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무산4
순도 100% 픽션입니다
다이샨은 불덩이가 보이자마자 퇴로부터 확인했다.
진입했던 서쪽 땅이 들썩이더니 기마를 막는 말뚝벽이 생겼다.
“젠장. 함정이었어. 후퇴한다.”
“지금? 우린 기마 5000이다. 10만 보병도 이길 수 있어!”
“화공이잖아. 바닥엔 풀이 깔려 있고. 준비된 함정에선 탈출해야 한다.”
“화공? 훗. 전쟁을 병서로 익힌 바보로군.”
화공은 무섭다.
하지만 길목을 막는 용도 외엔 큰 의미가 없다.
삼국지 같은 소설책이나 게임에서나 주구장창 등장하지 실제 화공으로 적을 죽이긴 힘들다.
불이 크게 타오르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
또 어느 한군데만 불이 꺼져도 나머지 모든 화계는 의미가 없어진다.
불을 키우고 그 불로 포위망을 형성하고 그 불이 포위 내부로 빠르게 전진해야 하는데 적이 불을 끄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즉 현실화 어려운 소설용 계략인 것이다.
“어제 강한 소나기가 내린 거 기억 안나? 게다가 바람도 불지 않아. 불은 잠깐 타다가 꺼질 거야. 지금 후퇴명령을 내리면 오히려 혼란에 빠진다. 이럴 땐 우직하게 공격하는 게 낫다. 빨리 해치우고 매복병을 없애자”
이하추는 오히려 돌진했다.
직위는 다이샨이 높지만, 다이샨은 누르하치의 아들일 뿐이다.
자신은 누르하치가 젊을 적부터 10년 이상 더 종사했고 더 많은 전투에 참전했다.
누르하치를 따르며 수십 년간 단 한 번의 패배도 겪지 않았던 그에게 기병의 힘은 너무도 위대했다.
덕분에 부대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을 놓쳤다.
풀을 베어 말린다. 8월의 소나기가 온다.
젖는다. 다시 말린다. 또 젖는다. 미친다.
함정을 준비하던 병사들은 미칠 지경이 되어 군대좆같네를 연호했다.
그렇게 겨우겨우 말린 풀을 전날 광해가 건조시킨 후 분지 전체에 깔았다.
모자랄까봐 말에게 먹일 건초도 깔았다.
그래도 바닥이 너무 젖어 있다.
넓게 퍼트린 마른 건초는 바닥의 습기와 아침 이슬을 빨아먹으며 촉촉하게 젖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이하추의 말이 맞을 것이다.
“이것은 지옥의 겁화. 이 세상 모든 죄지은 이를 불태우는 지옥의 불길. 헬오브플레임!”
마차 아래에서 눈만 내밀고 있는 모현성이 소리쳤다.
광해가 머리를 흔들었다.
“뭐하냐?”
“안 보이느냐? 이 지옥 불길의 소리가. 모든 적을 불태우고 모든 악업을 정화하는 화염이 안 들리느냐?”
안 보인다.
“불타오르네. 뽜이야~”
술 취했을 때 가끔 이러더니.
광해는 모현성을 대신해 지휘했다.
“모두 숨어! 구덩이에 들어가서 누워!”
분지로 내려온 불덩이가 지나간 자리에 사람 키만한 화염이 솟아오른다. 관성에 의해 불덩이는 중앙의 마차를 향해 사방에서 들이쳤다.
“으아악!”
“살려줘!”
축구장 열개 넓이의 거대한 분지 전체가 동시에 검은 화염에 휩싸였다.
흑색화약의 3요소.
유황, 숯, 염초.
유황이 발화한다.
숯이 산소와 만나 다량의 기체를 생산한다.
염초는 화약에서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밀폐된 공간에서 화약을 터트릴 때 다량의 산소를 공급해 산소가 숯과 만나 산화탄소가 되며 부피를 늘리는 역할을 한다.
사실상 화약의 폭발력은 염초에서 나온다.
광해는 염초를 만들 수 있다.
