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 천년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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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1623) 1월 1일.
남산 자락의 광해소망교 본단에서 대규모 신년행사가 열렸다.
몇 달 전부터 공지한 사항이기에 거의 10만여 인파가 몰려들었다.
오전시간부터 놀이패들이 폭죽놀이와 차력쇼, 3중주 5중주 등 음악을 연주하며 시선을 끌었고 정오가 되자 광해에게 절을 하며 식이 시작되었다.
“광해님. 새해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냐.”
신년이랍시고 인사말이 바뀌었다.
그래도 세뱃돈은 안 준다.
광해소망교의 신년행사가 끝나고 두 노인이 연단에 섰다.
87세 정인홍과 75세 이원익.
이황과 조식의 제자로 조선의 성리학을, 그리고 칸제국의 과거잔재를 대표하는 이들이다.
지방에는 아직도 향교와 세속오계가 바닥 이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이 발표하고 이들이 바뀌어야 나라의 근간이 바뀐다.
두 노인네는 연단 중앙에 서서 꾸벅 인사하고는 입을 열었다.
“십여년 전, 아직 조선이었을 시절에 당시 주상으로부터 한가지 임무를 명받았소이다.”
정인홍이 말을 던지자 이원익이 받았다.
“새로운 국가를 정의하라. 참 애매한 지시였죠.”
“단순히 국명을 만들라는 게 아니었소이다. 제국의 의미를 정의하고 천년이상 지속하도록 기틀을 다지란 지시었으니.”
“정대감과 소신, 그리고 여러 학자들과 각계 전문가가 모여 과거의 조선과 현재의 칸 제국, 미래 바뀌게 될 제국을 논의했고, 문제될 만한 사항을 예측했소.”
“천년 제국을 지탱할 근간. 제국이 미래에 나아갈 길을 발표하려 하외다. 다들 경청해 주시오.”
노인네 둘이 짧은 문장을 번갈아 말했다.
저건 모현성의 아이디어겠지.
다른 목소리가 번갈아 나오면서 집중력을 당겨주는 효과.
정인홍이 말했다.
“우선 칸제국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소.”
광해는 준비한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연단 위 하늘에 거대한 지도가 그려졌다.
진한녹색으로 칠한 한반도의 그림.
와아아.
마법에 놀라는 사람들.
광해의 기적을 보고싶은 마음에 광해가 종교집회에 참석한다하면 출석률이 두 세배가 된다.
“이건 기존의 조선이오. 신의 권능을 이어받으신 대칸 광해께선 국왕에 즉위하시고 1년 후 유구와 구름표범섬, 곰섬을 조선에 복속시키셨소.”
하늘에 떠 있는 지도에 오키나와와 대만, 홋카이도가 표시되었다.
타국은 선만 그어두고 조선의 영토는 진한 녹색으로 칠해 확연히 분간되게 만들었다.
광해는 대학교 조별발표 때 빔 프로젝트 앞에 앉아 반투명 용지를 가는 역할이다.
아니 빔 프로젝트의 역할이다.
미리 준비한 지도를 타이밍 맞춰 바꾸는 건 신하가 할 일이지.
‘어라. 그럼 난 빔 프로젝트인가. 물건인가.’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이후 여진을 정벌했고, 남방으로 진출하셨소.”
“정벌이란 말은 옳지 못하지요. 신께 죄지은 자나 아국을 해치려는 자는 공격했지만, 그 외 모든 이는 민족과 언어와 생활이 달랐음에도 아무 차별없이 받아들이셨소이다.”
이원익이 부연설명하자 주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과 칸반도에는 타국에서 온 이주민의 숫자가 절반에 가깝다.
새 정복지에 칸반도 사람을 보내고 외부 사람을 칸반도에 살게 하는 게 문화를 동조하는데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칸반도는 과거 한민족의 땅이라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내가 말실수 했소이다. 신의 권능을 받은 광해님이 신 아래로 합친 것이오.”
