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뻔한 함정에 빠지다
순도 100% 픽션입니다
갑작스런 개방의 상륙작전을 막고 뒷수습을 하느라 ‘어쩔 수 없이’ 한성에 남았다.
‘어쩔 수 없이’ 매일매일 모르는 미녀를 안고 산해진미를 먹고 했지만, 끝내 사건수습이 끝났다.
“안 가?”
“...... 가야지. 야. 샌프란시스코에도 황궁하나 만들어라.”
“안 돼. 판유리를 수송하기 힘들어. 거기서 만들기엔 기반시설이 부족하고. 전기 기술보호까지 생각하면 에휴.”
“시끄러. 만들라면 만들어.”
“형. 그러다 욕먹어. 하렘 하나도 아니고 세계 곳곳에 하렘 차리려고?”
“하렘 보다는...... 고향에 온 기분이다.”
고향의 향기.
이건 현대적 건물과 전등 덕이다.
콘크리트 바닥과 벽.
스위치만 누르면 밝아지는 전등.
유리창.
이것이 현대를 느끼게 해준다.
수십 년간 이계를 떠돌고 조선에 10년 살다보니 잊었던 현대의 삶이 사무치도록 그립게 다가왔다.
미녀는 다음 문제다.
광해의 진심이 느껴졌는지 모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유리창 빼고 콘크리트 건물은 지을 수 있어. 거기도 시멘트와 제철소는 있으니까. 일단 건물 기술자 보낼게. 전등은 형이 만들고 마법진 만들어서 켜. 일단 아공간에 침대랑 가구 좀 챙겨가.”
“그래. 간다.”
광해는 구름이를 타고 동칸으로 복귀했다.
첫발 마을 황후의 저택에서 하루 머무르고 종교활동을 연 후 기차를 탔다.
두발 마을과 첫발 마을 사이 100큰보 구간의 노선은 예전에 완성되었다.
중간 중간 작은 역들이 있고, 인근 감자, 고구마 밭에 일하는 농부들이 출퇴근할 때 이용한다.
남쪽으로 노선이 연장되고 있어, 기차길을 중심으로 동칸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기관차는 칸국의 기술과 힘을 상징한다.
기관차를 한번 보면 대부분 저항을 포기하게 된다.
칸국에 복속, 혹은 협조하는 인디언은 삼십만 명까지 늘었다.
두발마을에 도착한 후 예서부터 만났다.
“광해니임~”
첫임신이 불안했는지 예서가 울먹이며 반긴다.
소유키는 광해의 곁에서 허리를 안았고.
“아픈 덴 없느냐?”
괜히 물으며 예서의 머리에 마력을 넣어줬다.
허리 결림이나 저혈압 등 사소한 질병을 잡아줬다.
덤으로 뱃속의 아이도 튼튼하게 보호했고.
“괜찮습니다. 아. 신의 힘 덕에 활력이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자주 마력을 쐬니 예서도 마력을 느끼게 된 것 같다.
피부트러블이나 주름도 없어져 여전히 예쁘고.
조강지처가 좋더라.
“그래. 벚꽃이는?”
소유키에게 마력을 넣어주며 물었다.
머리로 청아한 기운을 받으며 소유키가 웃었다.
“자고 있습니다. 젖살이 빠지면서 이제 절 닮아 예뻐지고 있습니다.”
젖살이 빠지긴. 돌도 안 지났는데.
“그래. 보러 가 볼까. 아. 잠깐.”
아공간에서 침대를 꺼내 예서를 그 위에 눕혔다.
“어? 어? 이게 뭡니까?”
짚이나 낙엽을 면주머니에 넣어 쌓은 침대를 쓰다가 형상기억자가복원특수합금 침대...
아 모현성 닮아가네.
스프링 침대에 누워보니 신세계 같겠지.
“새로 만들었다. 신계에서 쓰던 물건. 앞으로 거기서 자라.”
“감사합니다. 광해님. 감사합니다.”
예서는 황제의 비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겸손하고 여전히 감사할 줄 안다.