흙가마솥으로 만든 염초 5만근을 이곳까지 싣고 와 숯과 섞어 이 분지 전체에 골고루 뿌렸다.
화르륵.
분지 전체에 키 높이의 화염이 치솟는다. 염초가 공급하는 다량의 산소가 화염을 키웠고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불덩이가 지나간 자리에 불의 길이 생겼고, 높이 솟은 불길은 해일처럼 퍼졌다.
“으악. 살려줘!”
“물! 물!”
“도망쳐야 해. 어디로? 크허어억!”
분지 전체가 동시에 불타면서 증발한 수증기와 검은 연기가 시야마저 없앴다. 5000기병은 생존을 위해 무작정 달리다가 쓰러졌다.
다이샨은 그나마 반응이 빨랐다. 불덩이가 내려온 뒤로 거친 화염이 솟구치자 즉각 판단을 내렸다.
“퇴각한다. 나를 따르라.”
힘껏 소리쳤지만, 북이나 징 없이 전장에서 명령을 전달하는 건 무리였다.
곁을 지키고 있던 자신의 니루 삼백인 만이 명령을 알아듣고 따랐다.
다이샨은 불덩이가 내려오고 있는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평지이며 불이 없는 서쪽은 죽음의 함정일 것이다.
직감을 믿고 북쪽으로 한참 달리자 내려오는 불덩이를 마주하게 되었다.
“무시해라. 지푸라기일 뿐이다. 멈추면 죽는다. 무시하고 달려라!”
달리다보니 주위에서 하나 둘 합류해서 다이샨을 따르는 기마는 700기를 넘어섰다.
이글이글 불타는 화염구가 곁을 스친다. 순간적으로 열기가 확 올라왔지만 버틸만했다. 주위에 화염구와 정통으로 충돌한 기마 몇이 말에서 떨어졌지만, 그 정도는 무시해야 했다.
화염구를 지나자 붉은 불의 벌판을 만났다. 염초와 건초를 태우며 이글거리는 불의 바다.
멈추려는 말에 힘껏 채찍질하며 달리니 한호흡만에 불의 길을 지났다.
잠깐 사이에 수염이 전부 탔다.
팔과 얼굴 등 노출된 모든 부위가 타고 머리가 꼬부라졌다.ㅏ
그래도 됐다. 살아남았다.
이제 잔불과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오르는 언덕지역만 통과하면 된다.
다이샨은 뒤를 돌아봤다.
몇몇 낙오자가 있지만, 대부분 무사히 빠져나왔다.
“모두 힘을.”
병사들을 독려하려고 숨을 들이켠 순간. 시야가 팽 돌며 의식이 사라졌다.
낙마하는 다이샨을 따르듯 병사들이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언덕에서 굴린 화염구는 모두 중앙 마차를 향해 잘도 굴렀다.
콰앙! 콰아앙!
마차와 부딪친 풀덩이가 깨지며 화려한 불꽃쇼가 펼쳐졌다.
“구덩이에 숨어라. 젖은 천으로 입과 코를 막아라.”
이미 전투는 끝났다.
이제 생존이 문제다.
주위를 둘러싼 마차가 전부 불이 붙었고, 검은 연기가 거칠게 침범해 오고 있다.
미치광이 같던 모현성조차 창백하게 질려 말을 잃었다.
“에어커튼.”
진의 중앙에 미리 마법진을 그려놨던 광해는 마법진을 펼쳤다.
지름 백미터의 원형 벽이 생겨났다.
에어 커튼이 하늘하늘 흔들리며 침범해오는 검은 연기를 열심히 막았다.
대형 화제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화염이 아니라 연기다.
검은 연기가 붉은 화염보다 더 잔인하고 강력하다.
질산칼륨, 염초가 섞인 벌판은 한순간 타올랐지만 금세 꺼졌다.
염초가 제공한 산소로 맹렬히 타오른 대지는 다음순간 산소를 잃고 사그라졌다.
물에 젖은 대지가 수증기를 공급하며 금세 불을 껐고 분지형 벌판엔 산소가 사라졌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검은 연기.
