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뚜루 뚜루룻~ 짜잔
순도 100% 픽션입니다
2월이 되자 범죄자가 얼추 정리되었다.
새로 영의정이 된 정인홍을 필두로 조정 관직이 재구성 되었다.
허균은 한성판윤이 되어 한성의 행정을 맡음과 동시에 백관들을 관리했다.
백관은 저마다 적성에 따라 한 분야씩 맡아 사업을 이끌었다.
안보군과 검계가 음과 양으로 지방 정보를 물어오며 각 지방에 파견된 백관이 군현을 장악했다.
조선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광해가 선언했다.
“쉬자! 이제 좀 놀아야겠어.”
“전하.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았습니다.”
정인홍이 딴지를 걸었다.
“가장 중요한 일?”
지난 시월에 사로잡은 상국의 사신들. 그들의 처우이옵니다.“
“아.”
건방지게 나대다가 신벌(?)을 받고 죽은 명나라 사신의 일행들.
양반의 난의 원인이기도 했지.
잊고 있었다.
그들의 처리는 모현성과 대화해 파묻기로 결정했는데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
광해는 이항복을 바라봤다.
“백사 대감.”
“예. 전하.”
“외교란 무엇일까?”
“국가 간의 대화입니다.”
정론이군.
“그럼 외교관의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이항복은 잠시 고민하고 정론을 말했다.
“국가 간 마찰이 일어나지 않고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성품이옵니다.”
“틀렸어. 외교관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애국심일세. 국가의 이익을 위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충성심이 가장 중요하네.”
“아.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이항복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인홍 등 다른 대신들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정부의 요직에 올라 국가를 대표하는 자가 되었다. 자랑스럽겠지. 자긍심도 느낄 테고. 고관답게 인자함도 보이고 호기도 부리고 싶겠지. 하지만 외교관은 그래선 안 돼. 나라를 대표하는 자니까. 외교관에게 필요한 덕목은 강국을 상대로 울며불며 악착같이 매달려 국가의 이익을 챙기는 진상력과 약소국을 상대로 쥐고 패고 쥐어짜서 한 푼이라도 더 뜯는 마귀 같은 마음씨야. 상대국에서 비웃거나 욕해도 다 감당하며 국가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해.”
광해는 말을 마치고 주위를 돌아봤다.
정인홍 등 기존신료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역시 이항복의 생각이 가장 열려있다.
“이항복. 귀관을 명국 상대 전담 외교관으로 임명하겠다. 전쟁을 막아라.”
“예? 전쟁을 원하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아니지. 불합리한 것을 못 참는 것뿐이지 전쟁을 딱히 원한 건 아니야. 막을 수 있으면 막는 게 좋겠지. 광해의 은혜와 양반들에게 몰수한 패물을 뿌려서 최대한 막아봐. 울고불고 매달려서 막아.”
“후우. 어려운 일이군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항복이 한숨을 쉬며 임무를 받아들였다.
광해는 주위를 둘러봤다.
얼추 할일이 끝났다.
“됐지? 나 겨울휴가 간다.”
휴가도 없이 매일 일하는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즐겁게 살려고 일하는 거지, 일에 매몰되어 인생을 놓쳐선 안 된다.
광해는 모현성과 예서를 데리고 궁을 떠났다.
한성에 통신시설을 만들어 허균에게 맡겼다.
한성의 일은 허균과 대화하며 처리하면 된다.
“여기가 철령이야. 여기를 기준으로 서북쪽은 관서지방, 평안도고 동남쪽은 관동지방, 강원도고 동북쪽이 관북지방, 함경도야.”
모현성은 광해에게 말을 바싹 붙어 조용조용 말했다.
둘이 함께 있으면 거의 귓속말로 대화하기에 남자들끼리 남사스러운 소문도 퍼졌지만, 광해도 모현성도 무시했다.
둘이 대화하면 나머지는 멀리 떨어져야 한다.
이괄과 임경업 등 호위병들과 시종들은 멀리 떨어져서 따라온다.
예서만 곁에 설 수 있다.
“철령. 들어본 거 같아.”
“여길 막으면 함경도 전체가 막혀. 즉 함경도는 고립시키기 딱 좋은 땅이지. 거기에 인구도 얼마 없어. 전라경상도를 합친 것만큼 넓은데 인구가 삼십만 밖에 안 되거든.”
“그래서 전부 통제하려고?”
“어. 진짜 형의 사람만 들어올 수 있어. 함경도 전체를 소망교 광신도로 채우고 철령을 막아버리면.”
“기술보호가 된다 이거지?”
