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이괄의 꿈
순도 100% 픽션입니다
“해군은 이운룡과 이순신이 지휘하되 이운룡이 앞선다.”
“예.”
“육군은 정문부가 주장 이시영이 부장. 지브롤터 수비가 최우선이다.”
“예. 대칸.”
“대군이 쳐들어오면 통신으로 부르고, 나가서 싸우다가 위험하면 원숭환 찌르고. 내가 숭환이 구해주러 오마.”
“하하하. 알겠습니다. 대칸.”
농담 섞인 진담에 원숭환을 제외한 모두가 훈훈하게 하하호호 웃었다.
“개떡이의 말은 모든 명령에 앞선다. 개떡이는 노장들 기분 나쁘지 않게 깝치지 말고.”
“걱정 마십시오. 대칸.”
개떡이가 한층 여유 있게 대답한다.
관록이 많이 붙었다.
“너 언제까지 그 이름 쓸 거냐? 성씨 내려줘?”
“아닙니다. 서민출신으로 이리 성공한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개떡이란 이름이 우스운 게 아니라 위대한 장군의 대명사처럼 되고 싶습니다.”
“오올. 거기까지 생각했냐?”
“그렇습니다. 사실 충무공의 이름도 여자이름 같지 않습니까? 순신. 그런데 누구도 우습게보지 않습니다. 저도 그리 되고 싶습니다.”
“어. 그래. 그런데 너 실수한 것 같다.”
광해가 손가락질 하니 입부가 개떡이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다.
“예? 아. 죄송합니다 장군.”
순신이란 이름이 흔하지도 않은데 신기하게 두 명의 이름이 같고, 같이 군 생활을 했네.
무시하고 돌아보니 수송대를 이끌고 온 장군이 있다.
오스만 황궁의 근위대장이었다가 광해의 특별 지명을 받아 바다로 나온 알 하삿 딘.
“야.”
“예! 대칸!”
광해의 능력도 놀랍지만 여기 모인 해군 전력은 더 놀랍다.
오스만이 보유한 가장 큰 함선보다 더 큰 함선이 수십 척 있다.
이들이 콘스탄티니예에 쳐들어온다면.
“우린 너희 먹을 생각 없어. 서유럽만 조질 거야. 그놈들이 우리 공격해서 우린 어쩔 수 없이 반격하는 거고. 그러니 괜히 기싸움 하지 마. 지중해 너희 줄 거니까.”
“알겠습니다! 대칸!”
“분쟁 안 생기게 서로 조심하자. 보급 제깍제깍 하고.”
“알겠습니다! 대칸!”
이등병처럼 기합 들어있는 하삿 딘의 어깨를 툭툭 쳐 주고 돌아섰다.
지중해의 유럽 함대는 베네치아만 신경 쓰면 된다.
미대륙에서 스페인 함대 전부를 가라앉혔기에 현재 스페인의 함선은 500톤 급 이상 50척 이하로 추정되며 대부분 대서양 쪽에 있다.
지브롤터를 장악하고 포대와 참호, 철조망을 도배했으니 대서양 함대가 지중해로 들어가긴 힘들 것이다.
지중해의 3/4는 오스만 제국이 갖고 있으며 나머지는 베네치아 왕국이 갖고 있다.
그 외엔 작은 어선 급 밖에 없다.
칸국은 오스만과 동맹을 맺으며 지중해 청소를 해 주고 지중해 전체의 제해권을 인정해주기로 했다.
대신 식량과 화약을 보급받기로 했고, 유럽에 상품 팔아먹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지브롤터에 통신실과 게이트용 건물을 만들어 뒀다.
며칠 놀며 장수들과 술을 마시고 회포를 푸는데 갑사 하나가 용감히 다가왔다.
“대... 대칸. 소망을 들어주시는 광해님께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
“...... 집에 가고 싶습니다.”
무릎 꿇고 간절히 청하는데 꺼이꺼이 하는 소리 없는 울음소리가 마음을 적신다.
“음...... 어떻게 갈래?”
난감한 문제다.
그러게 니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니?
“예?”
“판옥선 끌고 노 저어 갈래? 4년 정도 걸릴 텐데 보급 계획은 세울 수가 없다.”
너무 멀거든.
“그......”
“10년만 참으면 철도가 연장될 거다. 그거 타고 금의환향하자. 참아 줄 수 있겠어? 부탁 좀 하자.”
대칸이 부탁한단다. 어쩔래?
“그.... 크흑. 알겠습니다.”
“정문부!”
“예. 대칸.”
“얘들 두 계급씩 올려주고 노역형 때 못 받은 돈도 줘. 장가가고 싶은 여자 데려오면 성대하게 결혼시켜 줘!”
“예! 대칸.”
갑사들에게 집에 가고 싶은 소망이 엄청나게 자라나있다.
해군 병력들은 전역병과 신병이 꾸준히 교체되었는데 얘들은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교체 없이 왔네.
