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피와 약탈2
순도 100% 픽션입니다
광해는 개떡이 이시언 등 지도부와 함께 말을 타고 느긋하게 걸으며 주위를 관찰했다.
광해의 바로 뒤에는 지난 원정의 문제아 입부 이순신이 있었다.
지금껏 한산도 해사에서 전술 기초를 교육받은 입부는 이번 원정 내내 광해의 등 뒤에 붙어 있을 것을 명령받았다.
부채꼴로 넓게 퍼져 전진하는 징집병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거나 폭주해서 양민을 학살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 통제에 잘 따르고 있었다.
“도망자는 쫓지 마라.”
“집을 수색하라. 남아있는 자는 죽여라.”
백인장이 열심히 소리 지르며 제식 훈련을 이어갔다.
거기에 항왜 출신 병사들이 앞서나가며 열심히 일어로 떠들었다.
“도망가면 쫓지 않는다. 무기를 들고 저항하면 모두 죽인다. 도망쳐라.”
사만명의 병사가 걸어오는데 대항할 자가 있을까?
양민들은 갑작스런 대군의 출현에 일제히 도망쳤고, 히로시마 영주성을 포위할 때까지 단 한 번의 전투도 없었다.
성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무장병력이 2천 명 정도 있었다.
“내가 성문을 깨지.”
“전하.”
“빨리 해치워야 하잖아. 이제 내 능력도 아는데 너무 그러지 말지.”
“...... 알겠습니다.”
광해는 아다만티움 전신 갑옷을 입고 특별히 만든 강철창을 빗겨들고 뚜벅뚜벅 걸어갔다.
염동력 철사무기가 편하지만, 징집병들도 광해의 무위를 봐야 한다.
은색 아다만티움 실로 만든 외투 같은 갑옷 위에 붉은 곤룡포를 입고 걸으니 전쟁하러 나온 이 같지가 않았다.
큰 키에 짧고 깔끔한 귀두컷을 한 광해는 당당히 걸어가 외쳤다.
“나는 조선의 국왕 광해다. 조선을 침략한 후쿠시마 마사노리를 단죄하러 왔노라. 항복하면 살려주고 거부하면 모두 죽이겠다. 셋을 세겠다. 셋. 둘. 하나.”
두 번 말했다.
한번은 조선어로.
한번은 일본어로.
항복할 시간도 없이 카운트다운을 끝낸 광해는 성문으로 걸어갔다.
타다다다당!
광해가 성문 앞에 다다르자 갑작스런 일제사격.
조총 300정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그럼에도 광해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마력을 아낄 상황이 아니다.
미리 발동한 방어 마법이 모든 총탄을 튕겨냈다.
광해는 창을 뒤로 쭉 뺏다가 강하게 내리찍었다.
콰앙.
창술이 아니라 도끼질 하듯 성문을 찍었다.
콰앙.
콰직.
콰앙.
성문에 흠집이 나고 갈라지더니 벌어진 틈으로 창이 쏙 들어갔다.
콰작!
쓔아아아.
성문이 거의 열렸을 때 머리 위에서 끓는 기름이 쏟아졌다. 뒤이어 날아오는 불화살 들.
광해는 몸에 두른 방어막을 믿었다.
우산을 쓴 것처럼 기름도 불도 뜨거움도 광해에게 범접하지 못하고 옆으로 흘렀다.
콰아앙!
드디어 성문이 박살났다.
“전군. 돌격.”
명령을 내리며 광해가 들어갔다.
성문 뒤에 도열해있던 히로시마 병사들이 일제히 창을 찔렀지만, 위협적인 건 전혀 없었다.
광해가 병사들 틈으로 난입해 진영을 흩뜨리는 사이 조선군이 성 내로 들어왔다.
2천 명 대 4만 명. 이정도로 숫자의 차이가 나면 병사의 훈련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크윽. 비겁하게 기습하다니!”
“영주님이 안 계신 틈을 타 공격하다니!”
일부 무사들이 한스러운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광해는 정정당당한 일전 같은 거 싫어한다.
안 싸우고 이기는 게 가장 좋고, 쉽게 이기는 게 두 번째로 좋다.
영주가 자리를 비운 걸 알기에 공격한 거다.
전투는 끝났다.
이시언이 담담히 명령을 내렸다.
“남자는 전부 죽이고 여자는 마음대로 해라. 반나절 주겠다.”
피와 약탈이 시작되었다.
“네놈들이 우리 부모를!”
“내 딸이 네놈들에게 강간당해서.”
“살려내! 살려내란 말이다.”
애초에 복수심 때문에 자원한 병사들이다.
약탈이 허락된 순간 부대는 통제를 잃었다.
항복해도 죽는 걸 알게 된 일본군 일부가 저항하며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거기까진 어쩔 수 없었다.
