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독안에 든 쥐2
순도 100% 픽션입니다
촤르륵. 촤락.
네개의 철사가 뱀처럼 꿈틀댄다.
말렸다가 뿌우풍선처럼 촤라락 뻗어나간다.
“흐윽.”
“아아악.”
인체란 신비해서 자그마한 구멍만으로도 죽는다.
가느다란 철사가 심장에 작은 구멍을 뚫고 돌아온다.
폐를 뚫고 눈을 뚫고 뇌를 곤죽으로 만든다.
자그마한 구멍만으로 사람이 죽는다.
“막았. 아아악.”
막을 수도 없다. 창으로 내리쳐도 염동력에 의해 뱀처럼 구부러지며 목적지를 관통한다.
먼저 달려든 차씨문중 노비들은 삽시간에 드러누웠다.
우직한 노비가 꽤나 마음에 들었지만.
가장 먼저 달려와 가장 먼저 죽었다.
인생이 그런 거지.
“잡아! 잡으면 끝난다.”
“모두 달려들어.”
한성을 수십만 백성이 감쌌고, 지방군 칠만명이 올라오는 상황.
양반들도 이 상황이 불리함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절박하다.
“궁시해. 쏴라.”
이백여 궁수가 달려와 도열하고는 일제히 화살을 쐈다.
급조한 병력 치고는 훌륭한 지휘.
촤라라락.
광해는 왼손을 들어올렸다. 이백개의 철사가 튀어나오더니 헬기 프로펠러처럼 돌았다.
광해를 향한 것은 전부 튕겨나갔고, 주위에 달려들던 노비들에 꽂혔다.
“아아악.”
“다시 쏴! 계속 쏴. 조총부대도 불러!”
양반들이 계속 소리친다.
직접 달려들진 않지만, 노비와 급조한 병력을 계속 밀어 넣는다.
정작 죽여야 할 놈들은 뒤에 있고, 엉뚱한 놈들이 죽고 있다.
원래 전쟁이란 게 그렇지만.
화가 난다.
광해는 공격을 멈추고 왼손의 철사방패만 돌렸다.
방어를 단단히 한 상태로 몸을 띄웠다.
염동력.
광해의 몸이 떠오른다.
양반들이 한성에 들어오기 직전 금군 별장 이중로와 남이홍이 금군을 전부 모아놓고 해체를 선언했다.
“주상전하의 명이다.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해산한다. 한성을 점거한 이들에게 절대 반항하지 말라. 언젠가 돌아온 후 너희를 다시 쓰기 위함일지니 무의미한 목숨을 버리지 말지어다. 우리는 궁을 지키다가 그들에게 항복하고 조용히 궁을 넘겨준다. 이는 왕명이다.”
선언하는 이중로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듯했다.
이중로와 남이홍은 행궁을 반군에게 넘겨주고 스스로 감옥에 들어갔다.
왕은 사라졌고, 궁내 식구들은 미리 함흥으로 떠났다.
누구를 위해 싸운단 말인가.
금군은 허무하게 궁을 넘겨주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가 양반들에게 집을 빼앗기고 떠돌았다.
금군에 소속된 임경업과 이괄도 궁을 떠났다가 얼마 후 이괄의 가문과 조우했다.
고성이가 사암공파.
조선에서도 손에 꼽히는 가문이다.
이괄은 사암공파 가주의 큰 아들로 고작 열세 살에 음서로 현감 자리에 오를 만큼 강력한 집안이다.
이괄은 임경업을 데리고 다니며 자기 집안이 얼마나 강한지, 앞으로 신세 펴주겠다며 떠벌이고 다녔다.
우울증에 걸린 것처럼 이괄을 조용히 따르던 임경업.
“폐주다! 폐주를 죽여라.”
폐주라면 광해군을 의미한다.
“광해님! 구해야해.”
임경업과 이괄이 달려가니 수많은 화살과 조총사격이 한곳에 집중되고 있었다.
그 중심엔 광해가 서 있었다.
“광해님! 제가 구하겠습니다. 사내대장부답게 목숨 걸고 읍읍.”
임경업이 소리치자 이괄이 입을 막았다.
임경업이 몸부림쳐보지만 어린 몸으로 스무 살 넘은 이괄의 힘을 뿌리치진 못했다.
주위에서 흉흉한 눈빛으로 다가오는 이들을 보며 이괄이 호통쳤다.
“난 사암공파 가주의 아들 이괄이다. 같은 편이다. 폐주나 공격해라.”
관심을 돌려놓고 돌아보니 광해가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헉.’
들었을까.
이괄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신내림을 받은 왕.
왕의 기적은 수없이 봤다.
화살비와 총탄을 튕겨내는 왕을 과연 잡을 수 있을까?
변명해야 하는데 지금 말 잘못했다간 맞아죽는다.
이괄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광해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플라이 마법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게 한다.
염동력도 하늘을 날게 할 수 있지만, 방식이 다르다.
