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강림! 충무공의 혼
순도 100% 픽션입니다
이틀 후 광해함을 선두로 조선군이 덮쳤다.
땡땡땡땡!
파수꾼이 종을 미친 듯이 치자 각자 집에서 쉬던 해적들이 튀어나왔다.
항구의 소선에 타고, 자기 배로 달려가고 소선이 돌아가 다시 해적을 싣고.
닻을 올리고, 돛을 펴고.
함대가 이동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최소 두시간이다.
멀리서 나타난 조선군이 항구에 도착한 시간은 한 시간.
“학익진! 학익진을 펼쳐라!”
대장선 광해함에 탄 모현성이 신나서 소리쳤다.
깃발 신호가 어지럽게 휘날리고, 함께 온 수송선 마흔 척이 학익진을 펼쳤다.
돛을 조종하고 열심히 노를 저어 진형을 펼쳐보지만, 그게 쉽게 되나.
서로 붙거나 너무 떨어지고 간혹 아군 함선끼리 부딪치기까지 한다.
“왜 이렇게 삐뚤빼뚤해? 구멍이 송송 뚫렸잖아.”
“바다위에서 그게 쉽게 되겠습니까? 배를 조종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건데.”
항해사 함영석이 이죽거렸다.
쿵.
“시끄럽고. 충무공께선 한산도에서 학익진을 펼치셨다. 모여서 훈련한 적도 없는 함대를 가지고. 심지어 원균 따위가 포함된 함대를 갖고도 학익진을 펼치셨다고.”
“그야 충무공은 신이니까 가능한 것이죠.”
“너희도 할 수 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내가 지휘하는데 안 될 리 없지. 이 자리에서 학익진을 펼쳐라. 도주하는 적을 막아라. 대장선만 전진한다.”
“예? 저희만 홀로 전진합니까?”
“그래. 무쌍 찍으러 가자.”
이준형은 불안했지만, 최고지휘관의 명에 어쩔 수 없이 전진했다.
이제서야 배에 오르고 돛을 편 해적선들이 조금씩 움직인다.
광해함은 그 사이로 진입했다.
배수량 2000톤인 광해함은 배수량 50~100톤 사이인 해적선 사이에서 압도적인 크기를 보여주었다.
“붙어라. 적함이 코앞에 보이면 자유롭게 포격하라!”
쾅. 콰쾅.
광해함에 설치된 광해포 일백 문이 자유롭게 포격을 했다.
돛을 찢고, 함선 옆구리를 뚫고 반대편까지 뚫은 후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쇳덩이.
목재 선박에 구멍이 송송 뚫려 서서히 가라앉는다.
“함영석. 신석 사용을 허가한다. 적선 사이로 파고 들어라.”
“감사합니다!”
신석을 사용하라고 할 때마다 함영석은 신나서 감사를 외친다.
신의 힘으로 배가 자유자재로 이동하면 왠지 자신이 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나.
거대한 함선이 바람도 파도도 거스르고 자유롭게 헤엄친다.
광해함이 지그재그로 달리며 적함에 붙으면 광해포가 불을 뿜는다.
재발사까지 5분이나 걸리기에 일제사격은 하지 않는다.
지하층에 있는 포대장 기승진의 지휘로 서너 개의 포만 불을 뿜는다.
서너발이면 작은 선박 따위는 금세 침묵시킬 수 있다.
“모두 달려들어! 대장선만 잡으면 이긴다. 갑판엔 몇 명 없다! 올라타라!”
애초부터 해적의 주 전술은 적함으로 넘어가 백병전을 치르는 것이다.
약탈과 백병전 경험이 많은 정크선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콰콰콰쾅!
백문의 포가 전부 불을 뿜고, 재장전의 시간이 왔다.
아무리 빨라도 5분 이내에 다시 쏘는 건 무리다.
서서히 가라앉는 십여 척을 뒤로하고 이십여 척이 광해함에 바싹 붙었다.
