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무산3
순도 100% 픽션입니다
8월 17일 아침. 두만강을 앞에 두고 만주족 기병 5000기가 모였다.
“저 강을 건너면 조선인가.”
“그래. 하지만 조선군은 서쪽 30리 되는 곳에 있다더군. 그나마도 보병 400명이 다고. 그냥 무시하자.”
“칸께서는 조선과 충돌하지 말라고 하셨다.”
“충돌하지 않으면 되지. 저들만 잡아서 조용히 돌아가면 될 거야.”
만주족 장수 이하추와 다이샨은 두만강을 보며 상의 했다.
유유히 흐르는 두만강 너머엔 수레 400량이 뭉쳐 있고 아침밥을 짓는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요하 상류부터 추격해온 울라부 유민들이 여기에 뭉쳐 있다.
아마도 조선 땅으로 건너왔으니 안심하는 것이리라.
강은 넓지만 느렸고 깊지도 않아보였다.
수레가 도강한 자국이 모래사장에 깊이 남아 있었다. 저 자국을 따라 건너면 도강도 문제없다.
“가자. 전군 들이쳐서 잡고 바로 후퇴하자.”
“알았다. 전군~ 돌격!”
이하추의 명령에 언덕 뒤에 숨겨진 무적의 기병 5000이 일제히 돌격했다.
드드드드.
“으아악!”
“적이다!”
기병 5000기의 소음은 어쩔 수가 없다.
기병이 나타나자마자 식사준비를 하던 유민들은 귀한 밥솥도 챙기지 못한 채 마차에 올라타 도주했다.
불마다 걸려있는 밥과 고기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잘란. 이거 봐봐. 이 놈들 죽은 말을 훈제하고 있었어.”
“음. 조선 땅에 왔다고 방심한 건가. 더 놔두면 썩으니 아까웠겠지.”
“챙겨가자. 가면서 먹자고.”
“그래라. 혼자 챙기지 말고 다들 나눠먹어.”
상대는 마차를 탄 유민이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기마보다 빠를 순 없다.
이하추는 긴 여정의 끝을 보며 마음이 풀어졌다.
기병대는 유민이 선물해 준 훈제 말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추격했다.
날씨도 맑아서 멀리까지 잘 보인다.
마차 300량이 분지지형에 들어섰다. 동 남 북 세 방향이 야트마한 오르막 언덕으로 이뤄져 있는 곳.
여정이 끝났다.
마차는 저런 지형에선 속도가 떨어진다. 반면 기마는 속도를 잃지 않고 따라잡을 수 있다.
과연 선두의 마차가 빌빌대는 걸 보며 마차들이 우왕좌왕 하더니 둥글게 원을 그린다.
감히 맞서 싸울 생각인가.
시간을 끌며 조선군을 기다리려고? 우릴 상대하려면 조선군 전원을 몰고 와야 할 텐데.
“끝났다. 전원 적을 포위해라.”
언덕에 감싸인 초원지역. 풀이 두껍게 깔려있어 먼지도 나지 않는다. 기분 좋은 전장이다.
이하추는 느긋하게 포위하며 소리쳤다.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항복하라. 위대하신 칸 아이신줴러 누르하치의 명에 따라 너희를 만추라이 백성으로 받아들이겠다. 당장 항복해서 위대한 만주족의 일원이 되거라.”
유민 추격.
그들을 죽이기 위함이 아니다. 인구가 부족한 누르하치가 자신의 백성을 늘리기 위해 끌고 오는 것이다.
관대한 만주족의 결정에도 마차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되려 마차를 이리저리 옮기며 벽을 만들었다.
항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하추가 명령을 내렸다.
“돌입하라. 마차를 파괴하고 진입해 제압하라.”
“화살은 쏩니까?”
“쏘지마. 포로의 숫자가 중요해. 별것도 아닌 놈들이니 들어가서 제압해라.”
“옛. 잘란.”
이하추의 기병이 세 방향으로 들이쳤다.
총대장 다이샨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뒤따라왔다.
누르하치의 실질적 장남인 그는 어려서부터 많은 전장에 나섰고 그랬기에 현재의 지형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음. 바가지 지형이군. 포위되면 위험하겠다.”
“에이. 절벽도 아니고 둔덕이잖습니까. 기마로 달리면 평지처럼 올라갈 수 있습니다. 공격해올 적도 없습니다.”
옆에서 깐죽거리는 참모의 말에 인상을 쓰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그래도 기분 나쁜 지형이다.”
기분 나쁘지만 진입하기로 했다.
만약 삼면이 절벽지형이었으면 밖에 남았을 테지만 야트마한 언덕이라는 것이 방심을 불러 일으켰다.
“뭐 어때요. 추격도 끝났으니 포로들 데리고 돌아갈 일만 남았는데.”
“방심하지 말라. 이하추 잘란의 부대 뒤에 대열을 정비시켜라.”
“그렇게까지... 옛. 구사.”
다이샨의 병력까지 마차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때가 왔다. 보이느냐? 저 적들은 모두 죽어있다. 저들은 이미 죽어 있는 것이다.”
“깐죽거리지 말고 앉아라.”
