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중국 조각내기
순도 100% 픽션입니다
콰르르르릉.
교각구간을 건너 터널구간에 들어섰다.
광해는 사각 반듯한 블럭으로 잘라낸 후 기다리면 된다.
일꾼들이 달려들어 블럭을 뒤로 옮겨 도로를 포장하는 데 쓴다.
호위 백 명 중 절반은 블럭 옮기는 데 붙었다.
다들 너무 노니까 운동 삼아 하는 일이다.
나머지 절반은 광해의 주변에서 경계하며 각자 운동하고 대련한다.
“차앗. 타앗.”
임경업의 힘이 간삼을 넘어선다.
마흔 줄에 다다른 간삼은 에이징 커브가 꺾였는지 임경업에게 훅훅 밀린다.
그보다 대련에 집중하지 못하는 듯 하고.
“어이 간삼.”
“예. 대칸.”
비글처럼 달라붙는 임경업을 밀어낸 간삼이 광해에게 달려왔다.
“고민 있어?”
“아닙니다.”
“창에 자신감이 없는데?”
“그건...... 그...... 모르겠습니다.”
“뭘?”
“소신이 검과 창을 십년 넘게 수련했으나 실제 전쟁에서 쓴 일은 손에 꼽습니다. 대부분 총기를 사격하는 걸로 끝났습니다.”
“그게 더 쎄니까.”
“특히 광해이포를 주력으로 하는 작계는 방패와 광해이포가 주축이 되니 무기술을 익히는 의미가 없다 생각되옵니다. 이게 정식편제가 되면 더더욱 쓸모없어질 것 같습니다.”
“어. 맞아.”
열심히 수련한 간삼은 허망한 표정이 되었다.
뒤에서 듣던 임경업은 하늘이 무너진 표정이었다.
“그... 그럼 제가 인생을 걸고 한 짓이 전부 무가치한 일이옵니까?”
그렇게 되겠지.
이제 곧 k2소총이 보급되면 각자 연사병기를 갖추게 되니 냉병기가 끼어들 틈이 아예 없어진다.
“그래도 몸 건강해지고 좋지 않느냐?”
“아닙니다. 저의 무술은 저의 주군을 지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예전부터 니 무술 필요 없었어. 난 백 만 명에게 포위 되도 살아 나갈 텐데 근위병이 무슨 의미냐?”
“그럼 저희를 어째서 달고 다니신 겁니까?”
갑자기 임경업이 발악하듯 소리쳤다.
“잡일해주는 게 편하니까.”
“크흑. 사내대장부의 순정을 그렇게 짓밟는 거 아닙니다!”
울며 달려가는 임경업.
저 놈은 언제 철들려나.
“죄송합니다. 대칸. 제가 혼을 내겠습니다.”
“아니 됐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선 무술을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낫지. 좁은 성안. 혹은 궁내에서 자는 도중 갑자기 기습을 받는다면 의미가 있겠지. 총기는 충분히 뭉쳤을 때 효과가 좋지 소규모로 기습 받으면 무술이 필요하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예서나 소유키는 지켜줄 수 있을 테고. 그렇지?”
“예 맞습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무술이 필요한 순간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거기 전력을 쏟지 마. 이제 너도 부대 지휘하고 그래야지.”
“저... 저는.”
“평생 날 지키려면 지키든가. 그래도 왕 눈치 보는 것보다 니가 대장인 것도 괜찮잖아. 그러다 돌아와도 되고. 병법도 익히고 이것저것 익혀봐. 네 삶의 의미가 평생 내 그림자라면 좀 아쉽지 않겠어?”
“...... 예.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래.”
남에게 충성하는 게 삶의 의미라는 건 좀 안타깝다. 그의 삶이 그렇게 하잘것없진 않을 텐데.
그래도 충성의 대상이 나라는 건 기분 좋긴 하다.
말하는 사이 터널 안이 비워졌다.
콰르르릉.
재차 터널을 뚫고 먼지구름 속에서 나오자 모현성에게 통신이 왔다.
-형.
“어.”
-뭐해?
“오늘 일 끝났고, 소유키랑 내 딸 보러 가려고.”
소유키가 딸을 낳았다.
마력으로 아이를 받았고 마력으로 산후조리까지 시켜줬다.
예서도 얼마 전에 임신했으니 아이들이 계속 나올 테지.
-그럼 대충 마무리하고 한번 올래?
“왜?”
-중국 쪽. 백련교 쪽이 너무 뭉치고 있어. 백련교 산하로 들어간 게 일곱이야 벌써.
“가봐야겠군.”
-어. 올 때 매로나.
소유키를 만나 한번 안아주고 예서와 아기한테 마력을 넣어주고 우두용 신석을 충전해준 후 구름이를 타고 한성으로 건너갔다.
캬르릉.
구름이가 반갑다고 모현성을 안으며 얼굴을 핥았다.
모현성도 구름이를 반기다가 얼굴 전체가 젖으니 질색한다.
