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미국간다
순도 100% 픽션입니다
“한가하네.”
새해가 밝았다.
단군력 9년(1616).
이곳에 온 지도 9년이 지났다.
고작 9년 만에 정말 많은 일을 했고, 많이 이뤄냈다.
솔직히 모현성이 없었으면 하지 못했겠지.
“으으음. 인구라는 게 폭발한다. 위험해.”
“안 해.”
그래도 한가한 게 좋다.
이미 한가하지만 더 격렬히 한가하고 싶다.
“아니. 봐봐. 쫌.”
모현성이 지도를 폈지만 보지 않았다.
“여진과 몽골 땅은 인구를 더 보낼 수 없어. 현재 인구가 한계야. 그리고 대만과 규슈에 이백만을 더 보낼 수 있고. 그게 끝이야.”
세계 여기저기를 건드렸지만 영토 자체는 그리 많이 늘지 않았다.
동남아에는 전진 기지가 여럿 생겼지만, 각 부족들의 농장과 교역하는 기지일 뿐 영토가 아니다.
“안 해.”
“지금 베이비붐 시대야. 엄청나다구.”
부부는 섹스를 하고 애를 낳아 키운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다.
베이비붐 세대.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대.
한국의 할아버지들, 전후세대를 보면 다들 육남매 칠남매다.
육이오와 보릿고개를 겪었는데도 그렇게 많이 낳았고, 많이 자랐다.
약간의 식량 증산과 미국의 지원, 아주 약간 발전한 의료 서비스만으로 인구가 두 배 늘었다.
“원래 인구는 박테리아처럼 두 배 씩 증가해. 식량 한계가 막는 것뿐이지.”
모든 세대가 섹스를 하고 애기를 낳아 키운다.
그 애기들이 식량 부족으로 약해져 죽을 뿐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그 때의 부부가 딱히 섹스를 많이 해서 생겨난 게 아니다.
원래 모든 부부가 섹스를 많이 하고 아기를 많이 낳는데 베이비붐 세대는 우연히 기술 발전이나 영토증가 등으로 식량증산이 맞물려 죽지 않고 성장한 세대다.
태평성대는 없다.
한 번의 베이비붐을 겪고 나면 또 다시 식량부족에 의한 고통을 겪는다.
식량 생산량이 계속 두 배씩 늘지 않는 한 서민은 항상 배고프고 항상 고통스럽다.
정치인은 항상 욕먹는 거고.
지금 대칸국엔 집집마다 아이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일부는 사고로 죽고 일부는 병으로 죽겠지만, 대부분 성인으로 클 것이다.
“그래서 뭐? 콘돔 만들어? 고무도 잔뜩 들어오니 가능하긴 하겠네. 인구조절을 교육하고?”
“아니. 인도 고무는 탄성이 약해서 못 만들고요... 그쪽을 말하는 게 아니야. 지금은 인구가 힘인 시대니까 인구는 늘려야지. 어쨌든 지금 추세로 보면 10년 쯤 후엔 성인이 천만 명 추가될 거야. 30년 후까진 2~3천만 명 정도 추가될 거고.”
“그럼 남방원정군을 보내던가.”
호주-파푸아뉴기니-뉴질랜드 방면 원정군도 계획엔 있다.
영국의 범죄자들에게 넘겨주긴 너무 아름다운 대륙이다.
그들의 원주민 학살을 두고 보기도 싫고.
“어. 보내긴 할 건데 그쪽은 너무 멀고 농지도 얼마 없어. 천만 명 받아들이기엔 십년 안에 준비 못해.”
“그럼 미국 보내.”
“어. 해안 따라 개척지를 건설하면 십년 후면 오백 만까지 보낼 수 있겠지. 그래도 좀...... 아슬아슬 해. 엘도라도를 빨리 열어야 해.”
“엘도라도?”
젠장 낚여버렸다.
“엘도라도. 꿈의 땅. 유토피아. 모든 게 완벽한 세상.”