“으허허허. 때가 왔다. 이 전쟁은 나 모현성의 신화 중 첫 페이지에 기록될 것이다. 적들을 향한 나의 칼날이.”
“시끄럽대도. 혼잣말은 조용히 해.”
“아. 형. 이게 다 아군의 사기를 고취시키기 위함이야. 나의 연설이 아니면 부대는 와해될 걸.”
광해는 모현성의 말에 주위를 둘러봤다.
마차로 둥근 벽을 만들어 뒤에 숨어있는 병사들.
갑사 출신 중 죄가 있는 자 800명이다.
말에서 내린 그들은 보병처럼 나무갑주에 창을 들고 있었다.
말에서 내려 보병처럼 창을 든 그들은 긴장한 탓인지 표정이 안 좋았다.
“왕이 여기 나와 있다. 이보다 좋은 증조가 있겠느냐? 이 전쟁에서 죽는 건 불가능하다. 너흴 죽을 곳에 몰았다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광해의 말에 병사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광해의 한마디에 눈빛이 바뀌었다.
“작전대로 하면 아무도 안 죽는다. 말을 풀어라.”
“예!”
병사들의 사기는 왕이 책임진다.
광해는 병사들이 보기 쉽도록 사슬갑옷 위에 곤룡포와 익선관까지 착용하고 있다.
왕이 함께 있는 것보다 확실한 보험은 없다.
마차 400량을 끌던 말들을 진형 밖으로 내보냈다.
영문도 모른 채 채찍질을 맞아 밖으로 뛰쳐나온 주인 잃은 말들.
말은 큰 재산이다.
포위해 달려들던 여진족을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 이리저리 말을 잡으러 뛰어다녔다.
덕분에 진형이 흩어져 일제 돌격에 실패했다.
일부만 달려오고 일부는 뒤로 달려 말을 쫓았다.
“좋아. 지옥의 아귀는 배가 갈려 죽는 순간에도 입에 먹을 것을 처넣는 법이지! 모두 궁사에 대비하라.”
모현성의 지시에 일제히 나무 방패를 들어 올리는 병사들. 하지만 화살은 날아오지 않았다.
“활을 안 쏴? 아직도 유민으로 알고 있군. 좋아. 모두 마차 뒤에 붙어라. 지시를 내릴 때까지 얌전히 창으로 싸워라.”
말이 무거운 생물이라 해도 마차를 파괴할 정도는 아니다. 소중한 말을 마차에 돌격시킬 기수도 없고.
그래서 자연스레 마차 틈으로 돌입하게 되었다.
소음이 점차 강해지고 마차 사이로 적이 돌입하기 시작했다.
“후후훗. 통발 속으로 뛰어 들어 갇히는 물고기 같군. 각자 알아서 함정을 세워라.”
“예!”
병사들이 준비된 끈을 당겨 눕혀져 있는 나무를 들어올렸다. 끝이 뾰족하게 깎인 통나무가 연결되어 벽처럼 되어 있었다.
쾅! 콰아앙!
“으아악. 함정이다.”
“멈춰야 하.... 팔에 힘이 안 들어가.”
“물러나. 물러나라고 으악!”
선두열은 통나무에 꽂혀서 즉사. 뒷열은 갑자기 멈춘 선두와 엉켜 넘어지고, 그 뒷열은 조심스레 멈췄다. 그 좌우를 덮치는 장창.
기병은 무섭지만 멈춰선 기병은 창병보다 약하다.
방향전환도 어렵고 발을 향한 공격을 막기도 힘들고, 공격에 체중을 실을 수도 없다.
푹푹푹.
양쪽에서 달려든 창병에 의해 마차 사이로 돌입한 기병이 순식간에 몰살되었다.
멀리서 지켜보는 이하추는 마차 내부의 자세한 사항까진 알 수 없었다. 그저 마차 주위로 기병이 돌입하지 못하고 뭉치자 짜증이 날 뿐이었다.
“뭐하는 거야! 길은 저기 말고도 많잖아. 돌입해. 일제히 들이치라고!”
꾸룩꾸룩.
이하추는 배를 문지르며 명령을 내렸다.
마차 사이사이.
구덩이가 있고, 마차끼리 줄이 연결되어 있고 통나무 말뚝이 비스듬히 서 있다.
돌입한 적은 미리 준비한 창병에 의해 의미 없이 죽었다.
시간이 지나도 마차의 벽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마차 사이사이에 말사체가 끼면서 더욱 견고해졌다.
전투가 길어지자 짜증내는 이하추에게 다이샨이 다가왔다.
“뭔가 문제가 있나?”
“아니. 그저 말을 아끼느라 조심히 싸우는 모양이다. 적들이 말을 방출해 혼란을 겪기도 했고.”
“흠. 그런가. 그런데 왜 활을 쏘지 않지?”
“전부 포로로 삼아야 할 거 아니냐. 포로 수에 따라 포상한다고 해서. 진정하게. 어차피 금방이야.”
“음.”
다이샨이 인상을 찌푸릴 때 마차 벽에서 기마하나가 달려왔다.
