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MSG가 쏘아올린 바람
순도 100% 픽션입니다
지난해 4월.
루이스 페르난도는 유구국에서 선물을 받자마자 루손 섬 마닐라로 돌아갔다.
태평양을 건너는 무역선들은 전부 스페인의 식민지인 마닐라에 들린다.
그리고 태평양을 건넌 무역선은 무조건 큰 바다의 저주에 걸린다.
“또 죽었어?”
“스물일곱 명이나 죽었다고!”
“다섯 명이 간당간당해. 의사 없어? 의사!”
큰 바다의 저주.
대서양이나 태평양을 건널 때마다 반드시 누군가는 이유도 모른 채 죽는다.
영국의 1차 동인도회사 원정은 440명 중 200명 가까이 죽었는데 대부분 큰 바다의 저주로 죽었다.
섬에서 섬으로 이동했으니 그때마다 풀잎 하나만 입에 넣었어도 한 명도 안 죽었을 괴혈병이건만 타지에 나오면 배에 준비한 보존식량만 먹는 문화 때문에 이렇게 큰 피해를 입었다.
큰 바다의 저주는 고향을 떠난 모든 유럽선원에게 공포스런 저주다.
“이봐. 이것 좀 먹어봐.”
정신없는 틈을 타서 환자 하나에게 다가가 광해님의 두 번째 은혜를 한잔 먹였다.
그리곤 따라다니며 관찰했다.
밥 한 끼 먹을 시간이 지나자 잇몸에서 줄줄 흐르던 피가 멈췄고, 반나절이 지나자 제 발로 걸어 다녔다.
의사에게 주예수의 기도 치료를 받고 있는데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다른 환자와 너무 비교가 된다.
루이스 페르난도는 손에 들린 도자기병을 다시 봤다.
이건 진짜다.
다음 배가 왔을 땐 직접 나섰다.
“내가 치료하겠소. 은화 하나만 주시오.”
세 번째 배가 왔을 땐 가격을 올렸다.
“한 명당 은화 열 닢.”
치료 효과는 확실했다.
그리고.
“그 약 좀 팔지 그래? 이번에 리마로 가야 하는데 배 위에서 먹어도 되는 거겠지?”
“금화 열세 개.”
“웃기지 마. 그 돈이면 선원 100명을 더 고용하고 말지.”
“흥. 이런 약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 선원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겠어? 누군가 죽을 때마다 약을 사지 않은 선장이 욕을 먹을 텐데. 그리고 우리도 그 가격에 사왔어. 남는 게 없다고.”
“젠장. 벌써 소문이 돌았는데...... 선원들과 돈을 모아서 오지.”
진짜 팔렸다.
루이스는 주의사항을 전해준 후 약을 건네줬다.
그리고 자기 선원을 모았다.
“쌀! 쌀을 사라. 배에 더 못 실을 때까지 사라.”
루이스는 배에 쌀 천섬을 싣고 나하로 향했다.
열배 이익.
이 약을 독점해서 엄청난 거부가 되는 단꿈을 꿨다.
도착한 나하에는 스페인 상선과 네덜란드 상선이 대여섯 척 보였다.
가장 수익성이 좋았던 마카오-나가사키 항로가 막힌 후 모든 근해 상선이 여기에 몰린 듯 보였다.
“......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꿨습니다.”
독점은 물 건너갔다.
“이 쌀은 젖었잖아. 비 맞은 거 다 골라내.”
“아이고 좀 봐주쇼. 썩지도 않았는데.”
쌀을 최대한 싣다보니 갑판에까지 올렸는데 그게 전부 비를 맞아 버렸다.
“지랄. 평생 거래 금지 당하고 싶어? 어이쿠 이 쌀은 뭐야? 이물질이 잔뜩 들어가 있는데?”
“아니 지푸라기 몇 개 섞인 거 갖고 너무 하십니다.”
“너무해? 거래하기 싫어?”
“꼭 하고 싶습니다.”
“그래. 멀쩡한 쌀 560석. 질이 떨어지므로 500석으로 치겠다. 불만 있나?”
“불만...... 없습니다.”
노란원숭이에게 갑질을 당한 루이스 페르난도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참아야 했다.
저 약을 사야 한다.
쌀 500석을 광해님의 두 번째 은혜 다섯 병과 바꾸고 비에 젖은 쌀을 헐값에 처분하고 나니 배가 휑했다.
여기 뭔가 채워......
“가만. 여기도 쌀이 있잖아.”
나하 주변에 사람을 풀어 쌀을 샀다.
가격은 이미 충분히 올라 있었다.
“쌀을 주시오. 두 배 가격에 살게.”
“내게 파시오. 우린 세 배 가격에 살 거요.”
네덜란드, 스페인 상선들과 경쟁이 붙었다.
