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예비군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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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었다.
겨울은 예비군 훈련의 계절.
평안도에서 시작된 예비군 훈련이 황해도를 거쳐 한성까지 내려왔다.
한성부와 양주, 광주에서 무려 20만 명이 모였다.
보름 훈련에 쌀 한말이지만 한겨울에 노숙하며 훈련하는 건 힘든 일이다.
반쯤은 광해를 향한 신앙을 바탕으로 모였다.
“주상 전하를 뵙습니다.”
예비군 훈련을 지휘할 곽재우가 병사 만 명을 이끌고 찾아왔다.
“그래. 북방은?”
“삼중 전선까지 조성했습니다. 정찰을 게을리 하지만 않으면 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1년 반 전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전선인 압록강에 발령 난 곽재우는 명나라가 쳐들어오지 않자 전투 없이 전쟁 준비만 해 왔다.
이번 임무는 그간 고생한 곽재우가 쉬고, 고향도 한번 방문하라는 의미.
“쉬엄쉬엄 해.”
“예. 아무 부상자 없이 완벽히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곽재우.
왕의 말조차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남자지.
“그래. 시작해.”
12만 남자 예비군에 병사를 붙여 이동했다.
12만 명은 한성 북쪽으로 이동해 북한산을 넓게 포위했다.
꽝꽝꽝꽝. 둥둥둥둥. 째쟁 짜장 째쟁.
삼면을 포위한 예비군은 간격을 유지하며 꽹가리 장구 북 등 여러 악기를 울리며 빈틈없이 산에 올랐다.
“정지. 호랑이 굴이다.”
눈이 쌓인 산에서 호랑이 발자국으로 굴을 발견하는 건 쉬운 일이다.
풀덩이에 불을 붙여 굴 안에 던진다.
“조준. 나온다! 쏴라!”
대기하고 있던 궁수 백명이 화살을 날려 호랑이를 죽인다.
착호갑사를 포함한 거의 모든 기병을 북방으로 모은 이후 조선 땅에 호랑이가 늘었다.
백성의 피해가 늘고 있기에 한 번씩은 잡아줘야 한다.
올해 예비군 훈련의 목적은 고을 인근의 산을 한 번씩 청소하는 것이다.
어차피 좆뱅이 칠거, 호랑이 없애며 좆뱅이 치는 게 조금이라도 보람 있지 않겠어?
백두대간 높은 산만 안 건드리면 야생동물이 멸종 되지는 않겠지.
굴속의 호랑이나 곰을 가끔 사냥하지만 대부분은 시끄러운 악기소리에 도망친 이후다.
산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짐승은 사람이다.
“아저씨. 언제부터 여기 살았어?”
“에... 그거시 강산이 두 번 정도 변할...”
“세상 변한 거 몰라? 마을로 내려가서 신청하면 온돌집과 논을 준다. 여기서 이렇게 살지 마.”
“하지만 평생 살아온 곳인데.”
“여기선 아무도 지켜주지 않잖아. 솔직히 우리가 아저씨 죽여도 아무 벌도 받지 않아. 그러니 지금이라도 평지로 내려와 법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 광해님께서 지켜주실 거야.”
예비군 훈련의 두 번째 목적은 화전민을 옮기는 것이다.
그들도 나름의 삶이 있겠지만, 국가가 허용할 수 없는 범위다.
산에 불을 질러 밭을 만드는 건 봐줄 수 없다.
어차피 영토가 급격히 늘어나 줄 수 있는 땅이 넘쳐난다.
지금 옮겨야 한다.
“아저씨 고향은?”
“청...송.”
“올해 춘추가 어떻게 돼?”
“어...... 춘추?”
“나이 말이야 나이.”
“나이! 서른 셋.”
“이름이 뭐야?”
“어... 이연.”
“이... 연?
“그래. 이연. 강해님 만쉐이 만쉐이. 한반 벱고 두반 벱고~”
“그렇군. 잡아라.”
병사의 신호에 예비군이 달려들었다.
“뭐? 뭐? 왜?”
화전민의 억울한 외침에 병사가 중국어로 답해줬다.
“너 개방이지? 네놈들 소탕하려고 이 짓을 하고 있다.”
“헉. 어떻게 알았냐? 내 조선어는 완벽했는데.”
“이연. 아무리 무식하더라도 감히 선왕의 이름을 붙일 리가 없잖아. 끌고 가.”
화전민과 개방의 불순분자, 양반의 난 때 도망친 범죄자, 원래 범죄자 등이 산에서 내려왔다.
그 수는 무서운 호랑이보다 수배 많았다.
북한산의 남쪽 평지.
8만명의 여자 예비군이 넓게 도열해 있다.
“또 온다. 멧돼지보다 큰 것만 쏴라!”
남자가 눈을 헤치고 산의 삼면을 포위해 몰면 여자가 사격해서 끝낸다.
다람쥐 청설모 족제비 토끼 고라니 사슴 삵 멧돼지 호랑이 곰 등 온갖 짐승이 도망쳐온다.