참 착한 아이다.
“저도. 저도요.”
소유키는 참 솔직한 아이고.
“네 것도 있다.”
“아니. 생각해보니 필요 없사옵니다. 제가 광해님의 침대에서 자고 싶습니다.”
“그...래. 그러자꾸나.”
예서가 질투어린 시선으로 봤지만, 소유키의 소망도 똑같은 마력이니 들어줄 수 밖에.
소유키도 참 착한 아이다.
잠들어 있는 천사까지 보고 난 후 관아로 갔다.
두발 마을에 설치된 동칸 관청엔 최명길이 바깥까지 나와 있었다.
“전염병 문제가 급하지? 그것부터 해결하마.”
“아닙니다. 전염병도 돌긴 하오나 그보다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심각해?”
“심각하기보단...... 애매하고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옵니다.”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라......
일족을 거느리고 온 기자헌은 동칸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올랐다.
대신 시절에도 정도를 지켜 원한이 없었고, 동칸에서도 타고난 인품 덕에 사람을 끌어들였다.
브레인이 필요한 최명길이 직접 찾아가 출사해 달라 청할 정도였다.
하지만 기자헌은 모두 거부하고 감자농장에서 일했다.
아직 개개인에게 땅을 주지 않고 단체농장에서 새 땅을 개간하고 농법을 모두에게 알리는 시기다.
기자헌과 일족은 인디언과 섞여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며 그들과 서칸인이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하도록 중재하고 노력했다.
바닥에서 봉사하는 삶.
성리학자 시절 광해의 개혁을 막은 죄를 이렇게 보답하는 것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지가 뭔데 잘난 척이야?”
“예전에 우리 피 빨아먹고 살던 거머리였잖아. 이제 와서 착한 척은.”
“저놈이 우리 땅을 빼앗은 우두머리지?”
“저 감자밭은 원래 우리 조상의 혼령이 숨 쉬는 땅인데.”
“우리의 숲엔 언제나 먹을 게 넘쳤는데 굳이 숲을 없애고 힘들게 일을 시키다니.”
불만을 가진 이는 언제 어디에나 존재했고, 그들에겐 앞장서서 중재하는 기자헌이 만만하고 가식적으로 보였다.
창칼을 든 병사는 무서우니 만만한 이에게 화풀이 하는 것이다.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옳은 해결방법을 알려주는 건 기자헌이 잘 하는 일이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악의를 분출하고 시비 거는 건 해결할 수 없다.
말해도 듣지 않으면 말해도 소용이 없다.
기자헌을 따라온 일족이 으슥한 곳에 끌려가 구타당하고, 며느리가 희롱을 당하다가 겨우 도망쳤다.
말로 해결할 수 없음을 알게 된 기자헌은 관아를 찾아가 고했다.
시비건 상대도 찾아냈고, 이유없이 구타했다는 증언과 증인도 구했다.
그렇게 찾아간 관아에선.
“됐소. 죽은 이도 없으니 적당히 화해하고 웃으며 사이좋게 지내시오.”
라는 개소리를 했다.
“이보게 김집. 아닌 건 아닌 거야. 범죄자를 잡지 않으면 법이 왜 있고 관아가 왜 있겠는가.”
“어르신이야말로 주상... 아니 대칸의 뜻을 모르겠소? 하긴 대칸의 앞길을 사사건건 막던 북인종자가 뭘 알겠어.”
서인 김집과 북인 기자헌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주상의 뜻은 울타리 안에서의 평등일세.”
“웃기고 있네. 차별 금지법 몰라? 이런 걸로 괜히 건드렸다가 차별했다는 말이라도 나오면 당신일족 전부 노역형이야!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잡아 가두겠소.”
기축옥사로부터 시작된 악연이 질기게 이어진다.
정확히는 여전한 성리학자 김집이 생트집을 잡는 상황이지만.
기자헌과 김집의 설전은 여러 사람이 봤고, 좁은 동칸 개척지에 금새 퍼졌다.
