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 붉은 바람
순도 100% 픽션입니다
와아아아~
돌격!
죽여라아아!
전장의 소음이 초원을 가득 메우고 있다.
수만 기병이 풀을 짓이기며 달리고 그 뒤로 먼지구름이 하늘을 뒤덮는다.
곽재우가 이끄는 철도 원정군은 몽골 서쪽 끝까지 왔다.
끝까지 복속을 거부한 오이라트 예하 준가르 부족들을 명나라 감숙성으로 보내 점령하는 것을 도와줌으로써 몽골 정벌을 끝냈다.
이제부터 몽골 서쪽 카자흐 칸국을 점령하려는데 처음부터 저항이 만만치 않다.
기관차 선로를 깔며 보급로를 유지하고 기병이 외교서신을 나르며 칸국의 선한 합병을 이야기하지만 기득권을 가진 귀족은 일단 싸워보고 생각할 셈이다.
정충신의 초원기사단은 기존 사만에 몽골계 구만을 더해 무려 13만 기병이 되었는데 적은 겁도 없이 공격해왔다.
열흘 전엔 서쪽에서 카자흐 칸국이 쳐들어오더니 오늘은 남쪽 모굴리스탄 칸국에서 올라온다.
“2진. 3진을 보내라. 4진을 적 후방으로 보내 퇴로를 차단하라.”
“예. 장군.”
먼지구름이 이는 초원을 노려보던 곽재우가 명령을 내렸다.
6만의 칸국군에 돌격해온 적은 고작 일만.
위기를 겪을 일 조차 없다.
문득 불안요소가 떠오른 곽재우가 명령했다.
“오늘은 징치지 마라. 징을 치면 죽여 버리겠다.”
“아아. 하오나.”
“징치지 마! 죽인다!”
곽재우가 하늘을 보며 명령을 내렸다.
저놈의 징 때문에 지난 전투에서 패할 뻔할 걸 생각하면 참으로 화가 난다.
곽재우의 명령대로 2진과 3진이 출동해 적 1만을 포위했다.
이미 1진과 싸우며 발이 멈춘 적 기병은 수배의 기마에 포위돼 화살밥이 되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만 보내면 승리가...
채애애애앵.
“누구냐!”
징소리가 난다.
“본진이 아닙니다. 전투부대에서......”
당황한 당번병이 변명을 했다.
채애앵. 채앵. 채애애앵.
날카로운 징소리가 초원 여기저기서 울려 퍼진다.
화살소리, 고함소리, 말발굽소리와 다른 이질적인 소리가 귀에 쏙쏙 파고든다.
본진에서 징을 치지 못하게 했는데 전투에 참여한 부대에서 징을 울렸다.
“저 저 미친놈들이. 전투부대가 왜 굳이 징을 가져가서는......”
때는 정오.
징소리는 신호.
열심히 싸우던 기병들이 말을 멈춰 세운다.
적을 향해 돌격하던 기병들도 말을 멈춰 세운다.
일제히 하마하더니.
동쪽을 향해 절을 한다.
“만수무강하소서. 광해님!”
오늘도 건강한 광해는 지브롤터 해안에서 놀다가 백성들의 소망을 받아먹었다.
곽재우는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이 미친놈들! 전투 중에 절을 하다니! 전일도 무의미하게 수백명이 죽었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하오나 광해님을 모시는 것입니다요!”
당번병이 감히 소리치더니 동쪽을 보며 절을 한다.
곽재우 주변의 호위병들도 절을 한다.
“에휴. 이 광신도들.”
곽재우는 어쩔 수 없이 장군좌에서 내려왔다.
높다란 탑의자에서 내려온 곽재우도 동쪽을 보며 절을 했다.
외눈박이 마을에선 두눈박이가 병신이다.
한편 한창 싸우던...... 모굴리스탄 칸국 기병들은 갑자기 칸국인이 싸움을 멈추고 절을 하자 뻘쭘해졌다.
적에게 포위되었고, 죽이거나 도주하거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 칸국인이 절을 하자 머릿속에 수많은 유혹이 새어들어 왔다.
하지만 그들은 신앙의 힘으로 유혹을 이겨냈다.
적병들은 말에서 내려 서쪽 알라를 향해 절을 했다.
한번 두번 세번.
한번 절을 하고 일어서려던 칸국 기병은 적이 여러번 절을 하자 당황했다.
질수 없다.
두번, 세번, 네번.
네번 다섯번......
“이것들아 뭣하는 것이냐? 절은 한번만 하는 거다! 일어서! 싸워!”
교리에 충실한 장교 덕에 자존심을 건 절 싸움이 끝났다.
다들 말에 올라 재차 싸우려는데 멋쩍은 미소가 감돈다.
“항복하겠습니다.”
“받아들이겠소.”
신앙으로 대동단결.
전투는 훈훈하게 끝났다.