여자는 4인 1조로 편성되었는데 사격수 한명에 사격보조 한명, 방패병 두 명씩 붙었다.
총기가 부족해서 이 편제가 한계다.
작은 짐승들이 달려오면 방패로 막으며 지나치게 하고, 멧돼지와 그보다 큰 짐승만 쏜다.
“기다려라! 아직 쏘면 안 된다.”
“어마 어떻게!”
타당!
타다다당!
겁먹은 한명이 총을 쏘자 주위에서 연달아 총을 쏜다.
호랑이는 한참 뒤에 있는데.
“멈춰! 재장전. 장전하고 기다려라!”
“꺄아아아!”
일부가 방패와 총을 내팽개치고 도주한다.
덩달아 따라 도망치는 여자들.
“후우. 한심하군.”
“예측 범위입니다. 그래도 많지 않군요.”
광해가 한심한 듯 쳐다보자 곽재우가 애써 위로해준다.
일부는 도망갔지만, 일부는 침착하게 자리를 지키고 조준하고 있다.
탕!
총소리에 흥분해 달려들던 호랑이가 쓰러진다.
곰이 쓰러진다.
멧돼지 떼가 쓰러진다.
몇 몇 예비군이 죽었지만, 첫 실전 훈련임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잘 싸운다.
“모든 여자가 못 싸우는 건 아니야. 같은 상황에서 남자도 도망친 비율이 비슷할 걸.”
모현성이 거들먹거렸다.
“그래. 니 똥 굵다.”
“에에에? 고대 아티팩트를 들고 나오다. 내가 못 살아.”
“......”
호랑이, 곰, 멧돼지 등이 사냥되고 토끼 사슴 등이 산에서 쫓겨났다.
평지에서 열심히 번식해서 고기가 되어 주길.
가장 많은 짐승, 사람이 쫓겨 내려온다.
“살려주십시오.”
“제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아내와 아이의 손을 잡고 내려온 화전민은 백성이 되고, 범죄를 짓고 숨었던 이는 남산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이영덕이 거기 있었다.
개방 삼장로 장우영은 이영덕의 기지 덕분에 압록강을 통과했다.
위화도를 지나 아무것도 없던 압록강 언덕을 넘자 어마어마한 함정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중 삼중으로 땅을 파 돌진이 불가능하게 만든 진형.
북쪽에선 보이지 않기에 더욱 무서운 함정이다.
삼장로는 조선군의 배치와 함정을 눈 여겨 보았다가 명에 알리려 했지만 이영덕이 막았다.
“가봤자 다 죽소. 조선말도 못하면서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소?”
“그럼 어쩌자는 거니?”
“일단 한성까지 가 봅시다. 조선의 허허실실을 다 살피고 올 때처럼 당당히 돌아갑시다. 어차피 문서위조야 적당히 하면 되고.”
이영덕의 제안에 따라 개방은 쭉 남하했다.
안주 평양 개성 등을 거처 북한산에 자리 잡았다.
북한산에 숨어 한성의 상황을 살피고 노역수들 중 아는 이를 찾아 협력을 약속받던 어느 날.
거대한 북한산이 포위당했다.
“못 뚫겠소?”
“야간에 한 점 돌파하면 가능하긴 하겠는데. 그 후 어디로 도망칠 수 있겠니?”
개방 장로의 말에 이영덕이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그러게 그냥 요동에서 편히 살게 내버려두지. 당신들 때문에! 이런 빌어먹을. 하필 호랑이 사냥에 걸려가지고. 젠장.”
“어쩌겠어?”
“남쪽. 남쪽을 뚫고 한성에 숨읍시다. 사람 많은 곳에 숨어야지 그나마 안전하지. 일단 숨고 나중에 분위기 봐서 탈출합시다.”
이영덕은 개방도와 산속의 범죄자들 백여 명을 모았다.
북한산 포위 삼일 째 야간에 돌격을 감행했다.
야심한 시각 달도 구름에 가려진 어둠속에 한성을 향해 달려 내려갔다.
“사람들입니다!”
“비상! 사격준비! 사격준비!”
경계병의 외침에 곧장 징을 울리며 사격준비를 했다.
“너무 가깝다. 젠장. 자유롭게 사격해라!”
타다다당!
십여 발의 조총이 발사됐다.
8만 명으로 북한산 남쪽 전체를 막아야 했기에 넓게 포진했고, 전투경험이 없는 여자들이기에 조총 외에 이렇다 할 무기도 없었다.
달려든 이 서넛이 총에 맞아 쓰러졌고, 나머지는 그대로 뚫고 지나갔다.
뒤늦게 달려온 기병 백기가 도주하는 이를 하나씩 사냥했다.
“힘내시오.”
자꾸 뒤처지는 이영덕을 개방 거지들이 부축하며 달렸다.
범죄자들이 하나 둘 죽는 사이에 발이 빠른 개방의 정예는 정릉자락을 통해 한성에 숨어드는 데 성공했다.
