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철마는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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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4만 명으로 늘어난 정충신의 초원기사단.
처음부터 초원기사단이라 이름붙인 데는 칸국으로 진행할 의도가 담겨있었다.
기사단은 유럽식 기사(騎士)를 의미하지 않고 말 위에서 활을 쏜다는 뜻의 기사(騎射)다.
과거 2만 명일 때도 기사단을 유지하는데 조선의 등허리가 휘었다.
4만 명으로 늘어난 기사단은 완전히 돈 먹는 하마다.
동부원정대와 남방원정대를 합쳐도 기사단이 잡아먹는 비용을 못 따라간다.
이렇게 돈 잡아먹는 기사단을 몽골은 40만 명이나 보유하고 있다.
조선이 모든 힘을 쏟아 부어도 이만한 전력은 보유할 수 없다.
몽골의 기사는 전투를 위한 직업이 아닌 삶 자체가 전쟁이기에 가능하다.
한반도의 열배크기인 황무지와 초원.
총 인구는 백만이고, 싸울 수 있는 궁기병이 40만이자 성인 남성 총 수가 40만인 특이한 민족.
말을 타고 활을 쏴 적대부족과 싸우고, 양떼를 몰아 이동하고, 건초더미가 사라지면 다른 건초더미로 이동하는 삶 때문에 모든 몽골 사내는 말을 타고 활을 쏠 줄 알아야 한다.
이토록 무시무시한 전쟁기술을 인생을 통해 익히니 그들은 흩어졌을 땐 서로를 향해 활을 쏘며 인구를 조절했고, 뭉치게 되면 남쪽과 서쪽을 침입해 모든 국가를 쓸어버렸다.
몽골 초원은 연평균 강수량이 400mm 이하인 지역에 짐승을 자연의 한계 이상으로 키우니 초원은 매년 줄고 사막과 황무지가 매년 늘어난다.
덕분에 분쟁이 끊이지 않고, 이주하는 부족과 막으려는 부족 간의 전투가 벌어진다.
여기에 조선이 침범했다.
철로를 깔고, 까는 만큼 기관차가 전진한다.
열 대의 기관차가 교대로 투입되어 무산에서 제작된 철로를 싣고 온다.
보병사단은 철로가 깔리는 최전방에 자리 잡고 단단한 방어진을 구축했다.
보병의 진지 좌우로 두열의 철로가 깔리는데 철로 위의 기관차는 자연성벽이 되어 보병사단의 방어선이 된다.
보병 사단 앞으로 일꾼들이 나서 땅을 다지고 교량을 건설한다.
정찰을 담당한 기마대가 주변을 정찰하고, 주변 부족들을 찾아가 식량을 주며 동맹을 맺는다.
소규모 부족들은 망설이지 않고 동맹을 맺으며 식량을 받았지만, 몽골제국의 후예, 북원 대칸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들에게 조선, 아니 칸제국은 몽골의 영토와 역사를 빼앗으려는 침략자이며 몽골의 정체성을 빼앗으려는 악마들이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다.
북원의 계승자인 차하르 부의 린단 칸은 부족을 모아 침략자와 전쟁을 선포했다.
북원이 모은 기병은 십오만 명.
조선이 절대 키울 수 없는 엄청난 병력이 모였다.
현대 지도상의 몽골보다 현재의 몽골은 두 배 크다.
중국에 삼켜진 내몽골 초원 전체가 몽골의 영역이다.
이 땅에 사는 부족의 절반 가까이가 차하르 부의 지배를 받는다.
즉 50만 인구와 그 중 전투할 수 있는 20만 남성이 차하르부의 전부이며 전력이다.
정상적으로 싸운다면 조선은 이길 수 없다.
동맹제의가 거절 된 후 곽재우는 열심히 전투준비를 했고, 기관차의 전진을 막으려는 몽골과 힘겨운 전투를 했다.
두개의 기관차를 성벽처럼 세우고 앞 뒤쪽에 참호를 파고 구덩이를 파 기마의 돌진을 방해한다.
그리고 광해이포를 중심으로 달려드는 적 기마와 싸운다.
세 번의 전투 끝에 몽골기병 이만여 명을 죽였고, 조선군의 피해는 미미했다.
전투가 길어지자 거의 모든 성인 남성을 모은 차하르 부는 식량 문제에 고심하게 되었고, 모은 병력 대부분이 먹고 살기 위해 각 부족으로 흩어졌다.
이제 차하르부는 생존을 걱정해야 했다.
그때 개방이 합류했다.
“저 기차라는 거 말입니다. 쇠길 위로밖에 지나지 못합니다.”
