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광해님의 은혜
순도 100% 픽션입니다
“전군 출항하라.”
이운룡의 명령에 깃발이 올라갔고, 정해진 순서대로 함대가 출항했다.
판옥선 400척과 소형 정찰선 수십이 5만 병력을 싣고 오사카를 떠났다.
에도는 오사카 동쪽으로 400km가량 떨어져 있다.
함대는 우군 권준을 선봉에 세우고 느긋하게 동진했다.
항구는 전부 비어 있었고, 속도가 빠른 소형 정찰선이 곳곳에 대기하고 있다가 조선군을 보고는 줄행랑을 쳤다.
광해가 능력을 쓴다면 잡을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러하지 않았다.
6일에 걸쳐 항해한 함대는 에도만 입구에 멈춰 섰다.
“난 완벽한 승리를 원한다. 내 모든 능력을 선보일 테니 단 한명도 죽지 않을 전략을 짜봐라.”
광해는 모든 함장 급 지휘관을 모아놓고 말했다.
총 군사인 곽재우가 물었다.
“주상 전하의 능력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능히 천 명을 상처 없이 잡을 수 있다.”
“개인 무력 사용은 금지하겠습니다. 무력과 소망을 읽는 것 말고 다른 건 없습니까?”
“신에게 바람의 권능을 받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바람을 불게 할 수 있고, 적진에 부는 바람과 아군의 바람을 다르게 할 수도 있다. 조선 백성들의 원한이 풀리면 사라질 능력이지.”
“강도는 어느 정도입니까?”
“강한 풍랑정도. 바람이 강할수록 시간이 짧아지고, 범위가 넓을수록 짧아진다. 저기 보이는 에도만 전체에 강한 바람을 불게 하려면 일각을 못 버틴다.”
마력을 쓰면 싹 쓸어버릴 수 있지만 아껴야 한다.
최근 한성에서 죄지은 양반들을 죽이고, 전쟁과정에 원한 맺은 무사들을 죽이며 많은 마력이 들어왔지만 일시적인 현상이다.
평소라면 이렇게 모이지 않는다.
최상급 마정석은 이미 산업의 핵심이다.
비료와 화약을 만들어내는 흙가마솥에 들어가고, 강철을 생산하는 용광로도 마정석이 필요하다.
그 외 여러 산업에서 필수다.
마력이 부족하면 거의 모든 게 멈춰버린다.
아껴야 한다.
곽재우는 고민했다.
해전에서 일각은 포탄을 세 번 발사할 시간이다. 너무 짧다.
“그 외 다른 능력은 없습니까?”
광해는 잠시 고민했다.
적진에만 폭우가 내리면 해전에 굉장한 도움이 될 테지만, 그랬다가는 산불이 날 때마다, 가뭄이 올 때마다 불려갈게 뻔하다.
마력은 항상 부족하다.
“일각 정도 보슬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 대신 다른 능력을 쓸 수 없다. 불덩이 서너 개 정도 던질 수 있는데, 차라리 그냥 선봉에서 싸우는 게......”
“선봉은 안 됩니다. 바람만 가지고 작전을 짜보겠습니다. 순풍 정도면 긴 시간 버틸 수 있습니까? 우리에겐 순풍, 적에게는 역풍.”
“하루 종일도 가능하다.”
“알겠습니다. 다들 모여 보시오.”
작전 지도 앞에 주요 장수가 모여 진형에 대한 의논을 했다.
광해는 그 모습을 보다가 자리를 비켜줬다.
윗사람은 적당히 비켜주는 게 작업 능률에 좋다.
국왕이 대장선으로 오자 항해사 함영석이 잽싸게 술상을 차렸다. 왕을 위한 용상에 앉아 에도만의 경치를 보며 느긋이 술을 마셨다.
“시마즈. 소. 한잔 하세.”
작전 회의에 참여할 수 없는 참관인 둘을 불렀다.
“예 전하.”
조선의 힘을 보여주려 데려온 영주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시마즈 요시히사는 이제 조선군의 힘에 충격을 받았다.
왜군은 전혀 상대가 안 된다.
소 요시토시는 아예 조선에 복속을 청했고.
일본어로 둘과 대화하며 술을 마시는데 멀리서 백기를 단 쪽배가 다가왔다.
사신이 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겠지.
조선군 정찰선이 다가가더니 딱 한명만 싣고 돌아왔다.
“전하께 보고 드립니다. 왜구의 사신이 왔습니다. 사신은 조선 사람인 유정이라는 중으로 선왕으로부터 가의대부에 봉해진 인물입니다.”
유정이라는 이름 들어봤다.
광해는 아공간에서 모현성의 수첩을 찾았다.
