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예비군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이 안타까워요
순도 100% 픽션입니다
대낮에 이만명의 이동을 감출 순 없다.
집과 논과 밭, 여기저기서 사람이 고개를 들고 구경했다.
“뭐야? 뭐지?”
“댁들 누구요?”
“거지단첸가?”
“다 거지로 보이긴 한데.”
“창에 칼에... 칼을 쓰는 부대가 있나?”
장우영을 따라 달리는 강호협사들도 칸국을 구경했다.
“바닥에 돌을 깔았네. 북경에서나 깔 수 있는 건데. 이곳이 칸국에서 가장 중요한 도로인가보군.”
“집집마다 소나 돼지를 한두 마리씩 키우고 있어. 칸국에서 가장 잘 사는 마을 같아.”
“집도 크고 넓군. 집끼리 서로 떨어져 있고. 부유한 마을 맞아. 남경의 고관대로만큼 잘 사나봐. 이 마을만 약탈해도 많이 남겠어.”
제물포가 중요한 항구긴 하지만, 손꼽히게 잘 사는 마을은 아니다.
현재의 칸국 전체가 이 정도의 생활을 한다.
“오옷. 저 여자 마음에 드는군. 못 참겠다.”
양쯔강에서 수적질로 먹고살던 장강오협 중 첫째 위정채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발견하고 방향을 틀었다.
“이보시오. 한성이 먼저요. 거긴 더 대단하다 하오.”
“이것도 먹고 거기도 먹는 거지.”
강호협객 위정채가 달려가 물동이를 이고 있던 여인의 머리채를 쥐었다.
“꺄아아.”
“뭐야? 당신 뭐하는 거야?”
촤아악.
근처에 있던 사내가 손을 잡으며 말리자 그대로 베어버렸다.
꺄아아아~
“살인이다~”
“명나라 말이다! 적의 침략이다!”
“적이다~”
“사람을 불러와~”
구경하던 사람들이 전부 집 안에 숨었고, 논과 들에서 일하던 이들이 어디론가 뛰어갔다.
“크크큭. 이게 양민의 본성이지. 다들 먼저 가시오. 내 따라가리다.”
개방 방주 우치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출발했다.
아니 출발하려 했다.
쉬이이.
퍽.
“어?”
허벅지에 화살이 꽂혔다.
쉬이이.
쉬이이.
퍼퍼퍼퍽.
여기저기서 화살이 날아온다.
집집마다 화살이 날아온다.
멀리 있는 마을에서 장정 수백명이 튀어나오는데 전부 활을 들고 있다.
“궁수대?”
쉬이이.
쉬이이.
“장우영! 여기 민가라 하지 않았나?”
“예. 분명 민가인데...... 칸국은 민방위훈련을 하는지라...... 집집마다 활과 화살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게...... 민간인이라고?”
자위.
스스로 지키는 힘.
모든 사내는 활과 화살을 갖고 있어야 하며 모든 여성은 조총을 쏠 줄 알아야 한다.
이로 인해 순간적인 화를 못 참고 활로 쏘아 죽이는 범죄도 잦지만, 어차피 분노살인은 활이 없어도 칼이나 독, 하다못해 주먹으로도 죽이는 법이다.
무기를 갖추는 것은 피해보다 이득이 많다.
“그래도 우리의 숫자가 많으니 도망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응사하리라곤.”
개방 삼장로 장우영이 변명처럼 읊조렸다.
일반 농부가 2만 명의 적을 향해 활을 쏜다? 미치지 않고서야.
“광신도들이로군.”
“광해소망교가 널리 퍼졌다지만 이정도일 줄 몰랐습니다.”
“크아악.”
“이게 뭐야?”
“피해라.”
그 사이에도 화살은 꾸준히 날아왔고 피해가 누적되고 있었다.
“적은 몇 명 안 된다. 들어가 죽여라.”
주위 민가래 봤자 천여 채 정도.
궁병은 집집마다 흩어져서 쏘니 하나씩 잡으면 된다.
이만여 강호협사가 담장을 넘었고, 집집마다 숨어서 쏘는 백성들을 죽였다.
이마저도 실패했는데 담장을 넘는 사이 백성들이 집 뒤로 빠져나가 도주하며 활을 날렸다.
