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폭군광해일기3 조세개혁, 토지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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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되자 광해의 선언은 전국에 방으로 붙었다.
왕의 뜻이 퍼지자마자 조선 전국이 불타올랐다.
<죄지은 양반과 아전 등은 파주로 와서 외적을 막으면 죄를 없애주겠다.>
<한자 사용을 금하며 오직 한글만 쓰라.>
이 두 가지만으로 불타오를 텐데 거기에 광해는 기름을 퍼부었다.
<조세개혁>
대왕 세종께서는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전분 6등법을, 그해의 풍, 흉작에 따라 연분 9등법을 정하셨다.
헌데 연분을 정해야 하는 모든 지방관은 매해 풍, 흉작을 하하, 최악의 흉작으로 적어 제출한다.
아무리 풍작이 되어도 흉작으로 선언하며 조세를 조금 걷으며, 해당 지방관은 청렴하고 너그러운 선비로 칭송을 받는다.
허나 이게 옳다 여겨지는가.
언제나 흉작으로 표시하면 결국 땅 많은 이에게 유리해진다.
관료의 급료와 나랏일에 세금이 필요하기에 반드시 추가로 세금을 걷어야 한다.
그리고 추가로 걷는 세금은 저항할 힘이 없는 약자에게 부과된다.
너그러운 선비로 칭송받는 지방관은 결국 부유한 이를 더 잘 살게 만들고 가난한 이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
그런고로 대왕 세종의 공법은 폐지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백성을 힘들게 하는 둘째는 토지세가 아닌 공납이다.
토지 일결의 조세가 쌀 네 말이라면 공납으로 내는 양은 서른 말을 넘어선다.
또한 나라에서 요구하는 공납 외에도 각 관아에서 먹을 식량과 사용할 붓과 종이 등을 무한히 요구한다.
토지 많은 이가 많이 내는 토지세와 달리 공납은 가난한 이도 똑같이 내니 가난한 백성을 더욱 힘들게 한다.
그야말로 백성의 등골까지 뽑아먹는다.
그런고로 공납 또한 폐지하겠다.
백성을 힘들게 하는 셋째는 요역이다.
각 지방 관아가 필요에 의해 백성을 불러와 일을 시키는 것이 백성을 힘들게 한다.
지난 해 조선의 요역광산이 수천 군데였다.
그 중 대다수는 사금, 사철광산이다.
사철 사금은 거의 생산되지 않았지만, 지방관은 백성을 불러와 한겨울 찬 물 속에 밀어 넣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가장 큰 이유는......
그런고로 요역 또한 폐지하겠다.
앞으로 모든 백성은 자신이 생산한 모든 산물의 삼 할을 세금으로 낸다.
대신 모든 토지세, 요역, 공납 등을 폐지한다.
향후 군역을 행하는 자는 조정으로부터 정당한 댓가를 받고 군역을 행할 것이며, 각 관아에서 필요해 부르는 요역의 경우도 정당한 품삯을 받고 일할 것이다.
각지의 특산물도 절대 제값을 받고 넘길 것이며 어떤 형태로든 한줌의 노동력을 관에서 요구할 경우 그 관련자 모두를 사형에 처할 테니 마음 놓고 생활하면 된다.
즉, 현재보다 조정에 바치는 세금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이니 모든 백성들은 마음껏 칭송할 지어다.
삼할의 조세는 조선의 모든 백성에게 똑같이 적용되며 과인 또한 삼 할을 세금을 낼 것이다.
1년 10월 21일 조선 임금 광해
양반도 세금을 내야 하는 선언이다.
이미 은결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양반사회에 폭탄이 던져졌다.
거기에 방이 하나 더 붙었다.
<토지개혁>
인간은 났으면 땅을 밟을 권리가 있다.
또한 힘든 농경을 하고자 한다면 농사지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앞으로 출처불명의 땅문서를 가지고 대농장을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하다.
토지는 나라의 것이며 나라에서는 그 땅을 가꾸고 돌봐 결과물을 만들어낼 농민에게 하사하겠다.
땅을 직접 갈지 않는 이가 땅을 소유해 백성의 등골을 뽑아먹는 일은 이제 그만 없애겠다.
나라는 모든 백성에게 살아갈 집터와 농사지을 땅을 보장하도록 하겠다.
토지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에서 하사받는 것이며 죽으면 반납하는 것이다.
분배받은 토지는 상속이 불가능하다.
한번 분배받은 토지는 죽을 때까지 일구지만, 다음 대엔 새로운 농민에게 돌아간다.
직접 땅을 갈 자는 농민, 천민, 노비, 양반 가리지 말고 신청하라.
명년 1월에 신청한 모든 이에게 토지를 하사하겠노라.
다만, 하사받은 토지를 다른 이에게 소작을 줄 경우 본인은 사형에 처하고 삼족의 전 재산을 몰수하겠다.
그러니 직접 땅을 갈 자만 신청하도록 하거라.
그리고 대영지를 가지고 있는 부유한 자들은 증거를 준비하라.
자신이 소유한 땅이 어떻게 자신의 땅이 되었는지 증명하라.