정인홍의 말에 또 꾸벅꾸벅하는 대중들.
지도가 바뀌면서 칸반도의 두배 되는 여진의 땅이 그려지고, 규슈와 남방의 섬에 녹색 점이 나타났다.
여진의 땅은 점점 확대되고 남방의 작은 섬들이 계속 늘어난다.
사람이 살 수 있는 무인도와, 대형 섬 중 완전한 신종을 받아들이거나 섬을 구매해 영토가 계속 늘어난다.
“이후 몽골과 동칸에 진출했소.”
이제 지도가 하늘을 가득 채웠다.
최초의 칸반도는 크기가 그대로인데 추가된 영토가 그 50배를 넘어섰다.
정확한 칸반도의 영토를 모르던 백성들은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신년행사를 준비하며 주변국의 사신을 전부 불렀다.
강대국 칸제국의 행사이기에 하급관료라도 무조건 보내왔는데 그들이 칸제국의 힘을 느껴야 한다.
힘을 계속 자랑해야 전쟁이 줄어든다.
“현재 칸 제국은 동서남북으로 확장하며 사람을 받아들이고 있소. 신의 뜻을 따르는 이는 누구나 평등하게 대접하는 것이오.”
더욱 커진 지도에 우크라이나와 카스피해가 표시되고, 미국 중부와 칠레가 표시된다.
“그리고 이 지도는 칸제국의 최종 영토가 되오.”
이후 북쪽과 남쪽 아프리카까지 확장하고 대양의 조그만 섬들이 표시되어 종국에는 칸반도의 300배 넘는 영역이 그려졌다.
타국의 사신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어디인지 찾으며 칸제국의 계획에 없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크학. 너무 거칠어!”
“안 되겠다! 모선으로 가자.”
“포릉이에 전부 올라타!”
“판옥선은 포릉이에 묶고 전부 옮겨.”
임경업과 1000인의 모험대는 남미대륙의 남쪽 끝 마젤란 해협을 지나면서 폭풍을 만났다.
본래 북위 60도 이상, 남위 60도 이하는 극지방의 영향으로 파도가 거친데 거기에 태풍까지 겹친 것이다.
소선 먼저 철수했고, 노 저어 철선을 끌던 판옥선마저 버티지 못하고 뒤집어지려하자 8000톤급 철선 포릉이로 옮겨 탔다.
이후 길게 이어진 풍랑.
철선에 묶은 판옥선이 파도의 타격을 버티지 못하고 박살났고, 포릉이 위에 올린 소선 세척만 살아남았다.
태풍이 지나고 난 후.
“어떡하지?”
“소선으로 이 큰 배를 끌 수 없잖아!”
“우린 다 죽을 거야. 다 죽는다고!”
“이게 다 네놈 고집탓이다!”
바다위에 고립된 선원들의 분노가 임경업에게 향했다.
임경업이 당당하게 말했다.
“대칸께선 내가 실수할 때마다 화를 내지 않으셨다. 어느 날 내가 여쭈어봤지. 화 나시지 않느냐고. 그러니 대칸께서 말씀하셨다. 화내서 바뀐다면 화 낼텐데 화낸다고 과거를 바꿀 수 없다면 화내는 것조차 귀찮다. 역시 대칸께선 위대하시다.”
선원들은 어리둥절해 고개를 갸웃했다.
화내봤자 임경업이 바보라 못 알아들으니 냅뒀다는 뜻 같은데 저렇게 당당하니 다른 뜻이 있나 고민하게 되었다.
복잡 애매한 말로 선원들의 입을 막은 임경업이 재차 말해싿.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은 현재 상황과 미래다. 지금 화낸다고 좋아질 건 없고, 오히려 단합이 깨져 우리의 생존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우린 생존만을 생각한다. 그물과 낚시를 늘려 최대한 식량을 확보한다. 하루 종일 교대로 낚시를 멈추지 않는다. 다행히 물은 충분하고, 배는 멈추지 않고 흐른다. 어디론가 가게 냅두면 어딘가엔 분명 도착한다. 그리하면 살 수 있다. 버티자.”
