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지브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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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내려주십시오.”
황제가 있는 방 앞에서 근위병이 용감하게 가로막았다.
“왜? 물까봐. 안 물어. 쫄지마.”
“그... 그게 아니옵고... 본래 황제 앞에선 무기를 들일 수 없기 때문에.”
“어디 감히 외교상 황제간의 만남에서 무기를 몰수하려 하느냐? 우리는 무기를 들고 있을 테니 네놈들도 무기를 들어라.”
구름이를 따로 떨어뜨려놨다가 적이 공격하면 죽을 수도 있다.
절대 떨어질 수 없다.
대신들이 또 한참 수군대고 들어가서 황제와 한참 지껄이더니 병사들이 내전으로 들어왔다.
총과 칼을 든 근위병 삼백 명이 배치된 후에야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스만 2세.
어제 황제가 된 이로 나이는 무려 열세 살.
광해가 지켜보는 가운데 백관 주용현이 나서서 과거 서로 동의했던 동맹에 대해 다시 상기시켜줬다.
고작 1년 사이에 황제가 두 번 바뀌고, 그 덕에 대신들도 꽤나 물갈이 되었으니 재차 조건을 맞춰야 했다.
분위기를 보니 전 황제는 연산군처럼 패악질을 부리다 쫓겨났고 여기 있는 대신들은 중종반정처럼 반란을 이끈 놈들일 테니 전문성도 부족할 테고.
그건 이해하는데 분명 전에 상품을 선불로 줬던 걸로 아는데.
개떡이의 함대가 이집트에 갔을 때 선물로 샘플을 주고, 식량 값으로 후추, 정향, 육두구, 용연향 등을 준 후 오늘 식량을 받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저들은 그걸 받은 건 다른 황제라며 트집을 잡고 있다.
물론 물갈이된 전 신하들이 받아 챙긴 게 많을 테고 지들도 뒷주머니에 챙기고 싶겠지만.
“이것들이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로 보나.”
광해가 일어서자 옆에서 식빵모양으로 앉아있던 구름이가 일어난다.
“구름이는 앉아 있고.”
광해는 창가로 가 창을 열었다.
커다란 판 유리를 만들 기술이 없어 작은 판유리 여러 개를 붙인 창문이지만 충분히 고급스럽다.
회의장은 황궁 3층에 있었다.
창을 열자 햇살과 함께 멀리 마르마라해가 보이고 코앞엔 방금 대치가 일어났던 운동장 겸 정원이 보였다.
“이게 무슨 외교 상 결례이시오?”
감히 소리치는 놈을 본지 오래되어 화나기 보단 신선하다.
광해는 마법진을 그리며 되물었다.
“전에 주용현이 내 능력에 대해 말하지 않았느냐?”
“흥. 그런 헛소문을 믿을 리 없소.”
“방금 총알을 막아낸 건 못 봤냐?”
“전황제의 병사들이 나약한 것뿐이오. 다 물갈이 할 것이오.”
나약하다니.
강하면 총알도 막을 수 있나?
백련교가 퍼트린 의화권 정신이 여기도 숨 쉬고 있네.
“자네 직책은?”
“근위 대장 알 하삿 딘이오.”
“그래 근위 대장이 못 봤다니 직무 태만이군. 대장 이리오고. 황제도 잘 보시오. 가즈 피스트.”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순간 창밖에 햇빛보다 눈부신 황금빛 광채가 퍼졌다.
정원 크기의 황금빛 주먹이 하늘에서 서서히 내려와 정원에 쿠우웅.
다시 올라가다가 떨어져 쿠우웅.
“잘 안보이지? 이리 와라.”
염동력으로 근위 대장을 잡아 창밖 공중에 꺼내고 주먹이 쿠우웅.
“황제도 잘 보시고.”
쿠우웅.
주먹을 열 번 내려치고 마법을 취소했다.
더럽게 마력소모가 크고 화려하기만 한 마법이어서 이런 쇼에나 쓴다.
흙먼지가 창안으로 뭉게뭉게 들어와서 창을 닫았다.
“아차.”
창을 열고 근위대장을 끌어온 후 닫았다.
