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채유진 사건
순도 100% 픽션입니다
9년 11월.
광해는 8개월 만에 한성으로 복귀했다.
잠시 돌아오는 것이니 배를 타지 않고 마법진으로 혼자 왔다.
“여~ 형~ 노가다 재밌어?”
서칸국의 왕인 모현성이 여상스럽게 반긴다.
“살쪘네 새끼.”
남자는 오랜만에 다시 만나도 어제만난 것처럼 욕부터 날리는 게 진짜 친구지.
정무 보고를 받고 각 사업 모두 순탄히 흘러가는 것을 확인한 후 미뤄뒀던 일을 처리했다.
석계마을.
오랜만에 오니 많이 변해 있었다.
처음으로 천연두와 나병을 치료했던 마을은 광해소망교 성지순례의 필수장소가 되어 있었다.
나병을 치료받고 금군별장으로 진급한 간삼의 집과 촌장의 집은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이 들러 절하는 명소가 되었고, 처음 백관을 교육시켰던 건물은 성지순례객이 하루 머물며 백관이 받은 교육을 시험 삼아 받는 추억팔이 장소가 되었다.
그 옛날 천연두를 치료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세를 부르고 절하고 울며 기뻐하는 소란을 통과한 후 외각으로 갔다.
과거 채유진이 살았던 집 또한 광해가 처음으로 신의 힘으로 범죄자를 잡은 관광지가 되었고,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은 외각에 커다란 온돌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니 이십대 초반 여인 둘이 절을 하며 받아들였다.
“가족은?”
“저희 둘 뿐입니다.”
이상한 일이다.
이십대가 되도록 시집을 안 간 건 평범한 일이 아닌데.
채유진이 동생들을 챙겨주지 않았을 것 같지도 않고.
광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둘째가 말했다.
“저희 자매가 겪은 사건이 너무 유명해져서 누구도 다가오지 않덥니다. 돈을 보고 오는 자는 쫓아냈고. 그러다보니 저희끼리 의지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좋은 소문은 사라지지만 안 좋은 소문은 막을 수 없다.
채유진 사건은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백관이 되어 승승장구하자 지워지지 않는 소문이 되었다.
아마도...... 순례객들에게 마을 사람이 국밥을 팔면서 광해의 기적 어쩌고 하면서 채유진 아비의 범죄와 응징을 이야기했겠지.
지금껏 광해를 고맙게 반겨주던 선량한 그들과 광해마저 이들에겐 잔혹한 가해자였다.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대칸께서 나서지 않았다면 저희는 지옥에서 살고 있거나 혹은 이미 목숨을 버렸겠지요.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차라리 마을을 떠나 다른 삶을 살 것이지.
여전히 이 마을에 버티고 사는 건 어쩌면 오기 비슷한 분노 아닐까.
그래봤자 불특정다수는 절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데.
이들을 어떻게 챙겨줄까 생각해도 방법이 없다.
차라리 동칸으로 이주해 사는 게 나을 텐데 스스로 원치 않으면 챙겨주기도 힘들다.
“이리 오시지요.”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 둘이 안방으로 안내했다.
생활감 없는 방엔 채유진의 위폐가 있고, 유골함이 놓여 있었다.
누가 그렸는지 채유진의 초상화도 그려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유골함에 손을 댔다.
시동생을 찾는다 - 164417
지르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자 - 9014
죽음에 대한 원한은 없었다.
이 경우 살해된 지도 모른 채 죽었을 거다.
“지르한이 누구지?”
“언니의 남편입니다.”
“어떤 사람이지?”
“시집갈 때 잠깐 본 게 다였습니다.”
“되게 잘생기고 성실해보였어요.”
옆에서 막내가 말을 꺼냈다가 둘째의 눈초리를 받고 물러났다.
“시동생을 찾고 싶어 했는데 아는 바 있나?”
“없습니다.”
경상도와 한성의 거리가 있으니 매일 통화하는 것처럼 알긴 힘들겠지.
일 년에 한번 소식을 나누는 것도 힘들었을 거다.
“알겠다. 범인은 꼭 잡아주마. 원수는 반드시 갚는다.”
“부탁드립니다.”
“채유진은 내 사람이었다.”
이 정도 보증해주면 되겠지.
다음날 남산으로 갔다.
이초란이 도저히 판결할 수 없는 범죄자들이 거기 있었다.
반 년 간 쌓인 미스터리 범죄를 하나 둘 판결해 진짜 죄인을 찾아주고 마지막으로 그가 끌려왔다.
나소 지르한.
