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철로원정대
순도 100% 픽션입니다
7년 4월, 나들이를 떠났다.
구름이를 타고 있는 광해 옆엔 꽃순이가 소유키를 태웠고, 비호 맹호는 모현성과 예서를 태웠다.
느긋하게 백수의 왕을 타고 떠난 여행길은 삼일 만에 함흥에 도착했다.
와아아아~~
주상전하만세~
함흥의 백성들이 모두 나와 만세를 부르고 있다.
위충현 같은 간신도 구천구백세를 듣는데 조선의 왕이 천세를 고집할 필요는 없지.
이제 명나라가 무섭지도 않고.
한번 뵙고 두번 뵙고 자꾸만 뵙고 싶네~~
흥겨운 종교행사가 열리고, 인근 병자가 모두 모여 광해의 손길을 받았다.
관북 지방 전체가 통제구역이기에 여기 살려면 광해소망교의 인증을 받아야 하고 대가로 여유로운 삶을 보장받고 있다.
그만큼 충성도도 높다.
준비된 행사가 끝나고 저녁 무렵 거대한 건물에 들어갔다.
쇠바퀴가 달리고 매우 긴 건물. 증기기관차다.
철로 까는 게 처음이 어렵지 기술과 경험이 축적되면서 빠르게 진전된다.
무산에서 청진으로 내려온 철로는 함흥까지 이어졌다.
화려하게 꾸며진 국왕용 객실에 왕후와 세자의 손을 잡고 올라섰다.
와아아아~ 광해전하~
백성들의 환호성을 뿌우우하는 경적소리가 답했다.
치익. 치익. 치익. 철컹. 철컹. 철컹.
이 거대한 기관차는 발전한 조선의 상징이고 국왕 개혁의 결과다.
지켜보는 모든 백성의 가슴속에 자긍심과 애국심이 심어졌다.
검은 연기를 내뿜는 기관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성벽처럼 거대한 열차가 국왕과 가족을 싣고 동쪽으로 움직인다.
왕후와는 데면데면하지만 딱히 배척하지도 않는다.
불쌍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고 사랑하지는 않지만 괴롭힐 생각은 없다.
신체적 자유와 정신적 안전을 보장하는 게 최선이다.
그녀도 체념했는지 세자에게 매달리는 모양새고.
“우와 이 거대한 쇳덩어리가 움직이다니. 너무 신기합니다.”
올해 열여섯 살이 된 세자는 창가에 붙어 눈을 빛내며 밖을 바라봤다.
그 곁엔 지난 해 혼인한 박승종의 손녀, 세자비가 붙어 재잘거렸고 왕후도 안보는 척 고개만 돌려 창밖을 봤다.
판유리를 포함해 온갖 사치품으로 가득한 왕의 특실이지만 광해는 어좌에 앉는 대신 구름이를 베고 누웠다.
이제 광해보다 훨씬 큰 구름이는 최고급 침대다.
“너무 느린 거 아냐?”
광해의 불만에 유일하게 가족이 아닌 모현성이 답했다.
“시속 30. 아직은 이게 한계야. 어차피 화물용 말곤 한동안 쓸 일이 없으니. 아직 철로 기술이 불안해서 더 빠르게 만들면 사람 여럿 죽을걸.”
말이 달리는 것보다 느린 기차는 천천히 동북쪽으로 올라가 청진을 지났고, 하루 만에 무산에 도착했다.
무산에서 종교 활동을 하고 개발현황을 살펴본 후 다시 기차에 올랐다.
기차는 눈물 젖은 두만강철교를 건너 북동쪽으로 달려 연변에 도착했고, 한차례 종교 활동 후 북서쪽으로 나아갔다.
기차 안에서 하루를 지낸 후 도착한 곳은 창춘.
무산만 해도 엄청 추운데 거기서 북쪽으로 한참 달려야 하는 곳이다.
한성에 얼음이 녹은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이곳엔 아직 얼음이 얼어있다.
여진족 중심지로 키우고 있는 이 추운 곳엔 10만 명이 모여들었다.
인근 부족민이 모였고, 북쪽 하얼빈에서 다이샨의 목을 들고 와 복속한 예허부의 모든 인구 5만 명이 모였다.
화려한 마법쇼를 펼치고 밀주를 만나 진행사항을 보고 받은 후 다시 기차에 올랐다.
기차는 창춘을 지나쳐 북서쪽으로 쭉 달렸다.
“드라마에서 볼 법한 아름다운 초원을 아리따운 아가씨와 말을 타고 달리며 하하호호 웃어. 수천 마리 양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목동은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초록 물결에 누워 풀피리를 불어. 조선 백성은 명절에도 먹기 힘든 고기를 아침점심저녁 귀족적으로 우아하게 먹고, 양젖과 마유주를 마시며 호탕하게 웃지. 양가죽으로 만든 따스한 게르, 혹은 호드에서 자다가 천막을 젖히고 나오면 밤하늘엔 은하수가 흘러.”
