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오사카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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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34명. 부상 82명. 선박 일부 파괴 7척입니다. 대부분 천차총통과 불랑기포의 폭발로 발생했습니다.”
적에게 죽은 숫자보다 화포의 폭발로 죽은 숫자가 더 많다.
이 시대 야금술의 한계다.
통짜 주물을 만들 능력이 없어서 얇은 철판을 철공이 구부려 만든다.
거기에 쇠테를 두르지만 아무래도 내부가 완전 원형을 이루지는 못한다.
쇠구슬도 정확한 규격이 있는 게 아니라 크기가 조금씩 다르고.
철판 일부만 얇아 거기가 터지거나, 조란탄 철 조각이 박혀 찢어지거나, 발사한 쇠구슬이 중간에 덜컥 멈추는 순간 화포가 폭발해 버린다.
“쯧. 무기부터 업글 해라.”
“어. 준비하고 있어. 여름부터 생산에 들어갈 거야. 아. 예서가 해낼 수 있을까?”
“...... 맡겼으면 믿어야지.”
그 순둥이가 잘해낼 수 있으려나.
후나이 항 앞바다에서 이틀 머물렀다.
적의 육상병력이 항구 근처에 포진했지만, 감히 달려들지 못했다.
조선군은 싸우면 이기겠지만 굳이 상륙하려 하지 않았다.
부상자를 치료하고 배를 수리한다.
나포한 적선에서 시체를 치우고 항해할 수 있도록 수리했다.
포로 이천 명을 잡았다.
그들에게 야마토어를 아는 병사가 붙어 광해님의 말씀을 알린 후 발가벗겨 바다에 넣었다.
포로들은 저마다 살기위해 육지를 향해 헤엄쳤다.
4월의 추운 바다에 일부는 죽었다.
제네바협약 따위 알게 뭐냐.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학살을 저지른 놈들이 미래에 정할 규칙 따위 무시한다.
후나이를 떠나 규슈 동북쪽에 가니 입부 이순신의 부대가 삼족오기를 휘날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일본이 점령하지 않은 훗카이도를 제외한 세 개의 큰 섬을 혼슈와 규슈, 시코쿠라 부른다.
세계의 섬은 사이에 좁은 바다를 끼고 있는데 이를 세토내해라 부른다.
육지로 둘러싸여 있기에 먼 바다보다 파도가 약하다.
바람도 덜하다.
나침반이 없던 과거엔 큰 바다로 나갔다가 풍랑이나 해류에 밀려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조업은 육지가 보이는 곳에서 해야 했고, 예기치 못하게 방향을 잃을 경우 동서남북 어디든 육지에 닿을 수 있는 이 세토내해는 신이 준 선물이었다.
수많은 섬이 존재하는 이 세토내해는 오래전부터 일본 어부의 생활터전이고, 전국시대 병사와 식량의 수송로였다.
함대는 세토내해로 진입하면서 북단군과 남단군으로 나뉘었다.
북단군을 이끄는 곽재우는 일본 본토를 북쪽에 두고 동진하면서 항구를 하나씩 점령해 배를 노획했다.
남단군은 입부 이순신이 이끌며 시코쿠 북부를 훑으며 항구를 점령해 배를 노획했다.
두 함대의 사이엔 통제사 이운룡이 50척의 판옥선을 이끌고 연락선을 이용해 간격을 조종했다.
광해가 탄 함선은 정확히 함대의 중심에서 나아갔다.
낚시하고, 회를 뜨고, 술을 마시고.
그렇게 느긋이 놀며 여유를 즐겼다.
“형. 우리 북단군에 가지 않을래?”
“어. 안가. 귀찮아.”
“사람이 왜 이리 꿈이 없어. 이국의 정취도 느끼고 어. 역사 속 쪽바리국도 한번 보고. 어. 전투도 하고. 막 그러고 싶지 않아?”
“전혀.”
“아오. 사람이 왜 이렇게 로망이 없어? 사내대장부로 태어났으면 막 대활약하고 그러고 싶지 않아? 쪽바리들을 쳐부수고! 미녀도 얻고. 맞아. 형 여자 좋아하잖아. 점령하면 그 도시 최고의 미녀를 쟁취하고. 막 그래야지. 음 남자라면!”
미녀는 살짝 땅기는군.
대마도의 소유키가 참 예쁜데.
데려올 걸 그랬나.
“됐어. 귀찮아.”
“아오. 진짜. 형. 백성들의 소망 들어줘야지. 내 소망 안 보여?”
전장에서 활약하고 싶다 - 5460
“전장이라...... 야. 전에도 말했지만, 전쟁은 끔찍한 거야. 내가 살기위해 싸워왔지만, 정말 좆같아. 무기로 사람 몸 헤집는 기분도 더럽고, 기름기 섞인 피가 안 닦여 벅벅대는 것도 더럽고, 친한 이가 죽는 기분도 더러워. 너야말로 꿈에서 깨라. 인간이 왜 전장을 좋아하냐?”
