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중국 조각내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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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군과 우에스기군이 주축이 된 칸국 병사들이 숨겨뒀던 광해이포를 발사했다.
“하남인만이 한족이다!”
근거리에서 쏟아지는 수만 발의 쇠구슬이 깃발아래 모인 의화단원을 격살했다.
“섬서 진족은 한족이 아니다!”
콰콰콰쾅!
“호북성은 장족 거지의 동네다!”
콰콰콰쾅!
“하북, 산동은 동이 오랑캐의 핏줄이다!”
콰콰콰쾅!
중국어가 서툰 병사들이 달달 외운 구호를 반복해서 외치며 무차별 난사를 했다.
다섯 발씩 쏘자 눈앞엔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만 남았다.
광해이포가 무려 사천문이나 동원되었으며 십만 명 넘게 모인 광장엔 사상자가 수만명 발생했다.
교주의 죽음에 장수들과 병사들은 대응하지 못했고, 테러를 끝낸 안보군은 정해진 퇴로로 도주했다.
광해는 건물 위에서 안보군의 도주를 보다가 적이 조직적으로 공격해올 때만 불기둥을 만들어 추격을 막았다.
모든 병사들이 개봉 성문을 통과해 준비해둔 말에 올랐다.
테러는 성공적이었다.
광해는 안보군이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후 시선을 돌렸다.
광장은 수만 명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수백발의 쇠구슬에 뚫려 즉사한 시체들과 곳곳에 구멍이 나 신음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보기 안 좋군.”
“저들이 뭉치면 더 큰 피해를 입어. 내 머리로는 이게 최선이야.”
모현성이 변명하자 광해는 어깨를 두드려줬다.
“욕하는 건 아니다. 나도 그리 착한 놈은 아니지. 다만 보기 안 좋은 건 사실이니까.”
“어...... 돌아가자.”
건물 옥상에서 내려가고 얼마 후 뒤늦게 사태를 수습하려 하는 병사들과 조우했다.
“누구냐?”
“광해상점 개봉지부다. 글은 읽을 줄 알지?”
이항복이 하남어로 말하며 서류를 내보이자 병사들을 이끌던 장교가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몰라봤습니다. 상황이 혼란스러우니 호위를 붙여드리겠습니다.”
광해상점의 위세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광해상점의 점원이 도둑에게 습격 받아 죽을 경우 칸국의 보복을 받을 수도 있으니 광해상점에 소속된 이는 최선을 다해 경호하라는 명령이 예전부터 주어진 상태다.
테러를 일으킨 범죄자 수괴들은 피해국 병사의 호위를 받으며 은신처로 이동했다.
가다보니 바닥에 종이가 잔뜩 떨어져 있었다.
광해가 주워서 읽어보니 내용이 참 이상하다.
-하남에 사는 우리만이 한나라의 후예 한족들이다-
-관중은 진나라의 후예 지나족이며 우리 한족을 오랫동안 학살해왔다-
-호북성은 오와 초의 후예 장족의 땅이다-
“삐라냐?”
“어. 크크크. 백련교 교주가 죽어서 정신없을 때 분열시켜야지. 여기 말고도 전국에 공통적으로 뿌리고 있어.”
“이게 의미가 있냐?”
“중화사상을 좀 조져야지. 이대로는 서로 싸우더라도 훗날 다시 하나의 중국으로 뭉칠 수 있으니까 분열시켜야 해. 사실 김류 놈한테 아이디어를 얻었지. 통합은 어렵지만 분열시키긴 쉽잖아. 그냥 원한만 심어주면 되니. 삐라를 뿌리고 증오범죄 좀 일으키다보면 일배충 같은 쓰레기들이 발생해 분열을 가속 시킬 거야. 중국에 일억 일배충이 증식하는 날까지. 중국은 영원히 분열 되야 해.”
“...... 잠깐.”
광해는 벽에 기대 누워있는 거지를 봤고 소망을 확인했다.
가서 뒷목을 잡아 기절시켰다.
“이놈 개방이다. 고문해서 정보 빼네.”
햇밤 줍듯 개방도를 잡아 호위병에게 넘겼다.
“그렇게 하면 중화사상을 지울 수 있어?”
“어. 사실 중화사상의 기본은 다른 민족을 계속 쪼개는 거거든. 흉노 오환 돌궐 선비 거란 몽골 전부 몽골초원에서 양 키우던 애들이라고 말했지? 인종도 같고 생활습관도 같은데 살아온 시대가 다를 뿐이야. 이들을 모두 다른 민족으로 이름붙이는 게 곧 중화사상의 전부지.
