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채유진 사건2
순도 100% 픽션입니다
투콰콰콰콰콱.
거대한 소음이 일어나고 하얀 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난다.
바위굴에서 광해가 나오자 호위들이 달려가 수건으로 먼지 묻은 옷을 털어주고 물은 건넸다.
그 곁으로 수백 명의 인부가 들어갔다.
폭 10보. 높이 6보의 터널공사현장.
광해가 마법으로 쪼갠 바위를 인부들이 들어가 끄집어낸다.
바위는 모두 보도블럭 크기로 잘려 있었다.
수레에 실어 가져가 도로 까는데 이용하면 된다.
터널을 뚫는 김에 도로에 깔 석재도 얻는 거다.
터널에 들어갔던 백성들이 수레에 블럭을 싣고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한다.
인디언 조선인 섞여 똑같이 일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던 광해는 그 안에 섞여 있던 아들에게 손짓했다.
“부르셨습니까?”
“곁에서 잘 보아라.”
돌을 수레에 싣고, 수레를 끌고 나가고, 빈 수레를 다시 가져오고.
먼지를 막기 위해 코와 입을 천으로 가린 인부들의 행색은 인종 관계없이 똑같았다.
인디언 중 힘 쎈 자가 있고, 조선인 중 열심히 하는 자도 있고, 인디언 중 슬슬 눈치 보며 대충 하는 자가 있고, 조선인 중에도 있다.
“능양군 저놈은 열심히 안하는구나.”
“헤헤. 형님의 주종은 머리 쓰는 서류작업인지라.”
“웃기고 있네. 고귀한 왕족이라고 일하기 싫은 거지.”
“제가 열심히 하라고 한마디 하겠습니다.”
“됐다. 저녁 굶겨.”
굶어봐야 정신 차리지.
일하는 모습을 한참 보던 광해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을 툭 던졌다.
“아들아. 난 너를 좋아한다.”
갑작스런 고백에 산남대군이 당황했다.
“아... 아바마마. 저도.”
그 대답은 오답입니다.
“그리고 널 좋아하는 것만큼 저들을 똑같이 좋아한다.”
“......”
“내게는 너나 저 백성들이나 모두 똑같다. 모두 같은 백성이고, 내가 지켜야 할 양들이다.”
“예...”
“광해산업에서 버는 돈은 국고보다 크다. 너무 많이 벌기에 버는 돈 대부분을 국가에 대출해주고 있지. 솔직히 광해산업의 돈만 생각해도 넌 왕보다 더 편하고 더 한가한 완벽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
황태자 산남대군은 광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미안하지만, 난 특권계층을 두지 않을 생각이다. 향후 칸국의 모든 백성은 모두 평등하게 살게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바마마.”
“기회의 평등, 법의 평등. 그를 위해 모현성이 강력히 주장하던 사법연수원 제도를 없앴다.”
특권계층을 만들지 않기 위해 지배자의 손해를 무릅쓰고 사법연수원 제도를 기각했다.
그렇다면 제대로 이어가야지.
“이를 민본주의, 혹은 민주주의라 한다. 자본주의 바탕 위의 민주주의가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고 여지껏 계속 조금씩 준비해온 사상이다.”
“...... 예. 이해했습니다.”
“뭘?”
“제가 먼저 특권의식을 버리겠습니다. 남 보여주려 일하는 게 아니라 모두와 똑같이 살겠습니다.”
똑똑하다.
능양군보다 천배 나은 아이다.
광해는 산남대군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줬다.
“서운하냐?”
“아닙니다. 전 그저 운 좋게 태어났을 뿐입니다. 아바마마께서는 왕이 할 일이 아닌 일에 손을 대 조선을 아니 칸국을 발전시켰습니다. 저도 찾아보겠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고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래. 훌륭하구나.”
“예. 그럼 일하러 가겠습니다.”
“그래. 아 잠깐만. 네 엄마한텐 비밀로 해라.”
욕먹기 싫어.
아들을 황제로 만드는 꿈만 꾸는 여잔데.
“푸훗.”
산남대군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신의 힘을 받은 황제께서도 무서운 게 있으시군요.”
“무서운 게 아니다. 귀찮은 것뿐이다.”
“예. 비밀로 하겠습니다. 아바마마께서 직접 전해 주시지요.”
“어...... 그건 좀...”
“풋.”
경상우도는 낙동강을 기준으로 경상도 서쪽이며 왕이 있는 한성을 기준으로 우측이기에 경상우도다.