“형은 은퇴한 용병 같은 존재라서 그렇지. 전쟁이야말로 사나이의 로망이야.”
설득이 안 된다.
과거로 오는 게 소망이었던 놈 답게 핀트가 어긋나 있다.
“됐고. 죽지나 마라. 죽으면 못 살려준다. 방어막반지 꼭 끼고 다니고 기습 받아도 살아남는 것만 생각해라.”
“앗! 그거 사망플래그잖아. 잠깐. 내가 주인공이니까 이제 형이 죽는 건가? 아직 죽으면 안 되는데.”
“갑자기 뭔 개소리냐. 그리고 죽어도 니가 죽지 내가 죽겠냐?”
“에휴. 형. 멍청한 소리 좀 자제해 주셈. 형은 의욕이 없고 매사에 놀기나 하잖아. 반면 나는 하루 20시간씩 노력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누가 주인공에 어울리겠어? 형은 소설 초반에 주인공의 성장을 돕는 존재야. 드래곤이나, 늙은 스승, 은퇴한 기사 같은 포지션이지. 반면 나야말로 딱 주인공이잖아. 에휴. 이래서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한다니까.”
그래. 이래야 내 친구답지.
모현성은 제대로 미친놈이다.
“결정적으로 난 잘생겼고, 넌 못생겼지. 주인공 탈락.”
“크흐흑. 사람이... 팩트는 건드리는 거 아니야. 크흑.”
육일 간 전진하는 동안 대형 선박 60척과 중형선박 400척을 노획했으며, 전투는 단 한번도 없었다.
개떡이는 새로 노획한 대형선인 관선을 보며 말했다.
“전쟁이 이렇게 쉬워도 됩니까?”
벌써 일 년 가까이 개떡이를 데리고 다닌 곽재우는 한심하다는 듯 개떡이를 쳐다봤다.
“개떡아. 어떤 마을에 100명이 살고 있다. 그런데 도적 10명이 쳐들어왔다. 넌 어떻게 싸울 것이냐? 몇 명 데리고 나가 싸울래?”
“예? 스무 명 정도면 안전하게 이기지 않을까요?”
“맹장은 혼자 나가 다 죽인다. 범인은 서른 명을 데리고 나가 한 두 명의 희생으로 적을 다 죽이지. 현자는 100명으로 포위해서 터럭의 상처도 없이 승리한다. 너무 앞도적인 차이가 나면 전투가 오히려 발생하지 않는다.”
“아. 이해했습니다. 전력차가 너무 나면 전투 자체가 없어지는 군요.”
“내가 전에 말했지. 가장 좋은 전투는?”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저들도 배 한척 만드는데 엄청난 자금이 들어가는데 싸우지도 않고 도망치다니요. 적극 저항해서 어느 정도 피해를 줘야 다음 부대가 약화된 부대를 이길 수 있겠지 않겠습니까?”
“그건 장군의 마음이다. 넌 어느새 장군의 시야로 전쟁을 보는구나.”
“옛? 예. 감사합니다.”
“칭찬 아니다. 멍청한 놈. 장군의 시야로 전쟁을 지휘하면 신립처럼 패배한다. 장군은 전쟁을 병사의 눈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병사의 눈?”
곽재우의 말에 개떡이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네게 병사 열 명을 데리고 상륙해 적 전원을 죽이라 명하면 어찌할 것이냐. 후퇴는 불가능하다.”
“그......”
“우리가 지켜보지 않고 너에게 명령하고 떠나면 너는 어쩔 것이냐.”
“싸... 워야 하지 않을까요?”
“멍청이. 아직도 장군의 눈으로 보는구나. 그런 명령을 내려봤자 일반 병사는 열이면 열 전부 도망간다.”
“하지만 전투 중엔 패할 수 밖에 없는 전투가 있지 않습니까?”
“허허. 1년이면 될 줄 알았는데 아직 멀었구나. 그래서 지휘관은 병사들의 눈을 가린다.”
“눈을... 가려요?”
“그래. 군마에 눈가리개를 씌워 함정을 돌파하는 것처럼 병사들의 눈을 가린다. 다 죽을 전투여도 열심히 싸우면 살 수 있고 큰 상을 받을 거라 거짓말하고 곧 지원군이 적을 포위해 다 죽일 거라 거짓말한다. 이게 장군의 거짓말이다.”
“정보를 통제한다는 말이었군요. 하아. 잔인합니다.”
“전쟁은 잔인한 것이지. 그래서 지금처럼 안 싸우는 전투가 가장 좋은 법이지.”
곽재우는 말을 흐리며 항구를 바라봤다.
조선병이 왜선에 올라 배를 조종하고 도망친 왜구들은 멀리서 조선의 함선을 바라보고 있다.
양군의 사상자는 전혀 없었다.
함대는 계획대로 동진했다.
하지만 모든 계획은 변수가 발생하며 수정이 필요하다.
“전군 발포하라.”
“입부 우수사님. 총대장께서 불필요한 포격은 금하라 하셨습니다.”