팔에 피를 철철 흘리는 기마는 멀리서부터 소리쳤다.
“함정입니다. 함정! 저건 유민이 아니야.”
“뭣이?”
“마차 사이에 말뚝이 서 있고, 전원 창과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돌입한 기마는 전원 죽었습니다!”
이하추와 다이샨은 동시에 하나를 떠올렸다.
조선군.
“함정에 빠졌군. 후퇴하자.”
“무슨 소리. 숫자는 얼마 안 돼! 공격! 돌진하지 말고 활을 쏴라!”
“후퇴해야지. 아버지는 아직 조선과 싸울 때가 아니라 하셨다.”
“그러니 더더욱 전멸시켜야지. 빠르게 전멸시키고 다른 부족이 한 걸로 해야 해. 안 그러면 족장님께 큰 화를 받는다.”
이하추의 말에 다이샨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 400량 이래봤자 고작 천에서 이천 명. 저들만 묻어버리고 후퇴하면 된다.
“알았다. 전원 공격. 마차주위를 돌며 자유 사격하라.”
활의 장점은 거리.
단병은 적과 붙어 있는 선두만 싸울 수 있지만, 활은 사정거리 내의 모든 이가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
기마 오천기가 동시에 활을 날릴 수 있는 것이다.
슈슈슈슝!
“으악.”
“악.”
“크하학.”
돌입했던 기병이 물러나며 동시에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궁사에 몇 몇 병사들이 다쳤다.
“젠장. 전원 은폐하라. 마차에 붙어. 머리위에 방패 올려!”
급박한 상황에 모현성이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광해는 곁에서 그런 모현성을 가만히 보았다.
“후후후. 페이즈 투 돌입인가. 내 작전대로 되고 있어. 우후후훗.”
진형 중앙의 마차 위에 서서 전장을 둘러보는 모현성.
저 높이면 마차 밖에서도 보인다.
슈우웅. 슝슝.
광해는 왼손의 철사를 꺼내 모현성에게 꽂히기 직전의 화살을 쳐냈다.
“뭐하냐?”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지. 총대장이 이렇게 의연히 서 있어야 병사들이 안심하지.”
“지랄. 그냥 폼 잡고 싶은 거잖아.”
“에헤헤.”
화살 하나가 모현성의 얼굴을 향해 정확히 날아들었다.
광해는 철사로 화살을 쳐내고는 모현성을 끌어 내렸다.
“사기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가 하지. 넌 마차 밑에 숨어있어.”
광해는 마차 위에 올라섰다.
붉은 곤룡포와 익선관을 쓴 왕의 복장.
모현성이 투덜거렸다.
“쳇. 형이야말로 관종이잖아.”
이 모습은 멀리서도 보였다.
“붉은 옷? 고관인가? 고위지휘관이 있는 걸 보면 제대로 준비한 듯 하군.”
다이샨은 인상을 찌푸렸다.
붉은 색은 비싼 색이다. 곤룡포까지 알아보진 못했지만, 명나라 최고 대신들이 붉은 관복을 입는 건 안다.
조선의 고관이 이끄는 부대가 두만강변에서 쉴 때 자신이 착각하고 습격한 상황.
지금 상황은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된다.
“젠장. 아버지에게 한소리 듣겠군. 최대한 빨리 전멸시키고 묻어야 한다.”
“총공격!. 단 한명도 놓치지마라.”
다이샨의 명령에 후방에 남아있던 부대도 달려 나갔다.
화살비가 거세지고, 창을 든 기병의 돌입이 재개되었다.
그 모습을 본 광해가 소리쳤다.
“지금이다! 홍기를 올려라! 버텨라!”
마차 곳곳에서 붉은기가 올라왔다.
사방 언덕에서 관측하던 병사들은 빠르게 이 사실을 알렸다. 동시에 숨어있던 5000 병력이 움직였다.
“불을 붙여라. 굴려라!”
미리 준비한 거대한 풀 덩어리. 불을 붙이자마자 맹렬히 타오르는 풀 덩어리는 언덕을 따라 굴러 내려왔다.
동 남 북 세 언덕에서 불 붙은 풀 덩어리 수백 개가 굴러 내려왔다
“전원 기립! 벽을 세워라. 벽을 고정하라.”
기병이 진입했던 서쪽. 이곳의 함정에 가장 공을 들였다.
땅을 파고 촘촘하게 통나무를 깔아 덮었다. 그 위에 흙까지 덮어 적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위장했다.
눈만 내밀고 있던 관측병이 외치자 3000 보병이 일제히 일어나며 통나무 벽을 들어 올렸다.
ㅜ 자로 누워있던 벽은 ㅅ모양으로 고정되어 그 자체로 기병을 막는 벽이 되었다.
그 뒤에 배치된 보병 3000명.
유일한 평지 지형인 서쪽이 한순간 막혔다.
- 작가의말
1니루 = 300명
1잘란 = 5니루 = 1500
1구사 = 5잘란 = 7500
1구사는 독립된 색깔의 깃발을 갖는데
8구사 = 팔기군 청나라 건국을 이룬 주력군
리메전과 동일해서 오늘 한편 더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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