“그래. 기술보호. 그걸 위해 함경도를 봉쇄해야 해. 조선소에서 전열함도 만들고, 이것저것 만들되 기술이 빠져나가지 않게 이중 삼중으로 막을 거야. 도 안에 거의 모든 자원이 다 있거든. 철광 탄광 시멘트까지. 이 안의 자원만 캐먹어도 조용히 힘을 키울 수 있어.”
모현성과 대화하며 멀리 동쪽을 봤다.
넓은 평야가 바다와 맞닿아 있다.
원산이다.
원산에서 북쪽으로 영흥, 함흥까지 하나의 평야를 이룬다.
드넓은 함흥평야 전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기존 관북 백성들은 삼남지방으로 분산되어 흩어졌고, 빈집을 광해소망교 교인과 노역형을 받은 양반들이 차지했다.
도로가 만들어지고, 온돌을 깐 새 집이 지어지고 있다.
해안가엔 거대한 도크가 인력으로 건설되고 있다.
양반가에서 몰수한 말이 오만 마리.
그 모든 말이 함흥에서 건설에 투입되었다.
“이 놈들아. 오늘 안에 끝내야 한다는 말 못 들었어?”
노역병을 다그치며 도로건설에 열을 올리던 이영덕.
이영덕은 함께 온 양반들을 노역병으로 속이고 몇몇은 노역병을 이끄는 관리로 분장했다.
벌써 훌륭히 광해소망교 교인 속에 스며들었다.
광해는 함흥 거리를 지나가며 이영덕과 마주쳤다.
“응? 낯이 익은데? 누구였더라.”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잘 기억 못한다.
“종교집회에서 봤겠지. 다들 경기지역에서 데려왔으니.”
“아 그렇겠군.”
광해는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면 큰 일을 하지 못한다.
갑작스레 광해와 마주친 이영덕과 이귀는 오금이 저려 쓰러질 뻔 했지만, 다행히 아무 일 없이 넘어갔다.
“충. 주군을 뵙습니다.”
정충신이 달려와 군례를 올린다.
함경도 병마절도사 정도 되면 기합 좀 빼도 될 텐데 언제나 FM이다.
항상 직접 기마를 끌고 다니고, 병사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으니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다.
올바름 그 자체.
이름부터가 정충신.
“순찰중이냐?”
“예. 함경도 경계를 훑고 산야의 백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정충신의 초원기사단은 이만명으로 늘었다.
새로 뽑은 병사들의 훈련을 함경도 경계순찰로 진행한다.
함경도 전역을 돌며 흩어져 사는 백성을 삼남지방 양반의 집으로 옮기고, 혹시 모를 침입을 막는다.
함경도는 보호되어야 한다.
“힘든 건 없고?”
“가끔 고향을 떠나지 않으려는 백성들이 있습니다. 다행히 주상의 깊은 뜻을 받아들여 따뜻하고 넓은 집으로 옮기는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조폭이 철거에 동원되듯, 강압도 들어갔겠지. 적극 충성한다는 것은 명령을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는 뜻이니까.
뭐.
내가 편하면 됐다.
하나하나 따지면 쓰레기 매립지 같은 꼭 필요한 시설조차 전국 어디에도 지을 수 없다.
함흥평야 전체에 십칠만 명이 모여 살았다.
그 땅을 광해소망교 신도 삼만 명에게 나눠줬다.
당연히 모두가 기뻐하고 찬양한다.
신앙은 신앙이고, 거기에 따른 특혜도 줘야 이 추운 고장으로 옮겨오지.
신도들과 노역병을 모아 성대한 종교활동을 했다.
10년간 노역형을 받은 양반들이 정신을 좀 차려줬으면 좋겠는데.
광해는 딱히 누구를 죽이고 싶지 않다.
그들이 충성하면 백성으로 받아줄 것이다.
자기 부귀영화를 위해 매국행위를 이어가면 어쩔 수 없이 죽이는 거고.
광해는 함흥에서 종교활동을 하고 동북쪽으로 이동했다.
함흥에서 동북쪽으로 올라가며 해안가를 따라 작은 고을들이 나온다.
전체 인구를 다 합쳐도 오만 명이 안 된다.
백성을 전부 소개한 자리는 군 시설로 변모하고 있다.
함경도는 계속 늘어날 초원기사단의 땅이 될 것이다.
길주에서 서북쪽으로 방향을 꺾어 무산에 도착했다.
“뚜루 뚜르르르~ 따라랏 라라~ 짜잔 무산이 달라졌습니다.”
“그 노래 뭐지? 러브하우스 노래였던 같은데.”
“어. 나도 기억 안나. 러브하우스 노래겠지 뭐. 어쨌든. 짜잔!”
모현성이 손을 내밀며 확 달라진 무산을 소개해줬다.
무산.
2월 중순인데 평균 기온은 영하 15도.