몽골계 여진족이며 5년 전 조선에 복속하고 3년 전 아전시험을 통과하고 2년 전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엘리트이며 백관 채유진과 결혼한 남자.
그리고 백관 채유진 살해 용의자다.
나이는 이십대 초반.
170티 큰 키에 근육질 몸매, 구리빛 피부에 짧은 머리카락, 잘생긴 얼굴.
조선어를 전혀 모르던 상태에서 3년 만에 변호사 시험을 통과했으니 머리도 좋다 봐야겠지.
“네가 죽였냐?”
“아닙니다. 전 절대 유진이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초췌한 얼굴의 지르한은 정말 억울한 표정으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광해는 그 표정을 한참 관찰했다.
여동생을 찾는다 - 29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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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유진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 110017
채유진 살인범을 잡는다 - 964705
스스로의 소망이 다양하게 있고, 그에게 감사를 표하는 다른 이의 관계가 얽혀 있다.
소망으로 자르한이 살인범이라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
채유진이 자르한에게 죽임을 당했다면 그녀의 소망이 달라붙을 텐데 그것도 없다.
만약 지르한이 죽였는데 지르한 본인에게 살인범을 잡는다는 소망이 붙은 거라면 자기 자신도 속일 정도의 사이코패스다.
“넌 아닌 것 같군. 풀어줘라.”
범인일 수도 있겠지만 아닐 가능성이 천만 배 높다.
풀어주는 게 맞다.
“이초란.”
“예. 대칸.”
“사건 보고서.”
“예. 9년 6월 32일 경상우도 도지사 채유진이 독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사건 당일 채유진은 호위병과 함께 관사 뒤편 외딴 암자에 들어갔습니다. 한 시진 쯤 후 울부짖는 소리가 나 호위병들이 가보니 남편 지르한이 채유진을 안고 울고 있었고 지르한은 즉각 체포되었습니다. 채유진의 배에 치명적 독이 발라진 화살이 꽂혀 있었고 같은 독이 발라진 화살이 지르한의 허리 화살통에 꽂혀 있었습니다.”
이만하면 빼도 박도 못하겠네.
광해는 지르한을 봤다.
“그 화살은 네 화살이 맞냐?”
“예. 제 화살입니다.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하오나 독은 아닙니다. 전 절대 화살에 독을 바르지 않았습니다.”
여진 출신이어서 활을 늘 가지고 다니는 건 이상하지 않다.
다만 그게 살인에 쓰여서 문제가 된 거지.
“일단은 믿겠다. 네가 범인이 아니라 치고 누가 범인일 것 같냐?”
“누구든 반드시 찾아내서 천조각만조각...”
“누군 거 같냐고?”
“...... 모르겠습니다.”
“원한 같은 거 없었냐? 너 말고 채유진에게라도?”
“없었다고 생각하오나...... 사람 마음은 모를 것이기에......”
간단할 줄 알았는데 쉽지 않다.
소망이 알려주지 않으면 즉각 찾을 수 없다.
가서 하나하나 다 살피고 다녀야 하나.
곁에 있던 이초란이 물었다.
“아버님. 혹시 채유진 도지사의 원한은 없었나이까?”
“없다.”
“그렇다면 죽는 줄도 모르고 죽었겠군요.”
“그랬겠지.”
“배에 활이 꽂히고 독이 퍼지면 굉장히 고통스러워했을 겁니다. 그런데 원한이 생기지 않은 건 이상합니다. 스스로 배에 꽂았어도 관련 소망이 생길 텐데.”
“그런 것도 없다. 남편에게 폐가 되지 않길 바라더군. 시동생을 찾고 싶어 했고. 둘 다 남편을 위한 소망이구나.”
크허허허헝.
둘의 대화를 듣던 지르한이 목 놓아 울었다.
“지르한.”
이초란이 차갑게 울음을 잘랐다.
“...예.”
“왜 거기서 만났지? 채유진이 오라고 했나?”
“예.”
“말로?”
“...... 아닙니다. 서신으로 전달 받았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거긴 반년 이상 가지 않은......”
“네가 방에 들어갔을 때 채유진의 모습은 어땠지?”
“...... 의자에 앉아 탁자에 머리를 대고 있었습니다. 업무에 피곤해서 그런......”
“탁자위에 아무것도 없었나?”
“업무 서류들과.... 다기 세트와...”
“깨우려 하니 이미 죽어 있었지?”
“...... 예.”
“피는? 많이 흘렸나?”
“예? 에... 그... 기억이...”
“왜 거기지?”
“그...”
이초란은 빠르게 말을 자르며 원하는 정보만 얻었다.
저렇게 수사하는 거 보니 무섭네.