“주상 전하를 뵙습니다.”
광해는 앞에 엎드린 중을 봤다.
역사지식이 순수한 광해조차 한번쯤 들어본 유명한 인물.
의병장으로 이름을 날렸다는데 지금 보니 비쩍 마른 대머리 노인이었다.
보살의 길을 펼쳐 부처가 된다 - 15
담백한 소망.
소망의 강도는 15.
유명인치고 놀랍도록 낮은 소망이다.
부처의 길을 포기한 걸까? 아니면 이미 다 내려놓고 부처가 되어가는 걸까?
그에게 딸려 있는 소망은 수천가지다.
대부분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은혜 받은 이들.
몇몇 원한은 쪼잔한 성리학자의 질투로 보인다.
이리저리 종합해보면 훌륭한 인물이다.
“반갑다. 유정? 사명대사? 어떻게 불러야 하지?”
“어떻게 부르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래. 유정. 왜국에 있었나?”
“예. 전하. 덕천가강의 요청으로 와서 불법을 설파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설파가 끝나면 복귀를 원하는 조선 포로를 데리고 돌아가기로 협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화친에 대한 이야기도 논의 중이었습니다.”
말을 마치며 유정은 송구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듣기에 따라서 왕을 원망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 때문에 곤란해졌겠군.”
“연이 아니었던 게지요. 소승은 다시 참화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광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불교도 앞으로 세금을 내야 한다. 아직 발표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때가 되면 이 스님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포로를 구하기 위해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여기까지 온 걸 보면 한성의 성리학자보다 백배는 훌륭한 인물이겠지.
하지만 결국은 마찰이 일어날 것이다.
“술 한 잔 할 텐가?”
잔을 권했다. 유정은 손 사레를 쳤다.
“소승은 아직 수양이 부족해서 계율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술 마시는데 무슨 수양.”
“술기운에 자유로이 행동해도 터럭의 부정이 없다면 해골 물도 술이 될 수 있고, 술도 향긋한 차가 되겠지요.”
확실히 뭔가 있어보이게 말하긴 한다.
유명한 중이라더니.
광해는 홀로 술을 마시며 말했다.
“그래. 일단 서신을 좀 보자.”
유정은 공손히 서신을 꺼냈다.
한자로 된 서신 하나와 일본어로 된 서신 하나.
광해는 누구에게 시킬까 둘러보다가 시마즈 요시히사와 소 요시토시를 보고 멈췄다.
그들이 알아선 안 될 내용이 있을 수도 있기에 직접 읽었다.
-조선 침공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독단으로 벌어진 죄다.
자신은 애초부터 반대했으며 조선에 침공하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조선과 화친을 원한다.
조선인 포로를 전부 송환하고 전쟁의 배상금으로 금과 은, 유황을 선물하겠다.
서신을 읽은 광해는 히죽 웃었다.
조선 수군의 힘을 경험하자 아주 저자세로 나왔다.
그래서 이렇게 성급한 서신을 보냈겠지.
-모든 죄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있다.
이것은 사실이고, 실제로도 대부분의 중신들은 조선침략을 반대했다.
그래도 외교 서신에 적으면 안 되는 구절이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의 후견인 자리를 두고 도쿠가와와 이시다 미츠나리가 싸운 전투였다.
아직 도쿠가와는 히데요리의 후견인이자 부하이며 진영엔 도요토미의 충신들이 즐비하다.
도쿠가와는 그 충신들을 조심스레 쳐내며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왔다.
그런데 그 조심스러움이 깨졌다.
이 서신은 앞선 두 번의 승리보다 값지다.
광해는 시마즈와 소에게 서신을 보여줬다.
소 요시토시는 서신을 읽으면서 가슴이 시원해졌다.
자신이 지난해 조선의 왕에게 보냈던 서신과 같은 내용이다.
어떻게든 조선과 화친을 만들기 위해 에도막부의 입장이라며 이런 내용을 조작해서 보냈다.
그런데 지금 도쿠가와가 그와 같은 내용을 공언해주었다.
반면 억지로 참전했던 시마즈는 임란 때 모든 전투를 헛짓거리로 만드는 쇼군의 태도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둘 다 이 서신을 7장씩 복제해라. 그 편지를 7명에게 7일안에 보내라. 서신을 받은 이에게도 7장을 복제해서 7일 안에 7명에게 보내라 해라. 야마토의 모든 이가 알 때까지. 만약 하지 않으면 심장마비로 죽게 될 것이라는 것도 전해라.”
통신기술이 미약한 이 시대에 소식을 널리 전파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두 영주는 광해의 지시를 곰곰히 생각했다.
시마즈가 입을 열었다.