조금씩 조선말을 알게 된 동칸원주민들도 그 내용을 듣게 되었고, 더욱 날뛰었다.
범죄를 처벌하지 않으면 더 강한 범죄가 일어난다.
열세살 아이가 처벌당하지 않는 걸 알게 되면 똑똑한 열세살이 행동에 나서는 것처럼.
마음에 안 들면 구타하고, 놀리고, 괴롭히고.
감자밭에서 일을 대충하고 열심히 하라하면 인종차별이라 소리소리 지르며 드러눕고.
몇 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소녀 몇 명이 실종되었지만 김집이 주도한 관아의 수사는 적당히 덮을 뿐이었다.
함부로 원주민 마을을 들쑤셨다가 차별법에 걸릴까 두려웠기에 수사하는 척만 하고 종결한 것이다.
기자헌은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출사를 포기하고 바닥에서 세상을 다지고자 했지만 이래선 안 된다.
기자헌은 변호사 시험을 준비했고, 삼개월 후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면 직접 수사계획서를 작성해 범인을 잡을 계획이었다.
기자헌과 그 아들, 손자, 제자까지 변호사 시험을 준비했다.
이 소식을 듣고 위협을 느낀 누군가가 야밤에 기씨 일족을 찾아가 집단 구타했다.
기자헌의 손자 둘이 맞아 죽었고, 기자헌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모든 내용을 전해들은 광해는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병신이냐?”
“제가 할일이 많아서 김집에게 맡겼더니 이런 일이...... 송구하옵니다.”
“에휴. 황제는 니들 잘 먹여 살리겠다고 저 멀리 명나라까지 쎄빠지게 출장 가서 조지고 오고 제물포에 상륙한 적병을 도륙하느라 고생하는데 맡겨둔 내부에선 이런 사소한 것 하나 처리하지 못해서 황제에게 도움을 청하니. 한심해서 내가 할 말이 없다.”
너무 한심해서 욕도 안 나온다.
최명길도 부끄러웠는지 숙여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기자헌은?”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 같으나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는지라.”
“에휴. 안내해.”
“예. 광해님.”
기자헌 일족은 첫발 마을에 기거하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 모현성에게 통신을 넣었다.
-여~ 도착했어?
“어. 그보다......”
최명길에게 보고받은 바를 말했다.
너무 한심해서 같이 욕하고 씹을 누군가가 필요했다.
모든 말을 다 들은 모현성이 진지하게 말했다.
-로더럼이네.
“응?”
-영국 로더럼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났어. 그것도 21세기에.
“21세기에? 걔들은 왜 그러냐? 신사라서 그런가.”
-풍선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기 마련이지. 역사가 반복되듯 로더럼에서 일어난 일이 거기서 똑같이 일어난 거네.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환경과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사건의 환경과 상황을 이해한다면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알면 미래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자세히 말해봐.”
-영국 로더럼에서 파키스탄 이민자들이 갱단을 조직했어. 그들은 16년 동안 최소 1400명의 로더럼 여자를 납치 폭행 촬영 협박 강간해서 강제로 매춘을 시켰어. 갱단이 아이들 학교 앞에 관광버스를 보내 하굣길에 태워다가 원정매춘 시키는 등 아예 대놓고 범죄를 저질렀지.
“그게 가능해? 21세기에?”
-2013년까지 자행되었지. 선생과 교장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묵살했고, 경찰에 신고해도 창녀라고 욕을 먹었고, 언론에 알리자 사회단체가 달려와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이라고 지랄을 했고, 정치인들은 이민자들의 표가 필요했고, 매춘으로 번 돈을 여기저기 뿌렸을 테니 받아먹은 자들이 억지로 막기도 했지.
파키스탄인 다섯명이 11살 여아를 집단성폭행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는데 경찰이 가볍게 경고만 하고 넘어갈 정도였으니 말이야. 여아가 오히려 창녀라고 욕을 먹고. 우리나라 밀양처럼 말이야. 부모는 가난한 공업지대 노동자들이니 이사 갈 힘도 없었고 경찰을 이기지도 못했고. 결국 로더럼 사회 전체에 여아들은 당하고 살아야 한다는 체념적 인식이 퍼져 16년 동안 이어지게 된 거야.