얜 결혼해도 차가운 게 그대로구나.
옆을 보니 모현성이 조용히 서 있다.
얘 혹시 매 맞는 남편인가.
왜 한마디도 안하지?
“거긴 어떤 장소지?”
“채지사의 명예를 위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후우. 우린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묻는 말이다. 네 아내는 살해당했다. 아마 무심코 차를 마셔 잠들고 나서 화살로 찔렸겠지. 독에 걸린 줄도 모르고 죽었을 거다. 넌 서신으로 유인 당했고. 그 장소가 중요하다. 범인은 거기로 널 부르면 네가 의심 없이 올 줄 알고 있었다. 아마 채유진도 같은 방법으로 유인되었을 거다. 그렇다면 장소가 중요하다. 명예가 중요하다면 여기서 접고 네가 살인자가 되어 죽어라.”
차갑다.
무서운 여자 이초란.
지르한은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쓴 것 마냥 정신을 차렸다.
“밀회장소였습니다.”
“자세히.”
“제가 조선인... 칸국민이 된 후 사법고시를 통과해 변호사가 되고 처음 발령 난 곳이 경상우도 관아였습니다. 거기서 채지사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가끔 만나 차를 마시고 대화하던 곳이 관아 뒤 암자였습니다.”
“비밀리에?”
“예...... 사실 소인은 결혼을 청했으나 그녀는 망설였습니다. 자신은 하자가 있기에 오히려 제게 누가 된다며 거부했죠. 제가 우기고 우겨서 결혼하긴 했으나 그 전까진 거기서 가끔 만나 몰래 대화하던 게 다였죠.”
슬픈 사랑이구나.
이초란처럼 채유진도 힘들게 살고 있었구나.
성리학에 세뇌된 씹선비새끼들 때문에.
“그래서 거기에 대해 누가 또 알지?”
차가운 여자 이초란.
아무 감흥 없이 범죄에 대해서만 얘기하네.
“모르겠습니다. 사실 거긴 비밀리에 만나는 장소였기에 아무도 모를 줄 알았습니다. 혼례 후에는 거기서 만날 이유도 없었고요. 그러고 보니 호위병을 암자 근처에 데려간 것도 이상합니다. 절 만날 때 호위를 데려갈 이유가 없는 데 말입니다.”
“그럼 예전에는 거기서 만나자는 약속을 어떻게 전했지? 구두로?”
“처음엔 그 근처를 산책하다가 들어갔고...... 이후엔 서신으로 전했습니다. 범죄 수사에 관해 서로 서류를 주고받을 일이 많았는데 그때 쪽지를 슬쩍 건네고 밤늦게 만나는 식이었습니다.”
풋풋하네. 아. 이런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니지.
그때 이초란이 고개를 돌렸다.
“대칸께서 말씀하신 소망이 전부라면 이건 누명입니다. 둘에 대해 잘 아는 자가 채백관을 유인했고, 나소 지르한을 범인으로 뒤집어씌웠습니다. 아마 다기세트에 냉차를 넣고 거기 가벼운 독이나 수면제를 넣어뒀을 겁니다. 그 후 화살로 찌르고 지르한이 오길 기다렸겠지요. 범인은 둘의 밀회에 대해 잘 아는 자이며 관아에서 오래 일한 자일 것입니다. 살해 이유는 모르겠으나 채유진을 죽여야 했거나 부부 둘 다 죽여야 했을 인물입니다.”
확실히 수사에 관한한 이초란이 낫다.
광해는 소망에서 막히자 생각이 멈춰 버렸는데.
전문가에게 맡길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는게 가장 낫다.
“내가 가서 잡아?”
“아닙니다. 소신이 직접 가서 처리하고 싶습니다. 채유진을 살해한 자는 꼭 잡아넣고 싶습니다.”
“...... 그래. 밀주와 돌구에게 말해 지원 받고.”
“한 달이나 두 달 정도 걸릴 듯합니다. 범인은 못 잡아도 관계자는 잡을 수 있습니다. 범인을 잡지 못할 경우 채유진이 죽어서 이득 볼 관계자를 백 명 이하로 추려내 모아두겠습니다.”
채유진과 지르한이 주고받던 쪽지를 빼돌린 이는 관아의 인물뿐이다.
그들에겐 죄책감이나 공포가 소망으로 묻어있겠지.
“그래. 그러면 완벽하겠네. 네가 맡아라.”
“맡겨 주십시오. 대칸.”
사건은 이초란에게 넘어갔다.
이초란과 밀주 등이 남부로 내려갔고 두 달 후 밀주가 실종됐다.
- 작가의말
갑자기 미스테리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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