“국왕께서는 도쿠가와를 무너뜨리실 생각이군요.”
광해는 시마즈를 보며 싱긋 웃었다.
“에도는 시마즈 가의 영지가 될 것이다.”
사명대사 유정은 일본어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광해에게 깜짝 놀랐다.
‘이런 현명한 분이 조선의 국왕으로 오르셨군. 백성에겐 커다란 복이 되겠지만, 과연 유자들이 좋아할까. 오랑캐의 언어를 공부한 것을. 이 자리에 나오신 것부터 무언가 일이 있을 듯 한데.’
아직 한성에서의 일을 전해 듣지 못한 사명대사는 무의미한 고민을 하다가 광해가 고개를 돌리니 당황해서 푹 숙였다.
“잘생긴 얼굴이라 넋 놓고 보고 있군 그래. 덕천가강은 와 있나?”
“예. 하지만 총대장은 쇼군인 히데타다이며 육상병력을 이끌고 있습니다.”
“병력은?”
“대략 4만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수군의 숫자는 알 수 없습니다. 듣기로는 5만을 넘는다고 하옵니다.”
이 정도 정보가 전해지는 건 감안하고 보냈겠지.
“조선의 요구조건을 불러주마. 임진왜란 7년간의 배상, 그리고 지난 수백 년간 자행된 왜구의 해악에 대한 배상을 요구한다. 매년 쌀 구백만석을 30년 간. 추가로 모든 포로와 약탈한 모든 문화재를 돌려줘야 하며 조선에서 파괴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복구할 것.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물러나겠다.”
“알겠습니다.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너무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서 광해가 되레 물어봤다.
“자네는 적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나?”
“받아들이는 게 불가능할 것입니다. 받아들이려 한다면 쫓겨나 죽임을 당하게 되겠지요. 어차피 협상이란 게 다 그런 게죠. 이러다 인연이 닿으면 풀릴 겁니다.”
“하하하. 그래. 그대로 전하게. 아. 그리고 쇼군에게 선물을 주겠네.”
광해는 품에서 조그만 도자기병을 꺼내어 건네주었다.
“그냥 전하면 됩니까?”
“아니. 약이라서 설명서가 필요하다네. 자 여기.”
광해는 ‘광해님의 은혜’의 효능과 복용법이 적힌 책을 건네주었다.
유정은 쓱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안 믿을 겁니다.”
“믿든가 말든가. 참고로 그 약은 한 알 당 쌀 열석에 팔 걸세. 그리고 그 약을 덕청가강에게 주었음을 자네와 친한 영주들에게 퍼트리게나.”
“알겠습니다.”
유정은 담백하게 대답하고 적진으로 돌아갔다.
루이스 페르난도는 포르투갈 상인으로 이미 7년 째 마카오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무장 상선 두 척을 보유하고 있는데 주 교역로는 마카오와 나가사키를 잇는 항로다.
마카오에서 차와 비단, 도자기를 사서 나가사키에 팔고 나가사키에서 은을 받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모은 은을 2년에 한 번씩 포르투갈 본국으로 들어가는 대함대에 실어 보낸다.
이미 세 번이나 은 3톤을 보냈고, 내년까지만 교역한 후 은퇴할 생각이다.
루이스 페르난도는 수없이 방문한 규슈 서쪽 나가사키에 들어갔다가 분위기가 바뀐 것을 눈치 챘다.
“무슨 일 있는가?”
평소 교역을 하던 왜국 상단을 만나 물었다.
“아이고. 조선군이 쳐들어왔습니다. 간악한 놈들이 우리의 모든 배를 나포해 갔습니다. 어부의 1인용 소선까지 전부 빼앗아 갔습니다. 우린 바다에 나갈 수도 없습니다.”
“뭐? 왜국의 무력도 강하지 않나? 전투의 흔적은 없는데?”
“싸우는 것도 정도가 있죠. 나리의 상선보다 큰 배가 백 척 넘게 몰려왔습니다. 배마다 화포가 열개 넘게 있는데 어찌 싸웁니까? 여기 말고도 야마토 전역이 약탈당하고 있다 합니다.”
루이스 페르난도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자신의 함선보다 큰 배가 백 척?
배마다 화포가 열 개 이상?
거짓말이겠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포르투갈 본국이 보유한 모든 군함 수와 비슷하다.
“어서 교역을 끝내세. 빨리.”
일단 도망간다.
루이스 페르난도는 돌아가는 길에 유구국에 들렀다.
특산물이 전혀 없는 가난한 섬.
가끔 보급이나 할 때 들르는 섬이지만, 소식을 얻으려 들러봤다.
거기서 조선의 상회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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