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마카오 전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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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동쪽에 나타난 판옥선은 광동군 정크선에 붙어 조란탄으로 싸웠다.
관선 크기인 정크선엔 전원 갑옷을 입고 조총으로 무장한 명나라군이 있었다.
지금껏 화약무기 따위는 없는 해적들과 싸우던 조선군으로선 가장 강한 적을 만난 것이다.
하지만 정크선은 판옥선보다 이삼보 낮다.
낮은 곳에서 높은 판옥선을 향해 조총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차라리 해적들의 조잡한 화살이 더 무섭지.
콰콰쾅.
콰콰쾅.
모현성이 수립한 작계에 따라 바짝 붙어 조란탄만 뿌리니 정크선의 갑판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한 척 한 척 갑판병이 몰살되고, 노병만 남았다.
노군장은 노를 저어 북쪽으로 도주했고, 판옥선은 굳이 쫒지 않았다.
섬 양쪽을 차지한 판옥선은 물길에 최대한 붙어 도강중인 수송대를 조준했다.
“쏴라! 조란탄은 빼고 철포만 넣어라.”
“닿지 않습니다.”
“안다. 군사의 지시다.”
개떡이의 지시라면야.
콰콰콰쾅!
판옥선 이백척이 일제히 화포를 날렸다.
함선의 무서움.
함선의 가장 큰 장점은 수송 능력에 있다.
기마 2000기와 수레, 수많은 병사들이 달라붙어서 화포 200문을 힘겹게 수송하고 있다.
그런데 배는 화포를 싣고 어디든 쉽게 움직인다.
판옥선에 실린 화포의 수는 무려 3200문이다.
한쪽면만 포격하니 1600문만 쐈지만 그마저도 놀라운 화력이다.
콰아아앙.
천지가 개벽하는 소리가 양쪽에서 울려 퍼진다.
다만 소리에 비해 효과는 없었다.
모든 포탄이 도강중인 포가에 닿지 않고 도중에 떨어져버렸다.
“됐다. 무시하고 건너라. 최대한 빨리 건너 건너가서 방열해야 한다.”
잠시 당황했던 문양첨은 포탄이 중간에 떨어지는 것을 보며 적을 비웃었다.
같은 식으로 언덕에 숨어 지켜보던 조선군은 충격을 받았다.
“물이 없어서 배가 접근하지 못하잖아. 적은 아무 방해 없이 올라올 거야.”
“저들이 공격해 오면 다 죽을 거야.”
“어떡하지? 우리 다 죽는 거야?”
특히 새로 편입된 해적항병들이 크게 동요했다.
대부분 배 내부에서 노만 저었을 뿐 전투경험이 적다.
갑옷도 없고, 무기도 변변찮아서 급히 깎은 죽창이 대부분이다.
반면 적은 전원 정예병이고 갑주를 입고 있다.
저런 숫자를 이길 수 없다.
당장 뒤에 있는 조선군이 두려워 도망치지 못하지만 전투가 벌어지면 도주하거나 항복할 생각이 차올랐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히히히힝!
수레를 끌던 말들이 놀라 앞발을 치켜든다.
천육백 문의 포가 일제히 쏘자 그 소리가 말의 고막을 두드린 것이다.
말은 생각보다 순하고 생각보다 예민한 생물이다.
그들에게 화포 소리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화약 터지는 소리는 가끔 들었지만, 화포 1600문이 터지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일제히 발을 치켜든 말이 제멋대로 달리려 한다.
한 방향으로 끌어야 겨우 수레가 움직이는데 줄에 묶인 말이 제멋대로 힘을 주니 수레가 움직일 리 있나.
고삐를 잡고 당겨 진정시키려 해도 쉽게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제자리에서 왔다 갔다 하며 수레가 점점 깊게 빠져들었다.
겨우겨우 말을 진정시키는데 한식경이 걸렸다.
콰아아앙!
다시 소리 공격이 왔다.
겨우 진정한 말이 또 날뛴다.
도지휘사 문양첨은 이제야 적의 작전을 알아챘다.