정신 못 차리고 헤롱거리는 근위대장을 바닥에 내팽개친 광해는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보름 안에 약속 지켜. 그 이상 못 기다린다.”
이 후 협상은 아주 화기애애하고 훈훈하고 협조적이며 모범적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너무 예쁜 도시이옵니다.”
예서는 안내받은 화려한 방에서 밖을 보며 말했다.
바뀌고 있는 한성보단 못하지만 한성보다 전경이 아름답긴 하다.
한성의 새로운 시설들은 노량진이나 석계처럼 멀리멀리 만들고 있기에 이곳처럼 응축해서 보기 힘드니까.
도시는 동쪽으로 툭 튀어나온 반도에 만들어졌고 대륙과 연결된 서쪽은 거대한 성벽으로 막혀 있다.
궁전은 동쪽 끝 바다에 붙여 만들어졌고, 서쪽 성벽과 궁 사이에 각종 시설과 시가지가 응축되어 있다.
유럽 전체에서 가장 발전한 도시.
예서는 예쁘다 했지만.
“필사적인 도시구나.”
살아남기 위해 성벽을 거대하게 쌓았고, 외성이 무너지면 거미줄 같은 시가지를 지나야 궁전에 다가올 수 있다.
분쟁이 멈추지 않는 지역답게 방어를 최우선으로 둔 형태다.
성벽 안 좁은 공간에 시설이 응축되어 있고, 사이사이엔 허가받지 않은 것이 분명한 빈민가가 진흙처럼 채워져 있다.
성벽 밖에도 빈민가가 넝마처럼 널려져 있고.
거대한 제국의 수도답게 인구밀도가 높고 아름다운 건축물도 많지만.
“예쁘지 않다고요?”
“예쁘다기 보다 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것처럼 보인다. 방어 형태도 그렇고, 저 빈민들이 몰려든 걸 생각하면.”
“그렇다고 그들을 강제로 쫓아낼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 힘들겠지.”
조선이 행한 전인구 토지분배는 현재 어느 나라도 꿈꾸지 못할 사업이다.
행정력이 받쳐지지 않고 장악력이 전국에 퍼진 나라가 없으니.
예서는 도시의 아름다운 상징을 봤고, 광해는 도시의 빈민을 본다.
이게 아마 역사관의 차이로 이어지겠지.
“광해님. 오늘도 파티에 가지 않으시렵니까?”
“어. 그런 거 귀찮으니 너나 갔다 와라.”
“힝. 아닙니다. 저도.”
“싫으면 가지 말고.”
“힝.”
침대에 누워 악착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인생 최고의 낙으로 삼은 광해 때문에 예서도 함께 있었고, 모현성만 서칸 국왕이라며 신나게 파티장을 누비고 다녔다.
그 녀석 관종답게 엄청나게 떠벌리고 다니겠지.
개떡이가 후추 등 상품을 주고, 댓가로 받기로 한건 화약과 식량이다.
개떡이의 부대는 인도를 떠난 후 1년 넘게 보급을 못 받았고, 이운룡의 미대륙 함대도 오고 있으니 보급이 필수다.
충분한 물건 값을 받고 지중해 끝까지 수송해주기로 약속한 오스만 제국은 모른 척 뻐팅기며 값을 올려보려다가 정원에 거대한 주먹자국 음각을 새기게 되었고.
부랴부랴 준비한 수송대가 출발했다.
광해는 왕을 위한 고급 함선에 들어가 또 쉬었다.
지중해의 대부분을 오스만이 차지하고 있지만, 나머지 약간을 베네치아와 스페인이 나눠 갖고 있다.
그들의 습격을 주의해야 한다.
이번 수송이 실패할 경우 개떡이를 포함한 칸국의 전함대가 위기에 빠질 수 있기에 광해가 필히 참여해야 했다.
적선의 돛에 불만 붙여도 전투에서 이길 수 있으니까.
이스탄불 앞 좁은 해협을 통과한 수송대는 오스만이 차지한 발칸 반도를 지나고 남쪽으로 쭉 내려갔다.
“저기가 이집트야.”
“어.”
감흥 없는 광해의 말에 모현성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형 덕분에 농장 개설도 확약 받았고, 바로 최씨상단 투입하면 돼.”