“이건 분명 서류상의 문제였을 거야. 그래. 최명길이 잘못했네. 내가 최명길 혼내주마. 조금만 참아라.”
조금만.
10년만.
10년 안에 철도가 오지 못 하는건 비밀이다.
너그러운 황제는 갑사의 슬픔을 아주 잘 다독여줬다.
갑사들이 감히 대칸의 말에 떼쓰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모르겠다.
칸 제국의 대칸으로써 할 일은 끝났다.
“나 간다. 수고.”
“무탈하소서 대칸.”
장수들의 인사를 받으며 게이트 마법진을 그렸다.
광해는 예서, 모현성과 한성으로 돌아왔다.
“과거 대마도주가 조선에 항복을 청했어. 대마도를 조선에 편입시켜서 다스려달라고. 대마도는 일본 본토보다 부산에 더 가까웠고, 문화적으로도 멀고 먼 교토보다 조선에 더 가까웠지. 왜구들의 근거지였지만, 약탈을 위해 모여든 왜구의 패악질에 가장 고생한 건 대마도 평민들이었고. 그런데 조선은 거부했어.”
“미친새끼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그렇지. 아니 땅을 주겠다는 데 왜 거부해? 그치? 그런데 그 시대를 생각하면 말이 돼. 세금으로 걷히는 게 거의 없고, 오히려 군대를 보내 자국민을 보호해야 해. 하나의 땅떵어리인 한반도에서 육군을 움직이는 것보다 바다건너 대마도에 해군을 파견해 주둔하는 건 힘들지. 즉, 얻는 건 없고 손해만 가득하다는 말씀이야.”
“아니 그래도 땅 준다면 받아야지.”
“콜롬비아가 스페인에게 독립한 후 미국에 제의했어. 미합중국의 연합주로 받아달라고. 미국은 총 한발 쏘지 않고 콜롬비아를 먹을 수 있게 된 거야. 당시 콜롬비아는 파나마와 베네수엘라를 합친 거대제국이었지. 그런데 미국은 거절했어. 왜겠어?”
“이득이 없어서?”
“어. 원래 해외영토는 이득을 보려고 획득하는 거지.”
“그래도 땅 준다는 데 안 받는 건 이상하잖아.”
“미국의 경우는 민주주의 단점이기도 했고.”
“이게?”
“미합중국이 콜롬비아를 삼켜. 그러면 돈을 투자해 안정시켜야 해. 그 돈은 세금이고,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 싫어해. 더러운 인디언 핏줄을 동등하게 받아들이기 싫어하기도 했고. 그러면 선거에 뽑힌 대표들이 다음 선거에 위험해져. 아무리 베네수엘라에 석유가 많고, 파나마 운하가 황금보다 귀한 가치가 있다 해도 그땐 몰랐고 당장 세금이 낭비되는 거야. 국민이 싫어하니 미국은 콜롬비아 병합을 거절한 거야.”
“헐.”
“자. 어쨌든 영토확장은 이득을 보기 위해 전진해. 조선이 두만강 북쪽과 연해주로 얼마든지 진출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건 가봤자 백성들 얼어 죽으니 돈을 투자해야 하고 세금으로 걷히는 건 없으니 진출하지 않았어. 이건 이해되지?”
“어.”
“거의 모든 나라가 이랬어. 조선만 이런 게 아니야. 그런데 되게 이상한 짓을 한 나라가 있었어. 얻는 건 없는데 마냥 돈을 퍼부어서 철도를 깐 이상한 나라가......”
“이괄.”
“예. 대칸.”
서른살을 넘긴 이괄은 늠름하게 대답했다.
이놈 역사 속 죄악이 마음에 안 들어 조지려 할수록 이상하게 대칸에게 신뢰받는 것처럼 포장되어 요상하게 명성이 오르는 놈.
“너 나 배신할거냐?”
“아닙니다. 하늘이 두쪽 나도 배신하는 일 없을 겁니다.”
아니다.
이놈의 소망은 역사에 기리남는다 이다.
전보다 거창해졌고 역사에 남기 위해 뭔 짓이든 할 놈이다.
“그렇다면 너에게 중요한 임무를 주마. 칸 제국의 미래와도 같은 일이다. 믿고 맡겨도 되겠지?”
“맡겨주십시오! 신뢰에 보답하겠습니다.”
내가 널 언제 신뢰했다고 그래?
말로 다해먹는 정치군인 같은 자식.
눈짓하자 모현성이 커다란 지도를 펼쳤다.
“괄아 잘 봐라.”
모현성이 지도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설명했다.
“여기가 만주야.”
“알겠습니다.”
“여기가 몽골이야.”
“예.”
“여기가 카자흐. 다음 목적지지.”
“예.”
“그 위를 보자. 여기가 시베리아고 여기가 연해주야.”
모현성이 그린 두개의 원은 칸제국의 현재 영토 전체보다 컸다.
“그 위에 북극이 있어. 그 우측이 알래스카와 캐나다 북부고 위쪽은 그린란드야.”
