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오사카 전투3
순도 100% 픽션입니다
기마에 탄 조총병 오백기가 빠르게 달려 나갔다.
광해의 오백보 앞에 멈춰선 병사들은 일제히 말에서 내려 정렬하고 광해가 백보 앞까지 오자 화승총에 불을 붙였다.
타다다다당!
오십보 거리의 광해를 향해 조총탄 오백발이 날아갔다.
광해의 몸 주위로 화려한 불꽃이 튀었다.
광해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달려 왼손의 철사를 돌려 한 점을 갈아버리며 진을 돌파했다.
“뭐지 저놈들은?”
조총이 사격준비를 하기에 철사로 방어를 하긴 했는데 이상하다.
“왜 기마를 타고 와서 조총을 쏘지?”
이해할 수 없다.
차라리 기마병 따로 조총병 따로 훈련하면 세 배 이상의 효과가 있을 텐데.
“일본의 장잉정신인가? 말 탄 조총병을 만들고 싶어 한 부자의 꿈?”
광해는 끝내 적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쳤다.
조총 일제사격에도 멀쩡한 조선 국왕의 위용에 잠시 얼이 빠진 조총병의 뒤로 우에스기 군이 나타났다.
“죽여라. 죽여!”
우에스기 군 선봉장 사나다 노부시게는 재장전이 덜 된 조총병 오백 명을 학살했다.
야마토에서 가장 비싼 부대는 전공을 전혀 세우지 못한 채 소멸되었다.
광해는 토산을 향해 달렸다.
영주별로 띄엄띄엄 있는 부대들은 광해의 정체를 몰라 멀뚱히 쳐다보기 일쑤였다.
피칠갑을 한 채 단기필마로 가장 격전인 토산으로 가는데 적이라고 상상하긴 힘들었다.
급히 소식을 전하는 파발 정도로만 생각하겠지.
광해는 토산 중간쯤에 도착해 말에서 뛰어내렸다.
“알아서 잘 살아라.”
운 좋으면 되찾겠지.
말을 버린 광해는 신체를 강화해 토산위로 뛰어올랐다.
“어? 뭐지?”
투입 준비를 하며 열을 맞추고 있는 왜군이 쳐다봤지만 광해는 무시하고 오사카 성을 향했다.
누구도 적이라 생각지 못했다.
온통 에도 번 병력으로 가득 차 있는데 갑옷도 없고 손에 무기도 없는 사내를 적이라 생각하는 건 무리였다.
광해는 굳이 그들을 죽이지 않고 지나쳤다.
걔 중 원한을 덕지덕지 단 이들도 많지만, 시골에서 농사짓다 끌려온 징집병도 많았다.
굳이 죽여서 마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냐?”
“급한 전갈이다! 비켜라!”
몇 차례 임기응변으로 통과하자 오사카 내성 벽이 코앞에 다다랐다.
성벽은 이미 돌파당해 오만 명 이상이 안으로 들어가 곳곳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성벽의 이점을 잃은 오사카군은 분투했지만, 1:1 교환비로 쓰러지고 있었다.
‘흠. 이제 어쩔 수 없나.’
토산의 끝에 선 자는 어딘가의 영주처럼 보였고, 적이 코앞인 이곳에서 인장도 없는 광해를 통과시킬 생각이 없었다.
“대체 누구냐니까! 답하지 않으면 죽인다.”
광해는 왼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손풍기다. 이자식아!”
이백개의 철사가 맹렬히 회전하며 광해를 포위한 병사들의 목을 땄다.
이름도 모를 어딘가의 영주에게 애도를.
손풍기를 맹렬히 회전시키며 달렸다.
프로펠러에 닿은 모든 것이 갈리고 광해가 달리는 공기 중에 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시발. 역겹네.’
실수로 한 호흡 마셔 흡혈귀의 심정을 느낀 광해는 숨을 참으며 달려 내성 성벽 위까지 도달했다.
대략 백보 거리에 빨간 구렁이 같은 시체의 길이 생겼다.
사무라이든 철포병이든 영주든 사이좋게 갈려 소세지 재료처럼 되어있다.
일본군은 놀라서 공격할 생각도 못하는 상황.
성벽위에 멈춰선 광해는 바닥에 방어막 마법진을 그린 후 왼손을 거둬들였다.
위이잉.
이십보 길이의 오른손 철사가 회전을 시작했다.
사거리가 긴 철사가 성벽 좌우와 흙산의 광범위한 지역을 타격했다.
어깨높이로 지나가는 철사.
한순간 목 따인 시체 수백구가 쓰러졌다.
윙윙 도는 프로펠러가 조금씩 각을 내려 흙산과 닿았다.
파바바박!
예초기 날이 흙에 부딪친 듯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중간 중간 불똥이 튀며 자그마한 돌맹이가 날아가 일본군을 타격했다.
파바바박!
흙이 파인다.