혀가 까칠까칠하니 아프기도 할 테고.
좋군.
잘했다. 더해줘라.
광해의 마력을 받은 구름이가 꼬리까지 쭉 늘어뜨리며 계속 핥았다.
“그만. 아 쫌. 야! 아풉.”
한참 만에 자리가 정리되고 이덕형이 조심히 다가왔다.
“현재 상황입니다.”
중국내란 총 책임자 이덕형은 수백 명의 간자와 사신을 보내며 중국 각지를 조종하고 있다.
세가 강한 곳은 주위 세력을 합치게 해 꺾고, 꺾되 전멸시키지는 않고.
그렇게 수십 명의 힘으로 중국을 아주 초토화시키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마흔 두개 군벌이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조종해 강해지는 쪽에 몰매를 치도록 해 균형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월이 북진해 광서성과 광동성을 거의 차지했습니다. 여기에 다섯 개의 자생적 군벌이 있었습니다. 저마다 명나라 황족 하나 주워다가 복명운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주원장 한명에게서 시작된 주씨 황족의 씨앗은 불과 250년 만에 60000명으로 늘었다.
명나라는 이들 모두의 생계와 품위유지를 지원했는데 매년 여기 들어가는 자금이 임진왜란 때 구원군이 소모한 자금 이상이다.
명나라는 황족 챙기기만으로도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곳곳에 난립한 지방호족들은 유비 같은 아무 황족이나 잡아다 명나라복원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개판이겠군.”
“예. 전쟁이 끊이지 않고, 그럴수록 저희의 영향력은 커졌죠. 그런데 한족 군벌 쪽에 동시다발적으로 신무기가 등장했습니다. 백련교 측에서 신무기를 다량 들고 삽시간에 주변 군벌을 박살냈습니다.”
“신무기?”
“광해이포입니다. 철의 상태가 좋지 않아 폭발이 잦지만 화력과 재발사 시간은 거의 흡사합니다.”
역시 카피작은 금방 나온다.
아예 상상조차 못할 발명품이어도 보고 그대로 베껴 만들면 금방 원리를 파악하고 만들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기관차와 기관총을 카피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겠지.
한족 군벌만 신무기가 얻었다는 데서 개방의 의도가 보인다.
“하남의 백련교 산하로 군벌 일곱 개가 들어갔습니다. 하남과 안휘, 호북 대부분이며 전부 평지 지역입니다. 그들이 동시에 주변 소수민족 국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저희와는 동맹의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귀찮아하는 게 역력해 보입니다. 신무기에 취해서인지 이제 간섭받기 싫은 눈치입니다.
또한 북경을 장악한 모문룡 산하로 두개 군벌이 들어갔습니다. 하북 전체와 산동 일부가 그의 산하로 들어갔습니다. 그와 함께 거액의 금화를 한성으로 보내왔습니다. 눈감아달라는 의미인 듯 합니다.”
“그래. 해결책은?”
“머리만 암살해 주십시오. 저희가 포섭한 이인자가 여럿 있습니다. 그들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찢겠습니다.”
“임시방편 일 텐데. 어차피 또 금방 통일될 걸.”
“그래서 안보군이 뒷공작을 하고 있습니다. 공작에 성공하면 절대 합쳐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 가보자.”
광해는 게이트 마법진을 그렸다.
모현성과 이덕형이 함께 가려고 준비했다.
문을 열고 이동하려는데 모현성이 막는다.
“형. 구름이 타고 가려고? 암살하러 가면서 광고하려는 거야?”
“어. 맞네. 구름이 남아야겠다.”
컁!
구름이가 혼자 남기 싫어서 투정 댄다.
“모현성이 널 못 가게 하는 거야. 저놈에게 화풀이해.”
구름이는 모현성에게 달려가 뒷발로 서서 앞발로 바바바했다.
“윽 큭. 컥. 아. 쫌. 그만.”
기특한 구름이는 발톱을 집어넣고 옆으로 밀듯 바바바했다.
제대로 쳤으면 모현성 따위 한방에 죽었겠지.
뎀프시롤 맞은 것처럼 머리가 좌우로 흔들린 모현성은 팽그르 흔들리다가 쓰러졌다.
“됐어. 화 풀고 조금만 기다려. 맛있는 거 사 올게.”
구름이는 삐진 듯 식빵자세를 잡고 째려봤지만 어쩌겠냐, 몰래가는 여행인데.
정신 못 차리는 서칸왕의 뒷목을 잡고 게이트에 들어갔다.
도착한 곳은 하남 개봉의 광해상점.
“대칸을 뵙습니다.”
미소 띠며 반기는 이는 이항복이다.
명나라가 분열된 이후 각지의 세력은 광해상점을 허용했다.
허용 정도가 아니라 도시 목 좋은 곳에 적극 유치하고 광해상점을 보호하는 데 신경을 썼다.