“화살을 쏴라! 갈고리를 던져라!
슈슈슝!
타닥. 타닥.
화살이 갑판에 난무하고, 갈고리가 함선 여기저기에 매달렸다.
“위험합니다. 장군.”
화살 하나가 날아와 모현성에게 꽂히려다가 자동으로 발동된 마법진에 막혀 떨어졌다.
돛을 조종해야 하는 갑판병 몇 명이 화살에 맞았다.
“흠. 위기군. 위기야.”
“밀고 전진할 수가 없습니다. 앞쪽에 적선이 너무 많습니다.”
마력으로 밀어도 적선이 많으니 밀지 못하는 듯하다.
“크크크큭. 하지만 난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함영석! 최후의 비기다! 거북이 버튼을 눌러라!”
“예? 버튼이 무엇입니까?”
멋지게 폼 잡았건만 함영석이 받아주지 못했다.
“거기. 조종석 아래쪽에 절대 조심하라한 거. 거북이 문양. 거북이를 힘껏 눌러!”
“예. 눌렀습니다.”
끼기기기기.
쇠사슬 감기는 소리가 들린다.
광해함 좌우면을 덮고 있는 얇은 철판. 배 옆면의 모양으로 선형된 철판이 쇠사슬이 감기면서 끌려 올라왔다.
잘라놓은 사과모양의 철판 두개가 끌려 올라와 중앙 돛대 부근에서 멈춰 섰다.
순식간에 대장선 갑판이 어두워졌다.
포구 위치에 구멍이 뚫리고 중앙 돛대 부근이 빈 반구형의 철판뚜껑.
“와아아아~”
멀리서 학익진을 펼치고 있는 수송선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대장선의 위기를 보고 학익진을 풀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데 상상도 못한 장치가 발동 되었다.
그들 중 임란을 겪었던 일부 늙은 병사는 울컥 눈물을 흘렸다.
“거... 거북선이다. 충무공의 혼.”
“오오. 충무공께서 강림하셨다.”
“거북선이 커졌어. 열배 커진 거북선이라니!”
와아아아아.
대장선의 병사들의 사기도 함께 올랐다.
“이것이 충무공의 혼이다.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거대한 거북선. 적의 화살과 화포를 막고, 백병전조차 불가능한 함선. 이것이 광해함이다!”
와아아아아~
“갑판병은 창을 들어라. 구멍으로 머리를 내미는 적을 찔러 죽여라.”
배 옆면을 덮을 때 포구를 막으면 안 되니 뚫어놓은 구멍.
사람 머리만하지만 어깨가 통과할 수 없는 크기.
적이 침입할 경로는 중앙부 돛대 넓이의 틈 뿐이다.
콰콰콰쾅!
재장전한 광해포가 불을 뿜는다.
강력한 화포가 없는 해적선은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제길. 어떻게 이겨!”
“백병전이 불가능해! 대포에 다 가라앉을 거야.”
“후퇴 퇴각하라.”
“어디로?”
“바닷길이 막혀 있어! 항구로! 육지에서 싸우자.”
화포가 없는 수송선단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해적들은 나름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
배를 돌리고 노를 젓는 사이 다시 광해포가 불을 뿜었고, 대다수 함선이 침묵했다.
항구로 멀쩡히 돌아가는 해적선은 열 척이 안 되었다.
“함영석. 거북이 버튼을 당겨서 해제하라.”
“예. 헌데 이런 성능이 있으면 제게 알려주셨어야 하지 않습니까?”
함영석의 합당한 항의에 곁에서 이준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선장은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쯧쯧쯧. 그러면 멋이라는 게 없지 않느냐. 이런 위기 상황에서 똭 하고 비밀병기를 꺼내야 멋지지. 참고로 광해님께도 알려주지 않았다. 쿠쿠쿠쿡.”