만약 그들 전부 같은 민족이라 치면 중국 역사는 엄청 초라해져. 춘추전국시대 내내 몽골에 털렸다. 한나라는 몽골에 박살났다. 이후 중국 북부를 몽골에 먹혔다. 송나라도 몽골에 박살났다. 명나라도 몽골에 박살났다. 이러니 쪼개는 거야. 흉노와 싸워 박살났지만 문화로 교화시켰다. 오환도, 돌궐도, 거란도 똑같이.”
몽골초원에서 성장한 기사(騎射)민족이 춘추전국시대 중국 북부를 박살냈고 만리장성을 만들게 했다.
이들은 흉노다.
몽골초원에서 성장한 기사(騎射)민족이 한나라시대와 그 이후 중국 북부를 박살냈다.
이들은 오환이고 돌궐이다.
몽골초원에서 성장한 기사(騎射)민족이 송나라 이전까지 중국을 지배했다.
이들은 선비족이다.
몽골초원에서 성장한 기사(騎射)민족이 송나라를 박살내고 중국을 차지했다.
이들은 거란족이다.
그리고 몽골제국.
중화사상은 자국의 패배를 지우기 위한 역사조작의 초라한 결과물이다.
“그게 무슨 문젠지 모르겠다. 남쪽으로 침범해 한자를 쓰게 됐고, 원래 땅에 남은 사람들과 문화나 삶이 달라졌잖아. 그럼 다른 민족으로 봐도 되는 거 아냐?”
“형은 남의 일로 생각하니 와 닿지 않는거야. 문제는 이런 중화사상 덕에 고구려족이 사라졌다는 거지.”
“고구려족이라......”
“고조선, 고구려, 발해. 우리 민족은 이천년 넘게 요동과 송화강 유역을 지배했어. 그런데 발해가 사라진 후 그 땅을 한 순간에 여진족의 땅으로 표시하게 되었어. 금나라에서 우린 신라출신이다 라고 말했는데도 남의 민족이 되었지. 중국 개새끼들이 역사를 분리시켰고, 우리 등신선비들께서 생각 없이 따라간 거지.”
“그게 중화사상이라는 거야?”
“중국은 항상 발렸고, 항상 밟혔어. 선비족 당나라를 포함해서 중국땅을 통일한 시간으로는 몽골족이 가장 오래 지배했지. 그러니 걔들은 역사를 조작해야 했어. 북방 기마민족과 당나라가 불교를 퍼트렸고, 목화나 소주가 몽골로부터 전해졌지만, 남의 문화에 본인들이 변화된 건 조작해서 지우고 오직 중화사상으로 오랑캐를 교화시켰다고 역사를 왜곡하지.”
“그래서 지우는 거야?”
“중화사상에서 주변국을 쪼갠 것처럼 중국도 시대별로 종족을 만들려고. 위족, 한족, 지나족, 오족, 초족, 제족 등등등. 전국시대부터 오대십육국 시절까지 다 거슬러 가면 장강 평야에 수백 개 민족을 만들 수 있어. 우리 명령에 따라 삼년 넘게 한글을 배포했고, 이제 웬만해선 다 읽을 줄 알아. 삐라를 지속적으로 뿌리고 증오범죄를 일으키면 일배충이나 메갈 같은 관심종자들이 등장해 영원히 조각내겠지.”
한글의 장점은 짧은 습득기간이다.
글을 모르는 이는 많아도 자기 언어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기호를 읽는 법만 배우면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다.
한자라면 몇 년 배워야 할 테지만 한글은 일주일이면 충분하다.
광해상점을 통해 수백종류의 삐라가 중국 전역에 뿌려지고 간단한 한글 독음 덕에 백성들에게 의미가 전해진다.
모현성과 말 하는 사이에 광해상점에 도착했다.
백련교의 삼엄한 호위 덕에 미쳐 날뛰는 약탈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민족주의라...... 그거면 될까?”
“약간 부족해.”
광해상점 안채에 들어가서도 대화가 계속 되었다.
“민족주의를 돕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한글이야.”
“삐라를 읽게 하기 위해서?”
“그것도 있지만, 중국을 확실하게 분열시키기 위해서지. 그래서 엄청난 거금을 쓴 거고.”
각 군벌이 거병한 이후에도 칸국은 한글보급을 위한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칸국 덕에 거병에 성공하고 그들의 힘을 아는 각 군벌은 칸국의 요청대로 한글을 보급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돈을 받고 자기 백성에게 글을 가르쳐 자신의 위대함을 반복 세뇌하는 일이니 각 군벌도 좋아했다.