“영국은...... 너무 병신 같잖아.”
-선진국이란 단어는 유토피아, 엘도라도와 같은 단어야.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이상향. 한국 언론과 교수가 열심히 빨아주지만 실제 유럽은 완전치 않아. 한국 경찰도 부패했지. 버닝선처럼 경찰에 돈 찔러주는 클럽이 얼마나 많겠어? 그럼에도 한국 경찰이 꼴찌는 아냐. 한국 경찰과 이탈리아 경찰 어디가 더 부패했을까? 스페인 경찰은? 그리스 경찰은? 실제 비교는 하지 않으면서 마냥 선진국을 본 받아라 하며 헛소리 하는 언론과 교수의 말은 집어치워.
“왜 갑자기 급발진하냐? 뭐 얻어맞았냐?”
-아니. 그냥. 어쨌든 영국애들도 자기 조상의 학살을 아니까 부끄러웠던 거지. 부끄러움이 너무 커서 자기네 아이가 집단 강간당하는데도 보호하지 못할 정도였지. 역시 신사야 신사.
“그래도 이건...”
-이것도 선거의회주의의 문제지. 선거로 뽑힌 대표는 절대 중립적 판단을 못해. 옳은 판결을 내리겠다며 출마한 이는 떨어지고 차별을 조장하겠다는 자가 당선되니까. ‘가난한’ ‘이슬람’ ‘이민노동자’ ‘소수인종’ 이라는 좋아 보이는 프레임을 돕겠다며 당선된 대표들은 16년간 자행된 조직적 아동성폭행을 눈감아 준 거고.
“참...... 병신 같다.”
-그와 똑같은 일이 동칸에 벌어진 거지. 그 이유는 강력한 차별금지법의 반동이고.
“그러네.”
-인디언이 무조건 착하지는 않아. 가난하다고 무조건 착한 것도 아니고. 사람은 그저 각자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야.
“괴롭혀도 차별 금지 때문에 항의하지 못하니 더 괴롭힌다. 차별금지법이 자신에게 유리한 걸 이해하고 최대한 이용한다.”
-이그젝틀리. 언더도그마의 함정에 빠지면 안 돼.
“시발. 간단한 게 아니었네.”
-초란이랑 상의해볼게. 법을 순화해야겠어.
“그래......”
하도 한심해서 그냥 뒷담화나 하려고 통신했는데 일거리만 늘었다.
이게 간단한 게 아니었구나.
나라를 운영하는 건 쉬운 게 아니다.
기자헌의 집은 첫발 마을 기차역 근처에 있었다.
마을 외각이고 동칸 원주민 노동자들의 숙소 근처다.
집 주변엔 기자헌의 일족과 그를 따르는 이들이 둘러싸고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헉.”
“대칸을 뵙습니다.”
“광해님. 억울함을 풀어주소서.”
인사와 청원을 받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허름한 방엔 온몸이 멍든 기자헌이 누워있었다.
그의 배에 손을 대 병을 치료하고 멍을 없애고 죽은 세포를 살렸다.
치료되는 감각에 잠에서 깨어난 기자헌이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칸을 뵙습니다.”
“그래. 어떻게 해줄까?”
많이 축약했지만 기자헌은 알아들었다.
“죄지은 자를 벌주십시오.”
“동칸 원주민들을 벌주잔 말이지?”
“아닙니다. 죄지은 사람이 죗값을 받는 것이옵니다.”
모현성은 호들갑을 떨었지만...
간단한 문제였군.
- 작가의말
믿지 못하시겠지만...
이글의 목표는 어마어마한 국뽕입니다
경찰을 견찰, 짭새 등으로 부르지만 실제 서유럽국가들과 비교하면 대부분의 경찰들보다는 한국 경찰이 낫다는 것을 밑바닥까지 드러내며 국뽕을 고취시키는 게 목표입니다
그러니 제발 마티즈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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