혼자 웃고 있는 모현성을 이준형과 함영석이 벙찐 표정으로 바라봤다.
‘미친놈이다. 이건 제대로 미친 놈이야.’
포격을 중지하고 철판을 다시 원위치로 내렸다. 밝은 햇살을 받으며 주위를 본 모현성이 명령했다.
“수송선단 전진시켜. 가라앉는 해적선 구할 수 있으면 구하고 저항하는 적은 죽여라.”
배는 언제나 비싸고 건조 시간도 오래 걸린다.
배 값을 생각하면 적을 살려야 한다.
“예.”
곧 어지러운 깃발신호가 흩날리고, 멀리 학익진을 편 수송선단이 진을 풀고 전진했다.
“우리는 전진한다. 육지에 적이 뭉치면 포격으로 흩뜨린다. 가옥은 되도록 건드리지 마라. 포로가 어디 있는지 모르니.”
배에 탑승하지 못했던 해적 오백여명이 항구에서 어지러이 달리고 있었다.
노예들에게 죽창을 쥐어주고 도열하고 해적들도 나름의 진을 만들었다.
거기에 항구까지 후퇴한 해적선에서 해적들이 내리면서 적은 천명가까이 늘었다.
그래봤자.
콰콰쾅!
광해함이 포격하자 순식간에 진이 무너졌다.
어떻게든 싸워보려는지 항구에서 물러나 재차 진을 꾸리지만.
콰콰쾅!
최대사거리 천삼백 보는 그들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공포다.
끝내 노예 병들이 사방으로 도주하고 해적들도 마을을 포기했다.
“단 한 놈도 놓치지 마라. 항복하는 적은 살려줘라.”
마을 밖으로 벗어나는 네 개의 길에 간삼의 육군이 나타났다.
“와라 나 임경업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오백명씩 진을 꾸린 육군은 정신없이 도주하는 해적을 손쉽게 사살했다.
“이겼다! 완벽한 승리다. 소리 질러~”
와아아아아~
광해였다면 무심히 ‘정리해라.’ 한마디 했겠지만, 모현성은 좀 달랐다.
한참 소리 지른 후에 정리에 들어갔다.
뒤늦게 서양갑이 노역수 삼천명을 끌고 와서 합류했다.
멀리서 광해함의 위용을 본 양반출신 노역수들은 가슴에 차오르는 국뽕과 광해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며 전장을 정리했다.
“보고 드립니다. 해적출신 포로가 439명이고, 노예가 3100명 가량 됩니다. 노예들은 인근 지역 원주민이 절반이고, 광동 복건에서 잡혀온 이들이 절반가량 됩니다. 대부분 발이 쇠사슬로 묶여 함선에서 노 젓는 일을 담당해왔습니다.”
서양갑의 보고에 모현성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전투 결과 10여척의 적선이 가라앉았다.
해적들이 탈출해 조선 수송선에 구출되었는데 그들 중 쇠사슬로 묶인 노예병들은 없었다.
그들은 묶인 채로 배와 함께 가라앉았겠지.
“해적들 최대한 고문하고, 교차질문해서 적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내. 그 후 전부 죽여. 광동어 아는 이는 있어?”
“두 명 있습니다. 스승님.”
“부족하겠네. 음.”
“그 외 묶여 있던 포로가 400여명 있었는데 명에 사신사로 갔던 김류 외 30여 명이 조선인입니다. 그리고 명의 장군과 대신도 몇 명 있습니다. 해적에게 잡혀 이곳에 억류된 채 몸값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합니다.”
“잘 됐네. 그들의 협조를 받아서 고문하고 정보를 빼 네. 그 후 조선인 빼고 다 죽여.”
“예. 예?”
“조선의 힘을 봤잖아. 조선이 이 섬에 진출한 걸 알리면 안 돼. 그들에게도 정보를 뽑아내고 죽여. 노예들만 살리고 소망교를 전도해서 백성으로 만들자.”