이성적으로 약탈을 진행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저 천인장 급 간부들이 이성을 지키며 도를 넘지 않게 막을 뿐이었다.
히로시마 성은 순식간에 비명과 절규로 가득찼다.
“꺄아아. 살려줘~”
“제발. 제발 커흑.”
고문, 화풀이, 강간, 유아살해, 간살.
온갖 범죄가 일어났다.
마력이 오락가락 한다.
선량한 이가 죽을 때마다 줄어들고 악한이 죽을 때마다 늘어난다.
왜구에 복수한다는 소망이 집행되며 늘어난다.
결과적으로 약간 늘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반나절 후. 성문 앞엔 쌀 18만석과 각종 패물이 쌓였다.
히로시마 성에 있던 2만여 명은 아이와 여자까지 포함해 전원 죽었다.
조선 출신 노예 100여명만 살아남았다.
“불을 질러라.”
히로시마에 불을 지르고 배로 돌아왔다.
부대는 다시 넓게 퍼져 히로시마 평야를 고루 지나며 조용히 지나쳤던 마을을 약탈하고 불태웠다.
건조한 가을날씨에 히로시마 평야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다.
이틀간 동진 한 함대는 이케다 가문이 다스리는 아카야마 성을 점령하고 성과 평야를 불태웠다.
함대는 더 이상 실을 수 없을 때까지 노획한 군량을 실었고 나머지는 불태웠다.
두 군데를 약탈한 함대는 아와지섬에 정박했다.
경계를 강화해 보병 오천 명이 수비 중인 아와지에는 커다란 창고가 여럿 지어져 있었다.
약탈한 식량을 전부 내려 창고와 비어버린 민가에 쌓았다.
식량을 내리는 것을 보고 있는데 백관 윤성준이 달려왔다.
“전하. 오사카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음?”
아와지섬 전투는 일본 영주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다.
전투전에는 적병이 얼마 없으니 어떻게든 헤엄쳐 건너면 이기겠지 하는 생각이었으나 결과를 놓고 보니 스스로 병사들을 자살시킨 격이었다.
에도번의 병사들은 조선군이 내려준 섬사람들에게 죽창 하나만 쥐어준 병사들이니 전력소모는 거의 없고 식량소모가 줄어들어 오히려 이득이 되었지만, 함께 호응한 다른 번들은 정규병과 중요 재산인 농민이 개죽음을 당한 꼴이었다.
에도번에서는 패전의 책임을 오사카번에 물었다.
가장 가까운 오사카번에서 정예가 합류하지 않아서 패했다고 소리쳤고, 오사카번에선 최선을 다했지만, 작전 자체가 형편없어서 패했다고 선전했다.
누가 봐도 에도번의 잘못이다.
영주들이 동요하자 에도번에서는 조선군을 막기 위한 전군 집결을 포고했다.
서쪽 영주들은 추수를 끝내고 10월 초까지 히메지성에 집합하고, 동쪽 영주는 이가성에 집결하라는 소집령.
둘 다 오사카성 좌우에 있는 성으로 곧장 공격할 수 있는 위치다.
배도 없는데 뭉쳐서 뭐하겠는가.
당연히 오사카번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조선을 공격할 수 없으니 오사카번을 공격해 내부결속을 다지겠다는 의도.
영주들도 다 안다.
오사카번 또한 큰 피해를 입었는데 조선과 손잡을 일이 뭐 있겠는가.
하지만 정치란 알면서도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
원인이나 과정은 중요치 않다.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
강력한 에도번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수많은 영주들이 소집령에 응해 모여들었다.
오사카번에서는 이가에 집결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친도요토미 영주들에게 오사카로 모일 것을 명령했다.
아와지섬 상륙작전 이후 일본 내부에서 전쟁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히메지와 이가에 모인 부대가 십오만명을 넘기고, 오사카번에 모인 병사는 칠만명을 간신히 넘겼다.
이것이 두 세력의 힘 차이다.
오사카번에서 전전긍긍할 때 잠잠하던 조선군이 재등장했다.
“오사카와 그 인근의 있던 조선출신 포로 이천명을 모았답니다. 그리고 밀담을 나누고 싶다 합니다.”
“그것밖에 안 돼? 조선 출신은 더 있을 텐데.”
“긴 시간이 흘렀으니...... 노예생활을 하면서 많이 죽었겠죠.”
“음. 포로들 태울 함선을 보내. 밀담하고 싶으면 포로 수송선으로 오라고 해. 안전은 보장해 줄 테니.”
겁먹고 오지 않거나 신하만 올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오노 하루나가가 직접 넘어왔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일지도.
“내가 조선의 왕 광해다.”
광해는 당당하게 그들 앞으로 갔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하.”
“그래. 우선 따라와라.”
“예.”
광해는 그들을 데리고 포로를 모은 곳으로 갔다.