나라에서 땅을 몰수하는 댓가는 충분히 치러주겠노라.
그러니 헛맘 먹지 말고 조용히 기다리도록 하라.
예전보다 나은 내일을 안겨 줄 테니 나 조선의 왕을 믿으라.
1년 10월 21일 조선 임금 광해
조세개혁과 토지개혁.
이는 양반의 모든 기득권을 송두리째 빼앗는 행위다.
게다가 한성에서 파발이 정신없이 왔다.
이항복 등에게 소식을 들은 양반들이 자기들과 관련된 가문에 소식을 전한 것이다.
상국에서 군대를 보내 조선에 응징하려 한다.
국왕이 자신을 믿는 백성들을 군대로 조직해 북쪽으로 보냈다.
현재 한성에는 병사가 천명도 되지 않는다.
정신없이 전해지는 소식 속에 희망이 보인다.
왕을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승산은 충분해 보이는데.
양반들끼리 대화하다보니 희망이 싹튼다.
“상경합시다. 파주로 전부 오라하니 전부 갑시다. 가는 길에 한성에 들러봅시다.”
“백성들은 두고 갑시다. 믿을 수 없는 자들이니.”
“각자 믿을만한 노비들만 모아봅시다.”
소식은 빠르게 퍼져 산으로 숨었던 아전과 양반들에게도 전해졌다.
“저희 아전들도 불렀으니 저희도 따르겠습니다.”
공납 폐지로 손해를 보게 된 상단과 방납업자가 합류했다.
“저희 생존권을 위해서입니다. 합류하겠습니다.”
양반의 분노는 강한 바람에 산불 퍼지듯 조선 전역에 퍼졌다.
방이 붙자마자 양반들이 거리로 나왔고, 지역별로 뭉치기 시작했다.
모인 사람이 늘어날수록 더 많은 이들이 합류했다.
사람이 많아지면 큰 목소리만 들리는 게 이치.
왕에 대해 강한 분노를 토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고, 이는 마치 대세처럼 느껴진다.
“한성에 병사 천명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 숫자가 몇입니까? 저기 안동에서도 만 명 넘게 모였다 합니다.”
“가봅시다. 다들 알아서 무기 드시고.”
“충주 병기창을 내 조카가 지키고 있소. 거기 들립시다.”
분노의 목적지는 정릉 행궁이다.
“전하. 피난 준비가 끝났습니다.”
풀밭에 누워있던 광해는 새끼 고양이를 만지다가 눈을 슬쩍 떴다.
박내관이 허리를 굽히며 보고하고 있었다.
“삼만 명?”
“예. 전부 이주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광해는 교단에 지시해 피난 갈 이들을 선별하라 했다.
한성과 경기지역 전체에 광해소망교가 퍼진 상황이기에 전원 피난은 무리고, 광해의 일에 적극 협조해 양반의 미움을 살법한 이들 위주로 뽑았다.
그 수가 무려 삼만 명이다.
“그래. 내일 바로 출발해. 함흥에서 받아들일 준비하고 있으니.”
“예. 전하.”
박내관이 떠나고 광해는 예서를 바라봤다.
예서는 고양이를 안고 누워있는 광해의 곁에 꼿꼿이 서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예서야. 다리 안 아프냐?”
“예. 안 아픕니다.”
“됐으니 앉아라.”
“괜찮습니다. 전하.”
“왕명이다. 여기 앉아라.”
광해는 예서를 머리맡에 앉히고 허벅지를 벴다.
“전 전하. 대낮부터......”
성리학적 세계관.
그걸 깨면 예서도 좀 변하려나.
“넌 궁금한 거 없느냐?”
“전하께서 하는 건 모두 옳습니다.”
“어. 그래. 그래도 아무거나 물어봐라. 명령이다. 물어봐. 궁금한 걸 물어봐.”
심심한 광해가 떼쓰듯 시키자 예서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고양이가 그리 좋으십니까?”
“응?”
“한가할 때마다 창고 옆에 누워 고양이를 안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고양이가 좋으십니까?”
“질투?”
“아닙니다. 소첩은 질투 같은 거 모릅니다.”
“그래. 믿어주지. 고양이가 좋냐...... 좋지. 새끼 고양이는 항상 옳으니. 봐 봐라. 치유 받는 느낌이지 않느냐. 넌 고양이가 싫으냐?”
좋다고 말하려던 예서는 말을 한번 멈췄다.
솔직하게 말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싫습니다. 털이 날려서 청소와 세탁이 힘들고, 오줌냄새는 지독하고 우는 소리는 애기귀신이 우는 거 같아서 섬뜩합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예서.
광해는 혀를 찼다.
“쯧쯧. 찌들었네. 찌들었어. 아기 같은 순수함을 잃고 세상에 찌들어버렸어. 청소하기 힘들어서 싫다니. 그럼 밥은 왜 먹어. 똥으로 나올 텐데.”
광해가 놀리듯 말하자 예서가 발끈했다.
“하지만. 하지만 전하야말로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응? 내가? 쉴 때마다 이렇게 와서 고양이를 만지는데?”