경상우도 감영이 있는 상주에 도착한 이초란은 돌구에게 안보군을 지원받고, 밀주에게 검계를 지원받아 수사를 시작했다.
채유진이 상주에 발령난 이후 상주에서 일했던 관리 전원이 조사를 받았고, 병영 또한 뒤집어졌다.
채유진이 행한 모든 일을 살펴봤고, 관영변호사인 지르한이 수사한 판결 또한 전부 찾아봤다.
고위직은 많은 이와 얽힐 수밖에 없는 자리다.
채유진과 지르한이 죽길 바랄 인물도 많고, 죽여서 이득 볼 이도 많다.
이초란은 그들 하나하나를 살피다가 채유진이 마지막으로 신경 쓰던 사건을 살펴봤다.
실종.
매춘.
채유진은 실종자 수색에 열을 올렸고, 그 와중에 납치되어 매춘을 하던 여자 몇을 구했다.
광해가 읽어낸 소망.
지르한의 여동생을 찾는다.
여기에 해답이 있었다.
“밀주! 밀주는 어디 있느냐?”
혐오스러운 범죄자지만 광해님이 필요악이라 규정지어 처벌하지 못하던 밀주와 검계.
그들이 관련 깊다.
“스스로 수사해본다고 나갔습니다.”
“당장 불러오라. 안보군을 풀어 찾아오너라.”
이초란의 명에 병사와 안보군이 흩어져 밀주를 찾았다.
돌구가 안보군 통솔권만 넘겨준 것과 달리 밀주는 직접 내려왔다.
북방 여진족 안정에 투입되었던 밀주, 게다 우디치.
3년 넘게 북방에 있으면서 여진 말을 아는 여진계 부하들을 전부 데려갔고, 그들이야말로 밀주가 등을 맡길 수 있는 수족들이다.
그렇게 3년 넘게 여진 땅을 안정시키고 돌아오니 검계에 대한 통제력이 사라졌다.
반쯤 공무원기관인 안보군과 달리 검계는 건달 연합체다.
뚜렷한 계급이나 위계질서가 잡히지 않은 조직이다 보니 튀어나온 못도 많고, 범죄를 저지른 놈도 많다.
관서지방부터 차근차근 조져 다시 장악하던 밀주는 채유진 사건을 계기로 부하들을 끌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남부지방은 고작 3년 만에 많이 변해 있었다.
예전엔 신경도 안 쓰던 꼬맹이가 어느새 커서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까지 전부 장악한 상태였다.
“창한이......”
상주에 멈춘 이초란과 달리 경상우도 끄트머리 창녕까지 내려온 밀주는 남부의 패자를 만났다.
“검계의 주인을 뵙습니다.”
“창한이 너 많이 컸네.”
“아닙니다.”
“보아하니 매춘 쪽으로 돈 번 거 같은데.”
“아닙니다. 모두 검주께 바치고 있습니다.”
“어쩐지 올라오는 돈이 많더라니. 그래도 좀 비정상적이야. 매춘으로 그리 많이 벌수가 없는 데 말이야.”
“사람들이 살기 좋아진 거죠. 원래 사내새끼들은 돈이 생기면 구멍에 쏟아 붓지 않습니까?”
남부를 장악한 창한이는 검주 앞에서 벌벌 떨면서 변명을 늘어놨다.
“그래. 조사해보면 알겠지. 매춘으로만 벌었는지 아니면 다른 게 있는지.”
“검계의 주인이시어. 그냥 눈감아 줄 수 없겠습니까? 진짜 버는 거 다 올려 바치고 있었습니다.”
“모를 일이지. 다 올린 건지. 아니면 꼬다리만 올렸는데도 이렇게 많은 건지.”
어차피 사람의 말은 믿지 않는다.
“조사해서 문제없으면 넘어가는 거지.”
밀주가 일어서자 등 뒤에 있던 호위들이 눈을 부라리며 경계했다.
후우, 긴 한숨을 쉰 창한이가 천천히 일어섰다.
찌릭.
초가집 벽에 늘어진 새끼줄을 잡아당기자.
쿠쿠쿠쿵.
지붕이 무너졌다.
“뭐냐? 으아악.”
창한이가 있던 곳을 제외하곤 천장이 전부 무너졌고, 밀주와 호위 전부 지붕위에 있던 흙더미에 깔렸다.
“죽여라!”