초원기사단의 눈을 피해 꾸준히 기관차를 관찰한 개방의 결론은 기차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투 땐 멈춰 서서 화물차 안에서 총을 무한히 쏘니 쇠길 위만 지나는 건 의미 없어.”
“그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후방을 치죠. 적의 선두는 단단하지만 후방엔 저런 보병이 없지 않습니까? 몽골 기병의 장점은 기동력이오. 후방으로 가 적의 기차를 탈취합시다.”
“저걸 탈취해봤자 가져오지 못할 텐데?”
“대신 뜯어보면 우리도 만들 수 있겠죠. 우리도 저걸 만들어 쇠길이 전진하는 앞에 미리 둔다면 적의 전진을 막을 수 있겠죠.”
개방의 제안은 확실히 합리적이었다.
적의 혁신적인 신무기에 궁기병이 녹고 있으니 몽골도 적의 신무기를 만들자는 뜻.
곧 자세한 계획이 세워졌고 몽골기병 5만 명이 모여 작전을 진행했다.
요령성은 하나의 성안에 다양한 기후를 갖고 있다.
남부와 요하유역은 온대기후이며 여름이 한성만큼 더워 농사가 잘 된다.
동북쪽은 강수량이 많지만 얼음이 늦게 녹아 농사가 매우 힘들다.
서북쪽은 강수량이 매우 적어서 농사가 불가능하다.
요령성 서북쪽부터 초원이 시작되며 여기서 시작된 초원이 내몽골과 몽골 전체로 이어진다.
요서 북쪽에서 성장한 대표적인 부족이 흉노와 거란족이다.
창춘에서 시작한 철로는 초원 서쪽으로 팔백 큰보를 전진했다.
큰 산이 없기에 땅을 다지고 철로를 깔며 쭉쭉 나아간다.
모든 보급을 기차로 받기에 보급의 문제는 없다.
대신 기차를 호위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
기차 하나에 이천기의 초원기사단이 붙고 중간중간 초원기사단이 뭉쳐 거점을 형성했지만 철로가 전진하며 조금씩 구멍이 생긴다.
개방이 제안한 작전 지역은 초원 초입부인 요서 북쪽이다.
이성량이 탄핵당한 후 요서는 혼돈에 빠져 있었다.
요서 군부는 이성량과 아들들이 주축이었고, 장군들도 이성량을 따르는데 위충현이 이성량을 탄핵해 모든 직위를 빼앗고 북경으로 오라하자 단체로 반란을 일으켰다.
명에 등을 돌리겠다는 뜻은 아니고 위충현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뜻이다.
요서군은 북경을 공격할 힘이 없고, 북경의 도독부도 요서를 정벌할 힘이 없다.
대신 조정에서 요서로 지원하던 쇠와 화약, 식량이 끊어졌다.
요서는 굶주렸고 이십만 대군을 유지한 힘이 없다.
이성량은 늙었고, 이성량이 죽는다면 와해될 전력이다.
요서군 내부에서 혼란을 잠재울 방안을 찾을 때 개방이 찾아왔다.
“함께 공격하자?”
“이 상황을 타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조선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신무기를 빼앗고 기술을 익혀 우리도 신무기를 얻어야지요. 신무기를 북경에 바쳐 충성을 증명해도 되고 아니면......”
북경을 함락시켜도 되고.
개방의 제안을 받은 요서군은 긍정했고, 이여백 등 아들들이 주축이 되어 삼만명을 동원했다.
요서 북쪽 초원 초입.
기관차가 시속 삼십큰보 속도로 서진한다.
한 시간에 삼십큰보의 속도는 사람의 전력질주보다 느리고 말이 가볍게 달리는 속도와 비슷하다.
전력질주하는 말의 반밖에 안 되는 속도.
하지만 기관차는 지치지 않는다.
밤새 달리면 하루 700큰보를 이동한다.
그 어떤 기마보다 빠른 속도다.
기병들은 여섯시간마다 호위를 교대하니 기마대는 백팔십 큰보 거리마다 거점을 만들어 대기하게 된다.
그 틈.
거점과 거점의 중간.
거기에 습격대가 모였다.
“바위다! 적의 함정이다!”
선로위에 커다란 바위 여러 개가 올려져 있다.
기관차를 멈춰 세우기 위함이다.
기관차보다 한 시간 앞선 거리를 정찰하던 백인의 정찰대가 발견했다.
“절반은 전진. 거점에 적의 습격을 알려라. 절반은 후진. 기관차를 후퇴시킨다.”
백인대장이 지시하기 무섭게 사방에서 적이 달려들었다.
백인대는 생존을 위해, 소식을 알리기 위해, 흩어졌다.