키다리로 분장한 삐에로가 긴 장대로 걷는 것처럼 염동력으로 땅을 받치고 움직여야 한다.
마력소모가 크고 느리다.
“허억.”
“난다. 날어.”
“하늘을 달린다.”
공중에 뜬 광해가 하늘을 뚜벅뚜벅 걸었다.
“허억. 저게 뭐야.”
“곤룡포! 국왕이다.”
“오오오. 광해님.”
광해가 하늘을 걷는 모습은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쏴라. 죽여야 해.”
“활을 쏴. 조총은 어디 있느냐? 쏴라.”
활이 날아오고 조총사격이 이어진다.
허나 그 무엇도 철사를 뚫지 못했다.
오히려 광해의 위대함만 광고해주는 꼴이다.
“무적.”
“천하 무적이다.”
“광해님~ 오오. 나의 임금님.”
양반들의 폭압에 숨죽이던 한성 백성들이 눈물 흘렸다.
광해는 공중에 뜬 채로 남대문을 향해 이동했다.
성벽 위엔 징집된 병사들과 노비들이 빼곡히 올라가 있고, 성벽 너머엔 여자와 아이, 노인과 청년이 혼합된 백성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오오오. 광해님.”
“주상 전하~”
“와아아아~ 기적이다. 또 기적을 선보이신다.”
하늘을 걷던 광해는 숭례문 지붕위에 올라섰다.
“쏴라.”
여전히 무의미한 화살과 조총이 날아든다.
광해는 막으면서 발밑에 마법진을 그렸다.
목소리 확대 마법.
잠깐 사이에 십만이 넘는 마력을 썼다.
이제 마력을 아껴야 한다.
“왕이란 무엇이냐?”
성 안 천보까지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활을 쏘던 성벽 위 병사들이 웅성거렸다.
“갑자기 뭔 개소리래?”
“몰라유. 왕에서 쫓겨나서 미쳤나벼?”
뜬금없는 철학적 화두에 모두 어리둥절해 했다.
“내 아버지의 첫째 아들은 쓰레기다. 강간과 살인을 즐기며, 왜구가 쳐들어온 임란 와중에도 약탈과 살인을 일삼다가 백성들에게 붙잡혀 왜구에게 넘겨진 쓰레기다. 그래서 아버지는 나를 다음 왕으로 골랐다. 정부인이 아닌 첩이 낳았고, 첫째도 아닌 둘째아들인 나를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왕인가?”
갑자기 임해군 디스.
“성리학을 공부한 양반들이 한성을 점거하고 이제 열세 살 된 능양군을 새로운 왕으로 선출했다. 이러면 능양군이 왕인가?”
웅성거리는 병사들 틈엔 양반들도 섞여 있었다.
그들 또한 혼란에 빠졌다.
갑자기 왕이 저런 소리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조선의 왕이었던 내가 상국인 명나라에 반하는 정책을 폈다 하여 성리학자들은 나를 쫓아냈다. 난 명나라로부터 세자책봉을 받지 못했고, 국왕책봉도 아직 받지 못했다. 성리학자들은 수많은 재산을 명나라에 뿌려 열세 살 된 능양군을 왕위에 올려달라고 간청하는 사신이 명나라로 떠났다. 명나라 황제의 책봉을 받게 되면 능양군은 왕인가?”
광해의 큰 목소리에 한성의 양반들이 환호했다.
“그렇다. 상국의 책봉을 받는 분이 진정한 왕이다!”
“진정한 왕에게 조아려라!”
“군대를 해산해라!”
어째서 자신들을 도와주는지 몰라도 폐주가 큰 목소리로 신왕의 등극을 인정하고 있다.
광해는 양반들의 환호가 안 들리게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두창을 고쳐 백성을 살렸고, 신의 기물을 받아 쌀의 수확량을 두 배로 늘렸다. 억울하게 땅을 빼앗긴 백성들에게 땅을 돌려주었고, 딸과 아들을 잃은 부모에게 원수를 갚아주었다. 헌데 성리학자들이 열세 살 어린아이를 왕으로 내세웠으면 나는 왕이 아니게 되는 것인가?”
드디어 본론이 나왔다.
양반들은 광해가 말하는 의도를 알게 되었다.
한성의 백성들과 병사들을 동요시키려는 것이다.
징집되어 끌려온 병사들의 충성도는 낫다.
광해의 말에 현혹되면 전투가 벌어졌을 때 집단 항복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한성을 점거한 반도들에게 묻겠다.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서 큰 재산을 만들어 명나라에 뿌리고 어린아이를 왕으로 책봉 받으려 한다. 이것이 성리학이더냐? 다른 나라에 돈을 줘서 왕의 이름을 사오면 그건 왕인가?”
광해의 질문에 참 할 말이 궁했다.
결국 나온 말은
“궁시하라. 폐주를 죽여라! 저 입을 막아라.”
였다.
광해의 연설에 멈췄던 화살이 다시 날아온다.
