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산업의 근본
순도 100% 픽션입니다
한성으로 복귀해 내궁의 문을 열자 소유키가 달려 나왔다.
“즈나 보고 싶었사옵니다. 즈나.”
달려와 안기는 소유키를 광해는 가볍게 안아줬다.
광해 바로 뒤에 있던 예서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예법에 어긋난 일인데, 왕이 좋아하시니.
소유키 저년 이제는 조선어도 익숙하면서 끝까지 즈나즈나 이러는 거 봐.
여우같은 것.
키도 나보다 큰 것이 왜 얼굴은 나보다 작은 거야.
어깨는 나보다 좁으면서 왜 가슴은 나보다 큰 거지?
나도 즈나라고 불러야 하나.
주상께서 좋아하시려나.
“안 들어와?”
광해가 우두커니 서 있는 예서를 불렀다.
“아앗. 송구하옵니다. 따르겠습니다.”
예서가 내궁에 들어갔다.
십 월이 되었다.
기쁜 소식이 있다.
드디어 마력이 +로 돌아섰다.
신체능력이 향상된다.
마력을 쓸 수 있게 된다.
마력이 모이는 대로 신석에 충전해 석계마을과 무산으로 보냈다.
멈춰 섰던 조선의 산업이 재가동 되었다.
그리고 클린 마법을 쓸 수 있다.
이를 닦고, 몸을 씻는다.
이 시대에 목욕물을 준비하는 건 매우 힘든 노동이다.
물가나 우물에서 물을 떠다가 통에 가득 채우는 건 노비 10여명이 하루 종일 달라붙어야 가능하다.
물론 광해는 지금껏 매일 시켰지만, 이제 마력으로 씻을 생각이다.
제대로 된 비누도 없으니 마법으로 씻는 게 더 깔끔하다.
그리고 안을 때마다 예서와 소유키도 씻겨주고.
입 냄새 때문에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깔끔하면 더 좋지.
한성에서 여유를 즐겼다.
남자의 여유는 지갑에서 나오고 전근대시대의 여유는 힘에서 나온다.
몸에 마력이 차 있으니 암살의 위협도 걱정되지 않고 음식에 들어있는 수은도 두렵지 않다.
시월 첫 번째 보름달이 뜨는 날이 추석이다.
풍년을 축복하며 먹고 마시는 축제 추석.
전 세계 대부분의 문명에서 챙기는 축제다.
음력을 따를 경우 한 달 이상 차이가 나기에 때론 8월 땡볕에 추석행사를 하거나 추수시기와 겹쳐 한창 바쁠 때 추석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10월의 첫 번째 보름달이 뜨는 날을 추석으로 정했다.
때론 한 달 안에 보름이 두 번 있을 수 있기에 첫 번째다.
성대한 추석맞이 종교행사를 진행하고 나자 이덕형 의 서신이 왔다.
그리고 남경에 있는 김류에게서 4차 보급분과 서신이 왔다.
두 서신의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명나라는 홍수로 정신이 없고, 백성들이 굶어죽는 등 난리가 나 있단다.
조선에 신경 쓸 겨를이 없고 모든 역량을 홍수 피해를 막는데 쓰고 있다 한다.
이덕형은 중임을 맡아 북경으로 파견되었다.
이귀 등이 조선의 상황을 알렸다면 잡혀 죽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 자원해 북경에 갔다.
대신들에게 광해님의 은혜를 백알 씩 뿌려 환심을 사고, 황제와 독대해 천 알을 바치고 효능을 설명했다.
놀랍게도 만력제는 광해님의 은혜라는 기적의 신약을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조선을 탈출한 이귀와 이영덕의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다.
명을 혼란시키려고 둑을 무너뜨렸는데 정작 이귀는 조선의 사정을 전하지 못했다.
민간인들아 미안.
이덕형은 그 자리에서 이를 예전부터 진상하려 했으나 중간에서 가로챈 사실, 조선을 방문한 사신들에게 황제에게 진상하라 했으나 중간에서 가로챈 사실, 암시장에서 얼마나 비싼 가격에 팔리는 지 등을 소상히 고자질했다.
예전보다 많아진 사신들은 저마다 조선에 트집을 잡아가며 광해님의 은혜를 빼앗아 갔는데 이 내용은 전부 보고되지 않았다.
분노한 황제가 관련자를 사형시키니 그 수가 삼백여명에 이르렀다.
이덕형은 오히려 조선왕의 책봉서를 받아냈고, 우호의 뜻으로 수해지역 복구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이덕형은 수해를 입은 안휘와 호북성 등지를 떠돌며 전염병이 퍼지는 곳에 광해님의 은혜를 뿌려 사태를 진정시켜 큰 상을 받았다.
수해지역 전역을 돈 이덕형은 소주에서 조선에 서신을 날렸다.
- 개판임. 광해님의 은혜 좀 더 부탁
압축하면 이런 내용이다.