모현성이 혼자 중얼거린다.
보통 저러면 자기 나름의 반전을 꺼내는데.
“혹시 몽골하면 이딴 걸 떠올리지는 않겠지?”
“그런 걸 생각하면 안 되나?”
“안 돼. 이런 걸 생각하고 몽골 관광을 갈 생각이면 그만두는 게 좋아.”
“내가 가겠냐? 억지로 가라고 해도 안 갈 텐데.”
“인간의 삶은 기후와 환경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아. 조선 사람의 생활이 이런 건 조선의 환경이 이래서고 동남아 생활이 그런 건 동남아 환경이 그래서야. 중위도. 한반도나 중국, 아랍이나 유럽이 발전한 건 발전할만한 기후와 환경을 갖춰서야.”
어쩌라고.
광해는 모현성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베고 있는 구름이의 수염을 잡아당겼다.
구름이는 두 손으로 세수하듯 얼굴을 쓸어내리며 수염을 가렸고.
“여진족은 여름엔 농사를, 가을엔 채집을 해. 그 후 7개월이란 긴 겨울을 나야 하지. 긴긴 겨울동안 먹고 살기 위해 낚시나 사냥을 다니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야. 사냥에 실패해 고기와 모피를 얻지 못하면 굶어죽지. 그런데 몽골은 유목만 해. 농사도 안 짓고 사냥도, 낚시도, 채집도 안 해. 왜냐? 얘들이 게을러서?”
캬르르릉.
광해는 대답안하고 구름이와 놀았다.
“아니야 틀렸어. 그것 말고 할 게 없어서야. 오직 유목밖에 할 게 없기에 유목만으로 먹고 사는 거야. 자 여기서 스피드 퀴즈.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수도 중 가장 추운 곳은? 셋... 둘...”
“문맥상 몽골... 아니 함정이었군. 모스크바.”
젠장. 대답해버렸다.
진기분이다.
“케케켁. 문맥도 못 읽네. 정답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입니다.”
“구라.”
“레알 크크.”
때리고 싶은데 구름이 침대에서 벗어나기 귀찮다.
“대륙 동안은 대륙 서안보다 훨씬 추워. 보스턴보다 시애틀이 훨씬 위도가 높지만 보스턴이 더 추운 것처럼 한반도의 위도는 북아프리카와 비슷하고 파리와 런던 같은 곳은 더럽게 추운 창춘보다도 훨씬 북쪽에 붙어 있는데도 덜 춥지. 모스크바도 그래. 대륙 서쪽에 가깝기에 대륙 동쪽에 가까운 몽골보다 온도가 높은 거야. 즉, 전 세계 모든 나라 중 가장 살기 더러운 동네가 몽골이라는 거지.”
“어.”
쩌라고.
“일 년 중 영하가 아닌 기간이 4개월밖에 되지 않고, 강수량도 400mm 미만이야. 이 기간 동안 8개월의 겨울을 나기위한 준비를 해야 해.”
“준비할 게 뭐 있냐? 사냥도 낚시도 안 된다며.”
“풀. 겨울에는 풀이 나지 않잖아. 양과 말이 먹을 풀을 봄여름가을동안 준비해야 해. 풀이 나면 가축을 풀어 먹이면서 한쪽에선 풀을 최대한 베서 쌓아둬. 한곳을 다 베면 이동해. 풀을 베고 쌓고, 비가 한번 오면 다시 풀이 자라니 돌아와서 다시 풀을 베고 쌓고. 이걸 4개월 동안 죽어라 반복해야 가축이 겨울을 날 건초를 모을 수 있어. 이런 삶을 살아야 하니 부족 하나당 넓은 영역이 필요하지.”
“어. 고생하네.”
“그런데 문제는! 목축의 성공률이 농사의 성공률보다 낮다는 거야. 요즘처럼 소빙기에 접어들어 겨울이 길어진다? 이러면 봄에도 가끔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생겨. 이러면 풀이 나는 시기가 한 달 늦어지기도 해. 이러면 가축들이 굶어죽지. 가끔 겨울이 빨리 와도 가축이 굶어죽지. 또 전염병이 자주 돌아. 이러면 사람이 먹을 게 없어서 굶어죽지. 이러면 어쩔래. 그냥 운명이니 생각하고 굶어죽을래?”
“...... 굶어죽느니 전쟁이지.”
“맞아. 몽골족은 생활환경이 이러니 대부족이 모일 수 없어. 대부족이 모이면 풀이 자라는 초원이 모자라고 짐승들의 전염병도 자주 도니까. 그렇다고 소부족 규모로만 다니다가 전멸당할 수도 있어. 분쟁도 잦아. 서로 영역이 애매하니까 풀을 잘라 건초를 쌓아놨는데 다른 부족에서 급하다고 훔쳐가. 이러면 어째야겠어? 싸워야지. 이들에게 전쟁은 생존을 위한 필수고, 그렇다보니 모든 사내가 말을 타고 싸워야 해.”