결국 쌀은 네 배 가격에 사게 되었다.
이러면 남는 것도 얼마 없다.
우치나에서 쌀을 가장 많이 가진 이는 슈네이 왕이다.
왕은 세금으로 걷은 쌀을 비싸게 팔아 금과 은을 얻었다.
쌀을 다 팔자 농민들이 가지고 있는 쌀을 저렴하게 사서 상인들에게 팔기를 반복했다.
엄청난 부자가 된 슈네이 왕의 입은 싱글벙글 벌어졌다.
“역시 형님의 나라. 우릴 구해주더니 이제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주시는구나.”
왕궁에선 매일 축제가 열렸다.
루이스 페르난도는 광해님의 두 번째 은혜 아홉병을 사서 이번엔 마카오로 갔다.
벌써 소문이 돌아서 순식간에 다 팔렸다.
포루투갈로 돌아가는 상선 하나가 전부 사갔다.
주변지역 쌀값은 벌써 두 배로 뛰었다.
유행이 지나가기 전에 최대한 벌어야 한다.
루이스는 태어나서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쌀을 사 모으고, 유구국으로 가서 상품을 사고 마카오에 팔고.
유행이 금방 끝날까봐 더 서두른 감이 있다.
헌데 유행이 멈추지 않는다.
두 달 간격으로 나하에 갈 때 마다 신상품이 추가되고 있다.
광해님의 두 번째 은혜는 슬슬 수요가 떨어지고 있다.
장거리 항해를 하는 배들은 거의 다 구비했고, 유통기한 1년은 아직 남아있다.
대신 광해님의 은혜가 진국이다.
없어서 못 판다.
부르는 게 값이다.
매독에 걸린 귀족은 가격이 얼마든 일단 사고 본다.
오히려 우치나에 있는 수량이 모자라서 대기해야 한다.
조선 본국에 가서 사고 싶은데 조선에 접근하면 전쟁 선포로 간주하겠다고 하니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광해님의 은혜를 못 사니 가져온 쌀로 다른 물건을 사게 된다.
광해 면포.
훌륭하다.
인도의 면포보다 세 배 비싸지만, 그만큼 질기고 부드럽다.
가격대는 비단 바로 아래 급으로 형성되고 있다.
광해 청자. 광해 백자.
위대하다.
한 점에 쌀 100석이지만, 이건 전부 포르투갈 본국으로 보내고 있다. 거기서 다섯 배의 이윤을 얻을 수 있다.
광해 홍삼.
가장 이윤이 많이 남는다.
이건 명나라에 밀수출 하고 있다.
마카오에서 명나라 밀수꾼에게 넘기는데 명나라 귀족들이 환장한다.
광해 홍차.
다른 상품이 모두 떨어졌을 때 사는 상품이다.
헌데 이마저도 훌륭하다.
홍차에 맛을 들이자 명에서 밀수한 차는 떫은맛만 나는 이파리일 뿐이다.
광해상회.
마음 같아서는 모든 상품을 다 가져가고 싶다.
배에 황금을 가득 채워 와서 모든 상품을 싣고 가면 열 배의 황금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문제는 그들이 쌀만 받는다는 것.
우치나에서 구할 수 있는 쌀은 이제 없다.
멀리서 쌀을 구해 우치나로 가야한다.
마닐라나 안남까지 훑어가며 쌀을 사다가 광해상회로 오면 거의 텅 빈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이마저도 힘든 게 경쟁자가 너무 많이 붙었다.
스페인 네덜란드 등 근해의 상단이 모두 우치나에 와 있다.
다들 배에 쌀을 가득 싣고 와서 한 달에 한번 오는 광해무역의 수송선을 기다리고 있다.
“온다!”
“준비해!”
“줄 서고 있지?”
“일주일 전부터 줄 서고 있습니다!”
나하에서 북쪽 바다만 보고 있던 경계병의 외침에 다들 긴장했다.
텅빈 광해상회 앞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서로 적대관계인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상선이 몇 달 전 난동을 부린 대가로 영구추방 된 이후로 줄서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다.
나하항에 도착한 모든 상선은 한명씩 교대로 광해상회 앞에 줄을 선다.
줄선 순서대로 가져온 쌀을 상품과 바꿔 떠난다.
그러다 상품이 떨어지면 한 달 후 상품을 기다리는 거고.
광해무역에서 조금씩 상품을 늘리고는 있지만, 맨 뒷쪽 서너 상선은 아무것도 못 산다.
이러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
한 달이면 마카오를 다녀올 시간인데.
뒤에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한 루이스 페르난도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상품을 실은 배가 세척. 빈 배가 마흔 척.
저런 비효율적인 짓을 하다니.
쌀 말고 다른 물건도 받으면 서로 좋을 텐데.