북경에선 분명 수해지역 복구를 명 했다.
중국 각지에서 쌀을 걷어 모든 걸 잃은 이재민이 내년까지 버틸 쌀을 지원하게 했다.
중국 전역에서 추가세가 걷혔다.
조정에서 지시한 것보다 과하게 세를 걷었다.
성주는 그 중 절반을 착복하고 수송하라 명했다.
수송을 담당한 장군은 그 중 절반을 착복하고 수송했다.
넘겨받은 관료는 절반을 착복하고 수해지역에 보낸다.
착복이 반복된다.
광해는 이덕형의 서신을 읽으며 기시감을 느꼈다.
모현성이 설명해준 국민방위군 사건.
6.25로 정신없던 시절, 전국의 모든 청장년을 모아 국군으로 만들어 인민군이 되게 하지 않게 만드는 작전.
일단 국회를 통과했으니 밑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시간과 땀을 갈아 넣어 보급 계획을 세웠다.
징집병이 모일 위치와 이동 동선, 이동하면서 숙박할 위치와 식사할 장소 등을 정하고 각 지역에 예산을 보내 식사를 준비하게 했다.
하급 공무원을 갈아 넣어 세운 계획은 중간 책임자에 의해 막힌다.
최소 60만 명에게 입힐 겨울옷을 준비할 수도 없었지만, 힘겹게 준비한 양말 등을 중간에 빼돌려 20만 명 이상이 동상으로 손가락 발가락을 잘라냈고, 이동 중 먹을 최소한의 식량을 빼돌려 굶어죽은 자가 10만 명 이상이다.
힘겹게 집결지까지 와도 집결지에서는 병사를 받았다며 예산만 착복하고 실제 병사들을 다른 집결지로 보냈다.
집결지에 수용되지 못한 징집병들은 경남을 떠돌다 죽었다.
60만 명이 죽거나 폐인이 된 이 사건으로 인해 고작 5명이 처형당하고 나머지 전원은 무죄선고를 받았다.
큰돈을 벌 수 있으면 양심 따위 버릴 수 있는 인간은 어디든 있다.
20세기 남한이나 17세기 명나라나 똑같다.
이재민 천만 명이 당장 먹을 게 없다.
제대로 보급이 되지 않고 있다.
큰 나라는 내부 부패로 무너진다.
명나라는 끝났다.
모현성과 통신으로 긴 대화를 나눴다.
명나라가 쳐들어올 경우 방어전을 펼친다.
명나라가 개판일 경우는......
-청진으로 와.
“왜?”
-진수식은 해야지.
“벌써 만들었냐?”
-어. 그러니 와. 조정은 허균하고 예서에게 맡기고. 예서랑 통신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 두고.
“알았다.”
광해는 내궁의 방 하나를 통째로 통신실로 만들었다.
아다만티움 실로 통신마법진을 만들고, 마정석을 끼웠다.
예서에서 사용법을 설명해줬다.
“알겠지? 한성에 문제가 생기면 이 장치로 내게 보고해라. 그리고 내가 시킬 일이 있으면 이것으로 알릴 테니 이 근처에 항상 누군갈 남기도록.”
“예. 전하.”
“힘든 일 하지 말고 백관들과 할 일 있으면 이리 불러서 하고.”
“알겠습니다.”
예서에게 주의점을 알려주는데 옆에서 소유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너도 뭔가 하고 싶으냐?”
“예. 즈나. 저도. 저도.”
“음. 할 일 없는데. 아. 네 고향에 갈 건데 같이 갈 테냐?”
광해의 물음에 소유키의 표정이 밝아졌다.
“예. 즈나. 함께 하고 싶어요. 모시고 싶습니다.”
“그래. 준비 하거라.”
‘난 광해님을 도울 수 있어, 후훗.’ 하던 예서는 소유키의 여우짓에 또다시 좌절했다.
허균과 정인홍 등을 불러 조정의 일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자리를 비울 준비를 했다.
하나씩 마무리 하는데 밀주가 보고를 하러 왔다.
“광해님. 예전에 맡기신 암살자 말입니다.”
“아. 독 쓰는 년?”
“예. 여기 보고서입니다.”
여자는 생존욕구가 뛰어나서 묻는 대로 최대한 자세히 대답했다.
배운 것과 자신이 개발한 것, 만드는 법 등을 소상히 알렸다.
밀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물고문을 하거나 잠을 안 재우는 등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거듭 물었다.
그 결과 대답이 일관성 있기에 확실히 자백했다 여기고 보고를 했다.
밀주의 보고를 들으며 보고서를 살폈다.
나무껍질을 찌고 알콜과 섞는 식으로 독을 만드는데, 내용이 소상하고 용량이 정확하다.
온도와 용량, 시간까지 통제해 완벽하게 만드는 폼이 현대의 화학자 같다.