삐익! 삑삑!
삼십여 명이 탈출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한성에 병사들이 풀렸다.
이리저리 횃불을 들고 달리며 수색하는 병사들.
“안 되겠다. 이리로.”
어둠속에 지리도 잃어버린 이영덕은 근처에 있는 기와집 담장을 무작정 넘었다.
몸이 무거운 이영덕을 끌어올려 담장 너머로 던진 개방도들이 가볍게 담을 넘어 숨었다.
“뉘시오?”
기와집 대청에 불이 밝혀져 있고, 선비 하나가 앉아 있었다.
갓 쓴 선비.
이영덕은 잠시 고민하다가 모험을 했다.
“경주이씨 창희공파 칠대손 이영덕이라 하오. 귀하는 뉘신지요?”
부디 광해의 정책에 반대하는 인물이기를.
“김류라 하오.”
“우리는 주자학파 수호를 위한 반조정결사비밀조직이오. 왕이 우릴 모함해 죽이려 하고 있소. 부디 숨겨주시오.”
이영덕의 뒷쪽에서 개방도들이 단검을 잡고 긴장한 채 바라봤다.
이영덕이 신호하면 곧장 달려들어 죽여야 한다.
김류는 쫓겨 온 자들을 조용히 바라봤다.
왕. 아들. 스승. 백성. 삶. 미래. 꿈.
모든 게 혼란스럽고 서로 충돌한다.
임란당시 신립과 함께 탄금대에서 전투하다가 돌아가신 아버지 김여물은 적을 열심히 막지 않고 가족부터 피난시켰다며 남인과 북인들에게 집요한 공격을 받았다.
처절히 싸우다 돌아가셨는데도.
아들은 왜국 정벌을 떠나서 군율 위반으로 왕에게 죽었다.
내 아들을 죽였으면 조용히 끝낼 것이지 왕은 어찌하여 간살죄를 공표해 구천을 떠도는 아들을 죽은 이후에까지 치욕스럽게 괴롭히는가.
아버지도 아들도 죽은 후까지 불명예스럽게 공격받고 있다.
그런데 어찌 왕에게 충성해야 하는가.
정철의 도당이라며 죽은 아버지에게 이를 가는 정인홍이 영의정으로 있는 조정에 붙어 있기도 힘들다.
쾅쾅쾅쾅.
“관옥 영감. 역적들이 이 인근에서 사라진 듯합니다. 수색에 협조해 주십시오.”
관직을 내려놨다지만 일개 병사가 감히 영감에게 저런 건방진 소리를 하다니.
“사랑채에 들어가 계시오.”
울컥한 김류는 자신의 진로를 충동적으로 정해버렸다.
광해는 미아리 인근에 차려진 화려한 막사에 누워있었다.
손에는 털을 뽑은 생오리가 들려 있었고, 앞에는 구름이가 침을 흘리며 헥헥대고 있었다.
“먹고 싶어?”
캬옹~
구름이에게 변성기가 찾아왔다.
새끼 때는 천사의 목소리였는데.
“먹고 싶으면 예쁘게 간청해봐.”
캬옹?
“새끼 때처럼 예쁘게.”
마력으로 광해의 ‘의지’를 전달받은 구름이는 우울해졌다.
...... 미양~
“잘했어. 먹어.”
광해가 생오리를 던져주자 구름이가 두발로 잡고 먹었다.
이짓까지 해가며 얻어먹어야 하나.
광해의 테이밍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물지 못하게 교육받은 구름이는 주는 대로 먹어야 했다.
먹으면서도 왠지 서글퍼 보였다.
“잘했으니 선물이다.”
광해는 아공간에서 상자를 꺼냈다.
사방을 막고 동그란 구멍 하나만 뚫은 상자.
호기심에 상자를 둘러보던 구름이는 조그만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고 곧 액체괴물처럼 구멍안으로 쏙 들어갔다.
구름이는 기분이 좋아졌다.
캬르르릉.
“고마우면 예쁘게 울어야지.”
...... 먀앙~
“주상 전하를 뵙습니다.”
곽재우가 들어왔다.
“어.”
“북한산 소탕을 종료했습니다. 호랑이 구십이마리 곰 열한마리를 사냥했고, 화전민 삼백이십명과 범죄자 백칠십명을 잡았습니다. 포위를 뚫고 도주한 이는 이백여명 정도 됩니다.”
이영덕 외에도 포위를 뚫고 나간 이들이 꽤 있었다.
이십만명으로 완벽한 포위망을 형성하기엔 북한산자락이 지나치게 넓었다.
“그래. 수고했어.”
“예. 내일 이동을 시작해 남한상 일대를 작전하겠습니다.”
“어. 맘대로 해. 보니까 난 할일도 없는데 돌아가도 되겠지?”
“예. 애초에 안 계셔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 궁에 가서 놀... 일해야지.”
광해는 이영덕을 놓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cctv도 gps도 없는 세상에서 모든 이를 다 잡기는 불가능하다.
- 작가의말
냐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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