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독안에 든 쥐3
순도 100% 픽션입니다
꼭꼭 잠긴 집 안에서 노랫소리가 나고, 그 옆집에서도 노래가 나온다.
다리 밑에서 노래가 나오고, 누군가는 양반의 주구를 피해 도망치며 노래를 부른다.
바람잡이 역할은 밀주의 검계와 안보군이 했다.
도성 곳곳에 숨어 있던 그들이 노래를 부르며 동참을 유도했다.
긴장한 채 도열해 있는 병사들 틈에서 작게 따라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곁의 병사들에게 전염된다.
“시끄럽다! 누구냐?”
“닥쳐라! 노래 부르지 마!”
“입을 열지마라. 닥치고 있어라!”
노래라는 게 무섭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그랬기에 광해가 노래로 공격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양반과 주구들이 시퍼런 검을 뽑아들고 통제해보려고 하지만, 노래가 전염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노래는 의사표시이며 사인이다.
세계대전 때 라디오를 통해 스파이들에게 행동지령이 내려지듯 노래가 병사들에게 행동지령을 전달하고 있다.
“영광 영광 광해 전하.”
속삭이듯 따라 부른다.
“영광 영광 광해 전하.”
그 곁의 병사도 중얼거렸다.
둘이 눈알만 굴려 시선을 마주쳤다.
‘너도?’
‘어? 너도?’
그 곁의 병사도.
그 곁의 병사도.
전쟁에서 배신, 혹은 탈출의 순간을 잡는 건 매우 어렵다.
먼저 나섰다가 죽을까봐 망한 전투에서도 마음대로 도망가지 못한다.
잡기 어려운 배신의 순간을 노래가 인도해주고 있다.
“누구냣! 닥치랬지! 이빨 보이지 말커허헉!”
칼을 휘두르며 욕하는 독전관의 등 뒤를 죽창이 찔렀다.
대충 깎아 만든 대나무가 살을 파고들지 못했다.
하지만 괜찮다.
주변 병사 서른 명 모두 노래를 불렀으니까.
푹푹푹푹.
죽창 수십 개가 독전관의 몸뚱아리를 헤집었다.
그리고 소리가 커졌다.
“영광 영광 광해 전하~”
“저놈들이! 저기 저놈들을 죽여라! 배신자를 죽 커헉!”
근처에 있던 양반이 소리치다가 죽창에 찔렸다.
영광 영광 광해 전하~
노래는 더욱 커졌다.
“죽여라!”
“양반들을 죽여라!”
“내 딸이 굶어죽은 이유는 네놈들 때문이다!”
“죽어라. 부모의 원수. 네놈들의 누명에 장형을 맞아 죽었다.”
영광 영광 광해 전하~
배신, 아니 올바른 길로 돌아섬이 들불처럼 커졌다.
곳곳에서 독전관을 찌르면서 시작된 반란은 한성을 꽉꽉 채운 징집병 전체에게 퍼졌다.
“이 못 된 놈들.”
“우리 집 수레 내놔!”
“내 아버지를! 내 아버지를!”
영광 영광 광해 전하~
굳게 닫힌 집집마다 문이 활짝 열리며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솥뚜껑, 식칼 따위를 들고 병사들과 합류하는 백성들.
한성이 한순간 마비되었다.
“전진하라.”
상황을 본 광해가 명령을 내렸다.
한성을 포위한 수십만 백성들이 일제히 전진했다. 팔대문이 일제히 열리며 왕의 병사를 맞이했다.
“들어가서 수습하라. 학살은 말리고 되도록 생포하라. 노래는 멈추지 말아라.”
“예. 전하.”
영광 영광 광해 전하~
이 노래의 원곡은 군가다.
군대의 행진곡이다.
광해의 군대는 행진곡을 부르며 한성에 진입했다.
양반들은 기본적으로 잘 먹는다. 잘 먹으면 보통 힘이 쎄다.
그들 중엔 무과를 준비하던 이들도 많다.
육체적으로 우월하다.
분노한 백성들과 살아남고픈 양반의 싸움.
숫자는 백성들이 많지만 양반들은 꽤나 잘 버텼다.
높은 곳에서 지켜보던 광해가 소리쳤다.
“정충신!”
도성 주위에 나타나 탈출로를 막던 정충신이 고개를 돌렸다.
광해가 손으로 가리킨 곳으로 기병이 투입된다.
호도도독.
둥글게 뭉쳐 버티던 양반들 주위를 돌며 단궁이 발사된다.
화살비는 삽시간에 양반들을 쓰러뜨리고 대열을 무너뜨렸다.
“으아악. 도망쳐.”
“살려줘.”
양반들이 흩어져 백성들과 섞였다.
정충신이 왕을 돌아보자 숭례문 위의 왕은 다른 곳을 가리켰다.
“여긴 됐다. 따라와라.”
군데 군데 뭉친 집단을 기병이 무너뜨리자 게임은 끝났다.