시베리아에 북극과 북미, 그린란드를 붙이니 칸제국보다 다섯 배 커졌다.
“엄청 크지?”
“예.”
“그런데 되게 추워서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아.”
시베리아 남부와 연해주 남부에 점 몇 개를 찍었다.
“이 동네에 사는 사람 다 합쳐봐야 10만명도 안 돼. 각자 가족단위로 흩어져서 살고 있지.”
“이 넓은 땅이 다 빈 땅이란 말입니까?”
“어. 우린 이 지역을 북칸 지역이라 부르려고. 그리고 이 지역을 완벽히 개척한 자를 북칸의 왕으로 세울 생각이야.”
서칸의 왕 모현성의 말에 이괄의 입이 벌어졌다.
왕이 된다.
북칸의 왕.
“만약 네가 해내면 넌 왕이 되는 거야. 해낼 수 있겠어?”
부드러운 모현성의 목소리에 이괄은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고 당당히 외쳤다.
“맡겨주십시오. 대칸을 위해 꼭 해내겠습니다!”
“맡기고 싶다. 맡기고 싶은데 말이야. 그치만 지원할 돈이 없는걸......”
“도... 돈 말입니까? 저희 이가상단에서 해내겠습니다.”
“그렇지. 네가 왕이 되면 다 니땅 되는 건데 그치?”
“그렇습니다. 꼭 시켜주십시오.”
“어. 그래도 막무가내로 가면 힘들 테니까 말이야.”
모현성이 시베리아와 연해주 여기저기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선을 쫙쫙 이었다.
“여기 금광, 여긴 탄광, 여긴 철광석.”
광산부터 시작해라.
“광산까지 철도를 연결해. 물론 쇠값과 기술자는 네가 고용하는 거겠지. 연결해서 광산을 만들고 주변인들을 고용하고 칸국의 법을 가르쳐 칸국인으로 만들어야겠지? 이러면 잠시 힘들어도 돈이 부족하지 않을 테고 이런 식으로 쭉 전진해가면 간단하지.”
어이. 지금 철도가 북극점을 통과하는데?
“간단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 믿을게.”
“믿는다 이괄! 거길 다 개척하면 네가 왕이다!”
광해가 어깨를 두드려주자 이괄은 헤로인 주사 맞은 병아리처럼 헤롱헤롱 기뻐했다.
북칸 개척은 이괄에게 맡겨졌다.
오랜 시간 고생해 배멀미에 적응한 이괄은 이제 배에서 내리게 되었다.
여기에 칸국의 돈은 한 푼도 안 들어간다.
“될까?”
“부도나.”
“그러겠지.”
“이것 역시 역사의 복수다!”
“에이. 그럴 거면 차라리 그냥 죽이래도.”
“킹치만. 죽을죄를 짓지는 않았는걸...”
“그럼 살리든가.”
“저놈 돈 많이 벌었던데 저놈이 호의호식하는 꼴은 못 보겠다. 그린란드까지 가려면 500년 정도 걸릴 테니 끝내고 나면 왕 되겠지. 현대에도 철도 못 까는 곳인데.”
“그래...... 그래라.”
“어쨌든 이거면 됐어. 재정 러시아가 가장 잘한 짓이 시베리아 횡단 철도거든. 당시는 버는 것 하나 없이 돈만 무진장 들이부었던 사업이고 결국 소련에 망하게 된 뻘짓이었는데 결국 해냈지. 그 결과가 어때? 세계 최대 영토를 만들었잖아. 철도 한번 횡단한 걸로 이 넓은 땅을 점유하게 된 거지.”
“그러고 보니.”
“당장 이득이 없어서 콜롬비아를 버린 미국과 달리 아무 이득도 없이 이 악물고 시베리아 철도를 깐 재정러시아의 집념이 미래 러시아를 잠시나마 세계 투톱으로 만들었지. 왕정이 아니라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면 절대 해낼 수 없는 짓이지만. 와나 시발. 철도 한번 횡단한 걸로 이 넓은 땅을 점유하다니.”
“너 민주주의 싫어하는 거 같다?”
“아니지. 그저 왕정과 민주정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야. 어쨌든 슬슬 러시아가 동진을 시작하거든. 그걸 막아야지. 선점효과.”
“어? 지금이냐?”
“철도는 백년 후지만 사람은 슬슬 넘어와. 몽골 지나면 바로 시베리아 먹어야 해.”
“그래. 알아서 하셈. 니 왕국이지 내 왕국이냐?”
“형의 제국이지. 내 왕국 아니라 이괄의 북칸이고.”
“크크큭. 북한 시발.”
“삐삑. 북칸입니다. 발음에 유의하십시오. 크큭. 이괄놈 빨리 북극가면 좋겠다.”
악마 둘이 흐믓하게 웃었다.
- 작가의말
우헤헤헤 내가 바로 북칸의 왕이다. 음냐 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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