농민의 공포를 갈아 넣어 쌓은 토산이 먼지를 일으키며 날아가고 있다.
‘하다 보니 재밌네.’
튀어나온 부분을 갈아 낮추고 다른 돌출부를 갈아 낮추고.
내성과 연결된 토산이 이십보를 기준으로 깎여 낮아진다.
카카카칵.
성벽에서 수직으로 내리니 기존 해자바닥 바위를 만났다.
아다만티움 철사가 조금씩 갈리는 게 느껴졌다.
‘헐. 지구에서 구할 수 없는 금속인데.’
아껴야지.
철사를 섬세하게 눕혀 사거리를 조정한다.
흙만 치우는 거다 흙만.
붉은 흙먼지 가득한 성벽 위에서 광해는 아늑함을 느꼈다.
‘차라리 이게 낫네. 시체의 산이라니 끔찍해.’
많이 싸우고 많이 죽이지만 그런 거 싫다.
사실 그런 거 좋아하는 모현성이 이상한 거지.
왠지 건물 철거현장에 온 느낌으로 성벽위에 굳건히 선 광해는 적의 추가 투입을 차단했다.
“우오. 길이 끊겼다.”
“조선의 지원이다.”
“죽여라! 들어온 적만 죽이면 된다!”
상황은 금세 알려졌다.
오사카 번 병사들이 크게 소리쳐 상황 변화를 알렸다.
같은 언어를 쓰는 에도 번 병사들은 심한 압박감을 받았다.
퇴로라는 게 그렇다.
똑같은 전력으로 맞부딪쳐도 퇴로가 막힌 부대가 지고, 포위당한 부대가 진다.
심리적으로 후퇴할 길이 막힌 부대는 전투력이 반감된다.
고의로 배수의 진을 치고 놀라운 성과를 보이는 전투가 간혹 있지만, 상황과 사기가 놀랍게 일치했을 때만 발생할 뿐 대개의 경우 배수진은 전멸을 불러일으킨다.
영웅소설용 작전일 뿐이다.
오사카성에 돌입한 에도 병사들은 영웅이 아니었다.
“죽여라!”
“성문을 열자. 남쪽 성문으로 탈출하자.”
“진을 무너뜨리지 마라! 흩어지면 죽는다!”
내성 천수각을 향하던 에도군이 영지별로 다른 선택을 한다.
천수각으로 돌진하는 부대, 성문을 향하는 부대, 약탈하는 부대, 흙산의 흙먼지로 향하는 부대.
통제 안 되는 봉건주의 부대가 이렇다.
간혹 목표가 확실해 일치단결할 땐 중앙집권보다 강한 힘을 발휘하지만, 대개의 경우 뭉치지 못해 무너져버린다.
화력이 흩어진 에도 측 병사들은 빠르게 녹아내렸다.
비둘기의 귀소본능처럼 돌입한 흙산으로 돌아오는 부대를 녹이던 광해는 손풍기의 회전을 멈췄다.
‘굳이 내가 죽일 필요 없잖아. 어차피 길은 끊겼고, 복구하려면 며칠 걸릴 텐데.’
적을 죽여 봤자 마력이 줄어든다.
염동력 소모도 크고, 선량한 농민이 더 많아서 마력을 뭉텅뭉텅 뺏어간다.
광해는 오사카성의 높은 천수각을 바라봤다.
온 김에 생색이나 내고 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천수각에 성벽에 갈고리를 던지더니 줄을 잡고 달려 올라간다.
절벽을 달려 올라가는 속도가 빠르고 모진 훈련을 거친 듯 자연스러웠다.
“어? 닌자야? 진짜 있었나?”
모현성이 좋아하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광해는 그들의 뒤를 따랐다.
입구 쪽은 격전이 벌어지고 있으니 돌 틈을 잡으며 올라갔고, 그들이 스며들어간 2층 창문으로 들어갔다.
뒤따르면서 느낀 평가는 잘 싸우는 안보군 정도.
어차피 인술이니 은신술이니 분신술이니 전부 소설이 만들어낸 허상이고 이들이 하는 건 안보군도 한다.
전투경험이 많아 좀 더 잘 싸울 뿐.
석양이 지는 시간, 건물 내부는 빠르게 어두워졌다.
갑옷 없이 검은 옷만 입은 닌자들은 자연스럽게 어둠과 동화되었고, 상대가 정신 차리기 전에 달려들어 목에 검을 꽂아 넣었다.
애초에 입구 쪽의 격전이 격렬했기에 친위대 대부분이 입구로 나가 수비 병력도 얼마 없었다.
닌자들은 빠르게 달려 4층까지 올라갔다.
파바바박!
안쪽에서 수리검과 단검이 날아온다.
닌자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끄으응.”
억눌린 신음소리가 들린다.
소리 지르거나 기합을 넣는 짓을 하지 않는 건 듣던 것과 비슷했다.