“한글이 중국을 분열시킨다고?”
“중국은 너무 커서 각자 언어가 달라. 이곳 하남성의 일반 백성이 사천성에 가면 외국에 온 것처럼 말이 안 통할 정도야. 그런 중국을 하나로 묶는 게 한자지.”
“한자 졸라 구린 거라며? 동굴 속 원시인 수준이라고 하지 않았냐?”
“구린 거 맞지. 맞는데 중국이란 큰 나라를 지배하는 데엔 가장 유용해. 사천성의 관리가 북경의 명령을 말로 받으면 못 알아들어. 하지만 한자로 전달받으면 뜻은 전달되지. 고증 잘 된 무협지를 보면 필담을 나누는 게 많아. 현대 신무협은 귀찮으니 그냥 대화하지만 실제로는 필담이 아니면 말이 안 통해.”
“한자가 엄청 비효율적이지만 의미문자라서 큰 영토를 하나로 묶는다는 거지?”
“어. 그래서 한글 보급을 강조한 거고.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앞으로 한글을 쓰게 될 거야. 이렇게 몇 세대 지나면 중국의 지역끼리 말이 안 통하게 될 테고 이러면 민족의 동질감이 없어지지. 분열이 완성되는 거야. 다들 서로 다른 민족이라 인식하고 나면 끝이야.”
“근데 그건 너무 오래 걸리잖아. 그보다 내가 아는 평민의 삶이라면......”
산동성 어느 산골 마을.
광해상점의 물건을 떼다 파는 상단이 마을에 들렀다.
물건을 팔고 객점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상단의 호위무사들이 떠들었다.
“아. 우리는 동이 제족이라더라.”
“우린 한족이 아니래.”
“하남 한족이 우리 조상을 죽이고 이 땅을 뺏은 거야. 못 된 놈들.”
광해상점에서 따로 돈을 받은 그들은 들르는 마을마다 떠들어댔다.
숙박을 하고 떠날 땐 여기저기 삐라를 뿌려댔다.
하북에서도, 절강에서도, 사천에서도.
광해상점은 거금을 들여 사람을 고용하고 삐라를 제작해 중국 전역에 뿌렸다.
한편 그 말을 들은 농부들의 반응은.
“어쩌라고.”
“내일 먹을 게 걱정인데 한족이든 제족이든 알게 뭐람.”
“저놈들 또 종이 떨구고 갔네. 이거 모아다 문풍지로 발라야겠어.”
“저기 서원에서 이면지로 쓴다는 데 거기 팔아볼까?”
거금을 들인데 반해 별 효과가 없었다.
“평민들은 민족주의 따위 지랄쌈싸먹으라고 할 텐데.”
“이그젝틀리! 사실 그렇겠지? 당장 내일 먹을 것도 없는데 민족주의는 개뿔. 이런 건 배부르고 등 따스한 귀족들이나 할 일이지. 나라의 주인이 바뀌어도 세금 뜯기는 건 똑같으니 평민들에게 이런 정치는 아무 상관없지.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짜잔!”
모현성은 홈쇼핑 호스트처럼 과장된 동작으로 새로운 삐라를 전해주었다.
“어? 야이 시발.”
삐라엔 생각지 못한 단어가 적혀있었다.
섬서성의 작은 시골마을.
올해 열세 살 된 이자성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광해상점의 상단이 지나가는 날.
정확히는 광해상점에서 물건을 떼다 파는 상단이지만 어린 이자성은 그걸 구분할 수 없었다.
멀리서 마차 다섯 대가 다가와 마을 중앙에 섰다.
이런 시골에선 찾기 힘든 유리구슬이나 광해면포 등 귀한 물품이 잔뜩 실려 있다.
호위무사가 겁을 주는 와중에 사람들이 줄을 서 물건을 구경하고 망설이다 하나씩 사간다.
가난한 이자성은 뭘 사지는 못하고 마차 꽁무니에 붙어 그들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마차가 지나갈 때마다 그들은 실수인지 쪽지 따위를 떨구곤 한다.
작은 종이지만 똥을 닦거나 구멍 뚫린 문에 바르는 등 쓸데가 있기에 여러 장 모으면 밥 한 그릇을 얻어먹을 수 있다.
오늘도 역시나 마차 바닥에 쪽지 몇장이 떨어져 있었다.
마차가 출발한 순간 잽싸게 달려가 쪽지를 주웠다.
팔아먹기 전에 얼마 전 배운 한글로 읽어봤다.