하나하나 사냥 당하는 사이 후방에서 전진하던 기차가 멈춰 섰다.
“적이다!”
소식을 알리지는 못했지만, 전방에서 살기위해 달리는 기마와 추격대가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기차 근처에서 근접 호위하던 기마가 전진해 상황을 파악했고, 기차를 멈춰 세웠다.
곧 기차 꽁무니에 매달려 있던 기관실이 불을 피웠고, 열차는 후진을 시작했다.
콰콰콰쾅!
기차 후방 삼 큰보 지점에 폭발이 일어났다.
교량이 설치된 곳인데 기차가 지나간 후 화약을 잔뜩 들고 가 선로를 터트린 것이다.
철마가 갈 곳을 잃었다.
기차의 기관장이 천인대장을 불렀다.
“기차의 병사들은 끝까지 싸우겠소. 기병은 퇴각하시오.”
“아니. 우리도 싸우겠소.”
“보병은 기차 없이 도망칠 수 없소. 하지만 기병은 이동할 수 있지. 보병들은 항복해봤자 고문당하다 죽을 테니 싸우다 죽는 게 낫소. 하지만 기병까지 잃은 필요는 없소.”
“차라리 말에 둘 씩 타면.”
“둘씩 타서 몽골기병을 따돌릴 수 있겠소?”
“......”
“개죽음을 자처하지 마시오. 살아남아 곽장군을 모셔와 복수해 주시오.”
“...... 건투를 비오. 최대한 빨리 불러오겠소.”
기차에서 무차별 사격을 하게 되면 초원기사단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함께 싸울 수 없다면 빠지는 게 낫다.
천구백기의 기병이 똘똘 뭉쳐 북쪽으로 달렸다.
넓게 포위한 몽골기병과 교전이 벌어졌지만, 포위망은 두텁지 않았고 작정하고 도주하는 기마대를 잡긴 힘들었다.
이후 오만 기의 몽골 기병과 삼만 명의 요서군이 기차를 포위했다.
투타타타타.
천천히 움직이는 기관차에서 사격이 시작되었다.
“싸워라! 전부 죽여라.”
“저것들만 다 죽이면 살 수 있다!”
화물칸 안에는 선로와 선로 바닥에 까는 침목들이 쌓여 있다.
화물칸 벽은 쇠기둥과 나무 판자로 되어 있고, 곳곳의 구멍엔 호위병들의 총구와 광해이포가 입을 벌리고 있다.
앞 뒤 기관실엔 기관총이 한정씩 실려 있다.
광해의 마법진이 없는 매우 무거운 수냉식 기관총이다.
투타타타.
콰아앙.
콰쾅.
궁기병이 달려 들어봤자 기차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래도 인해전술은 충분히 폭력적이다.
죽이고 죽여도 달라붙는 보병과 쏟아지는 화살은 기관차 철망 사이로 들어왔고, 평소 숯이나 석탄을 증기기관에 넣는 일꾼들이 화살에 맞아 하나 둘 쓰러졌다.
화물칸의 벽과 지붕에 달라붙은 적병의 도끼질에 지붕과 벽이 하나하나 뜯겨나갔고, 일단 열리자 열 명 뿐인 병사들은 속절없이 죽었다.
콰아아앙!
뒷 기관차 쪽에서 굉음이 터져 나오고 천천히 이동하던 기차가 거칠게 흔들려 탈선했다.
“끝이군.”
멈춰선 기관차를 보며 앞 기관차의 기관장이 끝을 예감했다.
틱틱틱.
수만 발의 기관총 총알을 다 쐈다.
세 명의 일꾼이 화살 수십 대를 맞아 죽고, 홀로남아 총을 쏘던 일꾼이 허무한 표정으로 기관장을 바라봤다.
기차 만드는 핵심 기술. 증기기관의 힘. 고치는 방법까지 다 알고 있는 기관장은 철저하게 교육받고 철저하게 대접받는 엘리트이며 열렬한 광해소망교 신자다.
그랬기에 지금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다.
카카칵.
칵.
꾸직. 꾸직.
적병이 달라붙어 기관실을 열려고 한다.
전부 쇠로 만들었기에 어느 정도 버틸 순 있지만 언젠간 열린다.
저들에게 잡히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게 될 것이다.
“광해님께 영광을......”
“광해님께 영광을......”
기관장은 고작 석탄 넣는 일이지만 충분히 대접받던 일꾼과 함께 유언을 읊조리고 기관실 바닥의 이중 안전장치를 풀고 스위치를 눌렀다.
콰아아아앙!
기관실에 숨겨둔 자폭장치가 폭발하면서 증기기관과 기관총을 파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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