아와지섬 상륙작전에서 힘도 쓰지 못하고 비참하게 패배해 붙잡힌 포로가 2만여 명.
그들 중엔 상륙조차 못하고 파도에 떠다니다가 조선군에게 구출 받은 이도 많았다.
공터에 묶여 식량만 축내며 소망교 교원에게 꾸준히 전도 받았기에 이미 광해를 신격화 하는 이들도 많았다.
“나는 조선의 왕 광해다! 하지만 동시에 신에게 명을 받고 능력을 얻은 천계의 사자다. 조선의 원한이 하늘에 닿았기에 조선군이 야마토를 공격할 힘을 받았고, 나는 신의 명을 수행하는 중이다.”
전쟁이 아니다.
신의 뜻을 이행하는 것이다.
역겹지만, 광해는 타 종교 지도자들이 했던 짓을 똑같이 답습하고 있다.
이게 가장 효율적이니까.
“그럼에도 신께서는 함부로 죽이지 말라 명하셨다. 신의 언어와 말씀을 이해하고 신실히 믿으면 신의 백성으로 받아들이라 했다. 이미 너희에게 신의 뜻이 전해졌겠지?”
집과 땅을 주고 먹고 살게 해주는 신의 나라.
수없이 전도 받은 내용을 왕이 다시 말해줬다.
시험만 통과하면 신의 백성이 될 수 있다.
포로들의 눈이 반짝였다.
“신께서 함부로 죽이지 말라 하셔서 섬에 있는 백성들을 야마토에서 가장 강한 도쿠가와 가에 내려줬다. 헌데 이렇게 다시 왔구나. 식량을 마련하기 싫어서 이런 자살 공격을 시키다니. 에도번이 너희를 죽였구나.”
조선군과 싸우다 죽었지만, 에도번이 자살 공격을 시킨 게 맞다.
병사들의 원한도 조선이 아닌 에도번을 향하고 있다.
“신께선 공평하시다. 믿는 자를 챙겨주신다. 신을 믿고 따르고 소망한다면 신은 차별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믿거라.
신의 군대는 조선을 불태웠던 죄를 반성하지 않는 영지만 불태우라 했다. 그리하여 히로시마와 아카야마를 불태웠다. 앞으로 신의 군대는 과오를 뉘우치지 않은 슨푸와 에도를 불태울 것이다. 또한 임란의 원한이 서린 다테 마사무네의 영지와 가토 기요마사의 영지의 모든 것을 죽이게 될 것이다.
그 후로도 과거의 과오를 뉘우치지 않는 영지는 영영 공격받을 것이다. 너희는 이 소식을 알려 그곳에서 선량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라.”
“예!”
포로들이 기합든 병사처럼 힘차게 대답했다.
“두 번째 용서를 해 주겠노라. 오사카에 내려줄 터이니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라. 조선에 저항하면 죽일 테지만, 피하면 살 수 있을 것이다. 신의 언어를 익힌 후 신의 백성이 되도록 하라.”
“예!”
광해의 연설이 끝나자 윤성준이 나서서 병사들을 통제했다.
오사카에 내린 저들은 각자 고향에 가서 광해소망교를 퍼트릴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분열을 부축이겠지.
연설을 끝낸 광해는 도요토미를 돌아봤다.
“내가 무슨 뜻으로 연설한지는 알겠지?”
“예.”
“차나 한잔 하자.”
막사로 자리를 옮겼다.
도요토미 히데요리.
열여섯 나이에 170cm로 키가 무척 크고 덩치도 좋다.
도요토미가 몰락의 원흉이지만, 슬슬 성인이 되면서 아버지대의 영광을 되찾으려 분투하고 있다.
조선의 영창대군과 일본의 히데요리.
거의 동일한 상황에서 반대되는 선택을 해서 역사에 영향을 준 인물들.
선조 말년에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후계자 교체에 대한 말이 나왔다.
결과는 광해군이 왕이 되고, 왕위에 이름이 오르내렸던 영창대군은 비참하게 숙청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말년에 히데요리가 태어났다.
당시는 임진왜란 2년차로 한창 이순신에게 해군이 박살날 때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갓 태어난 히데요리를 왕위에 올리고 싶어서 그때까지 후계자였던 조카 히데츠쿠와 가족, 그를 따르는 가신까지 전부 죽여 히데요리의 정통성을 강화했다.
이 사단을 내놓고 히데요시가 죽으니, 측근들의 세력다툼인 세키가하라 전투 등이 벌어지고 에도번이 천하를 먹는 역사로 흘러간다.
만약 광해군이 숙청되고 아기 영창대군이 왕위에 올랐다면 조선은?
30세가 넘은 히데츠쿠가 히데요시의 뒤를 안정적으로 이어받아 조선침공에 전력을 이어갔으면?
중대한 역사의 변곡점.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중대한 교훈을 남겨준다.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