오십여 명 정도 잡은 게 끝이다.
그 사이 화살에 맞아 다친 이가 천여명.
뭉쳐있다 보니 눈감고 날린 화살에 누군가 한명씩 맞은 것이다.
“젠장. 피해가 크다. 부상자들은 모여서 치료하다가 적이 오면 막으시오. 나머지는 한성을 약탈합시다.”
“두고가다니! 여기에 우릴 버리면 우린 다 죽소. 데려가주시오.”
집에서 활을 들고 빠져나온 민간이들이 멀리서 줄을 서고 있다.
군관도 없는데 스스로 알아서 대열을 갖추는 것이다.
훈련받은 대로.
말이 없으니 따라가 잡을 수도 없고, 부상병만 남겨두면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우리가 가는 곳엔 정식 병사들도 있고 성벽도 있소. 거기가 더 위험하오. 담벼락이나 집 안에 숨었다가 접근하는 적을 죽이시오.”
개방 방주 우치호는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애초에 큰일을 앞두고 여자욕심을 부린 게 잘못 아닌가.
정작 허벅지를 다친 우치호는 개방 방도의 부축을 받아 자리를 옮겼다.
남겨진 자들 중 일부는 부축을 받아 함께 이동했고, 일부는 멀쩡한 형제가 몇몇 남아 지켰다.
도적떼가 다시 출발하자 멀리서 지켜보던 백성들이 뭐라뭐라 떠든다.
“광해ㅃㅉㄸㄲㅃ”
그러더니 활과 화살을 들고 따라온다.
뒤에 남은 자들은 안중에도 없다.
천여명이었던 궁수가 계속 추가된다.
여기저기서 소식을 들었는지 활든 자가 계속 달려와 합류한다.
개방 뒤로 궁수의 숫자는 벌써 삼천명을 넘어선다.
그리고 앞에는 기마가 왔다 갔다 한다.
다가와서 숫자를 세고 도망치고 다시 다가와 지켜보다가 이동하고.
멀리서 활 든 백성들이 도열해 있다가 진로 바깥으로 이동하고.
칸국 한복판에서 그들 하나하나를 쫓아가 죽일 시간이 없다.
차라리 무시하고 달려가 준비되지 않은 한성을 함락해야 뭐라도 건질 수 있다.
개방이 무시하자 활 든 백성들이 좌우로도 포위해 따라간다.
마치 하나의 부대 같지만, 실상은 내부의 개방을 궁병이 포위한 형국이다.
개방은 묘한 압박감에 짓눌리기 시작했다.
서너 개의 마을을 지났다.
제물포에서 한성까지 십분지 일밖에 못 왔다.
“십분지 일이라고?”
“예.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건 아니지만...... 한성의 인구가 얼마라고?”
“대충 오십만 넘는다고 합니다.”
“하아. 포기하세. 모두 돌아갑시다. 못 이기오.”
“거 무슨 말이오.”
“사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지.”
“내 검은 아직 피를 못 봤다.”
“갑시다. 그 끝이 승리일지 패배일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오.”
“지레 겁먹고 도주하다니. 사내 맞소?”
강호의 협사들이 아우성치자 후퇴하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그들에게 한성의 인구를 설명하고 그들 모두 활쏘기 훈련을 받았다는 말을 전하자 그제야 협사들의 의기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다만 조금 늦었다.
정면에 여자들이 달려온다.
이천여명의 여자들이 횡대로 서서 달려와 개방 백보 앞에 도열한다.
여자들이 나타나자 순간 의아했던 개방.
하지만 여자들이 주섬주섬 꺼낸 물건을 보자 사색이 되었다.
“신무기다!”
“도망쳐라!”
개방만큼 저걸 잘 아는 이도 없다.
똑같이 만들어보려고 물고뜯고씹고 해봤으니.
“거 무슨 말이오.”
“아녀자들 아니오. 아녀자들. 저까짓 것들 그냥 어흥만 해도 도망갈 걸.”
개방이 도망가고 협사들이 싸우려 할 때 설치가 끝났다.
바닥에 모래마대를 놓고, 그 위에 광해이포를 올린다.