4층 입구쪽에서 기습을 받은 닌자들이 멈춰서더니 품에서 구슬을 꺼내 불을 붙였다.
‘수류탄?’
도자기속에 화약과 쇳가루를 넣은 폭탄.
저걸 인법으로 쳐도 되나?
콰콰쾅!
수류탄을 던지고 곧장 돌입한다.
광해가 뒤따라가 보니 검은 옷을 입은 닌자끼리 엉켜 싸우고 있었다.
‘누가 누군지 모르겠군.’
싸움은 순식간에 끝났다.
좁은 건물 내에서 갑옷도 없이 서로 수리검과 단검을 던져대니 제대로 피할 수조차 없었다.
십여 명 남은 닌자가 대청을 돌며 확인사살을 한 후 5층으로 달려갔다.
광해는 그제야 공격측이 승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죽일까 하다가 조용히 뒤를 따랐다.
이왕 살려줄 거 생색이나 내야지.
계단의 중간.
“꺄아악!”
한 쌍의 남녀가 내려오다가 닌자들과 만났다.
광해는 즉각 손을 뻗었다.
철사가 날아가고, 닌자들이 손을 뻗는다. 여자는 몸이 굳어 소리만 지르고, 남자는 여자의 뒤로 숨었다.
파바바박.
여자의 몸에 칼 서너 자루가 박히고 닌자들의 머리에 철사구멍이 났다.
“어머니! 어머니가! 오노! 어머니 뒤에 숨다니! 네놈이! 네놈이!”
계단 위에서 히데요리의 절규가 들렸다.
사색이 된 오노 하루나가가 시체를 밀치며 아래로 달렸다.
도망치려는 듯.
“잡아라! 그놈을 잡아! 죽여 버릴 거다!”
광해는 잠깐 사이에 상황을 파악했다.
곁을 스쳐지나가는 사내의 뒤를 따라갔다.
오노 하루나가는 2층에서 더 이상 못 내려가고 전전긍긍했다.
1층의 격전이 너무 심해 내려갈 수 없었다.
“야. 이리와봐.”
갑자기 뒤에서 부르자 오노가 소스라치게 놀라 돌아봤다.
그리고 더 놀랐다.
“허억. 조선의 국왕.”
“그래. 이리와 봐라.”
오노를 불러 어깨동무를 하고 물었다.
“너 죽겠는데?”
“하아. 그건 실수였. 어차피 살릴 수 없었는데 다이묘의 오해를 풀어야.”
오노는 정신 나간 듯 횡설수설했다.
모현성의 평가에 의하면 간신, 불륜남. 그 정도가 끝인 남자.
이런 자가 섭정을 했으니 도요토미 가문이 무너진 거지.
“살려줄까?”
“헛.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기개도 없다.
“니 충성 필요 없고 살려줄 테니까 시키는 거나 해라.”
히데요리를 만날 일이 없어졌다.
광해는 피에 절은 곤룡포를 벗어 아공간에 넣었다.
안에 입은 은색 사슬갑옷은 피에 절어 붉게 물들어 있었다.
2층 창문으로 밖을 보니 저 멀리 대장기가 쓰러지는 게 보였다.
“작전대로 됐군.”
성의 전투에 진입한 부대가 십오만, 성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예비대가 십만.
십만의 병력 속에 숨어있는 적의 대장을 무너뜨렸다.
어둠속에 적 후방이 무너진 걸 확인하고 얼마 후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고슈가 쓰러졌다. 후퇴하라.”
“후퇴! 오고슈가 돌아가셨다! 쇼군의 생사도 불명!”
토산 위에 있던 병력들이 하수구에 물 빠지듯 빠지고 성내로도 전파되었다.
당장 1층의 전투소리가 빠르게 조용해졌다.
둥둥둥둥.
멀리 포위한 에도 군 곳곳에서 퇴각의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탈출시켜주마. 괜히 꿈틀대지 마라.”
광해는 오른손의 철사를 꺼내 오노를 묶고 창 밖으로 몸을 꺼냈다.
쉬이잉.
머리위에서 소음이 들려 고개를 드니 여자아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뭐지?”
롤러 코스터가 추락하는 순간처럼 경직된 여아의 표정이 보였다.
이 와중에 꽤 귀여웠다.
슈읏.
철사 세 개로 아이의 몸을 감아 속도를 줄이며 받았다.
광해의 뒤에 오노와 여자아이가 철사에 감겨 둥둥 떴다.
“아앗. 센히메.”
히메면 공주란 뜻인데.
여자아이를 내려놓으려던 광해는 아이까지 묶어 오사카 성 서쪽으로 달렸다.
말보다 빠르게 달리고 성벽을 바람처럼 넘는 광해를 아무도 붙잡지 못했다.
- 작가의말
다테의 기마철포대가 실제로 있었는데요...
실제로도 활약없이 사라졌어요......
돈만 잔뜩 잡아먹고...... 크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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