“어? 너 씨발 그거 진짜 하게?”
“어. 2년 만 기다려봐. 다 죽었어. 아주.”
“야. 인간적으로 그건 아니다.”
“괜찮아. 칸국이 하는 거 아니야. 우리 측 하급 관료를 매수한 못된 상단이 몰래 벌이는 일이야.”
“그게 아니라...... 에휴 됐다.”
“지금 유럽을 조져야 돼. 유럽이 아직 약해도 이대로 100년만 두면 걷잡을 수 없게 돼. 완벽히 조져놔야 해.”
“해외 식민지도 다 조졌잖아. 지브롤터를 막고 해안 한번 돌면 100년 후퇴시킬 수 있고. 그런데도 그런 짓을 해야겠어?”
“음. 유럽이 좀 불쌍하긴 해.”
지 상상에 맞춰 말을 휙휙 바꾸는 게 모현성의 특기다.
“뭐지 이 미친놈은.”
“얘들 불쌍한 게...... 형 갑자기 퀴즈 세계 수도 중 가장 추운 곳은? 셋. 두...”
“몽골.”
“어? 전에 말했나?”
“어.”
“그런데 프랑스 파리의 위도가 울란바토르의 위도보다 높아.”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무산.
무산에서 한참 올라간 몽골보다 더 올라가야 하는 파리.
“상관없지 않냐? 대륙서안 기후라서 살기 좋다며.”
“상대적으로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서늘하니 인간 같은 육식동물은 살기 좋지. 하지만 밀 같은 식물에겐 안 좋은 환경이야. 북극에 가까우니 햇빛이 비치는 시간과 강도가 약하거든. 중세 암흑시대 유럽애들의 평균 생산량이 세배였어. 밀 한 톨을 심어 가을까지 곱게 키우면 밀 세 톨이 맺히는 거야. 졸라 불쌍하지?”
“음...... 고생해서 얻는 게 적다고?”
“조선의 쌀과 비교하면 똑같은 노동량으로 절반 이하밖에 못 얻어. 일단 환경 자체가 그러니 농업에 많이 붙어야 하고 넓은 경작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정치적으로 교회에 예속돼 신정일치의 후진 지배를 받으니 넓은 경작지를 만들어 배불리 먹이는 대신 전쟁으로 사람을 죽여 귀족만을 위한 세계를 유지하는 데 열을 올렸지. 거기다 추가로 얘들은 같은 급끼리만 결혼했어.”
“조선도 그랬잖아. 귀족끼리 결혼하는 건.”
“그 정도가 심해서 왕가는 왕가끼리만 결혼하고 공작은 공작끼리만 결혼해야 했어. 왕가의 장남이 공작가와 결혼한다? 이러면 절대 왕이 되지 못해. 차라리 멀리 외국에 살던 방계 핏줄이 와서 왕이 되지.”
“어. 그런데 그게 문제야?”
“한국 재벌이 결혼으로 거미줄처럼 얽힌 것처럼 얘들은 국가 간 왕가들이 서로 결혼으로 얽혔어. 공작 등 귀족들도 결혼으로 얽히고. 이러니 나라가 달라도 귀족은 죽지 않아. 한 다리만 건너면 다들 친척이니 자국 백성보다 타국 귀족이 더 가까운 존재인 거지. 그 결과 전쟁에 패해도 죽는다는 부담감이 줄고...... 전쟁이 끊이지 않고.”
“어. 서민의 입장에서 말하는 거구나.”
“그렇지. 농사는 잘 안 되는 똥땅인데 귀족은 미쳐서 전쟁만 하려하니 유럽 서민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불쌍한 생활을 했어. 이런 상황인데 오스만 제국이 이집트를 먹고 동유럽을 삼키니 얘들이 인도를 찾고 싶어서 해외로 나갔어. 대학살 시대의 시작이지.”
“그 잔인한 정치가 퍼져나간 거네.”