“고개 숙여. 아니 엎드려!”
“엎드려라! 물에 젖은 헝겊을 입에 물어.”
“고개 들지 마. 엎드리란 말 안 들리냐?”
사방을 포위한 조선군영에서 고함소리가 터졌다.
미리 주의사항을 전해들은 간부들이 욕설을 섞어가며 병사들을 통제했다.
그럼에도 자꾸 고개를 드는 걸 막을 수 없었다.
5000기마가 타오르며 몸부림치는 장관. 통제해야 하는 간부들마저도 자꾸 고개가 돌아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른 분지 전체가 빛나더니 검은 연기로 가득 찼다. 공기보다 가벼운 연기는 위로 오르며 버섯처럼 퍼졌고 사방 언덕을 덮쳤다.
“뚫어. 뚫어야 해!”
“달려라. 속도를 줄이지 마!”
본능에 의거해 서쪽으로 달린 기마는 1500여 기. 그들은 커다란 벽을 마주했다. 달려오는 말의 가슴높이로 세워진 뾰족한 통나무 말뚝벽.
“뚫어야해! 멈추면 죽는다! 뛰어 넘어!”
“멈추지 마라. 멈추면 다 죽는다. 뛰어!”
물론 세상만사 말처럼 다 되지 않는다.
“전군 사격준비!”
서쪽 벽을 맡은 박승종이 냉정히 명령했다.
서쪽 벽의 병력 2000명은 착호갑사와 국경 병사가 갖고 있던 조총을 모아들고 있었다.
“사격!”
타타타탕!
이천 정의 일제사격에 여진족 선두는 곤죽이 되어 쓰러졌다.
쓰러지는 말에 엉켜 쓰러지는 2,3열.
말뚝을 코 앞에 두고 진로가 막혔다.
뒤따르던 기마가 속도를 줄였지만 뭉쳐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점화!”
박승종이 명령을 내렸다.
콰콰콰쾅!
군데군데 놔둔 화약통에 불을 붙였고, 대폭발이 일어났다. 화염은 주변에 뿌려둔 염초를 타고 흘러 여진족 기마를 휘감았다.
“엎드려. 고개 숙여! 그냥 구덩이로 들어가!”
화염과 검은 연기가 사방으로 퍼지자 보병들 중에도 연기를 마시고 기절하는 이가 생겼다.
적을 코 앞에 두고 싸울 생각 대신 엎드려버린 조선군.
이건 이미 전투가 아니었다.
치킨레이스처럼 누가 오래 숨을 참나 경쟁이다.
화염에 몸부림치다 검은 연기를 들이마신 기마가 하나 둘 쓰러졌다.
천오백기의 기마가 한순간 몰살당했다.
사람은 의외로 쉽게 죽지만, 의외로 질기기도 하다.
본능적으로 입을 가려 검은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은 이들이 꽤 많다.
사방으로 흩어진 기마들은 목숨 걸고 달려 분지를 돌파했다.
대부분 연기에 쓰러지고 언덕 곳곳에 파놓은 구덩이에 걸려들었지만 꽤 많은 이들이 탈출에 성공했다.
조선군의 배치는 미끼조 천명. 서쪽벽 이천명.
나머지 이천 명으로 동 남 북 3면을 완벽히 막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천여기의 기마가 탈출에 성공했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멈추지 않고 두만강을 건넌 기마는 숨을 고르며 죽음의 함정으로부터 생존했음을 자축했다.
“후우. 살았다.”
“그런 미친 함정이라니.”
“공포 때문인가. 팔에 힘이 안 들어가.”
“사실 나도. 아침부터 배가 꾸룩거리고 활을 당길 힘도 없었어.”
“어? 너도?”
“후우. 니루 급은 아무도 없군. 고향은 여기서 서쪽인가.”
“빨리 도망가자. 내가 이 지긋지긋한 조선땅 다시는 안 밟는다.”
그들 앞에 나타난 정충신.
정충신은 열심히 외운 여진어를 외쳤다.
“말에서 내리면 살려준다! 항복하라!”