광해의 좌우에서 아래에서 화살이 비처럼 날아든다.
타타타탕.
전열을 가다듬은 조총부대가 일제사격을 했다.
“평범한 세자였던 나는 신을 만났다. 신은 나에게 우리 민족을 살리라는 과제를 주었고, 신의 능력 일부를 주었다.”
호도독.
맹렬히 회전하는 철사 막에 부딪친 화살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보이지 않는 총탄이 광해 몸 주위에서 불똥을 튀기며 사라진다.
한두 발 방어를 뚫고 갑옷에 닿았지만, 광해에게 타격을 입히진 못했다.
“신께서는 백성을 배불리 먹이라며 비료 만드는 기술을 주었고, 따뜻하게 입으라고 포목 만드는 기술을 주었다. 편히 살게 하라고 집짓는 기술도 주었다. 착하게 산 이에게 상으로 소망을 들어주게 만들었고, 못된 자를 혼내주라 했다.”
무의미한 화살비 속에서 광해가 손을 들었다.
“그 어떤 무기도 날 해칠 수 없게 몸을 보호하는 능력을 주셨으며.”
열심히 그린 마법진이 넓은 방어막을 만들었다.
잠시 철사방패를 멈췄지만, 날아드는 화살은 공중에 멈췄다.
백성들이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신비한 광경이었다.
“바람을 일으키는 능력을 주었으며.”
쉬이잉.
순간 돌풍이 불어 날아오는 화살이 일제히 꺾여 성벽에 꽂혔다.
“불덩이를 만드는 능력을 주었으며.”
사람 크기만 한 불로 만들어진 공이 튀어나왔다.
“악인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광해가 손을 휘두르자 불덩이가 날아갔다.
콰아앙.
멀리서 지켜보던 김장생에게 날아가 폭발했다.
모여든 양반 중 가장 골치 아프고 극단적인 성리학자다.
“악인은 죽는다.”
화르르륵.
거침없이 타올라 한줌의 재가 되는 김장생의 모습에 주위에 있던 양반들이 파르르 떨었다.
“허나 선인은 살린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피땀 흘리는 농부는 전보다 잘 살게 될 것이며,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병사는 좀 더 나은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병사들의 식량마저 훔쳐가는 매국노가 죽을 것이며, 조선의 재산을 쥐어짜 다른 나라에 바치는 매국노가 죽을 것이다!”
왕의 선언.
잘 들어보면 명나라를 상국으로 모시는 행위를 매국노로 규정했다.
한성의 양반들은 고래고래 소리 질러 백성들의 동요를 막고자 했지만 광해의 큰 목소리에 묻혔다.
자고로 목소리는 클수록 좋다.
“자식새끼 한 끼라도 챙겨주려고 고생하는 한성의 백성들아. 피땀눈물 흘려가며 농사를 짓다가 난데없이 끌려온 병사들아. 내 너희에게 묻겠다. 왕이란 무엇이냐? 너희를 위해 소망을 들어주는 이가 왕이냐? 아니면 너희의 재산을 빼앗아 배불리 먹다가 그 못된 짓을 못하게 막자 반란을 일으킨 자가 왕이더냐?”
선동.
“나의 정통성은 저 멀리 있는 다른 나라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왕이라서 나오는 게 아니다. 백성을 쥐어짜는 양반들에게 간택 받아서 나오지 않는다. 난 신에게서 내 백성을 배불리 먹이라는 명을 받았고, 능력을 받았다. 나의 백성을 잘 살게 하는 힘. 이것이 나의 정통성이다!”
양반들은 광해의 목소리를 막으려고 아우성쳤지만 시끄러운 소음을 뚫고 광해의 목소리가 귀에 쏙쏙 박혔다.
“조선 땅의 백성들에게 묻겠다. 왕이란 무엇이냐? 너희들의 왕은 어떤 존재더냐?”
“우릴 배불리 먹여주시는 분.”
병사 하나가 무심코 중얼거렸다가 주위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닫았다.
기적을 보여줬으니 무혈입성을 할 차례다.
“한성 내의 양반이 삼만 명. 그들의 수발을 들으며 백성의 고혈을 쥐어짜던 간악한 자가 삼만 정도. 그들만 잡으면 된다. 그들을 잡아 벌주면 된다. 너희 가족을 생각하라. 이길 수 없는 전투에 너희 소중한 생명을 버려선 안 된다. 국가를 농단하는 간악한 자를 붙잡아 꿀려라. 그리하면 전보다 잘 살게 될 것이다. 돌아서라. 너희의 적보다 너희가 스무 배 많다.”
광해의 말이 끝나자 한성을 포위한 백성들에게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미리 교인들과 약속된 절차다.
영광 영광 광해 전하~
영광 영광 광해 전하~
영광 영광 광해 전하~
소망하세요~
한성을 포위한 병사들이 일제히 노래하자 한성의 양반들은 사면초가를 들은 항우처럼 압박을 받았다.
게다가 노래가 점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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