“몽골이 고려를 지배했을 때 많이 죽기도 했지만, 유럽만큼은 아니었어. 고려가 요나라, 몽골 등에 점령당한 기간 동안 유럽 애들처럼 학살당했다면 고려인 대부분이 죽었겠지. 오스만이 동유럽을 정복했어도 유럽만큼은 아니었고. 서유럽은 너무도 미개했기에 학살에 양심의 가책이 없었고, 교회에서 모든 기생충을 죽이라 명하니 즐겁게 따랐지.”
“그래도 이집트의 농장은 안 해도 될 거 너무 간 거 아니냐? 해안을 봉쇄하면 일본처럼 약해질 텐데.”
“해외로 나간 원정대. 특히 페루를 삼킨 스페인이 엄청난 금과 은을 유럽에 가져왔어. 형 자본주의의 최소 요건이 뭐라고?”
“충분한 화폐......”
“어. 원래부터 유럽은 몸값거래가 많았어. 다른 지역은 잡힌 왕과 귀족이 친족까지 싸그리 죽는데 유럽은 기독교 세례 아래 모두가 하느님의 어린 양이니 영지전을 통해 잡힌 귀족은 몸값을 내고 풀어주는 문화가 있었거든. 그런데 이 땅에 충분한 금과 은이 들어왔어.
마치 게임처럼 돈을 많이 갖고 있으면 여분의 목숨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돈을 벌려는 노력이 퍼졌는데 스페인의 금이 뿌려지며 더욱 노력하게 되지. 이들은 인니의 육두구가 황금 가격에 판매되는 걸 이해했고, 돈 벌기 위해 노력하면 엄청난 부자가 된다는 걸 알아냈어. 이게 자본주의의 시작이고 자본주의는 인류의 상상력과 노력을 폭발시키는 가장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사상이지.”
유럽보다 빨리 배에 포를 싣고 다녔던 고려가 해외를 정복하고 다녔으면 고려가 스페인처럼 되었을 것이다.
둘의 차이는 절대왕정과 자본주의의 차이.
왕정은 굳이 변화를 원하지 않지만 자본주의는 일단 시도해보고 찔러본다.
돈을 벌어서 쓰는 자본주의와 백성을 쥐어짜서 쓰는 왕정의 차이가 현대 유럽의 강세를 만들었다.
“그래서 조지겠다?”
“자본주의가 시작되었으니 해안 봉쇄로는 못 끝내. 유럽 내에서 돈을 벌려고 어떻게든 노력하다보면 로켓도 나올 것이고 기관총도 나오겠지. 자칫하면 핵폭탄 얻어맞을 수도 있어.”
“그래서 어떻게 조지려고?”
“똑같지 뭐. 해안 항구 전부 불태우고 배 전부 몰수하고.”
“육지는?”
“이집트 농장.”
“야이......”
북아프리카 전체를 차지한 오스만 제국의 영역을 따라 서진을 이어갔고 북아프리카 서쪽 끝 세우타는 스페인이 차지했지만 딱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수송대는 대함대를 보고 숨은 세우타를 지나쳐 지브롤터에 도달했다.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곳으로 유럽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이 눈으로 보이는 거리에 마주하는 곳이며 좁은 해협 끝에 그나마 항구를 설치하기 용이한 지브롤터는 21세기까지도 영국이 차지하고 있는 땅이다.
역사적으로도 요지였기에 칼레 해전 이후 영국의 스페인 공격 제 1 목표였으나 영국이 처참하게 패했고, 10년 전 네덜란드 소형선박 30척의 기습으로 스페인 네덜란드 전쟁이 휴전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 곳이다.
11년(1618) 7월.
항구엔 개떡이의 함대와 이운룡의 함대가 전부 도착해 있었다.
기존 스페인 해군이 있었겠지만 파리 잡듯 해치웠겠지.
2000톤급 갤리온 마흔 한 척.
1000톤급 갤리온 서른일곱 척.
200톤급 판옥선 백 척.
영국과 네덜란드의 모든 전력을 합친 것보다 강한 전력.
“응? 판옥선?”
“우와 저게 여기까지 왔네?”
“노 저어서 지구 반 바퀴를 돈 거냐?”
놀랍다.
노저어서 귀환하라고 시키면 4년 걸리려나.
대체 니들 어떻게 온 거냐?
- 작가의말
화려한 파티와 모현성의 허세작렬, 오스만 공주와의..... 스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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