모현성이 지도를 짚었다.
미국 중부.
“거기가 엘도라도라고?”
“세계의 모든 농지를 9등급으로 나눈 표가 있어. 1등급이 가장 좋고 9등급은 북극처럼 아예 농사가 안 되는 곳.”
“미국이겠네.”
묻기 전에 말했다.
“맞아. 전 지구의 1등급 토지의 40퍼센트 가량이 여기에 있어. 참고로 한반도의 농지는 6~7등급이야.”
“...... 우리선조 대단하네.”
“어. 이런 똥땅에서 개간하고 저수지 만들고 치수해서 세계 최고의 인구밀도 국가를 만들었으니 우리 민족이 대단하다는 증거지. 인구밀도가 문명의 응집력인 시대니까. 어쨌든 미국 중부는 토지가 좋아. 그냥 씨 뿌리고 놀아도 풍년이야. 1등급이 아니어도 대부분 2등급이야. 21세기에도 한반도의 몇 배 크기가 되는 2등급 땅이 그냥 놀거나 방목 농장으로 사용 되는 게 미국이지.”
“부럽네. 우린 7등급 똥땅에서 아등바등하는데.”
“사실 그 등급이란 게 현대에는 비료 덕에 큰 의미 없어. 이 시대엔 엄청난 장점이지만.”
“그래도 부럽네.”
“석유도 나오고.”
“더 부럽네.”
“셰일가스 매장량 다 합치면 세계 나머지 모두와 같다는데.”
“시발.”
“그러니까 먹는 거지. 자 가자.”
“가자고?”
모현성이 지도에 선을 그었다.
“지금 샌프란시스코에서 철광산과 제철소를 완성했고, 엘도라도를 향해 철로를 깔고 있어. 이걸 10년 안에 완성하면 농지를 만들고 식량이 무한히 증산되지. 아메리카들소도 1억 키우고고, 현재 기술만으로 2억까지 인구를 지탱할 수 있어.”
“나보고 철도나 깔라고?”
“서신이 왔어. 거리상으론 가능할 줄 알았는데 엄청난 산맥을 뚫지 못하겠대. 로키산맥.”
“야이. 미리 알고 준비해야지.”
“에헤헤. 방어에도 좋고 광산도 있고 기후도 적당하고 평야도 있고. 에헷. 대륙횡단철도만 생각했지. 걔들은 어떻게 뚫었대.”
모현성은 미국을 세세히 조사하지 못했다.
미국의 대륙횡단 철도가 샌프란시스코를 통하니까 그쪽에 첫발을 디딘 것이다.
“가서 철도 깔고 교량 만들라고?”
“어. 할 일도 없잖아.”
“황제는 그런 거 하지 않는다.”
“높이 백 미터인 다리를 만들거나 바위산맥을 뚫어서 터널을 만들어야 해. 화약으로 뚫을 수 있겠지만 위험하지. 형 아니면 다리 하나 만드는 데 1년 넘게 걸릴 거야. 형 할 것도 없잖아. 마력도 남아돌고.”
광해소망교는 더욱 번성하고 있다.
동남아의 동맹 부족에도 퍼졌고 혼돈의 일본과 중국에도 퍼지고 있다.
이제 하루에 70마력 이상씩 들어오고 있다.
“내가 가면 마정석은?”
“신석이야 뭐 페니실린하고 통신용으로만 쓰면 되지. 비료는 인도 쪽 초석으로 충당할 수 있어. 대충 삼백일마다 와서 충전해주면 될 거 같아.”
“나보고 왔다 갔다 하라고?”
“어. 어차피 여기서 노나 거기서 노나 비슷할 거 아냐? 게이트 마법으로 한 번씩 왔다 갔다 하셔. 가서 미서부 해안에서 일광욕 좀 하고. 어 인디언과 사랑을 나누고. 어 인디언 부족마다 언어 다를 테니 통역도 할 수 있고. 어. 동칸국의 생산력을 생각해봐. 기반 다져야지. 마력 차는 만큼 일할 테니 일주일에 하루씩만 일하면 되겠지.”