뒤이어 천여기의 궁기병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흩어져!”
“잡아라!”
지휘관이 없는 만주족은 제각기 다른 선택을 했다.
말에서 내려 항복하는 자.
북쪽으로 달리는 자.
서쪽으로 달리는 자.
사방으로 흩어지는 적을 조선군 삼천기가 추격하며 흩어졌다.
화공을 시작하고 20분 후 전장 정리가 시작되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에 전쟁이 끝난 것이다.
사랑도 전쟁도 급하게 타오른 불은 급하게 식는 법.
염초가 공급한 산소 덕에 맹렬히 타오른 불은 주변 목초를 순식간에 태우고 급하게 꺼졌다.
뜨거운 검은 연기는 하늘로 올라가고 빈자리를 찾아 사방의 공기가 분지로 밀려들었다.
아직 열기가 남아 있어 바닥이 뜨겁고 곳곳에서 잔불이 남아 연기가 올라오지만 급하게 전장 정리를 시작했다.
“살릴 수 없는 적은 죽여라. 의식만 잃은 적은 묶어둬라. 말은 나중에 챙겨. 사람만 봐라!”
연기를 마셔 의식을 잃은 적이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
그래서 뜨거운 대지가 식기 전에 돌입했다.
박승종은 일단의 보병을 이끌고 전장 중심으로 뛰었다.
“전하! 주상 전하!”
미끼가 있던 위치는 함정의 정 중앙. 사방에서 굴린 불덩어리의 종착지도 정 중앙이다.
마차마다 물 항아리를 가득 채워놨지만 항아리속 물은 바싹 말랐고 마차는 대부분 새까맣게 전소 되었다.
화염이 얼마나 거셌는지 알 수 있다.
국왕이 미끼의 중심에 서겠다 할 때부터 극렬히 반대했던 박승종.
왕의 안위가 걱정된 그는 열심히 달렸다.
“주상 전하! 괜찮으십니까? 주상전하!”
“훗. 마마도 이겼는데 불 따위를 못 이길까봐.”
광해는 진의 중앙에서 병사들을 모으고 있었다.
마차 주위에 있던 일부 병사가 화상을 입고 연기를 들이마셨다.
“물 가져왔지? 다친 녀석들 치료해.”
광해는 상태가 심각한 병사들을 찾아다니며 치료했다.
이게 다 충성도와 연결된다.
꾸륵꾸륵.
설사가 멈추지 않는다.
조선군에게서 도망치는 와중이라 말에서 내릴 수도 없다.
안장에 앉은 채 그냥 싸지르며 달린다.
슈슈슝.
화살이 제멋대로 날아온다.
형편없는 명중률.
조선놈들은 기마궁시가 익숙하지 않은지 조준도 하지 않고 날린다.
그저 선두가 활을 날리면 선두의 팔을 보고 따라 날릴 뿐이다.
저딴 놈인데...
고작 저런 놈들 따위.
말이 느려진다.
가죽 두 겹을 곂쳐 올린 마갑의 무게 때문인지 말이 점점 느려진다.
아침부터 달렸던 자신의 말과 달리 저들은 방금 달리기 시작했겠지.
“달려라. 제발. 달려라.”
채찍으로 말 궁둥이를 쳐야 하는데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적의 계략은 치밀했다.
유민인척 걸어놓은 말고기를 먹은 게 문제겠지.
몸에 힘이 없다.
“하... 항보.”
파바박.
말에서 내려 항복을 외치기도 전에 화살이 몰려왔다.
“잡았다.”
“한명만 남아서 말 챙기고 나머진 따라와라!”
백인장은 아직 전과가 고프다.
조선군의 집요한 추격은 이제 시작되었다.
1608년. 8월 17일
무산대첩
조선군 갑사 7000명 보병 2000기 대 만주족 기병 5184기 전투결과
조선군 41명 사망 199명 부상.
만주족 2459명 사망 2191명 포로.
조선군 승리.
총대장 함경도 북병사 모현성.
모현성은 전쟁사에 기리 남을 화공으로 역사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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