“전하께선 새끼고양이를 귀여워해주고 만져주지만 딱히 좋아하지 않습니다. 먼저 온 작은 고양이를 배에 올리실 뿐이고 전날 재롱부리던 아이를 따로 찾지 않으십니다. 전하께선 아이들을 귀여워해주지만, 딱 그 뿐일 뿐 따로 말 걸거나 돕지 않으십니다. 그저 귀여워서 곁에 둘 뿐이지 감정을 주지 않으십니다.”
예서는 길게 말하다가 점점 말이 느려졌다.
왕에게 무례를 범한다 느꼈기 때문이다.
광해는 예서의 말에 자신을 돌아봤다.
“맞네. 귀여워서 귀여워할 뿐 딱히 감정을 주지 않았네. 그렇다고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지 않느냐?”
“그럼 오늘 배 위에 있는 새끼고양이가 매에게 물려가 죽는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얘가?”
먀앙.
뼈 없는 작은 생물이 옆에 있는 고양이를 앞발로 툭툭 치며 장난치고 있다.
“죽으면 슬플 것 같아.”
“하지만 없어진 것을 눈치 못 채겠죠.”
“그렇지.”
“그게 딱히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군. 음 고양이라. 섹스 같은 건가.”
“섹스요?”
예서가 아무렇지도 않게 따라 말했다.
뭔지 모르니까 저러는 거지.
예서의 성격상 뭔지 알았으면 얼굴 빨개져서 난리쳤겠지.
“그래. 섹스. 따라해봐. 섹스섹스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가 무엇입니까?”
얌전한 예서가 섹스를 읊조리자 묘하게 흥분된다. 이걸 배덕감이라 부르나.
“남녀간의 성행위. 모현성과 내가 부르는 암호야.”
“예. ...... 꺄악.”
뒤늦게 이해한 예서가 얼굴이 빨개져서 두 손으로 가리며 난리쳤다.
그래도 왕이 베고 있는 허벅지는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게 가상했다.
“고양이는...... 만지면 기분 좋고, 곁에 두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져. 그렇다고 하루 종일 하기는 귀찮고. 의무감 없이 그냥 편하게 만지고 있으면 기분 좋아.”
“...... 주상께 성행위는 그런 것이옵니까?”
“내게 성행위는 하지 않으면 문득 하고 싶어지고, 하고 나면 만족감과 귀찮음이 몰려오는 그런 것. 하고나면 하기 싫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또 하고 싶어지고.”
“그... 그건 좀 슬픈 거 같습니다. 감정이 없습니다.”
“닳고 달아서 그렇겠지. 넌 안 그래? 하고 나면 현자가 되고 그러지 않아?”
현자가 된다라.
예서는 광해의 표현이 시적이라 느꼈다.
“전 안 그런 것 같습니다.”
“하고 나서도 또 하고 더하고 싶단 말이구나. 야하네.”
예서의 볼이 화악 불타올랐다.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그저 주상과 함께 하면 좋다는 그런 뜻이온데 왜 어찌 저한테.”
“알았어. 알았어.”
“정말. 진짜. 그런 게 아니라.”
“알았대두. 이해해.”
예서는 세상 억울했다.
“백관들도 이동할 준비 하고 있지?”
억울해도 왕의 질문엔 답해야 한다.
“...... 예.”
“그래. 마무리 잘 해놓고. 음?”
예서와 농담을 하던 광해는 인상을 쓰며 정신을 집중했다.
“저... 전하?”
“백관 한명이 죽었다.”
백관 각자에겐 마킹 마법을 새겨 놓았다.
시야와 생각까지 교류하는 패밀리어 마법은 마력이 많이 들기에 위치만 알 수 있는 저렴한 마킹마법을 새겼다.
그 연결 하나가 끊어졌다.
“헉.”
“윤춘. 앞으로 일정을 말해봐.”
“예. 전하.”
예서는 등 뒤에 내려둔 자료에서 부랴부랴 윤춘을 찾았다.
“고성에서 오일 더 조사를 합니다. 그 후 한산도로 이동해 정리를 합니다.”
“음...... 한성의 백관을 모두 모아라. 대체자를 보내야 해.”
“예. 전하. 실례지만 일어나겠습니다.”
“어.”
광해가 고개를 살짝 들자 예서는 몸을 일으켰다.
광해는 머리를 풀바닥에 붙이고 고양이를 만졌다.
외궁으로 나가면서 예서는 광해가 참으로 차갑다고 생각했다.
윤춘이 죽자마자 대체자부터 생각하는 게.
- 작가의말
영조시대 조선의 은광, 금광의 수는 전해지는 것만 3000개소 입니다
여기에 철광, 사철광산 등을 추가하면 어마어마하게 늘겠죠
대부분 사금광산이었는데 일하는건 백성들이고 당연히 돈을 받지 못하는 요역이었죠
농사철에 부를 수 없으니 겨울에 찬물속에 들어가 모래를 뒤집어야 했죠
각자 먹을 것을 준비해서 말이죠
관아 입장에선 돈한푼 준비하지 않고 시키기만 해서 결과물을 가로채는 형식이니 겨울동안 노는 백성을 최대한 강물에 밀어넣는 나라였습죠.
조선 개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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