임경업의 당당한 말에 선원들의 말문이 막혔다.
‘아니 그래서 니 잘못은 인정 안하는 거냐?’
그리하여 시작된 생존 투쟁 4개월.
보관된 식량은 계속 줄고 생선에 질린 선원들의 스트레스가 하늘을 찌를 때 그들은 도착하였다.
“섬이다!”
“육지다! 커!”
“대륙이다!”
“고기! 고기! 새고기 말고기 소고기!”
“오늘이 새해지? 새해 복 받았다. 이건 진짜 신께서 보우하신거야.”
환호하는 선원 속에서 임경업이 항해사를 찾았다.
“함영석. 여긴 어디냐?”
“에...... 그게...... 바다 위인데...... 왜 섬이 있지?”
함영석은 매일 측량을 해서 배의 위치를 기록했다.
배는 꾸준히 서쪽으로 흘렀고, 지도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갑자기 거대한 육지가 나타났다.
“크흐. 우리가 새 땅을 찾아냈구나. 대칸마저도 모르던 땅. 이 땅을 임경업국이라 이름붙이겠다. 임경업국을 칸반도처럼 발전시킨 후 배를 고쳐 한성에 가 대칸께 바치겠노라. 으하하하하. 이정도면 내 충심을 알아주시겠지.”
배는 서서히 서쪽으로 흘러 육지와 가까워지고 있다.
기뻐 날뛰는 선원들은 임경업의 헛소리 따위 흘려들었다.
뿌오오오.
뱃고동 소리가 임경업의 환희를 깨트렸다.
북쪽 바다에서 선단이 나타났다.
포릉이와 똑같은 8000톤급 선박 20여척.
배 위엔 삼족오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후아! 살았다!”
“가자! 집으로 가자! 가서 임경업놈을 고발해야지!”
얼마 후 다가온 배에서 누군가 고개를 내밀었다.
“이 해역에 칸제국 함선이 있을 수 없는데! 너흰 누구냐? 탈영병이냐?”
임경업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나는 금군별장 임경업이다. 대칸을 위해 새영토를 개척하고 있다. 너흰 어디 소속이고 책임자는 누구냐?”
임경업의 말에 소리치던 이가 미소지었다.
“나는 남칸 개척단 부단장 심지원이다. 책임자인 단장은 산남태자 저하다. 우린 이미 두개의 거점을 개척했고, 세번째 거점을 만들러 이동 중이다. 분명 이곳의 지도는 통제했고, 존재조차 아무도 몰랐는데 너희가 어디서 누구의 명령으로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구나. 이리 넘어와라 임경업. 태자저하께 인사 올려야지.”
어려서 친우였으나 성격 때문에 사이가 갈라진 둘.
심지원은 변비가 사라진 듯 시원하게 미소 지었고, 임경업은 사색이 되었다.
남칸의 끝, 뉴질랜드 동북부에서 구조된 임경업과 선원들은 5개월 후 한성으로 송환되었고, 임경업은 광해에게 많이 맞았다.
‘넌 다른 일 못 시키고 내 옆에만 둬야겠다.’ 라는 광해의 말에 임경업은 신뢰받는다고 좋아하다가 또 맞았다.
갑사들은 다른 갑사들이 이미 1년 전 명예로운 전역을 했다는 걸 듣게 되어 임경업은 추가로 많이 맞았다.
새해 첫날.
임경업이 구조된 그날 신년행사는 계속되었다.
“신께 힘을 받은 대칸께서 계신 한 우린 아무 걱정 없소. 간혹 문제가 생길지라도 신의 힘이라면 금방 바로잡을 수 있소.”