압도적으로 많은 백성들에게 둘러싸이는 순간 양반들은 몽둥이찜질을 당해 쓰러진다.
서로 변변한 무장도 없기에 죽은 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고 전투도 오래 걸렸다.
“후퇴! 도망가자. 흥인지문 쪽에 사람이 없다.”
고성이가 가주의 외침에 문중 일족이 일제히 짐을 챙겼다.
아직 버티고는 있지만, 다른 집단들이 무너지면서 가망이 없어 보였다.
“가긴 어딜 간단 말이오. 항복하시오.”
고성이가에 섞여있던 임경업이 소리쳤다.
헛짓거리 할까봐 이괄에게 묶여 있던 임경업이 목소리만은 컸다.
“항복하다니. 항복하면 다 죽일 것이다.”
“죄가 있으면 죽되 죄가 없으면 살 것이오. 사내대장부답게 항복하고 죗값을 받으시오. 광해님께서 역모죄로 죽이지는 않는다 하셨소.”
“주상께서?”
“그렇소. 도망가면 어딜 도망가겠단 말이오? 고성에도 백관이 들렀는데 그곳 백성들이 반길 것 같소? 항복하시오. 간악한 죄를 지었다면 죽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약간 혼나고 말 것이오. 광해님께선 관대하오.”
열네살 아이의 호통에 가주의 얼굴이 울그락붉으락 했다.
그때 이괄이 나섰다.
“아버지 항복하시지요.”
“항복하다니. 항복하면 그냥 죽는다. 일단 도망쳐서 미래를 도모해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아버지! 가문을 끝장낼 생각입니까? 집안에 남은 어머니와 누이를 생각해 주십시오.”
“허어. 허어.”
아버지와 아들의 싸움에 가신들이 눈치를 살폈다.
“그래도. 죄를 본다면... 나는... 내가 살 수 있을 리 없는데.”
망설이는 아버지에게 다가간 이괄이 아버지의 손을 등 뒤로 꺾었다.
“크흑. 뭐하는 것이냐?”
“가문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가문을 생각하시지요. 어차피 가망 없습니다. 모두 무기를 내려놔라. 무기를 내리고 자리에 앉아라. 두 손을 뒤에 돌리고 무릎 꿇고 앉아라.”
얼마 후 꿇어앉은 고성이가에 백성들이 덥쳐 왔다.
“항복. 우린 항복했다. 나는 금군위사 임경업이다. 주상전하의 심복이며 이들은 항복했다. 묶기만 해라. 헛짓거리 하는 놈들은 벌을 받을 것이다.”
광해가 묵었던 곳에도 백성들이 들이닥쳤다.
성난 백성들이 집안 문을 뜯고 안에 숨어 있는 양반들을 끄집어냈다.
“아악 우린 아니야. 고성에서부터 주상전하를 모셨단 말이다. 아아악.”
두 아전은 백성들에게 몽둥이 찜질을 당하고 묶였다.
콰앙.
“여기다. 여기도 양반 놈이 있다.”
붉은 관복을 입은 키가 큰 노인.
안방문이 부서지고 백성들이 뛰어 들어왔음에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책을 보고 있다.
“멈춰라.”
정인홍의 뒤에 앉아있던 이이첨이 나서며 마패를 들이밀었다.
“주상 전하의 신하이며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다. 너희 중 누구든지 우릴 지켜라. 주상께서 상을 내리실 것이다.”
정인홍과 이이첨 등 반정 정부에 참여하지 않은 몇 안 되는 대북파가 목숨을 건졌다.
“여기도 양반가인가? 일단 쓸어.”
“잠깐. 잠깐. 여기 거기잖아.”
“거기?”
“오리 대감의 집.”
“아. 그곳이구나.”
“됐다. 다른데 가자.”
오리 이원익의 집은 백성들의 습격을 받지 않았다.
오리 대감과 함께 있던 이항복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크게 웃었다.
“역시 오리 대감이시오. 백성들의 마음은 어떻게 사신거유?”
“내 그간 회한이 많았건만 저 소리가 이리 고마울 줄 몰랐네. 내가 헛산 것만은 아니었어.”
“대감이 헛살았다면 우린 어떻겠소? 우리의 집은 주춧돌도 남기지 못하고 약탈당했을 텐데. 안 그런가 한음.”
“크흠. 제 집엔 주춧돌 정돈 남았겠지요. 형님보단 내가 나았으니.”
“허허. 동생이 취했구만. 오리 대감. 우리도 한잔 하시지요.”
세 정승은 술을 마셨다.
숭례문 위에서 지켜보던 광해.
징집한 병사들은 진작 돌아섰고, 양반과 아전이 뭉친 전투의지를 보이는 집단은 기병에게 무너졌다.
상황이 끝난 것을 느꼈는지 양반들이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다들 조랑말 한 마리쯤은 갖고 있는 양반들.
전투에 능숙하진 못해도 달리는 말을 일반 백성들이 멈추긴 어렵다.