“그래서 잘 싸우는구나.”
“몽골 초원의 영역은 중국이 뺏은 내몽골 지역을 포함해 한반도의 열배정도 돼. 그런데 인구는 백만~ 백오십만밖에 안 돼. 왜지? 얘들은 섹스를 싫어하나?”
“인구는 식량 한계까지 증가한다.”
“그렇지. 인구는 꾸준히 느는데 식량은 그렇게 늘지 않으니 애들이 굶어 죽어. 그러면 전쟁을 해야지. 서로 싸우거나 아니면...”
“만만한 남쪽으로 가거나.”
“소부족 규모로 약탈을 해 보니 자기들이 상대하던 기마민족과 달리 엄청 약해. 약한데 쌀이 많어. 그래서 남쪽을 침범하는 거지. 오환, 흉노, 돌궐, 선비, 거란, 몽골 등 민족 이름은 많은데 이거 다 중국에서 지들 마음대로 지은거야. 전부 같은 민족이야. 몽골초원에서 양 키우다가 식량 부족으로 남침해 중국 먹은 애들.”
“중국 입장에선 열 받겠네. 때 되면 내려와서 때리고, 때 되면 또 내려와서 때리고.”
“이러니 어쩔 수 없이 ‘중화’시켰다! 라고 정신승리 하는 거지. 내가 졸라리 얻어맞았지만 위대한 문화로 교화시켰다아아아. 이렇게 말이야. 크크크. 중화사상 시발.”
중국을 싫어하는 모현성이 중국을 욕할 때 광해는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그런데 우리 이길 수 있냐? 괜히 갔다가 전멸하는 거 아냐? 나보고 싸우라 하지 마라. 널 조져버리는 수가 있다.”
싸우기 싫다.
전쟁 좋아하는 모현성이 이상한거지 아마 충무공께서도 전쟁 싫어하셨을 거다.
“적 성인 남성 모두 정충신의 초원기사단 급의 능력을 갖고 있다고 봐야지. 대충 40만 궁기병이라고 보면 되려나. 직접 싸우면 이기기 힘들어. 그래서 말인데......”
모현성이 눈치를 보면서 말꼬리를 늘였다.
“왜?”
“몽골을 쉽게 정복하기 위해 하는 말인데...... 내가 왕 하면 안 될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모현성은 여기까지인가.
역적 모현성을 죽여라~
기차는 창춘에서 서쪽으로 400km 지역에 멈춰 섰다.
이곳이 최종 목적지는 아니고 철로가 여기까지 깔려 있기 때문에 멈췄다.
광해와 가족들, 모현성 등이 내렸다.
그 앞엔 7만 군세가 서 있었다.
4만 명으로 늘어난 정충신의 초원기사단.
3만 명을 추린 곽재우의 관서군.
구름이의 등에 탄 광해가 연설했다.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뿌리 몽골과 손을 잡기 위함이다. 적대한다면 싸우되 적이 화살을 날리지 않는다면 우선 대화하라.”
전쟁이지만 전쟁이 아닌 걸로 포장한다.
정복할 거지만 손잡는 거라 말한다.
“선봉은 기차다. 기차가 선두에서 싸우고 보병은 기차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기병은 후방에서 적이 철로를 망가뜨리지 않게 보호하는 역할이다. 역할을 혼돈하지 말고 공을 탐하지 마라.”
“염려 마십시오. 전하.”
곽재우가 답하자 모든 병사들이 똑같이 대답했다.
2년 이상 정충신을 따라다닌 여진족 병사들도 조선어로 대답했다.
“사실 저 땅 굳이 가질 필요는 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죽지마라. 위험하면 다 버리고 도망쳐도 된다. 무리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전하.”
별거 아닌 말이지만 병사들에겐 이 말이 가장 와 닿았다.
병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승리가 아닌 본인의 생명이다.
대충 연설은 끝났고, 전신의 축복인척 커다란 빛덩어리를 만들어서 병사들의 사기도 올려줬다.
곽재우의 지휘 하에 병사들이 출발했고, 작전계획도 보급계획도 이미 예전에 세워져 있다.
이제 할 일이 없다.
“집에 가자.”
나들이 삼아 나왔는데 별로 재미는 없었다.
- 작가의말
다이샨이 예허부와 손잡고 창춘을 공격해 만주족의 마지막 불꽃을 불사르고
밀주와 이항복이 피똥싸며 막는 전투가 있었는데요...... 편집~
사법연수원 이후로 가볍게 보시던 분 떠나실것 같고 여기까지 따라오신 분들은 스토리가 좀 약해져도 계속 가실 것 같으니 광해가 나오지 않는 스토리는 되도록 줄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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