“신앙이라는 건 종교에만 쓰는 게 아니야.”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빛나는 지브롤터 만.
바닷가 바로 앞에 정자를 만들어 그 위에서 만찬을 즐기고 있다.
예서는 곁에 앉아 아들에게 젖을 물렸고, 소유키는 해변가를 아장아장 걷는 딸의 두 손을 잡고 있다.
평화롭다.
정자 위에 올려진 상 위엔 파에야라는 요리가 올려져 있다.
“쌀이네?”
“어. 유럽인들도 쌀 많이 먹어. 얘들도 마늘, 대파, 소내장, 돼지내장, 소 자지 등 먹을 수 있는 모든 걸 먹었지. 역사를 잊은 현대 하얀 머저리들이 족발마저도 혐오식품인척 하지만, 조선보다 가혹한 삶을 산 유럽 평민들은 삼킬 수 있는 모든 걸 먹어야 했어.”
생각 없이 말했는데 모현성이 또 급발진한다.
“어......”
“이게 아무렇지도 않아? 자기네 조상들이 더럽게 못살았고 개고기보다 더 혐오스런 음식을 먹은 건 생각지 않고 지네 조상들이 인류를 학살한 건 잊고, 우리한테 건방지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거 열 받지 않아? 이게 역사를 왜곡해서 그래. 유럽 백인들도 제대로 진짜 역사를 배워야 해. 그래야 이런 미친 소리를 안하지.”
“그래도 현대 유럽은 개고기 안 먹잖아. 말해도 되는 거 아냐?”
“푸아그라는? 오르톨랑은? 달팽이 같은 혐오식품 먹는 새끼들이.”
“...... 혐오 식품하면 역시 번데기가.”
“어... 졌다. 누에 번데기는 진짜 크크큭. 번데기 먹는 한국 아재들이 중국 전갈, 매미에 기겁하는 건 좀 이상하긴 하지. 유럽이 개고기로 까면 화내면서 정작 본인은 중국 욕하고...... 크큭. 자 어쨌든! 어...... 뭔소리 하고 있었지?”
모른다.
듣지 않았으니.
무시하고 소주를 한잔 마셨다.
잔이 비자 예서가 팔을 뻗어 소주를 채워준다.
똘똘똘 차오르는 소주를 보며 예서가 군침을 삼켰지만.
“안 돼. 모유 수유 끝나고 마셔.”
“예에... 알겠습니다아...”
어딜 모유수유하면서 술 마시려 하고 있어.
“뭔소리 하고 있었지? 어 그래! 신앙. 신앙의 대상은 누구나 될 수 있어. 예수나 알라 같은 허구조차 반복해서 믿으라 세뇌하면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신앙을 종교하고만 엮는데 실제로는 다른 데 더 많이 쓰여.
예를 들면 기업! 이런 가좆같은 회사, 이놈의 월급 땜에 억지로 일한다, 하면서도 회사에 애사심이 생기고 이게 신앙이 돼. 신앙을 피라미드 사기에 쏟은 사람들은 당한 이후에도 끝까지 믿게 되고 그 외 대다수 다단계 회사들이 종교활동 비슷한 신앙활동을 기반으로 사람을 모아.”
“어. 그래.”
“대한민국 좋은 나라, 나라가 최고, 넌 죽어도 나라에 충성하다 죽어라, 이걸 반복해서 말하고 교육하면 신앙이 생겨. 이게 애국심이야. 도망가면 살 수 있는데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는 애국심. 나라의 주인인 왕이 지 살겠다고 도주하는데 수탈당하던 백성이 스스로 일어나 싸우다 죽는 애국심. 나라 망친 성리학자들이 일본에 유학을 가 신지식을 받아들일 때 독립을 위해 싸우다 죽는 애국심. 이승만이 부산으로 도주하고 일본에 임시정부 건물을 살 때 참호와 철조망을 향해 무가치한 돌격을 하다가 죽는 것 또한 애국심. 이 모든 게 반복세뇌로 만들어진 신앙 덕분이야.”
“어.”
쩌라고.
파에야는 꽤 맛있었다.
서양요리라 느끼할 거라 생각했지만, 해산물과 돼지고기, 마늘과 고추, 쌀 덕분에 재료가 풍성하고 눅진한 김치 볶음밥 느낌이 났다.
느끼할 정도로 기름을 펑펑 쓰는 건 현대에나 가능하겠지.
스페인에서 유명한 요리사와 모르코 사드 왕조의 요리사와 칸반도에서 온 요리사 등이 교대로 음식을 내온다.
재료의 한계가 있지만, 칸반도에서 가져온 고추장, 된장 덕분에 매일 매일 다양한 미식을 즐길 수 있다.
“스페인 요리도 아프리카 문화가 섞였다고 했지?”
“어. 긴 세월 아프리카인에게 지배당했으니까.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것도 다양한 문화가 섞인 덕이고, 유럽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나라인 것도 다양한 문화를 보존한 덕이고. 어 또... 형 내말 듣고 있었어?”