“하지만 우린 그 다음을 생각해야 하오.”
“언젠가 대칸께선 신의 땅으로 귀환하오.”
“대칸께서 떠난 이후로도 칸제국이 천년을 이어가기 위한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하오.”
“오늘은 신의 힘이 없이도 제국이 영원할 수 있도록.”
“논의를 하고자 하오.”
영감둘의 말 중간부터 소란이 일었다.
탄식, 울음, 좌절.
신이 자신들 곁을 떠난다는 소식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간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라를 무너뜨린다고? 어떻게? 이 강대한 제국을 고작 이런 병사들로 무너뜨리겠다고?”
자신에게 칼을 겨눈 복면인을 보며 이괄이 질문했다.
화상 입은 김류가 피식 웃었다.
“수많은 현인들이 내게 협조하고 있소. 지금에야 광해의 신력에 굽히고 있지만, 그건 영원하지 않소. 지금 이원익 대감과 정인홍 대감이 뭐하고 있는지 아시오?”
“모른다.”
“광해가 떠나거나 신의 힘이 잃었을 때를 대비하고 있소. 그가 자신의 고향, 신의 땅으로 돌아가는 건 확정적이고, 신의 힘을 잃었을 경우도 준비하고 있지. 자, 생각해보시오. 광해가 떠나면 누가 세상을 잡겠소? 산남태자? 서칸왕?”
“호랑이 없는 산을 차지할 생각인가?”
“그렇소. 이왕이면 호랑의 이빨을 빼고 싶기도 하고. 우리의 분석에 따르면 광해는 신력을 매우 아껴 쓰오. 그가 힘을 발휘하면 나 따위는 순식간에 잡을 수 있을 텐데 못 잡지 않소? 그의 힘엔 한계가 있으며 아마도 일정 이상 쓰면 힘을 잃는 것 같소.”
“독에 물을 빼내면 끝이란 말이군.”
“그렇소. 이미 우린 준비가 다 되어 있소. 당신은 그저 합류하기만 하면 되오.”
“노역수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한성의 수비병력은 다해봐야 오천. 유리황궁을 지키는 병사는 고작 200이오. 우린 광해가 타지로 떠난 틈에 유리황궁을 불태우고 전시해놓은 금을 빼낼 생각이오.”
“그래봐야 도망 못 갈텐데. 외지의 군대가 들어오면 다 죽을테고, 무엇보다 광해가 돌아오면 끝장인데.”
“이건 눈속임일 뿐이오. 금을 훔쳐 뿌려봐야 회수되겠지. 우린 소문을 낼 생각이오. 광해 은행에 생각보다 금이 적다. 우리가 받기로 한 금을 받을 수 없다. 실제로 부자들의 재산을 계산해보니 조선 전국의 모든 금보다 열배이상 많소.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소? 우리가 맡긴 금을 뿌려 사업에 쓰고 거기서 또 금을 회수해 재차 뿌리고. 이덕에 나라가 발전했지만, 정작 우리가 금을 되찾으려 하면 나라에선 금을 줄 수 없소. 그 순간 나라가 무너지는 거요.”
“호오.”
“당신과 당신의 이가상단 투자자들이 받을 지분은 북칸의 4푼. 금으로 따지면 8000근이오. 우리가 불지르고 나면 당신과 동지들은 금을 회수해달라고 하시오. 국가에서 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다른 부자들과 한푼씩 맡긴 농노들도 다 금을 찾으려 할 거요. 그 혼란틈에 우린 조정을 장악할 생각이오.”
듣다보니 가능성이 보인다.
이 지긋지긋한 노역형.
김류의 제안을 곱씹던 이괄의 눈이 빛났다.
- 작가의말
김류의 재등장으로
아놔 김류 좀.
짜증나서 못보겠다 등등 강력한 저항이 예상되오나
킹치만... 김류놈 마저 없으면 이건 더이상 소설이 아닌게 되버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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