“병사들 투입해. 들고 건널 수 있는 짐은 전부 옮긴다. 수레를 최대한 가볍게 하라.”
벌써 썰물이 끝나며 서서히 물이 차오르고 있다.
이대로 혼란에 빠져있다간 모든 화포와 화약이 물에 젖을 것이다.
도열했던 병사들 중 절반이 달려들었다.
병사 만 명이 달려가 수레에 묶인 말 줄을 풀어 한 마리씩 진정시키고 수레에서 화약이나 포탄 등을 들고 건너기 시작했다.
소형 화포는 병사 스물이 붙어 느리게나마 들어 옮겼다.
“공격! 전군 공격하라!”
조용히 지켜보던 개떡이의 명령이 내려왔다.
정문부가 갑사 오천을 이끌었고, 백칠이 해적단을 이끌었다.
새로 편성한 함선별로 뭉친 부대는 대오를 갖추고 걸어 내려갔다.
해적들은 불안했지만, 적이 혼란에 빠진 것을 본 덕에 아직까진 통제에 따랐다.
대오를 갖춘 사만 병력이 다가오자 명군은 더 큰 혼란에 빠졌다.
무장은 변변찮지만 선두의 병력은 충분히 정예로 보였다.
“진을 갖춰라!”
“방진을 형성하라.”
현장의 무관들이 급히 소리 질렀다.
수송하던 병사들이 급히 달려와 진을 형성한다.
그 사이 천천히 진군하던 조선군은 명군 200보 앞까지 왔다.
“멈춰라.”
“정지! 전군 정지.”
200보 앞에 멈춰 선 조선군은 그대로 병사들을 뭉치며 방진을 만들었다.
해적도, 명군도 서로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어?”
“싸우는 거야 마는 거야?”
그저 눈싸움만.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며 휘파람이라도 불어줘야 하나 고민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대륙 쪽에 남아 있던 문양첨이 가장 먼저 의도를 알아챘다.
“제길. 시간 끄는 거잖아! 포부터 옮기고 방열해. 방어를 갖추고 포를 쏘면 이길 수 있어.”
지휘부에서 기마가 달려가 명령하고 다시 병사 일부가 튀어나와 포를 옮기는데 그새 물은 허벅지 높이까지 찾다.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사리는 물이 가장 높이 차는 날이다.
물이 차오르는 속도도 빠르다.
물이 깊어질수록 병사들이 포를 옮기는 속도도 느려진다.
그나마 작은 포 백여문만 옮겼을 뿐 나머지는 옮기는 도중 물속에 잠겨버렸다.
이백 보 거리에서 긴장한 채 마주본 지 한 시간여.
마른 침을 꿀떡꿀떡 삼키며 이제나 저제나 공격명력을 기다리다보니 몸에 힘이 들어가고 한 것 없어도 지친다.
명군은 이제야 옮겨온 작은 포들을 닦고 화약을 채우고 있다.
저 포들이 불을 뿜으면 전황이 바뀔 것이다.
그 때 판옥선이 등장했다.
그그극.
드드드득.
아직 깊이가 얕은 데도 억지로 노를 저어 한 줄로 진입한다.
노가 모래를 밀치며 무거운 판옥선을 이동시키다보면 물이 차올라 배가 뜬다.
섬 양쪽에서 판옥선이 진입하자 문양첨은 하늘이 노래짐을 느꼈다.
이제부터 시간 싸움이다.
“전군 공격! 화포 기다리지 말고 달려들어! 공격!”
둥둥둥둥둥둥!
전고가 울리고 후방에 남았던 예비대 일만 명도 달려갔다.
아직 바닷물은 키 높이까지 올라오지 않았다.
예비대가 판옥선에 길이 막히기 전에 바다를 건넜고 섬에 있던 이만명이 돌진했다.
“한번만 참아라. 한번. 잠깐 뿐이다.”
“창을 잡고 버텨라. 우리가 더 많다!”
“제자리에서 찌르기만 반복해라. 별거 아니다.”
해적들이 도주하지 않도록 복건어로 계속 사기를 채워줬다.