흥미가 생긴다.
“그 여자를 불러 오거라.”
“예. 전하.”
초췌한 여자가 끌려왔다.
한 달 사이 바싹 말랐지만, 외적으로 보이는 상처는 없었다.
이게 고문 기술자의 능력이겠지.
“이름이 무어냐?”
“동쑥이라 합니다.”
“살고 싶으냐?”
살고 싶다 - 971655
“예. 전하.”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이 여자는 사이코패스다.
본인이 살기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죄책감도 없다.
그리고 욕심도 없다.
나씨 집안을 차지한 지 1년 가까이 편히 먹고 놀았을 뿐 딱히 욕심 부린 일은 없다.
“네게 일을 맡겨 위업을 달성하게 하면 상으로 뭘 원하느냐?”
“몸 편히 마음 편히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생존욕구 단 하나만 발달해있다.
죽이려 했는데 써먹는 게 나아 보인다.
“따라와라.”
광해는 동쑥을 데리고 동쪽으로 길을 나섰다.
석계마을.
그곳에 허준이 있다.
“광해님을 뵙습니다.”
광해약품 본사 집무실에서 동의보감을 적고 있던 허준이 나와 인사했다.
“이 여자 데리고 있어. 독을 잘 쓰니 조심하고 항상 감시해.”
“예. 헌데 그런 여인을 어찌하여.”
“기초가 되어 있거든. 허준. 자네 제자 중 믿을만한 자를 골라라. 욕심 없고, 의술에 모든 것을 걸 수 있고, 대신 평생 무산 땅에서 나오지 않고 연구만 할 자신이 있는 자. 그런 자만을 모아라. 대신 의술의 신세계를 알려주마.”
“헛. 드디어 신의 지식을 받는 것입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허준은 허겁지겁 제자들을 모았다.
새로운 의술을 배우되 무산에서 평생 나올 수 없는 삶.
허준의 설명에 몇몇은 응했고, 몇몇은 망설였다.
응한 자만을 따로 모아 이사준비를 시켰다.
페니실린 제조기와 기타 등등 준비할 게 많다.
광해는 그들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맛 배기 설명을 해 주었다.
“버드나무 줄기를 끓여 먹이면 통증이 완화되지?”
“예. 마비산을 쓸 때 항상 버드나무 껍질을 씁니다.”
“그래. 그와 같이 모든 약은 자연으로부터 나온다. 동물과 식물로부터 오천여 가지 약재를 추출할 수 있고, 그 모든 것을 가공하면 세상엔 못 잡을 병이란 없다.”
모현성이 알고 있는 약 제조법은 딱 두 가지다.
페니실린과 아스피린.
나머지는 모른다.
허준이 찾아야 한다.
“모든 식물을 가지고 실험해라. 끓이고 태우고 찧는다. 잎 따로, 열매 따로, 뿌리 따로 실험한다. 물에 우려내거나 주정에 녹이며 하나하나 성분을 찾는다. 오천여 가지 약재성분을 찾기 위해 수십만 번의 실험을 해야 할 것이다. 그 실험의 끝에는 모든 병을 치료하는 각각의 약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약도 결국은 동식물에서 뽑아낸 특이성분을 가공해서 만든다.
이 시기 약학도 경험적 지식을 통해 동식물에게서 뽑아낸 치료성분을 처방하는 것이다.
광해는 이를 체계화하고 구체화 할 자금과 힘이 있다.
“힘든 일이겠군요. 허나 실험에 성공해 약을 만들 때마다 더없는 보람을 느끼겠군요.”
“그렇지. 그리고 각 약품의 이름은 발견한 자의 이름을 넣어주마.”
“헛. 아닙니다. 광해님의 몇 번째 은혜로 쭉 가시죠.”
“허준. 자넨 그렇겠지만, 평생 고생할 제자들도 생각해야지. 너희 모두 힘내라. 역사에 이름을 남겨야지. 무산에서 실험하겠지만, 생활은 한성의 왕보다 편하도록 챙겨주마.”
“아닙니다. 그저 시키기만 하시면 됩니다.”
“시끄러. 챙겨 줄 거야. 그냥 받아.”
“가...... 감사합니다.”
너희를 위해 챙겨주는 거 아니거든.
배신하지 말라고 챙겨주는 거다.
이 중요한 데이터를 들고 외국에 넘겨준다면...... 어휴.
“너희가 실험하고 정리한 모든 것이 조선의 약학과, 나아가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꿀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하라.”
“감사합니다. 전하.”
이건 약학이 아니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가장 중요한 학문.
화학.
실험을 통해 물질을 쪼개고 가공한 데이터 모두가 화학의 바탕이 될 것이다.
광해가 청진으로 이동할 때 허준과 제자들도 함께 이동해 무산 1구역에 자리 잡았다.
이들에게 화학의 기초를 알려줄 이는 당연히 모현성이다.
고생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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