안 듣고 있었는데.
지브롤터는 참 좋은 곳이다.
1월임에도 춥지 않다.
약간 싸늘한 정도.
이 좋은 땅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 어찌 그리 잔인한 짓을 했을까.
“자 그리고 종교적 신념이 정치권에도 쓰여. 나 이사람 믿어주세요 를 반복하면 진짜 믿는다니까. 그렇게 정치에 종교적 신앙을 갖게 되면 그때부턴 광신도가 되는 거야. 돈을 받아먹고, 성접대를 받아도 이유가 있겠지... 하며 그 사람을 또 찍고, 나라를 팔아먹어도 그 사람을 또 찍지.
이런 종교적 신앙을 정치에 가장 잘 이용한 놈이 히틀러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일단 신문 기사를 만들어라, 기사거리가 없으면 당사에 불이라도 질러라. 이랬던 히틀러 덕에 사람들은 나치당의 소식을 계속 들었고, 듣다보니 뭔가 하나보다 관심을 갖게 되고 그 후엔 유태인을 다 죽여주겠다는 공약에 혹해 찍게 되었지.”
“그래서 하고 싶은 소리가 뭔데?”
술맛 떨어지게 엄청 나불대네.
“종교적 신앙을 만들기도 어렵지만 끊기는 더 어려워. 한번 믿어버린 대상은 웬만해선 버리지 못해. 이미 자신의 영혼과 일치시켰거든. 신앙을 버리는 건 지난날의 자신을 부정하는 결과가 되니까. 그래서 교황을 잘 죽여야 해.”
“어떻게? 비참하게?”
“초라하게 죽이긴 해야겠지. 그렇지만 그보단 자백하고 죽이는 게 나아.”
“자백?”
“난 사실 거짓말쟁이였다. 난 신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어린 신자들을 강간하다가 죽는다. 이런 선언을 하다가 죽여야지.”
“그걸로 될까? 로마에서 입단속을 시킬 텐데.”
“순회공연가자. 로마에서 한번, 빈에서 한번, 파리에서 한번, 이렇게 유럽을 돌며 선언시키고 죽이는 거야.”
“야. 그거 너무한 거 아니냐? 교황은 뭔 죄냐?”
“하긴 그러네. 그럼 형이 그놈의 소망을 봐봐. 원한이 달려 있으면 그러자.”
“....... 그래.”
교황에게 꼭두각시 마법을 걸고. 그 입으로 죄를 말하게 하고. 이후 게이트를 만들어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대충 마력 팔백만 들겠네.”
“전투 없이?”
“어. 전투까지 겹치면 더 들 수도 있지.”
“형 지금 마력 얼마 있는데?”
“이천만.”
딱히 하는 일 없이 노닥거리니까 마력이 쑥쑥 차오른다.
“충분하네. 가자.”
약속한 한달이 되었다.
간다. 암살자가.
빈에서의 기적은 로마에까지 알려졌다.
로마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영향력이 닿는 모든 곳에 알려졌다.
그 덕에 로마는 이런 저런 영지에서 온 스파이로 가득 찼다.
“정말 진짜일까?”
“에이 설마.”
“밤이었다며. 어떻게 속임수를 썼겠지.”
로마 바티칸 교황청 앞 광장엔 구경꾼이 반이고, 교황이 무사하길 기원하는 신자가 반이다.
교황청 입구엔 다양한 계급의 성직자가 나와 우리가 진리일지니 사기꾼에게 현혹되지 말라며 설파하고 있고, 그 말이 무색하게 모든 교회군이 집합해 바티칸 성당을 감싸고 있었다.
광해는 그들을 하나하나 관찰했다.
“확실히... 그렇군.”
“뭐가?”
“하급 성직자는 대부분 원한이 없어. 진짜 신을 믿고 깨끗한 삶을 살았어. 하지만 고위급은......”
더럽다.
“죄를 짓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는 구조겠지. 부패는 후계자를 가리니까. 부패한 이는 깨끗한 후배를 없애고 더러운 자에게 뒤를 맡기지. 그러지 않으면 깨끗한 후계자에게 자신이 닦이거든.”
“씁쓸하군.”
마법으로 대충 악당 하나의 머리를 터트렸다.
꺄아아아아~
테러가 시작되었다.
- 작가의말
저도 번데기를 좋아하지만... 번데기 즐겨드시는 분은 중국 혐오식품을 욕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편드는 건 아니고 그저 민족 인종 국적을 초월해서 중립적 시각을 가져보셨으면 하는 마음에 말씀드립니다
그렇다고해서 사회에선 이런말 하지 마세요
주위에서 중국욕하면 함께 중국욕을 하세요
괜히 중립적 시각 어쩌고 말 꺼내서 이상한 사람 되지 마세요 ㅋ크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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