복건어를 아는 소수의 병사들은 싸우는 대신 소리만 질러야 했다.
슈슈슝.
아아악!
타타당.
타그닥.
화살이 날고 조총이 불을 뿜는다.
삼천기의 기마가 조선군을 덮친다.
개떡이는 혀를 찼다.
조금 더 시간을 끌어줬으면 했는데 적장이 작전을 눈치 챘다.
이나마 시간 끈 걸 다행이라 해야 할까?
처음 판옥선이 나타난 순간 돌격해왔으면 피해가 컸을 테니 적장의 무능함이 조선을 도왔다.
사실 적장이 현명해서 판옥선이 나타난 순간 적이 전원 퇴각해줬으면 서로 피해가 없었고 개떡이가 원하는 상황이었는데.
함선의 무서움을 안다면 바로 도망쳤겠지.
적당히 멍청한 적 때문에 싸울 이유 없는 전투가 벌어졌다.
아아악!
살려줘!
비명소리가 가득하지만 군사의 눈에 피해는 크지 않다.
화살과 조총은 많지 않고 적 대부분은 창병이다.
단단히 자리 지킬 땐 강하지만 공격할 때 속도는 느린 창병.
게다가 적병들은 모래땅을 오가며 수송하느라 많이 지쳐있다.
주력인 화포는 아직 준비 중이고 기마병은 생각보다 약하다.
후방에서 건너온 기병은 정예병으로 보였지만 바다를 건너며 말이 젖었고, 수레에서 떼어낸 기마들은 지친데다 급하게 올라탄 기수는 미숙했다.
가장 큰 불안 요소는 조선에 항복한 해적들인데 의외로 이탈이 적다.
사만명이 똘똘 뭉쳐 방진을 형성하고 있으니 도망치기도 힘들겠지.
기병의 돌격에 진이 이리저리 휘청거리지만, 관통당하지 않았다.
이거면 됐다.
콰콰콰콰쾅!
판옥선이 왔으니.
조란탄이 뿌려진다.
해안 근처에 설치하고 있던 적 포대가 전멸했고, 작은 화포 알은 조선을 공격하는 적의 등판을 뚫었다.
또다시 울려 퍼진 굉음에 말이 혼란에 빠졌고, 미숙한 기수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내 말이야!”
“말! 나는 물개가 아니라 기마병이라고!”
서러움이 많았던 갑사들이 말고삐를 낚아챘다.
연좌제에 걸려 보병생활을 하던 갑사들은 말에 올라타 한 섞인 포효를 내뱉었다.
“나는 기마병이다!”
갑사가 미쳐 날뛴다.
서러움이 많이 쌓인 갑사가 적 기마를 창으로 찔러 떨구고 주인 잃은 말을 다른 갑사가 차지했다.
개떡이는 수하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중국어를 아는 이들로 구성된 독전대가 소리쳤다.
“적장이 도주한다. 우리의 승리다!”
와아아아~
독전대가 복건어로 소리치고 함성을 지른다.
조선병은 못 알아듣지만 해적 항병들은 알아들을 수 있다.
정신없이 코앞만 보던 항병이 고개를 드니 바다 건너 해안가에 있던 적 지휘부가 후퇴하는 게 보였다.
“적장이 도주한다. 우리의 승리다!”
와아아아아아아~
재차 외치자 함성이 더 커졌다.
한 번 더 외치자 항병들도 함께 외쳤다.
복건어를 알아들은 광동군마저 돌아보게 되었다.
섬과 육지 사이 좁은 바닷길에 집채 만 한 배가 한 줄로 늘어서 포를 쏘고 있다.
배들 위로 하얀 화약연기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그 뒤로 지휘부가 후퇴하고 있다.
“적장이 도주한다. 우리의 승리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함성이 섬 전체에 가득 찼다.
명나라 병사들은 패배를 직감했다.
“퇴...... 퇴각.”
“도망쳐야 해.”
“대열을 유지하라. 싸우면 이길 수 있다. 적은 약하다.”
무관의 외침은 들리지도 않는다.