“알겠습니다. 스승님.”
서양갑은 모현성의 잔인한 명령을 받아들이고 자리를 떴다.
잠시 후 억류에서 풀려난 김류가 왔다.
“고맙습니다. 무산공? 이라 부르면 되오?”
“관직이라면 함경도 북병사 겸 내수사 별좌요. 명망 높은 김영감을 봐서 영광이오.”
후에 크게 이름을 떨치는 김류를 만난 모현성의 눈이 반짝였다.
“허허. 모별좌군요. 꼼짝없이 죽었다 싶었는데 이리 구함을 받는 군요. 다시 한 번 감읍합니다.”
“됐소이다. 며칠간 뒤처리를 한 후 함께 한성으로 갑시다.”
“감사하오. 내 주상께서 지시한 물품을 확인해도 되겠소? 값비싼 짐승들을 해적 놈들이 잡아먹는 걸 보긴 했는데 종자들은 남은 게 있을 수도 있을 듯 하오. 좀 돌아다녀도 되겠소?”
“이곳은 또 하나의 조선이오. 마음껏 돌아다니시오.”
“고맙고 또 고맙소. 내 어떻게든 보답하리다.”
죽다 살아난 김류는 거듭 감사 인사를 전했다.
콧대 높은 대제국 명나라는 조공무역만을 받아들였다.
제후국이 조공을 바치면 착하다고 상으로 명나라의 산물을 하사하는 방식이다.
포르투갈이 뇌물을 써서 마카오를 조차 받았지만, 국가 간의 정식 무역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포르투갈이 물품을 바치면 명나라가 마음대로 하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최근 출몰하기 시작한 네덜란드와 영국은 아예 조공무역조차 허가받지 못했고.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원칙일 뿐이다.
명나라의 부자들은 해외의 희귀한 산물을 원했고, 해외에 내다팔고자 하는 산물이 넘쳐났다.
덕분에 밀무역이 성행하게 된다.
이단은 복건성의 상인이자 밀무역업자이며 정크선 오백척을 가진 대해적이다.
처음엔 해금령을 어긴 어부들을 규합하는 것으로 세력을 키웠다.
먹고 살기 위해 관아의 눈을 피해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들을 모았고, 때마침 전국시대가 끝난 일본의 국내 사정상 왜구의 약탈이 줄자 삽시간에 중국 해안의 제왕이 되었다.
거기다 포르투갈, 스페인과의 밀무역을 통해 은을 쓸어 담자 세력이 삽시간에 커졌다.
최근에는 네덜란드와 영국까지 나타나며 고객이 더 늘었고, 쌓은 부는 가늠하기조차 힘들어졌다.
저장성, 복건성, 광동성 등지에 스무 군데 이상의 해적마을을 건설했고, 알아서 고기잡이 하고, 알아서 약탈하다가 일 생기면 불러 모아 힘 싸움을 하는 느슨한 통치체제를 갖췄다.
이단의 해적단은 대만에도 해적마을을 건설했는데, 주로 몸값이 비싼 인질을 수용하는 곳이었다.
“오백척?”
서양갑의 보고를 받은 모현성이 인상을 썼다.
“예. 고문으로 뽑아냈기에 확실치는 않습니다. 포로마다 답변이 다르긴 하지만, 최소 오백척으로 계산해야 할 것 같습니다.”
“흠. 단순한 적이 아니었네.”
정크선 오백척이면 일본 수군 전체와 맞먹는다.
쉬운 상대가 아니다.
“우선 광해함은 한성으로 복귀한다. 수송함 등은 전부 남겨두자. 수리한 해적선은 만에 띄워둬라 해적선이 추가로 입항하면 전부 잡아. 이곳의 소식이 알려지면 안 된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모현성은 광해함 한척만을 몰고 한성으로 복귀했다.
- 작가의말
아아. 나는 문뜩 생각해따
사실 모현성이 주인공에 더 가까운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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