고. 그런데 이게 무슨 뜻일까?’
나오에는 조선의 활동에 의문을 품고 은의 흐름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저기... 제가 돈을 맡기려는데.”
“아이고. 어서오십쇼. 그냥 맡기면 손해가 크니 이 상품 어떻습니까?”
일단 팔 건 팔면서 생각하자.
나오에는 오늘도 열심히 일한다.
- 작가의말
귀여운 나오에짱
귀여운 입부짱~귀여운 윌리엄 제임스짱죽었어...반전 없음.은유도 없음.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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