광해이포 뒤에 모래마대 두개를 둬서 밀리지 않게 하고 포 위에도 두개를 올려 화구가 꺾이지 않게 한다.
그리고 장전하고, 쏘세요.
콰콰콰쾅!
인근 관아에 보관중인 광해이포가 300문.
300문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사거리 안의 적은 얼마 없었다.
다만 소리에 놀랐다.
“도망쳐!”
“돌아가야 해!”
“개방 놈들에게 속았다!”
대열이 무너졌고, 다들 왔던 길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주위 백성들이 활을 날리기 시작했다.
슈슈슈슉.
좌우에서 활을 날리며 따라오고, 뒤에서 여자들이 광해이포와 모래마대를 들고 걸어온다.
개방은 아무 성과도 못 올리고 화살에 의한 부상병을 하나하나 흘리며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도착한 해변엔 배가 없었다.
“맙소사.”
“오백명이나 지키고 있었는데.”
해변엔 핏자국과 시체만 남아 있었다.
“크윽.”
“어떡하지?”
“설마 개방놈들이 우릴 죽이려고?”
이득을 위해 모인 이합집산은 잘될 땐 문제가 없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땐 바로 분열한다.
“도망치자! 남쪽으로!”
“저어기 섬으로 가자! 헤엄치면 갈 수 있어!”
“항복하라! 항복하면 살려준다!”
천둥치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거대한 표범에 올라탄 광해가 있다.
큰일이 발생한 줄 알고 서둘러 달려온 광해는 돌아가는 상황에 깜짝 놀랐다.
예비군이 칼밥 먹는 적 이만을 쫓아낼 줄이야.
잘 키운 자식 보듯 뿌듯함이 밀려온다.
“광해님 만세!”
“만세! 광해님 만세!”
광해는 곧장 불의 마법진을 그렸다.
“불 벽.”
해변 북쪽과 남쪽에 기다란 불의 벽이 생겼다.
이제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서쪽 바다와 동쪽 광해가 있는 곳뿐이다.
광해 곁으로 뒤늦게 도착한 여자들이 광해이포를 차곡차곡 설치하고 있다.
“항복해라! 열 셀 동안 항복하지 않으면 모두 죽인다!”
재차 광해가 소리치자 강호의 협객들이 혼돈 속에 빠졌다.
“거짓이오. 다 죽일거야.”
“황제가 직접 한 말인데 지키겠지. 항복합시다.”
“싸우면? 어떻게 싸울 건데?”
“궁병이 만 명에 신무기도 있는데 맨몸으로 돌격하려고?”
여기저기서 고함이 들리고 항복이 대세가 되었다.
“시간 됐다! 항복할 자는 무기를 버리고 무릎으로 걸어 나와라.”
항복할 이와 싸우려는 이가 섞여있다. 함부로 들어가면 항복하려는 자를 방패삼아 싸우게 되니 문제가 된다.
이럴 때 그들 스스로 나오게 하면?
망설이던 강호의 협사들이 하나 둘 무기를 던지고 무릎으로 기어 나왔다.
그 뒤에 남은 개방도의 선택은?
“한족의 제국을 위해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 우리가 스러지더라도 우리의 의기는 만대에 빛날 것이다.”
“예.”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변절자를 방패삼아 돌진한다. 한번만 버티면 적을 다 죽일 수 있다. 우린 만명이 넘는다. 조선왕이 제아무리 괴물이라도 우릴 다 죽이지 못한다. 저놈만 죽이면 한족의 영화가 다시 일어날 것이다.”
“예.”
개방도가 달려가 무릎걸음을 하는 뒤에 붙었다.
무기를 버리지 않았으니 그들의 의도는 뻔했다.
“뭐야?”
“너희 뭔데?”
이 상황에서 싸우려면 이게 최선이다.
그리고 광해 또한 예측하고 한 말이다.
“항복하려는 자와 저항하는 자가 섞였다. 항복하려는 자들은 일어서서 바닷가에 붙어라.”
방패를 치워준다.
과연 개방의 선택은?
“계속 전진해라.”
예상대로 목에 칼을 들이민다.
“네놈들이 감히.”
“배신이냐? 우릴 이러려고 불렀느냐?”
“흥. 대의도 없이 황금 욕심에 합류한 주제에.”