칸국 입장에서도 필요한 물건을 싸게 구할 수 있지만, 각 군벌은 적대세력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꼭 필요한 화약이나 철 등을 구하려면 광해상점이 필수다.
바다과 강을 통해 광해상점의 물건을 옮기는데 적극 도왔고, 내륙의 적대세력으로 가는 물건마저 보호했다.
칸국의 지원으로 나라를 꾸린 그들도 권력의 추가 어디에 있는 지 아는 것이다.
이항복은 광해상점의 일꾼으로 안보군을 밀어 넣었다.
최씨상단 공작원과 안보군과 수호군의 정예, 그리고 백병전 경험이 많은 우에스기군 4천명이 전부 중국 전역에 흩어져 있다.
이덕형과 사신들이 상대 국가의 인정을 받은 백색스파이라면 이항복과 안보군은 광해상점의 일꾼으로 위장해 뒷공작을 하는 흑색스파이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계속 노렸으나 도저히 암살할 틈이 보이지 않습니다. 송구하옵니다.”
“작정하고 버티는데 어쩔 수 없겠지. 어떻게 죽여줄까?”
“명일 백련교 교주가 진명제국을 선포합니다. 진짜 명나라라는 뜻이죠. 그 자리에서 죽여 좌우호법에게 덮어씌워 주시지요. 현재 뒷공작 중이니 교주만 죽는다면 네 덩어리로 찢어질 것입니다.”
“그래.”
저녁에 이항복, 이덕형, 우에스기와 술을 마시며 가볍게 회포를 풀었다.
다음날 변복을 하고 길을 나서자 사람으로 가득 찬 광장을 만날 수 있었다.
광해는 광장이 아득히 보이는 곳 건물 위로 올라갔다.
“섬서 의화단 이리와라!”
“호북 의화단 여기로!”
중국 각지의 지명이 적힌 깃발이 나부끼고 그 아래 젊은 사내들이 뭉쳐서 지나간다.
곁에 붙은 이항복이 조용히 설명을 해 줬다.
“명에서 백련교를 탄압하자 백련교는 의화단이란 이름으로 숨어들었습니다. 태극권과 같은 건강무술인데 절정에 다다르면 총알도 막을 수 있다고 선전해 사람을 많이 모았습니다. 권법을 가르치면서 은연중 백련교 교리를 가르쳐 신도를 모으는 방식이죠.”
“총알을 못 막는 건 네가 12성 절정의 깨달음을 얻지 못해서다.”
곁에서 모현성이 추임새를 넣자 이항복이 웃었다.
“아무도 다다르지 못할 경지군요. 어쨌든 백련교는 저들을 중심으로 각지의 군벌을 굴복시켰습니다. 우리가 세력 간 통합을 금지했더니 내분으로 무너뜨리고 스스로 복속했으니 용인해 달라 하더군요. 자기들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각지의 의화단이 수천개의 광해이포와 화약을 얻은 건 백련교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림없는 일이었죠.”
수많은 세력으로 쪼개 서로 분쟁을 이어가게 만드는 게 대 중국 기본전략이다.
백련교는 그걸 무시해 중원 평원 대부분을 순식간에 장악했다.
그렇기에 암살당하는 거고.
“나중에 얘들이 서양에 대한 무차별 학살을 자행하는 의화단 운동을 일으켜. 그 결과는 청의 멸망이고. 즉, 백련교가 원나라와 청나라 두 오랑캐 제국을 쓰러뜨린 셈이 되지.”
이항복은 알 수 없는 모현성의 말에 침묵으로 대응했다.
신분 나이를 초월한 둘의 대화는 알아듣지 못할 말이 너무 많았다.
“시작하나 봅니다.”
북송과 금나라의 황궁으로 쓰였던 개봉 궁전 문이 열리고 성대한 행렬이 나왔다.
너른 공터에 미리 마련된 제단에 백련교 교주 한세창이 오르고 호위병들이 주위를 감쌌다.
한세창의 바로 뒤에 건장한 노인 둘이 호법을 섰다.
“저 둘이 최고 호법이야.”
모현성이 속삭였다.
“저 녀석들이 한세창을 죽이게 하란 거지?”
“어. 바로 시작하면 돼.”
백련교 성녀가 제사를 주관하고 악단이 종교제가를 연주하는 와중에 광해의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꼭두각시 마법.
아득히 멀리 있는 두호법의 몸을 통제해 검을 뽑았고, 그대로 한세창의 등에 꽂았다.
“커컥!”
푸푹. 푸북.
경악한 호위들이 멈칫하고 검을 뽑아 달려오는 사이 두 호법은 한세창을 반복해서 찔렀다.
호위들의 검이 두 호법을 난도질하는 동안에도 찌르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꺄아아아아!”
모두가 보는 와중에 두 호법이 교주를 암살했다.
다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충격 받아 머리가 하얗게 비워진 순간.
“우리 하남인만이 진짜 한족이다!”
콰콰콰쾅!
테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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