-우리가 가난한 건 부자가 땅을 다 차지해서다-
-쌀 열석을 수확해도 나라에 다 뺏기니 풀죽을 끓여먹고 산다-
-모두 똑같이 일하고 모두 똑같이 먹자-
-모든 부자를 죽이고 땅을 똑같이 나눠 갖자-
“내가 배고픈 게 다 부자가 뺏어가기 때문? 맞아. 그게 맞아.”
열세 살 아이도 알기 쉬운 아주 직관적인 설명이다.
“공산주의?”
“어. 정치에 무관심한 민중을 정치에 참여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 인간의 증오와 불만을 극대화해서 스스로 죽창을 들고 나서게 하는 마법!”
“야 시발. 이거 졸라 무서운 거 아니냐? 명나라보다 몇배 무서운 괴물이 나타나면 어떡해?”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안 되게 잘 조종해야지.”
“뭐로?”
“전에 말한 거 같은데? 공산주의가 현실화 되려면 꼭 필요한 게 뭐라고?”
“신. 고대 제정일치 부족사회 수준이 한계라고.”
“그러니까 신이 안 나타나게 만들어야지. 신이라는 자가 나와서 공산주의를 통합할 때마다 형이 납치해서 신이 아닌 등신임을 밝히고 죽이자. 스탈린이나 모택동처럼 짝퉁신이 등장하지 않으면 공산주의는 끝없는 학살만 반복하게 될 거야. 시체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사상이니까.”
“결국 날 부려먹겠단 말이군.”
“형 없으면 공산주의를 꺼낼 생각도 못했지. 재들 통합돼서 단체로 광신도가 되면 무서우니까. 그리고 안전장치가 하나 더 있어.”
“뭐?”
마침 술상이 들어왔고, 모현성은 목이 탄지 백주를 들이킨 후 말했다.
“형 모택동의 문화대혁명이 뭔지 알아?”
“그...... 참새는 해로운 새다 그거?”
“땡. 공산주의에 방해되는 모든 걸 죽인 거야. 그래서 뭘 죽였게?”
“부자 지식인 이런거겠지.”
“어. 맞아. 거기에 추가로 중화사상도 죽였어. 공식적으로 현재의 중화사상과 현대 중공의 중화사상은 달라.”
“다르다고? 한족이 최고! 이거 아냐?”
“모택동 때 공산주의는 모두 똑같이 평등하다는 사상을 심을 필요가 있었어. 당시 공산주의가 범람하는 혼란 속에 한 번도 지배해본 적 없는 티벳과 위구르, 내몽골 등 지역을 잔뜩 삼켰으니 이걸 하나로 만들어야 했거든.
그래서 중국 공산당은 과감히 한족제일주의를 버렸어. 모든 민족은 평등하고 중국공산당의 통치를 받는 모든 민족은 하나의 중화다 라는 식이지. 즉 내가 하는 민족주의는 중국공산당이 가장 싫어할만한 짓이지. 이게 시진핑 땐 흐지부지돼서 한족들의 중화제일주의가 다시 나타나지만 어쨌든 그랬어.”
“음...... 그러니까 니가 삐라를 만들어 뿌린 민족주의가 공산주의 통일에 대한 안전장치란 거지?”
“어. 현재의 중국 애들은 절대 중화사상을 못 버려. 거기에 한족 내에서도 수많은 부족을 양산하고 서로 다른 종족이라 이름 붙여 분열시키고 증오범죄 일으키고 추가로 부자에 대한 약탈도 하고......”
“졸라 개판 되겠네.”
“고려 조선이 수탈당한 천만배의 복수를 해주도록 하지. 이 땅에 1억 일배충을 양산하고 나면 끝나.”
“시발. 중국이 불쌍해지는군.”
“맨날 쳐 맞고 지배당하는 등신들이 감히 중화사상 어쩌고 이지랄 하면서 우리 고구려족을 없앴으니 벌 좀 받아야지.”
“어. 그래. 어쨌든 내가 할 일은 끝났지?”
이런 공작은 부하들이 할 일이다.
황제에겐 황제가 해야 할 일이 있는 법.
가서 논다.
“가는 길에 북경에서 모문룡 죽이고 가자. 그놈만 죽이면 하북쪽도 사분오열될 거야.”
모현성은 처마 밑 곶감 빼먹듯 쉽게 말했다.
광해는 쉽게 죽였다.
모문룡따위.
- 작가의말
1억 일배충 양성계획
으으으 끔찍하다
민족관에 대해 중국에 최대한 불리한 의도적인 곡해가 들어있습니다.
중립적 시각에 대한 서술이 나중에 다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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