광해는 추위를 느끼지 못하지만, 다른 이들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최명길이 나와 일행들을 따뜻한 곳으로 안내했다.
이동하면서 모현성이 끊임없이 자랑했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이곳. 여기가 1구역이야. 핵심 기술이 들어있는 곳이지. 그 주위를 둘러싼 곳이 2구역. 1구역 노동자들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섰어. 그 외각에 3구역. 잡일하는 일꾼들의 집이 있어.”
구역을 나누고 충성도에 따라 기술을 공개한다.
한성에서부터 봤던 철공들이 1구역의 핵심 인재다.
야장 김춘석의 인사를 받으며 모현성과 예서까지 셋만 1구역 안으로 들어갔다.
“용광로. 형이 만들었으니 알겠지? 그리고 그 옆에는 증기기관이야.”
“헐. 진짜 만들었네.”
“어. 원리는 생각보다 쉬우니까. 철이 쉽게 마모되고 휘는 문제가 있지만, 곧 텅스텐 광산이 개발되니까 잠시만 버티면 돼.”
증기 기관이 삐걱대며 움직인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둥들이 용광로에서 나온 철을 옮기고 있다.
바닥에 레일이 잔뜩 깔려 있고, 레일을 따라 가공된 쇠가 이리저리 움직인다.
제철소를 지나니 증기기관이 줄지어 서 있는 공단이 나온다.
쇠를 가공하는 철공소.
유리를 만드는 유리공장.
전부 증기기관을 이용한다.
그 옆에 수십 개의 증기기관이 줄 서 있는 공장에는 방직기계와 방적 기계가 실과 면포를 내뱉고 있었다.
“옷감?”
치릉. 치릉. 차륵. 차륵. 차륵. 끼릭.
“어. 이게 핵심이지. 굉장하지 않아?”
“뭐 대단한 건줄 알았는데 고작 옷 공장이야?”
광해의 말에 모현성이 답답해 죽겠다는 듯 가슴을 쳤다.
“형은 진짜 역사를 너무 몰라. 이게 얼마나 위대하냐면 과거 인류 노동력의 절반이 옷감 만드는데 들어갔어.”
모현성은 침을 튀기며 장황한 설명을 했다.
현대에는 한 시간 일한 최저시급으로 네 장 살 수 있는 싸구려 티셔츠.
뒷목부분 태그를 보면 100% 면이라고 적혀있다.
이 면포를 만들어보자.
우선 목화를 길러야 한다.
목화는 지력을 굉장히 많이 잡아먹기에 질소비료 없이 연속 풍년은 절대 불가능하다.
두엄 퇴비 등을 잔뜩 끼얹고 밭을 깊게 갈아야 겨우 평작을 유지한다.
반년 고생해서 목화농사를 끝내면 팝콘처럼 솜이 피어오른다. 이 하얀 솜을 모은다.
모은 하얀 솜에 깨알처럼 박혀있는 목화씨를 일일이 제거하고 여러 번 세척하고 말리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드디어 이불에 들어가는 솜이 완성된다.
솜을 잇고 꼬아 실을 만든다.
보통 물레라는 손으로 돌리는 기구를 이용하는데 문익점의 손자 래가 만들었기에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솜을 방안 가득 사와서 하루 종일 솜을 하나씩 넣으며 물레를 돌려 실을 뽑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실로 옷감을 짠다.
베틀에 400개의 날줄을 일일이 연결한다. 이 날줄의 홀수줄을 눌러 그 틈으로 씨줄을 넣는다. 그 후엔 짝수줄을 눌러 씨줄을 가져온다. 이러면 씨줄이 날줄 사이로 교차해 지나가게 된다. 이것을 무한히 반복해 37cm*16m를 맞추면 면포 한필이 된다.
그야말로 단순 반복 노동의 극치다.
쌀을 주고 목화솜을 사온다고 쳐도 목화솜으로 포목을 만드는 건 농사보다 힘들고 고된다. 그렇다고 안할 수 없다.
국가에서 군포를 징세한다. 군인으로 자식이 뽑히지 않은 집에선 의무적으로 면포를 납부해야 한다.
덕분에 포목을 만드는 것은 필수가 되었다.
이 시대 여성들은 집안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면서 남는 모든 시간에 포목을 만들어야 했다.
숙련된 기술자가 한 달에 면포 한 폭을 만든다. 보통 아낙이 집안일 하면서 포목을 만들면 다섯달이 걸린다.
군포를 내고 나면 나머지는 교환이 편리한 화폐가 되고 포목을 팔아 생계유지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사회가 부패할수록 다양한 명목으로 면포를 걷는다.
소금과 쌀과 달리 썩지 않는 화폐.
부패한 탐관오리가 재산을 챙길 때 가장 편하게 찾는 것이며 가장 자주 징수하는 화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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