하나 둘 뒷걸음질 치던 병사들이 등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둑이 무너지듯 명나라 정병이 무너졌다.
일부는 북쪽 판옥선을 향해. 일부는 서쪽으로. 일부는 동쪽으로.
명나라 군이 흩어지는 것을 본 개떡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장상태와 훈련도 등은 조선군 정예와 비슷하다.
저들이 사력을 다해 싸웠다면 조선군 또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죽여라. 포로는 필요 없다.
흩어진 적은 무섭지 않다.
함선별로 똘똘 뭉친 조선군이 흩어진 명군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중 선두에는 적의 기마를 탈취한 갑사들이 있었다.
“나는 기마병이다아아아~~”
바다 건너 광동군 지휘부.
문양첨은 자신에게 판옥선의 포격이 날아왔기에 지휘부를 살짝 뒤로 물렸을 뿐이다.
그런데 그걸 적이 보고 이용했다.
지휘부가 후퇴한다 선전해 공격하던 광동군의 대오를 무너뜨렸다.
“크흐흑. 버텼어야 해. 포격에 맞아 죽더라도 버텼어야... 커헉.”
문양첨은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피눈물을 흘렸다.
흩어진 광동군은 여기저기서 도강에 성공했다.
집채만 한 판옥선에선 화살이나 조총이 날아오지 않았다.
갑판병은 애초에 거의 없었고, 화포를 쏘기엔 화약이 간당간당하다.
배 사이사이로 헤엄쳐 건너간 병사들은 그대로 육지로 내달렸다.
섬 곳곳에서 장수를 중심으로 천, 이천씩 병사들이 뭉치기도 했다.
그들에게 판옥선이 달라붙어 조란탄을 쏜다.
섬에 남아 용감하게 저항하는 명군은 죽고 비겁하게 도강한 이는 산다.
분위기를 눈치 챈 병사들이 저항을 포기하고 갑주와 무기를 집어던진 후 너도 나도 바다를 건넜다.
폭 200보. 헤엄칠 수 있지만 수영을 못하면 죽을만한 거리.
헤엄치지 못하는 병사들이 살기위해 죽으러 뛰어든다.
섬에 남은 적의 정리가 얼추 끝나자 판옥선은 수송선이 되었다.
이백척이 다섯 번 왕복하자 사만 병력이 전부 건너갔다.
시간은 이미 해질녘이 되었다.
“진격하라.”
싸울 생각은 없었지만 이왕 싸웠으니 전과를 확대해야 한다.
개떡이의 지시에 군대가 차분히 진군했다.
문양첨은 바다를 건너온 병사들을 수습해 만여 명의 군세를 모았으나 다가오는 적과 싸울 형편은 아니었다.
“퇴각한다. 대열을 갖추고 물러나라.”
그나마 정예병이기에 무작정 달려가는 병사는 없었다.
열을 갖추고 후퇴하는 명군의 뒤를 조선군이 조용히 따랐다.
마치 약속한 것처럼 전투는 없었고 조선군은 언덕 너머에 쌓여 있던 광동군의 보급품을 얻었다.
3만 병력의 군량 3개월 치와 화포 200문. 화약과 포탄. 화살 삼십만 개.
적 수급 이만과 삼만 개의 갑옷과 무기.
그리고 부대의 경험과 사기.
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부대의 사기는 하늘 끝까지 올랐다.
명나라 정예를 물리친 전투는 갑사나 백칠해적단에게도 값진 경험이다.
전리품을 정리해 포상하는 사이 수송선 백척이 도착했고 새로 편성된 함대는 마카오를 미련 없이 떠났다.
- 작가의말
앞의 장 내용인데
‘염소 앞에서 우산’ 이라고 검색하시면 재밌는 짤방을 볼 수 있습니다
설정상 문양첨의 지휘력은 딱 평균입니다 바보는 아닙니다
문양첨의 정치적 상황과 개떡이의 사기적인 디테일이 합쳐져 이런 결과가 나타난 거죠...
주인공 빼고 다 바보~ 는 아닌겁니다. 문양첨이 바보처럼 보인다면 착각이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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