내분이 일어난다.
소란이 일어나고 몇몇 전진하지 않으려는 이가 목이 잘린다.
항복하려던 이들도 칼밥 먹는 이들이다.
눈치를 보다가 무기를 뺏어 찔렀다.
“크아악.”
“으악.”
“죽여라!”
“난 아니야. 난 시키는대로 크악.”
저 멀리 중원에서 모여 한성을 약탈하러 온 이들이 서로 싸우게 되었다.
서로의 목에 칼을 찌르고, 서로의 눈을 찌른다.
잠깐 사이에 팔천여명이 쓰러졌다.
개방도가 이천 죽고, 항복하려던 무기를 던진 잡것들 육천이 죽었다.
운 좋게 뭉친 잡것 천여 명이 살아남았고, 개방도 팔천이 살아남았다.
간단한 제의 하나로 적의 수를 반으로 줄였다.
“사격하라.”
광해는 조선말로 명령했다.
광해의 옆엔 아공간에서 꺼낸 기관총 세정이 설치되어 있었다.
투타타타타타타.
사거리 안의 개방이 낫질한 볏단처럼 쓰러진다.
“끄으으윽.”
“살려 어어억.”
“아악.”
돌진하다 쓰러지고, 도망가다 쓰러지고, 불벽을 통과하려다 타 죽고.
그나마 끝까지 집단을 이루던 개방 수뇌부는 광해이포의 사거리까지 들어왔다가 일제포격에 녹았다.
“중지.”
광해의 명령에 사격이 끝났다.
피로 물든 해변가에 살아남은 이는 천오백명이 채 안되어 보였다.
그 중 대다수는 항복하려 마음먹은 잡것들이고.
저 멀리 바다로 탈출해 열심히 헤엄치는 이가 오백여명 보이지만 그들 앞엔 소식을 듣고 출동한 판옥선 열 척과 수많은 어선들이 떠 있었다.
광해는 중어로 명령했다.
“너희가 전장정리를 해라. 부상이 심한 자는 죽이고, 적 중 지위가 높은 이들은 시체라도 모아서 가져와라.”
여자포병과 남자 궁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적 포로들이 전장을 정리했다.
총알 한두 발을 맞아 고통에 몸부림치는 환자들이 같은 편의 칼날에 편안해졌다.
광해는 그들이 날라 온 시체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소망을 읽었다.
“이놈이 개방방주군.”
“이놈이 개방 삼장로. 조선에 침투한 놈이군. 허어. 김류와 손잡은 게 이놈이었어.”
앓던 이 하나가 뽑혔네.
항복한 자들에게 작전계획을 듣고 그들의 세력을 파악했다.
몇몇 개방 수뇌부가 살아남았기에 그들에게 마력을 투사해 비밀기지와 조선에 들어온 점조직, 본토에 숨겨진 재산 등을 자백 받았다.
개봉과 항주에서 작업하고 있는 이덕형에게 포로들을 보내 수뇌부를 잃은 개방을 박살내 재산을 빼앗고 강호 협사들의 몸값을 받고 풀어줬다.
그 몸값은 열심히 싸운 예비군들과 죽은 백성의 보상금이다.
“너희 덕에 적은 피해로 나라를 지켰다! 수십 배의 적과 싸우다 죽은... 그리고 싸워 이긴 너희가 칸국의 영웅이다! 고맙다!”
제물포에 거대한 동상과 기념탑, 승전비를 세웠다.
특별히 커다란 종교행사를 열고 스스로 무기를 들고 싸운 백성들을 불러올려 치하해줬다.
그리고 거액의 포상금을 주고 전국 종교행사에도 알렸다.
제물포의 영웅들은 만백성의 부러움을 샀고, 앞으로 외적이 나타나면 서로 싸우려 들 것이다.
칸국의 내부가 좀 더 단단해졌다.
- 작가의말
적이 흩어져서 무작위 약탈을 했다면 수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겠죠
적이 똘똘 뭉친 덕에 희생이 줄었네요
모현성은 현대에서 공부해온 걸로 잘난척 하는 거고
전투경험이나 지휘능력은 광해가 훨씬 쎄요
우리 광해 바보 아니라구욧
에헤헤 광해 바보아니닷
Commen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