설득 당했다.
심심하기도 했고.
일본은 야마토은행 파산 후 투자자들의 분노가 도요토미 가 잔당을 무너뜨렸고 교토에 있는 천황이라는 것까지 죽었다.
혼란의 도가니에 등장한 것은 조선과 함께 싸웠던 십영주.
시마즈 가를 비롯한 열 명의 영주는 각각 영역을 정복하고 대영주가 되었다.
광해의 공포를 아는 그들은 조선에 충성했고 알아서 식량과 광물을 뽑아 바치고 있다.
비용투자 없이 엄청난 이득을 얻는 지역.
일본은 완전 정복했다.
명나라는 요서군이 북경을 무너뜨렸고 지방에 사십 여개 국가가 난립했다.
각각 영역을 차지하려 피 튀기게 싸우고 있지만 앞으로 일본처럼 정리될 것이다.
개떡이야 인도지역에서 알아서 잘하고 있고, 몽골 쪽은 기차선로 까는 속도에 맞춰 달팽이처럼 기어가고 있으니.
할 일이 없다.
“젠장. 간다.”
“어. 수고.”
아 띠꺼워.
9년 3월 예서, 소유키와 직속호위 백 명을 이끌고 청진으로 갔다.
모현성이 타고 다니는 꽃순이도 데려갔다.
오래 안 보면 야성이 생겨 사람을 물 수도 있으니 맹수는 다 데려간다.
청진에는 팔천톤급 철선 열 척과 천 톤급 스무 척이 떠 있었다.
“철선은 태풍에도 강하고 제작비도 범선하고 비슷해. 수송비용을 생각하면 선원이 적고 빠른 철선이 열배 싸고. 철선이 추가 되서 철선만으로 동칸 쪽 수송을 감당하게 되면 천톤 급은 전부 빼서 동남아로 돌릴 거야.”
“제작비가 비슷하다는 것은 신기하군.”
“나무를 하나하나 베서 제단하고 말리고 방수제 입히고 붙이는 거랑 철판 용접하는 거랑 뭐가 쉽겠어?”
“어. 됐으니까 그만 말해.”
이놈의 잘난 척 지겨워 죽겠네.
이제 모현성에게서 떨어질 테니 장점도 있겠군.
“광해 대칸을 뵙습니다.”
또괄이냐?
지겹군.
이놈은 죽지도 않나.
무시하고 타려는데 누군가 나섰다.
“대칸이시어. 이괄을 고발하고자 합니다.”
“응?”
“소신은 변호사 장우신이라 합니다. 수송선단장 이괄은 항해수칙을 어기고 선내 소거 후 수색을 하지 아니하였사옵니다. 이에 벌금형을 물것을 고발합니다. 수사계획서도 제출했사옵니다.”
어?
저게 뭐지?
옆에 있던 모현성이 눈을 반짝였다.
“그렇단 말이지? 사실이야?”
이괄이 전전긍긍 시선을 돌렸다.
“예. 그러하긴 하온데...... 저희가 그제 돌아왔는데 오늘 대칸께서 출항하신다 하여서 급하게 서두르느라.”
“네 이놈! 국법이 지엄한데 감히! 속도가 달라 굳이 대칸과 함께 할 필요 없는데 어찌하여 그런 무도한 짓을 저질렀단 말이냐. 이괄과 삼십척의 선박에 각각 벌금을 물리고 모든 비용은 이괄의 이가상단이 낸다. 장우신이라 했나? 잘했다. 벌금의 절반은 받아가거라.”
“감사합니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대칸.”
이게 변호사 제도의 순기능인가.
사색이 된 이괄이 다른 선장들에게 욕먹고 배에서 짐을 내릴 때 광해가 물었다.