곳곳에서 말 탄 양반 수십씩 성문을 빠져나가고 있다.
제대로 지휘할 수 있다면 성문부터 봉쇄했을 텐데.
숭례문을 빠져나가는 양반들을 보며 광해가 몸을 날려 뛰어내렸다.
“멈춰라.”
신체강화마법을 걸고 뛰어내린 광해가 소리쳤다.
도주할 생각으로 가득 찼는지 왕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려 한다.
촤르륵.
오른손의 철사가 뻗어나간다.
철사는 달리는 말의 눈을 뚫고 뇌를 건드린 후 돌아왔다.
촤르륵. 촤르륵.
무너지는 말과 떨어져 구르는 양반.
선두의 말이 쓰러지자 뒤따르던 말이 서로 엉켜 쓰러진다.
“와아~ 주상 전하 천세!”
“와아아.”
뒤쫓고 있던 백성들이 만세를 부르며 달려온다.
“전부 묶어라.”
광해는 백성들에게 지시하며 다가갔다.
대북파 영수 이산해와 기자헌.
기자헌은 의외로 얽힌 원한이 없다.
예전 홍여순의 난 때도 가볍게 엮였으나 벌을 받지 않고 풀려났다.
“쯧쯧. 꽤 괜찮은 인간으로 보였는데. 이런 무모한 일에 참여하다니.”
기자헌은 참담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그 곁에 있던 이산해가 소리쳤다.
“주상전하. 양반을 다 죽일 생각이시오? 상국에 반하고 은혜를 저버리고! 조선을 망치지 마시오. 조선은 왕 혼자의 것이 아니오.”
광해는 이산해를 힐끔 봤다.
대북파의 영수이며 한음 이덕형의 장인.
왠만하면 용서해줄텐데 죽을 날 받아놓은 노인네가 원한을 덕지덕지 달고 있다.
“맞아. 조선은 왕의 것이 아니지. 하지만 양반의 것도 아니다.”
백성의 것이라니 어쩌니 하는 개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양반의 것이었던 조선을 되찾아 오는 것 뿐.
“그럼 왜 이런 짓을 저지른단 말이오! 당장 그만두고 나라를 고쳐놓으시오!”
눈에 뭐가 씌었는지 이 상황에도 정신을 못 차린다.
광해는 이산해에게 조용히 말했다.
“복잡한 문제는 아니야. 나쁜 짓 한 사람은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 거야. 동화에서처럼 말이지. 너희는 양반이어서 벌을 받지 않아. 역모죄로 처형할 생각도 없어. 다만 네가 재산을 뺏고, 네가 죽인 죄 때문에 죽게 되는 것 뿐이야.”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별 상관도 없고.
나중에 죄상을 불러주고 조사한 후 능지처참하면 될 일이다.
정인홍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북의 영수는 목이 떨어질 것이다.
광해가 돌아서자 멀리 달려오는 기마가 보인다.
“전하. 거기서 뭐하십니까?”
말을 타고 달려온 허균이 광해에게 소리쳤다.
“허균? 벌써왔냐?”
“정찰병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줘서 먼저 달려왔습니다. 왜 먼저 시작한 것입니까?”
“응? 그야......”
반쯤 충동적이었지.
일인공성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잘됐다. 병사들은?”
“하루거리입니다.”
“그래. 곧장 남산과 북한산 전체를 포위하라 전해라. 곰팡이가 퍼지기 전에 도려내야지.”
“예? 예. 알겠습니다.”
전국에서 달려온 백관의 팔만 부대는 쉬지도 못하고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사흘에 걸친 소탕작전에 거의 모든 양반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달려라. 달려. 잡히면 강간당한다. 사내들에게 죽을 때까지 강간당하다가 엉덩이에 피를 흘리며 죽을 것이다.”
이영덕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도망쳤다.
이영덕의 외침에 주위에서 달리던 양반들은 더더욱 힘을 냈다.
공포에 질려서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도 죽어라 달렸다.
연설을 통해 꽤나 얼굴을 알린 이영덕 주위엔 꽤 많은 양반들이 모여들었다.
그 중엔 김장생이 불에 타 죽자마자 도망칠 준비를 하던 이귀도 있었다.
도성 동쪽을 돌파한 양반들은 널리 퍼져 다가오는 백관의 부대를 두 번 돌파해 가평까지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 작가의말
양반의 지휘능력이 이렇게 아메바 수준으로 낮을 것 같진 않지만
전투신 질질 끌기 싫어서 단순화 했습니다요
원한이 거의 없는 기자헌
원한이 덕지덕지 붙은 이산해
지극히 개인적인 상상으로 이루어진 평가입니다
역사속 실존인물에 대한 평가는 현재까지도 제사지내며 모시는 가문이 있기에 언제나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유료화도 불가능하고요
무료니까 참아주시지 유료화면 당장 고소당하겠죠......
어쨌든 이 글은 픽션이며 모든 인물 평가는 개인적인 상상으로 만들어졌음을 알려드립니다요
으뜸님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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