“안되겠다. 빈 땅에 창고 지어서 거기 쌀을 놓고 다녀오자. 이러면 두 배의 상품을 구할 수 있어.”
“안 돼. 이미 물어봤는데 우치나 소속과 조선 소속이 아니면 나하 항구에만 발을 들일 수 있고, 반나절 이상 체류하면 모든 걸 몰수하겠대.”
루이스 뒤에 선 꼴찌 상선의 상단주가 대답했다. 스페인 놈이었나.
“아니 그러니까 왜! 저기 빈 땅이 저렇게 많은데 왜! 저기다 창고를 짓고 쌀을 보관하면 배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잖아! 여관도 지어서 방값 받으면 지들도 이득이고. 선원들을 배에 재울 필요도 없는데!”
“낸들 아나? 조선과의 조약이라 어길 수가 없다는데 어쩌겠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금지조약.
이것 때문에 손해가 막심하다.
그럼에도 버티는 것은 이래도 이득이 많아서다.
이번엔 상품을 더 늘렸는지 바로 앞에서 상품이 떨어졌다.
광해무역이 수송해온 상품은 당일 전부 팔렸고, 모든 쌀은 수송선에 실려서 북쪽으로 이동했다.
대기 순번 1번.
이게 제일 싫다.
안남과 루손 등지의 쌀값은 점점 폭등하고 있다.
이윤이 더 떨어지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팔아먹어야 하는데.
“이대로 한 달을 기다려야 하다니.”
“싫으면 돌아가던가. 그럼 우리가 첫 번째군.”
당연히 떠날 수 없다.
이곳보다 이윤이 많이 남는 교역로는 없다.
루이스 페르난도는 쓰린 속을 안고 한 달을 기다려야 했다.
항구에서 빈둥대며 육지를 보던 어느 날 예전과 다른 점을 발견했다.
저 멀리 상회 뒤편에 있는 커다란 공장.
듣기로는 사탕수수를 가공해 설탕을 만드는 곳이라 했다.
설탕은 이곳 말고도 여기저기서 많이 판다.
그걸 아는지 광해상회도 설탕을 팔지 않고 전부 본국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
“이봐. 저기 보여?”
스페인 상단주하고 술을 마시다가 어깨를 툭 쳤다.
“어디?”
“저기. 설탕공장.”
“어. 그런데 왜?”
“그 옆에 벽돌건물이 생겼네.”
“광해상회 짓이겠지. 돈 많이 벌잖아.”
“그런데 경계가 너무 삼엄하지 않아? 대충 보이는 것만 해도 백 명인데?”
“어라? 그러네.”
“흠. 수상해.”
단순한 벽돌 건물을 백 명이나 지켜야 하는 이유가 뭘까?
계속 지켜보니 단순히 백 명이 아니었다. 언덕너머와 주변 집에서 병사들이 꾸준히 교대한다.
근접 경비 백 명에 주변을 포위한 경비가 삼백여명.
뭔가 있다.
무장도 훌륭하다.
창한자루 들고 다니는 유구 병사가 아니다. 전신 갑옷에 화승총을 들고 다닌다.
그 정도 병력 400명이 왜 저 작은 건물을 지키는 걸까?
“새로 만든 건물이라...... 상품을 저기서 만드나?”
“헛!”
조선이 만드는 상품은 모방이 불가능하다.
자기는 명나라에서 수입할 수 있지만 비싸고 그 외의 상품은 아예 비슷하게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기술을 훔치고 싶지만, 조선 본국에는 아예 접근도 못하게 한다.
그래서 갑질 당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기서 상품을 만든다면?
그 상품이 만약 광해님의 은혜라면?
광해님의 은혜를 만드는 법을 배운다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다.
루이스 페르난도의 눈에 욕심이 차올랐다.
곁에 있던 스페인 상단주의 눈도 똑같아졌다.
“무장병사 400명이라......”
교대 병력까지 생각하면 최하 1200명이다.
화승총으로 무장한 정규군 1200명.
용병 몇을 고용해서 될 일이 아니다.
혼자 다 못 먹는다.
자칫하면 조선과 유구국과 전쟁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아니 잘못하면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수도 있다.
과연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게 될지 아니면 거위를 산채로 훔치게 될지.
“흐음. 내년에 멕시코에서 갤리온 세척이 마닐라로 올 텐데.”
“내가 남인도 사령부와 연락해 지원을 받는다면......”
둘의 눈이 마주쳤다.
광해가 이미 바람에 날려버린 MSG가 뜻밖의 나비효과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MSG를 쥐 눈알에 주사하면 쥐가 실명한다더니.
MSG가 이렇게나 해롭다.
- 작가의말
미국 모 대학의 실험에 따르면
쥐의 눈알에 주사바늘을 꽂아 MSG를 넣으면 실명한다고 합니다
세상에나...
이 논문에 따라 MSG 퇴치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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