“이괄이 욕먹은 건 좋은데 뭘 잘못한 거야?”
“항구에서 배가 나가기 전에 배에 실린 모든 짐을 내려서 쥐 같은 걸 없애고 청소해야 해.”
“왜? 전염병?”
“그것도 있지만 멸종을 막기 위해서지. 세계의 가장 많은 동식물을 멸종시킨 게 쥐거든.”
“어? 사람이 아니라?”
“정확히는 사람이 옮긴 쥐. 도도새처럼 섬에 사는 수많은 동물들이 쥐의 습격으로 알을 모두 잃어 멸종했거든. 그래서 살아있는 짐승은 인간과 쥐 퇴치용 고양이 말곤 아무것도 태울 수 없어. 솔직히 한국의 무당개구리가 전 세계 양서류의 30%를 멸종시킬 줄 누가 알았겠어?”
배에 이미 타 있던 구름이와 호랑이들이 보고 있는데.
어라 철선에 소도 서른 마리 타고 있는데? 말도 탔고.
나도 벌금내야 하나?
“소는 왜 태웠는데?”
“가서 농사에 써먹고 번식시켜야지.”
“뭣하러 북미대륙에 수억 마리 소가 있는데.”
“그건 21세기지. 지금은 소 없어.”
“거짓말. 블랙 앵거스 원산지가 미국인데.”
“개량종이 미국에서 시작됐으니까 원산지일 뿐. 북미에 소 없음. 말도 없음. 에휴 이래서 사람은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해.”
진짜 몰랐다.
이럴 땐 말을 돌린다.
“음. 그런데 이렇게 히스테릭하게 수색할 것까지야. 결국 유럽 놈들이 쥐 같은 걸 옮겨서 멸종이 시작될 거 같은데.”
“최대한 막아야지. 솔직히 어느 동식물에게서 어느 약을 개발할 진 모르잖아. 투구게의 피가 유일한 시약으로 쓰일 줄 이 시대엔 아무도 몰랐겠지. 일단 살려놓고 연구하다보면 모든 암을 치료할 약이 만들어 질지도 모르잖아. 만병통치약을 뽑아낼 수 있는 동물이 인간의 실수로 멸종된다면 얼마나 손해야. 이건 과거로 온 이가 후대에게 전해줄 필수의무이야.”
새끼 유난 떨기는.
“어... 그런데 고양이는 괜찮냐?
“귀여우니까 괜찮아.”
“...... 간다.”
“어.”
뿌우우.
대칸을 영접한 선장이 잔뜩 긴장해 경적을 울렸다.
청진해안가에서 손을 흔드는 백성을 잠시 바라본 광해는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화려하게 꾸며진 침실. 그 곁에 후궁들을 위한 방도 고급스럽게 꾸며 놨다.
작은 창이 있지만 어둡다.
전기는 만들었는데 전구는 아직 못 만들었다.
에디슨이 가장 애를 먹은 필라멘트는 텅스텐으로 만들면 되는데 유리기술이 아직 못 따라온다.
틀로 찍어낼 수도 없고 광해가 일일이 만들긴 귀찮고.
그오오오오.
경유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진동과 함께 다가온다.
엔진 회전부에 발전기도 만들어 붙였는데 이는 오직 수리용 용접을 하기 위한 장치다.
자침용 자폭장치도 달려 있다.
이 배를 뺏기면 큰일 난다.
안타깝지만 전투의 패배는 죽음이다.
죽기 싫어 항복하는 선장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전에 세계정복이 끝나겠지.
배가 흔들려 겁먹은 야수들에게 마력을 투사해 안정시키고 밥을 먹었다.
불을 피울 수없는 목조 범선과 달리 조리실도 달려 있다.
여러모로 발전했다.
잠시 배를 둘러보다가 방으로 향했다.
후궁들과 궁녀들이 복도에 있다.
“누가 같이 쉴래?”
“저.”
예서는 손을 들었고 소유키는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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