집 밖에 있던 밀주의 부하 서른명에게 창한이의 부하들이 달려들었고, 창한이는 직접 검을 뽑아 밀주에게 갔다.
죽진 않았지만 흙더미에 깔려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게다 우디치.
“너... 이거 못 감춘다. 나 죽으면 너도 죽어.”
“너 안 죽이면 당장 죽는데! 시발.”
창한이는 길게 말을 끌지 않고 밀주의 목을 찔렀다.
어린 나이에 게다족의 족장을 맡아 부족을 살리고, 끝내 광해의 심복으로 성장한 밀주가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호위들까지 전부 죽였고, 누구도 도망가지 못했다.
“창녕에 내려온 되놈 전부 죽였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창한이는 벌렁이는 심장을 다독였다.
“썅. 변호사놈을 모셔 와라.”
“하아. 진짜.”
창한이 앞에 불려온 변호사 김류식이 한숨을 쉬었다.
“어이 아저씨. 돈 많이 주잖아. 어차피 우리 한 배 탄 거 몰라?”
“그래도 좀 조용히 죽이지 그랬소? 저 부하들 전부 숨겨야 하는데.”
김류식은 창한이의 부하 백여 명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떡해야 하는데?”
“꼬리 끊기는 잘되고 있소?”
“어...... 준비하고는 있었는데.”
“알겠소. 당장 내일 송사를 넣겠소. 댁은 시체 전부 태워서 없애고 오늘 가담자 전부 숨기시오. 이름도 다 바꾸고. 경상도 쪽은 수사가 이어질 테니 전라도나 충청도 끄트머리로 교체시키시오.”
“그래.”
창한이는 밀주와 부하들의 시체를 모아 태웠고, 남은 뼈를 가루 내 모두 바다에 던졌다.
변호사 김류식은 자신의 동료들에게 지령을 내렸고, 다음날 삼남지방 관아 스물 몇 곳에 똑같은 소송이 들어갔다.
“청주의 기생 춘란이 매춘으로 번 돈을 탈세했다.”
“나주의 기생 유화가 매춘으로 번 돈을 탈세했다.”
......
수백 건의 소송 모두 매춘부의 탈세에 관한 일이다.
갑작스레 터져 나온 소송에 이초란은 정신이 없었다.
변호사들이 제출한 수사계획서와 증거를 보면 이건 확실히 탈세 범죄다.
다만 검계가 꽉 잡고 있는 범죄분야여서 손대지 못하던 범죄였다.
“잘 됐군. 밀주 불러와라.”
때마침 채유진의 수사도 매춘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다.
밀주를 조지면 채유진의 수사도 해결된다.
며칠간 밀주의 행방을 쫓는 사이 변호사 단체의 수사계획서는 통과되었고, 기녀들의 탈세행각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새로운 송사가 뒤 이었다.
이번엔 장우영이란 변호사가 선두에 섰다.
“이민자에 대한 납치강간매춘이 조직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1년 넘게 지속된 이 강력범죄를 관아에서는 수사조차 하지 않았고, 그 뒤를 봐주는 것은 검계의 밀주였다.”
칸반도의 기존 백성 중 300만 명이 확장된 영토로 흩어졌다. 그 빈자리에 타지의 백성 백만 명이 들어왔다.
조선어를 배웠지만 어눌하고, 법을 배웠지만 관습이 조금씩 다르다.
적응 잘한 자는 기존 백성과 사이좋게 지내지만 일부는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고 있었다.
고향을 그리워해 고개 숙인 이민자.
새로운 마을에서 왕따를 당해 웅크린 이민자.
악의적인 괴롭힘에 우는 이민자.
그런 이들 하나 둘 쯤 사라져도 마을 사람들은 잘 됐네 하고 만다.
그렇게 사라진 여인이 수백명.
그들에 대한 송사였다.
장우영이란 변호사가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관아에 대한 소송을 걸었고 납치 강간당한 후 매질 속에서 매춘을 하다 죽거나 탈출한 여인 수십 명의 증언이 있었다.
장우영을 비롯한 이민족을 대변하는 단체는 검계와 관아를 수사계획서에 넣었고, 이초란은 조사를 허가해줬다.
죽임을 당한 여자 중 하나는 상주 인근에 묻혀 있었다.
나소 엔탄.
“흐허엉. 엔탄. 엔!”
채유진의 시누이이자 나소 지르한의 여동생이다.
- 작가의말
창한이는 116화에 등장했었습니다요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