남방군을 이끄는 무의공 이순신의 지시에 참모로 붙은 해운포 만호 양첨이 말렸다.
“저기 왜구의 성이 보이지 않느냐? 조선을 침략한 간악한 자들이 성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적이 눈앞에 있는데 어찌 그냥 지나치느냐. 전군 해안에 접안하고 발포하라!”
“하오나. 부원수의 지시는......”
“한 번 더 말리면 참하겠다. 전장의 장수는 지휘권을 갖는다. 본관의 판단에 의해 저 성을 무너뜨리겠다. 뭐하느냐! 전군 발포하라.”
콰콰콰쾅.
무의공이 이끄는 남방군은 시코쿠섬 해안에 위치한 성채에 2만발의 포탄을 퍼부어 무너뜨렸다.
하도 요란을 떨어서 이운룡의 중군이 다가가 함대를 통제해야 했다.
“입부. 입부 이순신......”
광해가 손으로 탁자를 톡톡치며 생각에 잠겼다.
“왜 그랬을까요?”
모현성이 이운룡에게 물었다.
“글쎄. 내 지휘가 고까운 것일 수도. 충무공 휘하에서는 이인자였고, 정유재란 이후 내가 육지에서 싸운 것과 달리 끝까지 충무공의 곁을 지켰지. 충무공이 전사하실 때도 곁에 있었고, 군을 수습해 노량해전을 마무리하기도 했고, 후임 수군통제사가 되기도 했지. 내 지휘를 들을만한 계급이 아니야. 무엇보다 왜구에 대한 원한이 누구보다도 깊지.”
“그래도 통제되지 않는 인물이 남방군을 이끄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얻은 것 전혀 없이 포탄 2만발을 버렸습니다. 전군은 하나의 손발이 되어 동시에 움직여야 합니다. 교체할 인물은 있습니까?”
“교체할 인물은...... 많지. 하지만, 전쟁 중에 최고 지휘관을 교체하는 건 더 큰 문제가 되네. 포격 훈련 겸 적 성채를 무너뜨렸다는데 명분도 있고, 병사들의 사기도 올라갔다네. 우리야 승리를 직감하고 진군하지만, 잘 모르는 병사들의 입장에선 죽을 곳 찾아가는 기분이라네. 그들의 사기를 올려주지 않았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운룡이 잠시 말을 끌었다.
“무엇보다?”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네. 진정한 충무공의 오른팔 아니겠나? 꿈에도 그리던 왜구 원정인데 불명예스럽게 교체하고 싶지 않다네.”
이운룡의 말은 모현성을 향했지만 실은 광해가 듣길 바라는 말이었다.
이운룡의 부탁.
“난 그릇론이 싫다. 내가 왕이라 해도 총대장은 자네야. 말했던 대로 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뜻대로 해.”
“알겠습니다. 소신이 직접 입부를 만나보겠습니다. 작전 계획을 다시 설명하면 자제할 것입니다.”
“그래.”
해군은 한동안 이운룡이 통제해야 하고, 자신이나 모현성은 자주 합류할 수 없다.
귀찮게 합류하기도 싫고.
광해는 이운룡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동진할수록 바다위에 배가 줄어들었다.
가끔 어부들의 조각배가 혼비백산해 도망갔지만, 전투에 쓸 수 있는 대형선박들은 거의 다 사라졌다.
소식이 퍼진 것이다.
출발한지 열하루 째 처음으로 교전이 벌어졌다.
오사카 앞바다를 남북으로 길게 가로막은 아와지 섬.
섬의 북단과 남단으로 두개 군이 나누어 진출했다.
정찰선을 먼저 보냈는데 섬의 남쪽 뒤편에 적함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콰쾅. 쾅. 쾅.
대형 군함도 몇 대 있어 포격이 날아왔고, 작은 전투선 수십 척이 달라붙었다.
정찰선은 빠르게 후퇴하려 했으나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해류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한 시간 거리 뒤에서 따르던 이순신의 판옥선이 급하게 전진하자 후퇴하는 일본함선.
그 사이 정찰선 일곱 척에 일본측 소선들이 개미떼처럼 붙어 정찰병을 다 죽였다.
“추격하라! 추격!”
“장군. 깃발 신호입니다. 추격을 금지하고 섬을 따라 북상. 합류하라는 지시입니다.”
입부 이순신의 명령에 참모가 반대를 표했다.
“젠장. 저놈들이 동쪽으로 도망가고 있잖아. 넓은 바다로 나가면 잡을 수 없어.”
“그래도 상부의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전투상황을 보고 명령을 내렸을 것입니다.”
“빌어먹을! 우리 병사 백여 명이 죽었어. 잠깐 사이에 백여 명이나 수장되었다고!”
“그래서 더욱 냉정해야 합니다. 해류에 휘말리면 수십 척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순신은 참모 양첨을 쏘아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젠장. 전쟁이 뭔지도 모르는 애송이들이. 육전이나 하던 이운룡 따위가 왕을 믿고 설치는 꼴이라니.”
- 작가의말
오늘은 여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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